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3-소변, 우리 몸의 첫 번째 도미노 - 조너선 라이스먼
-미내사-지금여기 24.5월 호 주요기사
의사이자 자연탐험가인 저자 조너선 라이스먼이 탐험가의 눈으로 들려주는 흥미로운 우리 몸 이야기. 그중 한 부분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사람들은 보통 딱히 좋아하는 체액이 없다. 체액이라면 종류에 상관없이 불쾌하게 여긴다. 의사도 자기가 불쾌감을 가장 덜 느끼는 체액을 기준으로 전공을 선택한다는 옛말이 있다.
전공 분야마다 중요한 체액이 다르니,
대변이나 가래는 역겹지만 피는 봐줄 만한 사람은 혈액내과 의사가 되고, 소변이나 담즙은 끔찍하지만 가래는 괜찮은 사람은 호흡기내과 의사가 된다는 식이다.
그렇지만 의대생 시절에 나는 특정 체액에 마음이 ‘끌려서’전공을 선택하는 의사도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체액마다 나름의 오묘한 방식으로 진단의 실마리를 제공하니 흥미가 동할 만하다.
감염내과의 고름부터 이비인후과의 콧물에 이르기까지 우리 몸의 수많은 배설물, 분비물, 화농은 의사가 질병을 진단하고 치유하는 데 꼭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체액은 보통 버려지고 천대받는 존재이지만, 의사가 다루는 필수 재료로, 저마다 고유한 언어로 의사에게 속삭이며 환자의 문제를 알려준다.
전문의가 된다는 것은 특정 체액의 언어에 능숙해진다는 것으로, 그 색과 질감과 굳기의 해석법을 배우고 일생 동안 그 비밀을 궁리한다는 의미다.
전문 분야를 선택하는 것은 체액을 선택하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나는 한 분야에 정착하지 않고 버텨서 지금도 일반의를 하고 있지만, 내가 항상 특별히 끌렸던 체액은 소변이다.
소변은 복부 뒤쪽에 박혀 있는 한 쌍의 콩알 모양 기관, 신장에서 만들어진다. 성분은 대부분 혈액에서 걸러진 수분이고, 몸에서 나온 액체 노폐물이 섞여 특유의 색과 냄새를 유발한다. 신장에서 만든 소변은 요관을 거쳐 편리하게 방광에 모인다. 모인 소변을 플라스틱 컵에 배출하기만 하면 주삿바늘을 쓰지 않고 채취해 검사할 수 있다.
소변은 환자의 상태에 관해 워낙 풍부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체액이며, 소변검사는 워낙 자주 하는 것이라 영어로는 소변urine과 분석analysis의 합성어인 유리낼리시스urinalysis로 통칭된다.
소변은 의료계에서 별명으로 통하는 유일한 체액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신장전문의가 소변검사를 통해 진단하는 모습을 처음 봤던 기억이 난다. 의대에서 신장학 선택과목을 수강할 때였다. 교수가 작은 플라스틱 소변컵을 들고 흰 가운을 펄럭이며 병원 복도를 총총 걸어 신장내과 현미경실로 갔고, 나는 그 뒤를 따라갔다.
교수가 검사띠를 소변에 담그자 맨눈으로는 볼 수 없던 혈액과 단백질이 검사띠에 표시되었다. 피펫으로 소변을 일부 취해 원심분리기에 넣었다. 원심분리기가 고속으로 회전하자 떠다니던 세포가 분리관 바닥에 농축되었다. 이 물질을 한 방울 취해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니 파편들이 시야 전체에 퍼져 있었다.
교수는 환자의 증상과 검사에서 나타난 이상 징후를 모두 종합해, 사구체신염이라는 드문 신장질환으로 진단했다.
소변을 수정 구슬처럼 들여다보며 마법 같은 투시력으로 환자의 몸속을 꿰뚫어본 것이다. 그 순간부터 나는 소변의 비밀스러운 언어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그 후 몇 달 동안 검사띠와 원심분리기 다루는 법을 연습했고, 현미경으로 단서를 포착하는 눈을 키웠다. 검사실의 의료기사들과도 친해져서, 내 공부에 도움이 될 만한 흥미로운 소변 샘플이 있으면 보관해달라고 부탁했다.
곧 검사실 냉장고에 내 이름이 붙은 전용 컵이 놓였고, 나는 매일같이 점심시간에 들러 새 샘플을 살펴봤다.
어느 날 현미경을 들여다보는데 혈류가 진균에 감염된 중증 환자의 소변에서 효모가 자라는 것이 보였다. 효모균이 신장의 여과 장치를 장악하여 소변에까지 흘러든 것이었으니 치명적인 상태였다.
또 한 번은 성병 기생충을 보았다. 세모편모충이라는 눈물방울 모양의 생물 이 남성 환자의 소변 속에서 수중발레를 하듯 헤엄치며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환자가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를 맺었다는 뜻인데, 부지불식간에 얼마나 많은 파트너에게 감염을 퍼뜨렸을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세모편모충 감염증에 관해 기초 지식밖에 없었지만, 환자는 소변 볼 때 타는 듯한 느낌 때문에 병원을 찾았거나, 아니면 흔히 그렇듯이 증상이 전혀 없었으리라고 짐작했다.
몸에서 배출된 물질을 판독하는 것만으로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의 삶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새로운 발견을 할 때마다 마치 끊어진 실이 갑자기 하나로 이어지는 것 같은 스릴을 느꼈다.
탐정이 결정적인 단서를 마주칠 때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후략. 자세한 내용은 지금여기 29-3호 (2024년 5/6월) 참조).MINAISA NEWSLETTER (2024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