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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9. 17. 예수비전교회 주일낮예배 즐거운 축복의 교회공동체 유백선 목사
로마서 12:12-15
예수비전교회 주소 // 서울특별시 노원구 한글비석로 24라길 76-5 (상계5동 136-55)
상담 : 유백선 목사, ybs9191@hanmail.net
대표전화 02) 6221-6468, Mobile. 010-8346-6468
예수비전교회 카페에는 삶의 행복과 깊은 감동을 주는 메시지가 더 많이 있습니다. 카페에 들어오셔서 함께 나누시고 예수님의 비전으로 복을 받고 함께 주님의 교회를 세워나가시기 소망합니다.
http://cafe.daum.net/jesusvision91, http://cafe.daum.net/boram9191
인생은 시간과 선택의 연속입니다. 그 인생에 고난과 즐거움이 늘 공존하고 있습니다. 고난이 인생을 단단하게 연마시키는 연금술입니다. 즐거움은 인생의 기쁨을 누리게 하는 축복입니다. 인생에서 고통과 즐거움을 활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자신이 인생을 제어하지 못하면 인생이 자신을 제어하게 됩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교훈은 ‘무엇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가? 무엇이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가?’ 이것을 올바로 알아야 인생을 지혜롭게 살 수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말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큰 고통은 어디에서든 2등이 되는 것이다.” 행동에서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가 고통을 피하고 싶은 심리적인 충동에서 나옵니다. 가치 있고 멋있는 인생은 가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인생에 즐거움을 주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가 배우는 즐거움입니다. 배우면서 진리를 알아가고 자신을 알게 됩니다. 자신을 잘 알아야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집니다. 배움의 주인이 되면 반복과 집중하는 힘을 기릅니다. 조금 더 성장하는 기쁨을 얻습니다. 진리가 편견을 깨고 성취감을 느낄 때 행복합니다. 둘째가 가르치는 즐거움입니다. 제자들이 성장하고 성취하는 것을 보면 보람을 느낍니다. 가르치는 사람과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할 때 즐겁습니다.(갈 6:6) 가르치고 행하는 사람이 천국에서 크다고 여깁니다.(마 5:19) 셋째가 깨달음의 즐거움입니다. 인생이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에서 깨달음을 얻고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뀔 때 기쁨을 얻습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정을 나누는 것이 가장 선한 것이다. 선을 행하는 것이 가장 가치 있게 한다.” 깨달음으로 자아가 깨지는 고통을 겪으면서 새로운 변화가 시작됩니다.
오늘은 교회창립주일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 반석 위에 주의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주의 교회를 통해서 음부(지옥)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마 16:18)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다.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할 것이다. 내가 아버지(하나님)께 간다.”(요 14:12) 예수님께서는 믿는 사람들에게 큰 일이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 주의 교회를 세웁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섬기는 사람이 교회를 세웁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전도의 미련한 방법을 통해서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기를 기뻐하셨습니다.(고전 1:21)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하는 사람들에게는 미련한 것입니다. 반면에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입니다.(고전 1:18)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전하는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을 함께 나누어주는 교회가 되기 원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무엇을 합니까? 본문 12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여기서 “소망(엘피디/ελπιδι/elpidi)”은 “기대, 확신, 희망, 두려움, 영원한 구원에 대한 즐거운 확신에 찬 기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는 하나님께 소망을 둔 성도들이 있습니다.(시 39:7)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이 어릴 때부터 의지합니다.(시 71:5)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이 어려운 일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항상 소망을 품은 사람이 주를 더욱 찬송합니다.(시 71:43)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이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잊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킵니다.(시 78:7) 하나님께 그 소망을 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시 146:5) 의인의 소망이 즐거움을 이룹니다.(잠 10:28) 믿음의 사람들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도 온전하게 기쁘게 여깁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낸다고 알기 때문입니다.(약 1:2-3) 믿음의 연단을 통해서 소망을 이룹니다.(롬 5:4)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하는 것은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의 마음에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롬 5:5)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보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롬 8:24)
축복의 교회공동체와 성도들이 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이 즐겁게 살기 때문입니다. “즐거워하다(카이론테스/χαιροντες/xairontes)”는 말은 “유쾌하게 되다, 은은히 행복하다, 유복하다, 인사하다, 환영하다, 기뻐하다, 잘 되다, 번성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을 도우십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불안과 낙심을 벗어버립니다. 마음에서 불안과 낙심을 버려야 찬송합니다.(시 42:11) 노먼 빈센트 필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낙심과 불안 속에서도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이 성공을 경험합니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시 146:5) 네덜란드 신학자 토마스 아 켐피스가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목적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이다.”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이 위기를 맞았을 때 더 감사합니다. 감사가 소망을 이루는 힘입니다. 감사가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사람을 구합니다. 감사가 풍성함과 성공을 끌어들이는 힘입니다. 감사가 자부심과 자신감을 높이고 변화와 위기에 대처하는 에너지입니다.
미켈란젤로는 그림을 그리는 것을 너무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집이 가난해서 그림을 그리는 도구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가난 앞에 무릎을 꿇지 않고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실력이 나날이 늘어가자 사람들이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이 그림은 신의 경지에 이른 그림이다.” 미켈란젤로는 사람들의 칭찬에 만족하지 않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세계의 미술사에 남을 화가와 조각가 되었습니다. ‘최후의 심판’을 그렸고, ‘모세와 다비드’를 조각했습니다. 성 베드로 성당을 건축하여 건축사에 길이 남을 건축가가 되었습니다. 그가 가난이란 고난을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은 불굴의 의지와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는 고난을 겪으면서 소망을 가지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소망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래서 고난의 환경에서 희망을 일구는 씨앗을 심었던 것입니다. 지금 나(우리)는 현재의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사람은 환난 중에서 참고 항상 기도에 힘씁니다. 여기서 “환난(뜨립세이/θλιψει/thlipsei)”은 “압박, 상처받은, 고뇌, 핍박, 곤경, 시련”이란 뜻입니다. 환난을 겪을 때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참을 수 있습니다. 심리적인 압박을 견뎌낼 수 있습니다. 핍박을 견뎌낼 수 있습니다. “참고(휘포메논테스/‘υπομενοντες/hypomenontes)”는 “밑에 머무르다, 남겨지다, 견디다, 굳건하게 지니다, 인내하다, 지키다, 견디다”라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서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그리스도다.” 증언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대적하며 비방했습니다. 그런데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었습니다. 수많은 고린도 사람들도 듣고 예수님을 믿어 세례를 받았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비방하고 방해했음에도 사도 바울이 왜 복음을 전했습니까?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다.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이 있다.”(행 18:5-10) 지금도 진리의 복음을 증거하면 주의 백성이 예수님께로 나옵니다. 하나님의 환난을 겪을 때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이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합니다. 다윗이 수많은 대적들에게 쫓겨 다녔습니다. 사울 왕이 권력을 동원해서 끊임없이 다윗을 죽이려고 추격했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심리적인 압박을 느끼면서 피해 다녔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께 아뢰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피할 반석입니다. 나의 방패십니다.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나를 폭력에서,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실 것을 믿습니다.”(삼하 22:2-3) 그리스도인이 환난을 겪을 때 하나님께서 큰 도움을 주십니다.(시 46:1) 환난 날에 하나님을 부를 때 하나님께서 건지시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니다.(시 50:15)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은 환난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현재의 고난을 어떻게 바라봅니까?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롬 8:18) 현재의 환난과 고난도 모두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롬 8:28)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소망을 가진 즐거운 교회공동체에 무엇을 주십니까? 성도들이 쓸 것을 공급해주십니다. 본문 13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여기서 “그 쓸 것(크레이아이스/χρειαις/xreiais)”은 “필요, 고용, 요청, 결핍, 의무, 일, 본분”이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실 것입니다.(빌 4:19) “공급하다(코이노눈테스/κοινωνουντες/koinonoyntes)”는 말은 “남과 나누다, 교통하다, 동참자가 되다, 공유와 교제를 나누다, 동업자가 되다, 교제를 시작하다, 제휴하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왜 쓸 것을 공급하십니까? 손님을 대접하기를 힘쓰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손님을 대접하다(필로크세니안/φιλοξενιαν/philoksenian)”는 말은 “환대, 손님을 즐겁게 하다, 나그네에 대한 사랑, 후대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나누어주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 나라의 경제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너에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라. 네 손을 움켜쥐지 말라.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 요구하는 대로 쓸 것을 넉넉하게 꾸어주라.”(신 15:7-8) 예수님께서는 주는 사람에게 주십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이다.”(마 7:12) ‘내가 대접을 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합니까?’ 넉넉하게 꾸어주면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안겨주실 것입니다.(눅 6:38)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나눌수록 더 커집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재능을 기부하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독일의 시인 괴테가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평생을 바쳐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이다.”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선하게 사용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즐거움이 있는 교회공동체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박해하는 사람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여기서 “박해하다(디오콘타스/διωκοντας/diokontas)”는 말은 “추적하다, 날려 보내다, 쫓아버리다, 괴롭히다, 고통을 주다, 추구하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의를 위해서 박해를 받는 사람이 복이 있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라.”(마 5:10,44) 박해를 받은 사람의 기도를 통해서 박해자가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말했습니다. “당신을 핍박하는 적을 사라지게 하는 최선의 길이 사랑으로 적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박해하는 사람을 “축복하다(율로게이테/ευλογειτε/eylogeite)”는 말은 “칭찬하다, 감사하다, 번영을 빌라, 칭찬하며 축하하다, 엄숙한 기도로 바치다.” 라는 뜻입니다. 어떻습니까? 나를 괴롭히고, 나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합니까?
세계에 기독교를 박해하는 나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인도에서 힌두교도가 기독교로 개종하면 괴롭히고, 위협을 가하면서 다시 힌두교로 개종하라고 압력을 가합니다. 인도에 기독교 복음이 주후 52년경에 성 토마스(St. Thomas)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윌리암 캐리(Willam Carey) 선교사 때부터 기독교가 부흥했습니다. 주로 최하위 계층(달리트)에 속한 사람들과 부족 중심의 교회를 통해서 80%가 성장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전문직 종사자들과 지식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크게 주목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다른 공산국가보다 유독 기독교를 박해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기독교 교리가 김일성의 주체사상과 많이 닮았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신앙 문제를 넘어서 체제를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해방 직후에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파하여 기독교 공동체가 왕성했습니다. 그래서 평양을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렀을 만큼 신자들이 많았습니다. 김일성 집안을 보면, 외할아버지(강돈욱)가 장로였고, 김일성 외삼촌(강양욱)이 목사였습니다. 김일성의 어머니(강반석)가 ‘베드로’라는 뜻입니다. 김일성의 아버지(김형직)도 선교사가 세운 학교에 다녔습니다. 김일성도 중학교 2학년 때까지 교회에 열심히 다녔습니다. 주체사상이 기독교 사상을 본 따서 십계명처럼 ‘유일사상 10대 원칙’을 만들었습니다. 북한에서 탈북한 사람들이 성경을 접하고 말했습니다. ‘주체사상이 기독교를 모방해서 우리를 속였구나.’ 하나님의 은혜, 사랑, 감사, 섬김, 자발적인 나눔을 없애고 주체사상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둔 즐거운 교회공동체가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드러내놓고 박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서서히 끓는 냄비 속에 있는 개구리의 모습을 많이 닮았습니다. 세속화에 물들어서 영적인 감각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탄과 마귀는 박해하지 않는 나라들에서 세속화를 시켜서 영적인 무기력 상태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세속화를 경계하고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즐거워하는 사람과 함께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여기서 “즐거워하다(카이레인/χαιρειν/xairein)”는 말은 “유쾌하게 되다, 은은히 행복하다, 잘 되다, 번성하다, 기뻐하다, 축하하다”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서로를 깊이 공감하는 교회공동체가 되라는 것입니다. 공감의 힘이 자신과 교회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긍정적인 효과 공감이 긍정적인 연쇄효과를 만듭니다. 공감의 힘이 교회를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공감의 힘이 없으면 내 마음을 보여줄 수 없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볼 수 없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칼 로저스(Carl Ransom Rogers)가 말했습니다. “공감은 우리에게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고, 계속 앞으로 나갈 수 있게 한다. 상대방의 말에 공감할수록 우리가 더 안전한 느낌을 얻는다.” 그리스도인이 즐거움을 함께 공감하며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슬픔을 함께 공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즐거움을 공감하는 것과 슬픔을 함께 공감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어렵습니까? 내가 즐겁지 않는 상황인데 다른 사람이 즐거워하는 것을 함께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든지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셔서 능히 누리게 하십니다. 제 몫을 받아서 수고함으로 즐거워하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십니다.(전 5:19-20) 이제 하나님께 소망을 둔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각자가 받은 은혜를 나누어주고, 함께 즐거워하는 축복의 교회공동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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