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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현대 이스라엘=교회"란 무엇인가?
Q : “교회”란 무엇입니까?
A : 교회는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정하신 하나님의 기관이다. 교회는 봉사를 위하여 조직 되었고, 그 사명은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타락한 후부터, 당신의 자녀들을 구원하시려는 구속의 경륜, 즉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시기 위하여 교회를 택하셨다.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온전하신 성품을 세상에 나타내고, 당신의 사랑의 성품과 은혜의 충만하심을 온 세상에 나타내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며 교회의 설립의 목적이었다. 교회, 즉 교회를 이루는 교인들은 한 목적을 위하여 이 세상에 존재하는데, 그것은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당신의 기이하신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다.
오순절 성령을 충만히 받았던 소수의 무리들(예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른 사람들, 또한 예수님의 부활을 친히 눈으로 목격했던 사람들로서,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있을 때 성령을 받은 무리들 ; “초대 교회”라고 불림)이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실천하려고 했을 때, 그들은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질서와 조직이 필요하였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모이는 “그리스도인들의 회”, 곧 “교회”였다.
초대 교회 당시의 교회는 지금의 교회의 개념과는 전혀 달랐다. 그들은 함께 모여서 그들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를 서로 나누고 간증하고 싶은 열망이 컸으므로, 자신들의 체험을 같이 나눌 수 있는 모임과 장소가 필요했을 뿐 아니라, 예수님의 지상명령인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라”는 말씀을 효과적으로 실천 및 실행하기 위하여 질서 있는 조직이나 체계가 필요하였다. 그리하여 교회에는 봉사직으로 여러 가지 직분이 주어졌으며, 그 직분은 다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하여만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 당시의 참 교회의 모습은 현 시대의 비즈니스화되거나 산업화된 권위주의적인 교회의 모습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다. 또한 현시대의 교회와 그 당시의 교회와는, 교회 설립의 목적, 교회를 구성하는 요소인 교인들의 사명, 목적의식, 또는 자질 면에 있어서 확연히 다른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는 커다란 건물도 아니고, 조직도 아니고, 그것은 국가적인 설립 기관도 아니며, 또한 그것은 여러 각종 교파들도 아니다. “교회”란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그리스도께서는 초라한 몇 사람들 중에라도 계시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교회이다. 왜냐하면 영원토록 거하시는 높고 거룩하신 분의 임재만이 교회를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Q : 참 교회가 되는 조건은 무엇입니까?
A : 참 교회가 되는 조건은, 우리들 자신이 성소가 되어 마음 속에 하나님을 모시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구원은 무더기로 얻는 것이 아니다. 구원과 신앙의 경험은 개인적인 것이며, 각 개인이 가져야 할 아주 사적(私的)인 체험이다. 내 자신 스스로가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를 먹는 경험을 해야만 한다. 다른 사람이 떡을 먹은들 내 배가 부를 리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거듭남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 경험이 내 것이 될 때에만 그 거듭남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진리가 겉으로 돌지 않고 나의 것으로 체험되고, 내 마음 속에 녹아 들고, 내 자신이 진리 자체가 되는 경험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체험을 이렇게 상징적인 표현으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요 6:53~56).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은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신다는 것과, 우리가 그 안에서 완전하게 된다는 것을 믿고, 그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예수의 성품에 참여하게 되는 것은 그의 사랑을 바라보고, 그의 사랑을 깊이 생각하고, 거기서 깊은 감명을 받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양식이 신체에 영향을 주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심령에 영향을 끼치셔야만 한다. 음식은 우리가 그것을 먹지 않는 한, 또는 그것이 우리 신체의 한 부분을 구성하지 않는 한,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도 끼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우리가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알지 않는다면, 그분은 우리에게 아무런 관계나 가치도 없다. 이론적 지식은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도 주지 못한다. 그리스도를 먹고 그를 마음에 받아들여 그의 생명이 우리의 생명이 되게 하여야 한다. 그의 사랑과 그의 은혜가 우리의 생애에 소화되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참 백성, 참 교회가 되는 조건이다.
포도나무의 비유를 잠깐 살펴 보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라고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분은 가지가 포도나무에 연결된 것은 너희가 나에게서 지지를 받는 그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어린 가지가 산 포도나무에 접 붙혀져 섬유질(纖維質)과 섬유질이, 엽맥(葉脈)과 엽맥이 연결되어 이것이 포도나무 줄기로 자란다. 포도나무의 생명은 그 가지의 생명이 된다. 그와 같이 허물과 죄로 죽은 영혼이 그리스도와의 연결을 통하여 생명을 얻는다.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음으로 연합은 이루어진다. 죄인이 그의 결점을 그리스도의 장점에, 그의 텅 빈 것을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에, 그의 연약함을 그리스도의 항구적인 능력에 연합시킬 때에, 그는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지게 된다. 그리스도의 인성이 우리의 인성에 감응되며, 우리의 인성이 신성에 감응된다. 이와 같이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인간은 거룩한 품성을 나누어 가지는 자가 된다. 그 때 인간은 사랑 받으신 분이신 예수 안에서 하나님 앞에 받으시는 바 된다. 이렇게 한번 이루어진 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지속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우연한 접촉이거나 또는 분리와 연결이 무상한 그런 결합이 아니다. 가지가 산 포도나무의 한 부분이 된다. 뿌리에서 가지로 생명과 힘과 과실의 풍성함을 전달하는 일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포도나무에 붙지 않은 가지는 살 수 없는 것처럼, 예수께서는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살 수 없으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너희가 나에게서 받은 생명은 계속적인 교통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내가 없이는 너희는 단 하나의 죄도 이길 수 없고 조그마한 유혹이라도 물리칠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분의 성령을 계속적으로 받아들여 그분을 섬기는 일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생애를 의미한다. 교통의 통로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계속적으로 열려 있어야 한다. 포도나무 가지가 산 포도나무에서 수액(樹液)을 계속적으로 빨아올리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께 매달려서 믿음으로 능력과 그분의 품성의 완전하심을 그분에게서 받아야 한다. 뿌리는 가지를 통하여 가장 먼 가지에 이르기까지 영양분을 공급한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신자들에게 영적 능력의 흐름을 전달하신다. 영혼이 그리스도께 연결되어 있는 한, 시들어 버리거나 부패할 위험은 없다. 포도나무의 생명은 가지들에 달린 향기로운 열매 가운데 명백히 나타날 것이다. 예수께서는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살 때에 성령의 열매가 우리의 생애 가운데 나타나 보일 것이며,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참 교회가 되는 사람들이다.
Q : 교회에 나가야만 구원을 얻습니까?
A : 위에서 배운 대로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을 말한다. 그것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로만 공언하는 그냥 교인이 아닌, 마음 속에 하나님의 임재를 충만히 경험하는 성도, 포도나무의 비유처럼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하나님과 산 관계를 맺고 있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참 교회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알아야 할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그 교인이 교회와 관련되어 있거나, 교회의 교인 명단에 이름이 올라있거나, 목사님과 가까운 관계에 있거나, 선교를 많이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교회가 되고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와 죄를 이기게 하시는 능력, 그리고 우리 속에 임재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입혀주시는 의의 옷, 곧 나누어 주시는 의로운 성품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지, 교회라는 조직이나 그룹, 혹은 건물에 속해 있다고 해서 얻는 것이 아니다. 오늘 날 교회의 건물은 크지만, 그 안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거하시지 않거나, 하나님의 임재가 부재된 교회들이 많으며,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안목으로 생각해볼 때,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 속에 있지 않는 교회는 참 교회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개인적인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언급되어져야 할 문제이지, 교회와는 상관이 없다.
참 교회란 마음속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교회 = 백성”이 아무도 없는 쓸쓸한 사막에 혼자 거하여 예배를 드린다 할지라도, 갑갑한 감옥에 갇혀 눈물로 예배를 드린다 할지라도, 아무도 없이 적막하게 집에서 혼자 하나님을 부른다 할지라도,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통회하며, 신령과 진리로 예배 드리는 사람을 당신의 아름다운 교회로 인정하시고 그 마음에 거하시며, 그 사람은 하나님의 눈에 귀한 참 교회가 되는 것이다.
Q : 마지막 시대에 나타날 하나님의 참 교회는 누구입니까?
A : 요한 계시록에는 마지막 시대에 탄생할 하나님의 참 교회에 대하여 예언되어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마지막 시대에 짐승의 표가 강요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요한계시록 13장, 14장에는 짐승의 표가 모든 사람들에게 강요되는 모습이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계 13:16),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계 14:11).
그런데 이렇게 짐승의 표가 강요되는 두려운 상황에서도 짐승의 표를 거절하고 승리하는 참 교회의 모습이 나온다. 성경은 이들을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라고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 짐승의 표 받기를 거절하는 참 교회의 모습이 나와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다.
성경의 마지막 장인 요한계시록 22장을 보면, 하늘에 들어갈 마지막 참 교회에 대해서 나와 있는데, 그들에 대해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 22:14). (한글 성경에는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킹 제임스 영어 성경과 성경의 원문에는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음, 역자주). 성경은 마지막 시대에 하늘에 들어가는 자들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신실하게 지킨다는 표현을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시대의 참 교회를 묘사하면서, 참 교회는 계명을 지키는 자들로 구성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오늘날, 과연 누가 사도 요한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예언을 부인할 수 있는가? 그러나 현실을 살펴보면, 너무나 많은 목사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계명은 십자가에서 폐해졌다고 설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한다. 마지막 시대에 사단이 분노하여 전쟁을 벌이는 상대는 오직 여자의 남은 자손 외에는 없다는 사실을...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요한계시록 12:17). 하나님의 계명이 폐하여졌다고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사단의 공격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며, 그들은 짐승의 표를 받고 오히려 짐승의 표를 강요하는 세력에 가담하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계명을 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고 버리고 또 그 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마태복음 5:17-19).
물론, 참 교회의 교인들은 구원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였기 때문에, 청결하고 순결한 양심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사랑하며 그것을 지키는 변화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거듭났고 새 사람이 되었으며,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법인 계명이 쓰여져 있으므로, 자연히 하나님의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생애를 살게 된다. 성경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분명히 알면서도 그것을 지키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은, 아니, 늘 죄의 소욕에 끌려 다니고 습관적으로 의례히 죄의 노예로 살므로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도 없고, 원하지도 않는 사람들은 아직 온전히 거듭남을 경험하지 못했거나, 구원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마지막에 하나님께서는 교파와 종교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생애에 이룬 참 백성들을 불러 모으실 것이다. 그들은 성령의 인도로 마지막에 모두 함께 모이게 될 것이다. 그들은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거듭난 사람들로서, 하나님의 임재를 마음 속에 충만히 경험하고, 또 죄의 흉악성을 너무 뼈저리게 느끼므로, 죄악을 싫어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악과 타협하거나 악을 행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당신의 증인으로 삼으셔서 우주에 그들의 성품을 높이 들어 올리시고 보이실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마음에 하나님의 법이 기록된(히 10:16) 새 언약에 들어간 사람들이며,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이며, 이런 사람들이 마지막에 나타날 하나님의 참 교회이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한복음 14:15)
Q : 여자의 남은 자손”이란 무슨 뜻인가요?
A : 요한계시록 12장 마지막 절에 나오는 성경절에는 여자의 남은 자손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리고 거기서 우리는 사단이 여자의 남은 무리(remnant)와 전쟁을 벌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남은 무리(remnant)란 무엇을 의미하는 말일까? “remnant”의 원어의 의미를 살펴보자. 옷감을 파는 집에 가면 천을 큰 두루마리로 말아놓은 것이 있는데, 그 두루마리의 마지막 남은 조각을 “remnant”라고 부른다. “remnant”는 두루마리의 첫 번째 천과 동일한 천으로써, 맨 마지막에 남는 조그만 천 조각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남은 무리는 사도시대의 교회가 가지고 있던 가르침과 동일한 변질되지 않은 가르침을 그대로 전수하고 있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
각 가정에 족보가 있듯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엄연히 족보가 존재한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마는 하나님의 참 백성들의 족보와 그 족보의 흐름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남은 자손들이 있다고 성경은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진짜배기 자손들이 있다는 말씀이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사람들을 구분하여 갈라놓는 것처럼 드릴지 모른다. 그러나 성경 말씀 자체가 여자의 남은 자손의 특징에 대하여 분명하게 명시해 놓고 있다.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한 후에, 그들이 이제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선고를 내리신 즉시부터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자손과 뱀의 자손들이 서로 원수가 될 것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서로 원수가 될 것이라는 말씀의 의미는 문자적인 직역으로 본다면 하나님께서 그들 사이에 적개심을 두시겠다는 뜻이다. 이 세상 역사는 항상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 사이에 끊임없는 전쟁이 있어 온 사실을 여실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성경 요한 계시록 12장에 나오는 예언이 바로 그 사실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인데, 하나님의 자녀들, 즉 여자의 후손들과 그들을 핍박하는 자들 사이의 전쟁이 예언되어 있는 것이다. 계시록 12장의 출발에서 성경은 햇빛을 입고, 달을 밟고, 12별의 면류관을 쓰고 있는 한 여인을 소개하고 있다. 이 여인이 한 남자 아이를 낳게 되는데 그 아이는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이며, 용이 여자가 낳은 그 남자 아이를 죽이려고 애를 쓰게 되고, 결국에는 이 아이가 하늘로 승천하게 되는 사실을 말하면서 과거 역사적인 측면에서 이 여인이 누구인지를 설명하여 주고 있다. 이것은 틀림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시킨 교회를 말하는 것이며 마귀가 그를 죽이려 하는 모습과 결국에 하늘로 승천하여 올라가신 주님을 설명하여 주는 장면이다.
그러므로 계시록 12장은 남은 자손, 즉 하나님의 교회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으며 그들의 정체가 과연 누구인지를 지목하여 주고 있는 예언인 것이다. 여인이 낳은 남자 아이가 하늘로 승천한 후에 마귀는 분이 나서 교회를 핍박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 패한 분풀이를 하나님의 자녀들인 교회에게 하는 것이다. 그는 1260년 동안 교회를 죽여 없애려고 애를 쓰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교회는 광야로 도망하여 살게 되는데 그것은 사단의 핍박을 피하기 위하여 광야와 산골짜기 그리고 동굴 등으로 피신하여 겨우 그 존재의 명맥을 유지해 나가는 참 교회의 역사를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중세기 동안 교황권의 핍박을 피하여 도망 다니던 하나님의 교회를 의미하고 있다.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하고 복사하지 못하게 할뿐더러 성경의 진리대로 가르치는 자들을 교회의 권위에 대한 반역자와 이단자들로 몰아 잡아 죽이고 고문한 과거 암흑시대의 역사가 누가 참 하나님의 교회인지를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중세기에 1260년 동안 핍박을 감행한 세력은 마귀의 앞잡이 노릇을 한 파워이고 그 같은 기간 동안에 핍박을 당한 대상이 바로 하나님의 교회인 것이다.
그런데 계시록 12장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4-17). [ * 14절의 한때 두때 반때의 기간을 6절에서는 1260일이라고 말했다. 예언 기간에서 하루는 일년을 상징함으로 이것은 1260년 동안의 종교 암흑시대를 말하는 것이다]. 이때 용이 물을 토하여 교회를 없애려고 하는데, 이 물은 성경의 예언에서 사람들을 상징하고 있다(계 17:15 참조).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참된 하나님의 자녀들을 핍박한 교황권의 활동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폭로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때에 땅이 교회를 도와 주게 되는데 이 땅이란 바로 다음 장인 계시록 13장에 등장하는 땅에서 올라오는 나라인 미국을 상징한다. 그래서 중세기의 핍박에 시달리던 하나님의 자녀들이 미국이라는 대륙이 발견되자 그곳으로 이주하여 옴으로 그 핍박을 피하여 살게 된 것이다. 콜럼버스가 그 즈음에 미국을 발견하게 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마귀는 인간의 범죄 후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 하시려는 계획을 알아차리고 하나님의 참 백성들을 죽이려고 사력을 다하여 싸워 왔다. 우리는 그 사실을 성경의 역사를 살펴 보면서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먼저 가인을 통하여 아벨을 죽인 마귀의 역사를 보자. 마귀는 여인의 후손, 즉 하와의 아들인 가인을 자기의 자손으로 삼는 일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께 충성하며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는 동생 아벨을 미워하여 죽이게 하는 일에 성공하였다. 가인은 여인의 자손이었으나 실상은 뱀의 후손 즉, 마귀의 후손으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뱀의 후손과 여인의 후손 사이에 전쟁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 후에 아담은 셋을 낳고 기뻐하였으며 셋은 아벨을 대신하여 여인의 후손 즉, 참 하나님의 교회가 된다. 그 후로 셋의 후손들과 가인의 후손들은 서로 떨어져서 살게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인의 후손들로부터 오염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창세기 6장에 가서 슬픈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마귀가 셋의 후손과 가인의 후손들이 서로 섞이게 만드는 일에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세상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창 6:2,3,5,6). 마귀는 여자의 남은 자손들 즉, 하나님의 참 백성들을 다 죽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가 간구해낸 묘책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 속에 들어 와 그들을 타락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셋의 후손들이 가인의 딸들과 결혼함으로 타락시키는 일에 성공하였다. 그 결과 비참한 노아 홍수가 임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만히 놓아 두실 수가 없으셨다. 죄악의 파급이 너무나 신속하였기 때문에 메시야가 오시기도 전에 세상이 자멸 할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노아 홍수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참 백성들을 구별하여 놓으셨다. 세상의 타락한 와중에서도 진리를 고수하며 의로운 생활을 사는 백성들을 구별하여 놓으신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아브라함이었다. 우상 숭배가 만연했던 갈대아 우르 지방에서 그를 불러내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계명을 지키는 자로 삼으신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신 이유를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라”(창 18:19). 그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지키는 의로운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이것이 여자의 후손 곧 하나님의 참 백성들을 구별하여 두시는 이유다.
노아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읽어 보자.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보았음이니라”(창 6:22-7:1).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남겨 두시는 이유가 얼마나 꼭 같은가! 바로 이러한 같은 이유에서 계시록 12장이 여자의 남은 자손들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7).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자들이 바로 여자의 남은 무리들이다. 참된 하나님의 남은 자손들이라는 말이다. 그들은 예수의 증거를 가지고 있다. 계시록 1장 2절은 요한이 본 계시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라고 부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예수께서 주신 계시의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는 자들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성경에 말씀하고 있는 사단의 자손들과 여자의 남은 자손들의 특징을 이해하는 자들이 지금도 하나님의 남은 백성들이라는 것이다. 사단은 초대 교회 때에 오류를 가지고 교회에 들어와 하나님의 백성들을 자기의 부하들로 만드는 일에 성공하였다. 침례 요한이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이 독사의 새끼들아”라고 부른 것을 기억하시는가? 그것은 그들이 실상에 있어서는 마귀의 자식들이라는 말이다. 예수께서도 그들을 “너희 아비는 마귀라”고 하시지 안았는가? 그러므로 지금도 교회 안에 하나님의 백성들과 마귀의 백성들이 눈에 보이지 않게 분리되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마귀의 자손들이 하나님의 백성인 여자의 남은 무리들을 핍박하고 있다. 앞으로 이 일은 온 세계적으로 일어 날 것이다. 두 무리가 분명하게 분리되어 서게 될 것이다. 그때에 우리는 과연 어느 편에 속하게 될 것인가? 참으로 심각한 질문이 아닐 수가 없다.
예수를 그저 머리로만 믿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순종하는 자들,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이 그들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자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만 하는 자들이 아니라 그 말씀대로 따라 사는 자들이 여자의 남은 자손들이다. 자기의 목숨을 잃어 버리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될 지라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더 높이는 자들, 하나님의 명령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자들, 먹고 사는 일보다 주님의 명령이 더 중요한 자들, 그러한 자들이야 말로 참된 하나님의 남은 자손들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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