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에서 깊이로, 경건 루틴!
(동대문 쪽방촌 이현구 선생님의 글)
“깊은 영성은 단순한 삶에서 비롯됩니다!” 대학 시절, 분필 가루 가득한 낡은 강의실에 반쯤 감긴 눈을 하고는 딱딱한 의자에 쓰러지듯 기대어 앉아 있을 때, 싸구려 마이크를 타고 속삭이듯 들려오던 교수님의 이 한 마디가, 잡다한 습관의 일상을 트로피처럼 안고 살아가는 오늘의 나를 점점 꾸짖듯 다가옵니다. 단순함과는 이미 작별한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루틴’(routine)은 매일 수행하는 습관이나 절차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트랜드코리아 2022]는 습관이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행동의 집체”라면, 루틴은 “의식적으로 반복하기 위해 세운 계획 혹은 일련의 행동”이라고 설명합니다. 한 마디로 습관을 보다 구체적인 계획안에 가두어서 반드시 실행되도록 만드는 행위가 루틴입니다. 그래서 루틴은 습관을 활용해 나의 삶을 디자인하고, 건설해가는 중요한 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습관에 대해 제임스 스미스(James K.A. Smith)는 [습관이 영성이다]에서 “당신이 사랑하는 것이 곧 당신이다!”라고 정의합니다. 좀 더 확대해서 생각하면, 무엇에 대한 간절한 열망은 사랑이 되고, 사랑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루틴이 되어 우리 삶의 모습을 형성해 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다양한 습관 속에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실만한 것이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그것들 가운데 정말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습관을 거룩한 목적 속에서 일정한 형식으로 담은 나의 루틴이 된다면 내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될까요?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과 우리가 하나님께 반응하는 것을 루틴의 형태로 담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의 일상을 위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은 매일 아침 허락하신 일용할 만나를 거두는 일이었습니다(출 16:4, 21). 이것은 끊임없는 ‘은혜 묵상의 루틴’입니다. 또한, 광야에 성막이 세워지고 제사장들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사명 가운데 하나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드리는 상번제였는데, 하나님은 그 시간 그곳에서 만나 주시고, 대화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출 29:38~42). 이것은 ‘임재 동행의 루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정해진 시간, 일정한 장소에서 기도하기 위해 성전에 올라갑니다(행 3:1). 이것은 신앙인으로서 하나님께 의지적으로 반응하는 ‘경건 생활의 루틴’입니다.
제한된 시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런 영적 루틴은 우리가 누리던 자유를 제한하고, 생각과 일상을 협소한 틀 속에 가두어 폐쇄공포증을 유발하는 그런 부담스러운 행위가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임재 그리고 동행을 누리는 행복한 유영의 시간이며, 선물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예수님은 율법 아래에서 범죄 루틴 속에 갇힌 유대인들을 향해 진리 안에서의 자유를 선포하셨습니다. 진리 탐구의 단순한 경건 루틴이 진정한 자유로 나아가는 첩경입니다. 이제 진리 되신 예수님과 다시 한번 경건 루틴 계획표를 짜 보시는 게 어떨까요? 진정한 경건 루틴을 통해 거듭나도록, 가볍고, 쉽고, 단순하게 말이죠. 단순함이 경건의 깊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