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술을 배운 것도 목사직을 수행하면서였다.
얇은 외투만 걸치고 살을 에는 바람이 몰아치는 얼어붙은 호수를 수십 리나 가로질러 갈 때, 폭풍이 몰아치고 비가 퍼붓는데 그가 탄 배에 지붕이 없을 때, 썰매를 타고 가다가 사람 키를 넘는 눈더미와 마주쳐 말이 옴짝달싹 못하게 되고 손수 삽질을 해야 했을 때, 바닥을 알 수 없는 늪지대를 허우적거리며 지나갈 때, 그가 술을 배운 건 바로 그런 때였다.
하루하루가 음울하고 숨 막히게 흘러갔다.
이 고장은 농부나 귀족이나 다를 것 없이 대지의 수렁에 묶여 있다.
그러나 저녁이면 영혼들은 화주의 도움으로 족쇄를 떨쳐냈다.
영감이 찾아오고, 가슴에 온기가 돌고, 인생이 빛나고, 화답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고, 장미향이 풍겼다.
주점은 어딘가 먼 남쪽나라의 장미화원이 되고, 머리 위엔 포도와 올리브가 주렁주렁 열렸으며, 무성한 녹음 사이로 대리석상들이 은은히 빛나고, 철학자들과 시인들이 종려나무와 플라타너스 아래를 거닐었다.
설교단 위에 선 목사는 화주를 마시지 않고는 누구도 이곳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신자들 역시 그걸 뻔히 알면서도 그를 재판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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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루를 여기 머무는 동안 너는 한 번도 어미를 알은체하지 않았지.
나는 사흘 동안 포장도 안 된 길을 200킬로미터나 달려서 여기까지 왔다.
네가 한 짓이 부끄러워 내 온몸이 곤장이라도 맞은 양 벌벌 떨리는구나.
네가 나를 부인했듯 너 또한 부인당하고, 네가 나를 쫓아내듯 너 또한 추방되기를.
네가 한길을 거처 삼고, 짚으로 잠자리 삼고, 숯가마를 아궁이로 쓰게 되기를!
네가 수치와 조롱을 당하고, 지금 내가 너를 후려치듯 남들도 너를 매질하기를!'
그리고 그녀는 내 뺨을 호되게 후려쳤어.
하지만 나는 그녀를 번쩍 들고 계단을 내려가 마차 안에 밀어넣었어.
'당신이 뭔데 나를 저주해?' 나는 물었어.
'당신이 뭐라고 날 때려? 누구든 내게 이런 짓을 하는 건 못 참아.'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따귀를 돌려주었어.
마차가 출발하던 그 순간, 예스타 베를링, 나는 마르가레타 셀싱이 죽었다는 걸 깨달았어
마르가레타 셀싱은 선량하고 순진했어.
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지.
그녀의 무덤 위에서는 천사들이 울었어.
그녀가 아직 살 아 있었다면 어머니의 뺨을 때리는 짓은 하지 않았을 거야."
문가의 걸인은 귀 기울여 들었다.
그녀의 말들은 한순간 영원의 숲이 유혹하듯 던지는 바람소리마저도 덮어버렸다.
보라, 이 권세 높은 여인이 실은 그와 같은 죄인임을 자처했다.
그에게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그와 같은 처지로 내려와 함께 저주받은 누이가 되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 또한 근심과 죄를 짊어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는 일어나 소령 부인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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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천국에 갈 거라 생각하는 건가?"
"안녕히 계십시오, 소령 부인, 감사합니다."
"잘 가시게, 예스타 베를링."
걸인은 고개를 숙인 채 몸을 일으켜 터덜터덜 문가로 향했다.
거대하고 영원한 숲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을 이 여인이 무겁게 만들었다.
문에 다다랐을 때 그는 뒤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꼼짝 않고 앉아 그를 쫓던 소령 부인의 시선과 그의 시선이 만났다.
예스타 베를링은 사람의 얼굴이 그리 변모하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그는 멈춰 서서 놀란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분노와 위협에 찬 말을 쏟아내던 그녀가 정화된 자태로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녀의 눈에 연민에 젖은 애정이 차올랐다.
그 시선을 마주하는 순간, 영원히 길을 잃은 그의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녹아내렸다.
그는 문설주에 이마를 기대고 머리를 감싸쥔 채 가슴이 터지도록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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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 그는 부르짖었다. "내 집에서 나가!"
그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사들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꼼짝 않고 서서 서로 마주 보았다.
검은 악마가 예언한 것들이 모두 이루어지려 하고 있었다.
그들은 소령 부인이 악마와의 계약을 갱신하지 못한 결과를 보고 있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녀가 20년 넘게 기사들을 지옥에 보내왔다는 것과 그들 또한 언젠가 같은 길을 밟으리라는 것도 사실이었다.
오, 이 마녀 같은 계집!
"꺼져라!" 소령이 되풀이했다.
"한길에서 구걸이나 하면서 목숨을 부지해.
넌 이제 더 이상 그놈의 돈을 갖고 기뻐하지도, 그놈의 영지에 살지도 못할 거다.
에케뷔의 소령 부인은 끝났어. 내 집에 다시 발을 디디기라도 하면 때려죽이겠다!"
"날 내 집에서 쫓아낸다고?"
"여긴 네 집이 아냐! 에케뷔는 내 집이다!”
소령 부인은 두려워졌다. 문까지 물러나는 그녀를 그가 쫓아갔다.
"당신, 내 인생의 불행이었던 당신이." 그녀는 한탄했다.
"이제는 나에게 이런 짓을 할 힘까지 생긴 건가?"
"나가, 꺼지라고!"
그녀는 문가에 기대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녀는 어머니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네가 나를 부인했듯 너 또한 부인당하고, 네가 나를 쫓아내듯 너 또한 추방되기를.
네가 한길을 거처 삼고, 짚으로 잠자리 삼고, 숯가마를 아궁이로 쓰게 되기를!
그렇게 되는 거로구나, 그렇게 되고 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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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서 소령 부인은 나갔다.
그녀는 조용히 사라졌지만 그녀가 떠난 자리에는 놀라움이 남았다.
비록 몰락했으나 굴욕의 순간에도 그녀는 품위를 잃지 않았다.
그녀는 고통에 무너지지도 않았고, 노년에 이르러서도 젊은 시절의 사랑을 돌이키며 환호할 줄 알았다.
그녀는 모든 것을 깨닫고 난 후에 한탄을 늘어놓지도, 비겁한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다.
걸인의 지팡이를 짚고 동냥 자루를 끌며 정처 없이 떠돌아야 할 자신의 미래 앞에서도 겁에 질리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가난한 농부들과 뢰벤 호숫가에서 살던 명랑하고 천하태평이던 인간들을, 가난한 기사들을, 그리고 그녀가 원조하고 지켜주던 모든 이들을 연민했을 따름이다.
그녀는 모두에게 버림받고도 남아 있는 단 하나의 친구를 살인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 떠나보낼 정신력이 있었다.
그녀는 힘과 행동력이 넘치는 묘한 여자였다.
그녀 같은 여인은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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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곧 잊을 거야?"
"이제 떠나도록 해, 예스타. 우린 둘 다 그냥 인간일 뿐이야."
그는 썰매로 뛰어올랐고, 그녀가 도로 그에게 다가왔다.
"늑대들이 걱정되진 않아?
"물론 그놈들을 잊진 않았어. 하지만 그놈들은 할 일을 끝냈지.
오늘 밤엔 더 이상 내게 볼 일이 없을 거야."
그는 다시 한 번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달리고 싶어 안달이 난 돈 후안이 썰매를 끌기 시작했다. 그는 고삐를 붙들지 않았다.
그는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썰매 가장 자리로 몸을 숙이고 절망에 빠진 사람처럼 흐느꼈다.
"나는 행복을 손에 넣고도 내던졌지. 내가 떠나보내버린 거야. 왜 꼭 붙잡지 못했을까.”
아, 예스타 베를링! 인간들 중 가장 강하면서도 약한 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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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발이 말을 듣지 않아 어네클루는 발끝으로 설 수가 없었다.
두어 번 한 발로 버둥거리다 그는 도로 침대로 쓰러졌다.
잘생긴 세뇨르여, 그대는 늙었다.
그대의 세뇨리타 또한 아마도.
오로지 그라나다의 플라타너스 아래에서만 영원히 젊은 집시들이 카추차를 춘다.
그들이 늙지 않는 것은 장미꽃이 영원히 젊은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해마다 봄은 새로운 장미를 피워낸다.
그러니 이제 바이올린 줄을 끊어야 할 시간인가?
아니다, 연주를 계속하라. 릴리에크루나여, 카추차를 연주하라.
그것을 끊임없이 되풀이 하라.
기사관에 머무는 우리의 몸이 무거워지고 사지가 굳더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만은 언제나 스페 인 사내임을 깨닫게 해다오 군마여, 군마여!
네가 돌격 나팔 소리를 사랑함을 인정하라.
그 소리에 너는 끈에 묶인 다리로 피를 흘리면서도 달음박질을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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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죽음이여, 창백한 벗이여, 너와 조우할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게 얼마나 큰 위안이자 진실인지.
이 지상의 일꾼들 중 가장 부지런한 내게도 언젠가 네가 찾아와 내 발에서 닳아버린 가죽신을 벗기고, 내 손이 들고 있던 밀가루통과 죽 숟가락을 내려놓고, 내 몸에서 작업복을 벗겨내겠지.
너는 부드러운 손길로 나를 위해 레이스로 장식된 침상을 펼치고, 수놓인 기다란 수의를 들어 내 몸을 두를 테지.
그때가 되면 내 발은 더 이상 신을 필요로 하지 않을 테고, 내 손은 일을 하느라 더럽힐 걱정 없이 눈처럼 새하얀 장갑을 낄 수 있으리라.
네가 선사하는 달콤한 휴식에 온몸을 내맡기고 나는 천 년의 잠에 들련다.
오 구원자여!
이 지상의 가장 바쁜 일꾼으로 살아온 나는 네 왕국에 받아들여질 순간을 꿈꾸며 황홀함에 전율한다.
창백한 벗이여, 내게 네 힘을 마음대로 펼쳐도 좋다.
그러나 말해 두자면 이미 지나간 시절의 여인들은 나보다 훨씬 어려운 적수였을 것이다!
그녀들의 호리호리한 몸에는 강한 생명력이 넘쳐 흘렀으니, 그 어떤 추위도 그녀의 더운 피를 식힐 수 없었다.
너는 아리따운 마리안을 네 침상에 눕히고 요람 옆에 앉아 자장가를 불러주는 늙은 보모처럼 그녀의 곁을 지켰다.
너는 경험 많고 성실한 유모였으니 무엇이 네 아이를 진정으로 위하는 길인지도 알았으리라.
그러니 아이의 친구들이 몰려와 시끄럽게 소란을 떨며 반쯤 잠이 들었던 아이를 깨웠을 때, 너는 얼마나 성이 났으랴.
기사들이 아리따운 마리안을 침상에서 일으켰을 때, 한 사내가 그녀를 제 가슴에 안고 그녀의 뺨 위로 더운 눈물을 쏟아 냈을 때 네가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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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따운 마리안도 이 비판적 자아를 품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말, 모든 걸음에 그것의 싸늘한 시선과 조소가 따라붙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삶은 비판적 자아를 유일한 관객으로 둔 연극이 되고 말았다.
그녀는 더 이상 진정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녀는 고통받지도 않았고, 기쁨을 느끼지도 못했고, 사랑을 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단지 아리따운 마리안을 연기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녀의 비판적 자아는 싸늘한 시선으로 그녀의 연기를 꿰뚫어보면서 부지런히 그녀의 내면을 해부했다.
그녀의 자아는 둘로 나뉘었다.
비판적인 한쪽은 창백하고 무감 동하게 앉아 다른 한쪽의 행동을 조소했다.
그녀의 내면을 짓이기는 이 기괴한 자아는 절대 공감의 말을 내뱉는 법이 없었다.
그녀가 삶의 충만함을 배웠던 그 겨울밤에 모든 행동의 근원을 감시하는 이 창백한 자아는 어디에 가 있었을까?
그 똑똑하던 마리안이 백 쌍의 시선이 지켜보는 가운데 예스타 베를링에게 입을 맞췄을 때, 절망에 빠져 죽겠다고 눈 속에 누웠을 때 어디로 숨었을까?
그때만은 비판적 자아의 싸늘한 시선도 잠시 감기고 조소의 웃음마저도 멎었다.
그녀의 영혼이 온통 정열로 가득 찼던 덕이었다.
동화의 한 장면과도 같은 거친 사냥의 소음이 그녀의 귀에 울렸던 그 끔찍한 밤에 그녀는 마침내 온전한 한 인간이 될 수 있었다.
오 비판적 자아여!
마리안이 끈질긴 시도 끝에 얼어붙었던 팔을 들어올려 예스타 베를링을 끌어안았던 그 순간만은 너 역시 늙은 베렌크로이츠처럼 지상에서 고개를 들어 별들을 바라보는 수 밖에 없었다.
그 밤에 너는 힘을 잃었다.
아리따운 마리안이 사랑에 찬가를 바칠 때 너는 죽어 있었다.
그녀가 소령을 부르러 셰로 달려갈 때도 그랬다.
그리고 그녀가 숲의 우듬지 위로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불길을 목격했을 때도 너는 죽어 있었다.
보라, 악마 같은 정열이 독수리 떼처럼 무자비하게 몰려왔다.
불꽃같은 날갯짓과 강철 같은 발톱으로 정열은 싸늘한 눈을 한 자기비판을 궁지로 몰았다.
정열은 비판적 자아의 뒷덜미를 발톱으로 잡아채 미지의 영역으로 내던져버렸다.
그렇게하여 그 밤, 마리안의 비판적 자아는 패하고 죽임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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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야, 너는 사랑을 했지만 더 이상은 사랑의 기쁨을 맛보지 못하리라.
영혼아, 한때 정열의 폭풍이 너를 뒤흔들었다면 이제는 안심하라, 안식이 찾아왔으니.
영혼아, 너는 더 이상 천상의 기쁨을 향해 날갯짓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안심하라, 안식이 찾아왔으니.
더 이상 고통의 밤 속으로 침잠하지 않아도 된다.
아, 더 이상 그러지 않아도 된다!
아이야, 너는 사랑을 했지만 더 이상은 네 영혼이 불길 속에 타오르지 않으리라.
불타버린 초원처럼 너는 한순간에 불꽃으로 채워졌다.
재와 연기가 만들어낸 숨 막히는 구름에 새들은 놀라 울부짖으며 달아났었다.
돌아오라. 이제 너는 더 이상, 더 이상은 불타지 않으리라.
아이야, 너는 사랑을 했지만 더 이상은 사랑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네 마음은 학교의 딱딱한 걸상에 앉아 마음껏 뛰어놀 자유를 그리던 지친 아이와도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도 네 마음을 부르며 번민에 빠뜨리지 않으리라.
잊힌 보초병처럼 오도카니 앉아 있는 네 마음을 사랑은 더 이상 불러주지 않으리라.
아이야, 그 사람은 가버렸다.
그리고 그와 함께 사랑도 사랑의 기쁨도 가버렸다.
네가 사랑했던 그 사람은,
네게 천국까지 날아오르는 법을 가르쳐주었던 그 사람은, 네가 사랑했던 그 사람은,
홍수에 휩쓸리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안전한 곳을 가리켜준 그 사람은 가버렸다.
네 마음의 문을 열 줄 알았던 단 한 사람이 떠나버렸다.
내 사랑, 당신에게 단 하나만 청하겠어요.
아, 내 위에 증오의 짐을 얹지 마세요.
약한 것들 중에서도 가장 약한 것이 사람의 마음 아니던가요.
다른 마음을 고통에 빠뜨리고도 편안히 살 수 있는 마음이 있을까요.
오 내 사랑, 나를 죽이려거든 단검도 독도 밧줄도 준비하지 마세요.
그저 내가 이 꽃피는 지상으로부터, 삶의 왕국으로부터 무덤으로 사라지길 바란다는 말만 해주어요.
당신은 내 삶을 살게 했어요. 사랑을 주었어요.
그리고 이제는 그 선물을 당신 손으로 거두어가네요.
아,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날 미워하진 말아요.
그래도 내가 이 삶을 사랑함을 기억해주세요.
나는 알아요.
당신의 증오가 내 숨을 끊을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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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렌크로이츠, 이런 게 삶이라네." 그는 말했다.
"이 젊은 숙녀를 태운 돈 후안이 내달리듯, 시간도 인간을 태우고 달려가지.
자네가 썰매의 방향을 정하듯, 쓰디쓴 필연이 시간 위에 올라탄 인간들을 가야 할 방향으로 이끈다네.
그리고 내가 이 여자를 안은 것처럼 갈망은 의지를 인질 삼아 붙잡고 있어.
힘없는 인간은 그저 한없이 깊이 추락할 수밖에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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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드라이브 아닙니까?
여왕이라도 마다치 않을 만하지요?
뢰벤 호수 뒤에는 베넨 호수가, 그리고 베넨 호수 뒤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습니다.
온 사방이 거울처럼 매끄럽고 어두운 얼음으로 끝없이 덮여 있지만, 그 뒤의 세상은 다시 눈부시게 반짝일 겁니다.
얼음은 깨지며 우레 같은 굉음을 내고, 추적자들은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러대는데 대기에는 별빛이 가루가 되어 떠다니고 썰매의 종이 울리는군요.
전진, 한눈팔지 말고 전진!
아름답고 젊은 백작 부인, 저와 함께 이 여정에 오르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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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이여." 그는 엄숙히 말했다.
"내 눈에는 인간들의 업적과 그 업적의 자취들이 이 푸른 대지를 가득 덮은 광경이 보이네.
피라미드가 대지를 짓누르고 바벨탑이 하늘을 꿰뚫었지.
자갈 위로 아름다운 사원들과 푸른 성들이 솟아올랐네.
하지만 인간의 손이 지어올린 것 중 무너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영영 무너지지 않을 것이 무엇이 있나?
오, 인간들이여, 미장이의 흙손과 받침대는 던져버리게!
작업복도 머리 위로 펼쳐 덮고 드러누워 휘황 찬란한 꿈의 성을 지으세나!
돌과 흙으로 지어진 사원이 영혼에게 무슨 소용인가?
꿈과 환상으로 이루어진 영원한 궁전을 짓는 법을 배우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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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의 아이들아!
나는 너희에게 이 옛 이야기를 믿어달라고 하지는 않으련다.
그저 꾸며냈거나 정신 나간 이야기일지도 모르니.
하지만 신트람의 거실에서 흔들의자 아래 마룻바닥이 삐걱거릴 때까지 울리카의 마음에서 요동치던 후회와 인적 없는 숲에서 귓가에 썰매방 소리가 울릴 때 안나 셴회크가 느꼈던 절망 또한 꾸며내거나 정신 나간 소리일까?
차라리 정말로 그랬다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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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뜨고 영혼 속에서 꿈같은 상념들이 깨어난다.
달빛 아래 포도덩굴에 휘감긴 베란다 지붕은 은빛.
바람 속으로 백합 향기가 날리는데 밤의 베란다 계단에는 나이든 이와 젊은이들이 한데 모였다.
마음속에 살아 있던 옛 노래가 먼 과거의 인사처럼 이 아름다운 시간에 부드럽고 고요하게 울려 퍼진다.
달콤한 향이 물푸레나무를 감돌고 수풀의 서걱대는 가지들이 밤이슬에 젖은 풀밭 위로 그림자를 떨군다.
영혼은 소망한다, 육체의 밤을 벗고 눈부신 하늘의 영원한 빛을 향해 날아가기를.
저 높은 곳에서 공기는 맑고 정결하고 별들은 두 눈에 다 담기지조차 않는다.
그림자가 다가오고 꽃들이 어지러운 향을 뿜을 때
밤의 정적 속에서 북받치는 감정을 그 누가 억누를 수 있을까!
장미가 꽃을 피우다 지쳐 땅으로 떨어지는 시든 잎이 폭풍에 꺾이는 대신 고요히 스러지듯이 그렇게 우리도 떠나련다.
가을바람에 시들어 흩날리는 잎사귀들처럼 우리의 삶도 소리 없이 진다.
신께서 인도하시는 방향에 만족하며 우리는 지상의 길을 오래도록 걸었다.
죽음은 삶의 끝에 주는 보상일지니 평화로이 떠나자
시든 장미 꽃잎이 고요히 땅으로 지듯이.
소리 없이 날아오른 박쥐가 달빛을 받으며 재빠르게 되돌아온다.
그 잰 날갯짓처럼 우리의 영혼에도 어리석은 자들도 현자도 일찍이 풀지 못했던 수수께끼가 차오른다
슬픔처럼 무겁고 사랑의 고통처럼 오래된 수수께끼가.
우리가 지상의 초원 위를 더 이상 거닐지 못할 때 우리의 영혼은 어느 길 위를 걷게 될까.
아, 그 누구도 다른 영혼의 길을 따라가볼 수는 없구나.
차라리 새들이 가뿐한 날갯짓으로 향하는 곳을 알아내기가 더 쉬우리.
내가 사랑하는 여인도 내 가슴에 머리칼과 뺨을 기대고 꼭 안겨 조용히 속삭인다.
'설사 죽음의 그림자가 내 눈을 덮을지라도 영혼은 결코 사라지지 않아요.
내 사랑을 위해 나는 계속 살아가겠어요.
당신의 선한 마음 안에 내 영혼은 깃들 거예요.'
오 이 무슨 끔찍한 고통인가.
그녀가 죽는다니! 마지막으로 나는 그녀에게 말한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그리고 그 입술과 머리칼과 뺨에 입 맞춘다.
세월이 그날을 덮었다.
그럼에도 나는 밤이면 내가 그녀를 품에 안고 입을 맞추었던 그 자리를 찾는다.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달빛에 환한 베란다 지붕뿐.
그러나 나는 잊지 않으리
바로 저 달이 그녀의 젖은 눈시울 또한 비추었던 것을.
내 사랑은 떨리는 입술로 이별을 고하고 떠났다.
이 고통! 어찌 씻어야 할까,
이 순결한 여인의 가슴에 번뇌를 불러일으키고 그녀를 내게 묶으려 했던 죄를.
==
문간에서 마차가 대기하고 짐은 이미 다 실렸다.
젊은이는 작별을 고했다.
그는 모레우스 부인의 손등에 입 맞추고 울고 있는 아가씨들과 포옹한 후, 그들의 뺨에 키스했다. 그 역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 작은 집에서 보낸 여름은 그에게도 행복한 나날이 어서 발길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는 마리 처자를 찾아 몸을 돌렸다.
그녀는 제일 좋은 옷을 차려 입고서 계단을 내려왔다.
그녀의 목에는 폭이 넓은 녹색 비단 끈에 매인 기타가 걸려 있었다.
손에는 달장미 한 다발을 들었다.
올해에는 드디어 그녀의 어머니가 심었던 장미 나무에도 꽃이 피었던 것이다.
그녀는 젊은이 앞에 가만히 서서 기타를 치며 노래했다.
‘우리를 떠나는 당신, 아, 언젠가는 돌아오세요.
작별은 마음이 아파요.
새로운 행복을 찾더라도 잊지는 말아주어요.
당신을 마음에 담고 있을 충실한 친구들을.’
그녀는 그의 단추 구멍에 꽃을 꽂아주고 입술에 키스했다.
그러고는 계단을 뛰어 올라가버렸다.
가엾은 노처녀 같으니!
사랑은 그녀에게 앙갚음을 하느라 그녀를 모두의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그녀는 다시는 사랑을 헐뜯지 않았다.
기타를 다시 치워 버리지도 않았고 어머니의 장미 나무를 가꾸는 것을 게을리 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고통과 눈물과 그리움과 어우러지는 사랑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사랑으로 고통 받는 게 사랑 없이 행복한 것보다 나아."
그녀의 새로운 말버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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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독자여!
그대가 길 위에서 우연히 가련하고 비참한 이를 보거든, 등 뒤에 모자를 매달고 손에는 신을 든
채 땡볕을 고스란히 쬐며, 길바닥의 돌에 상처 입으며 가는 슬픈 이를, 고난을 자처하며 걷는 이를 보거든 조용히 몸을 떨며 지나치라.
짐작하다시피 그대가 본 이는 성스러운 무덤을 향해 속죄의 길을 가는 참회자다.
참회자는 설사 왕의 신분이라 해도 거친 외투를 두르고 빵과 물만 섭취해야 한다. 탈
것에 의지하지 않고 제 발로 걸어야 한다.
가진 것을 모두 포기해야 하기에 그는 동냥으로만 연명한다.
엉겅퀴 가시 위에 잠자리를 마련하고 딱딱한 비석 위에 무릎을 꿇는다.
매듭진 채찍으로 제 등을 때리며 오로지 고통에서 즐거움을, 시름에서 기쁨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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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시어머니처럼 세상의 다른 즐거움을 모조리 맛본 영혼이 잔인함 속에서 쾌락을 찾는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참을성 없고 어둠에 잠긴 이 영혼에게 아첨도, 애무의 손길도, 춤의 도취도, 유희의 쾌락도 주어지지 않으면, 영혼은 어둑한 심연으로 내려가 잔인함을 캐냈다.
무감각해진 영혼에게 단 하나 남은 쾌락의 원천은 짐승과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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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머니 품에 안겨 옛날이야기를 듣는 아이를 본 적이 있느냐.
무시무시한 싸움과 쓰디쓴 고통의 이야기가 나올 때 아이는 눈을 크게 뜨고 잔뜩 귀 기울이지만, 어머니가 행복하고 온후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눈을 감고 어머니의 가슴에 기대 조용히 잠이 든다.
아름다운 달아, 나 또한 그런 아이와도 같다.
다른 이들은 꽃과 태양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라지.
나는 환각과 모험으로 가득 찬 깜깜한 밤을 택하련다.
앞이 보이지 않는 운명의 이야기와 길 잃은 영혼들의 슬픔 가득한 정열에 나는 귀 기울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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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영지에서는 만사가 순탄했다.
자애로운 안주인의 가호 안에 만물이 무럭무럭 자라 번성했다.
농장을 거니는 자들은 모두 고요한 행복감에 젖었다.
다른 곳에서라면 불화를 불러올 만한 일도 여기서는 불평과 고통 없이 해결되었다.
모든 것이 순리대로 흘렀다.
이 집의 가장이 에케뷔의 기사로서 살기를 바랄 때 가족들은 어찌해야 할까.
왜 서녘으로 져서 세상을 깜깜하게 만드느냐고 하늘의 해를 향해 투덜거려봤자 무슨 소용이겠는가.
숙이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최후에 웃는 것은 인내하는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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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 부인의 가슴속에는 주검처럼 창백한 두려움이 살았다.
그녀의 머리칼은 허옇게 셌다. 살갗엔 주름이 가득했다.
한 달 만에 그녀는 팍삭 늙었다.
이 끔찍한 마법에는 그녀의 영혼조차 맞설 수가 없었다.
밤마다 그녀는 악몽에서 깨어나 까치 떼가 자신에게 달려드는 환각에 시달리며 비명과 함께 뛰어다녔다.
온종일 그녀는 헤어날 길 없는 운명에 울기만 했다.
혹시라도 새 떼가 따라 들어올까봐 그녀는 같은 인간들도 무서워했다.
그녀는 줄곧 말없이 앉아 시간을 보냈다.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안락의자를 흔들며 공기가 통하지 않는 방 안에서 병들고 우울해져갔다. 불현듯 벌떡 일어나 비명을 지르고 괴로움을 호소하는 것도 그나마 기력을 보일 때였다.
사람 팔자가 이리 힘겨워질 수도 없다.
누가 이 불쌍한 여자를 보고 한탄하지 않으리.
그녀에 대해서는 더 할 이야기도 없다.
내가 지금껏 한 이야기도 그리 좋은 내용은 아니었는데, 그래서 양심의 가책이 느껴질 지경이다. 메타 백작 부인도 젊은 시절에는 사람 좋고 쾌활한 여자였다.
그녀의 젊은 시절의 유쾌한 일화들은 비록 이 책에 적을 자리는 없지만 나를 무척 즐겁게 해주었다.
그 불쌍한 여자는 자각하지 못했지만 사람의 영혼은 양식을 꾸준히 필요로 한다.
춤과 유희는 영혼의 허기를 채워주는 양식이 아니다.
적당한 양분을 얻지 못한 영혼은 들짐승처럼 남들을 갈기갈기 찢어댄 후 마침내 자기 자신마저 파괴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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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타, 너는 어째서 더 인내하고 고통 을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너는 살아오면서 줄곧 가난 속에서 거칠게 단련되었다.
숲의 나무들이, 들판의 언덕들이 인내와 소박함에 대해 설교하는 것들을 너는 들어오지 않았는가.
겨울은 혹 독하고 여름은 탐욕스러운 땅에서 자란 네가 뎌내는 법을 잊은 거냐?
아, 예스타, 사나이라면 인생이 네게 주는 것이 무엇이든 용감한 마음과 미소 띤 입술로 맞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나이가 아니다.
잃어버린 연인을 마음껏 애도하라. 양심의 가책에 온 마음을 뜯겨라.
그러나 바깥세상을 향해서는 사나이답게, 진정한 베름란드 남자답게 당당하라!
눈빛에는 기쁨을 담고 너의 친구들에게는 명랑히 응대하라.
인생은 고되고 자연은 가차 없다.
그러나 둘 다 혹독함의 대가로 기쁨과 용기를 선사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누가 그 둘을 견딜 수 있으랴.
용기와 기쁨, 이 두 가지야말로 인생의 첫째가는 의무일지니!
너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용기와 기쁨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지금 또한 마찬가지다.
나무 피아노 앞에 앉은 뢰벤보리보다, 용맹하고 천하태평에 영원히 청춘인 다른 기사들보다 못한 자가 될 테냐?
그들 중 고통을 겪지 못한 자는 아무도 없다."
그리고 예스타는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기사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조용하고 진지하게 앉아서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이 음악을 경청하고 있었다
갑자기 터진 명랑한 웃음이 뢰벤보리를 꿈에서 깨웠다.
그는 건반에서 손을 떼고 기쁜 마음으로 웃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것은 예스타 베를링의 전과 같은 웃음이었다.
그의 선량하고 다정하며 주위 사람들까지 전염시키는 웃음이 돌아왔다.
늙은 뢰벤보리가 평생 들었던 중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베토벤이 자네를 도우실 줄 알았어. 예스타." 그는 외쳤다.
"이제 자네는 건강을 되찾았군!"
이리하여 음악의 여신은 예스타 베를링의 우울증을 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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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한 번 결혼했음을 그녀도 알았으나 개의치 않았다.
왜 그녀가 그런 걸 생각하겠는가?
그녀는 스무 살이었고 그는 스물다섯이었다.
젊고 힘이 넘쳐나는 스물다섯임이 확연했다.
이 미소 짓는 젊은이가 정말로 브루뷔의 탐욕스러운 목사일까!
때때로 그의 귀를 스쳐가는 소리가 있었다.
그 소리는 그에게 컴컴한 미래를 경고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세계에는 고통 받는 가난한 자들도, 그에게 속아 넘어가 그를 저주하는 자들도, 경멸에 찬 조롱도, 그를 비웃는 노래도, 조소도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은 그저 죄 없이 순수한 사랑으로 타올랐다.
이 당당한 청 이 돈 한 푼을 얻기 위해 더러운 진창을 구르고, 지나가는 자에게 구걸을 하고, 치욕과 수치와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는 인간이 될 리가 없었다.
고작 돈 때문에 이 젊은이가 제 자식을 굶기고 부인을 고문하는 자가 될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가 그런 인간이 될 리 없다.
그 역시 다른 모든 이들처럼 선한 인간이었다.
그는 괴물이 아니었다.
젊은 날의 연인 곁에서 걷고 있는 남자는 감히 주제도 못 되는 목사직을 차지하고 경멸당하는 악당이 아니었다.
그녀의 연인은 그런 사내가 아니었다.
전지전능한 사랑의 신이여, 오늘 그는 브루뷔의 목사가 아니다.
내일도, 모레도 아닐 것이다.
나흗날 그녀는 떠났다.
그간 목사관의 정문은 넓게 수리되어 있었다.
충분히 쉬었던 말들은 브루뷔 언덕을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근사한 꿈이었나!
그 사흘간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었다.
그녀는 미소 지으며 자신의 성으로, 그리고 추억 속으로 귀환했다.
그 후로 그녀는 그의 이름을 다시는 듣지 못했고 그녀 자신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살아 있는 동안 다시 한 번 그 꿈을 꿀 수 있기만을 기원했다.
브루뷔의 목사는 텅 빈 집 안에 앉아 절망에 차서 울었다.
그녀는 그에게 젊음을 돌려주었다.
이제 그는 다시 늙은이가 되어야 하는가?
다시 사악한 영이 돌아와 그를 예전처럼 경멸당해 마땅한 인간으로 만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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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이 한스럽고 베름란드의 자식들인 우리 모두가 한스럽도다!
아름다움이여, 우리가 삶에게 원하는 것은 오로지 아름다움 뿐이다!
금욕과 진지함과 질박함에서 태어난 우리는 하늘을 향해 팔을 치켜들고 긴 기도를 올리며 우리에게 허락된 단 하나의 선물, 아름다움을 갈구한다!
부디 인생이 사랑과 포도주와 우정에서 피어나는 장미 덤불 같기를, 그 장미를 얻는 것이 모든 인간에게 허락되기를!
보라,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건만 우리의 고향 땅은 엄격하고 진지하며 질박하기만 하구나.
우리의 고향은 영원히 명상에 잠겨 있으나 우리는 생각이란 것을 할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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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기 자신의 융통성 없는 엄격한 성격 때문에 양심에 짓눌리며 예배에 참석했다.
그렇다면 가난한 이들이 앉는 자리 앞에 무릎을 꿇고 교회 안의 형제자매들에게 부디 자신이 이 성스러운 곳에 머물 자격을 얻도록 신께 기도해달라고 부탁하는 편이 응당 걸맞을 것이다.
그가 정녕 신과 화해하고 싶었다면 성가대 석에 앉아 세상의 찬사와 존경을 기다리는 대신 가련한 죄인으로 섰어야 했다.
아, 헨릭 백작이여!
신은 그대를 빈자들의 자리에서 기다리셨을 것이다!
인간들이 감히 그대를 탓하지 못한다고 하여 신마저 눈감아 주시지는 않는다.
엄중한 신께서는 인간들이 침묵한다 해도 돌들에게 입을 열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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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여, 인간의 아이들이여, 나는 죽은 후에 아마도 내 조상들이 쉬고 있는 가족묘지에 묻히게 될 것이다.
나는 내 사랑하는 피붙이들의 밥줄을 끊은 적도, 스스로 내 삶을 망친 적도 없다.
하지만 나는 악빌론만큼 사랑받지는 못했기에 아무도 기사들이 이 범죄자를 위해 해준 것만큼 내게 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해가 진 밤, 죽은 이들의 정원이 처량하고 쓸쓸할 적에 내 뼈만 남은 손가락에 알록달록한 카드를 쥐여주기 위해 오는 이는 아무도 없겠지.
아무도 카드를 들고 내 무덤에 오지는 않을 것이다. 하
지만 나는 카드놀이에는 별 흥미가 없으니 다른 방문객을 맞고 싶다.
내 무덤에는 바이올린과 활을 들고 찾아와주면 좋겠다.
뗏장 아래 썩어가는 흙 속에서 떠돌던 내 영혼은 반짝이는 물살에 몸을 실은 백조처럼 들려오는 음률에 몸을 누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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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그녀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구스타바 부인은 아직도 산 책을 계속하며 거인 같은 지주와 꽃과 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리고 마리안 자신은 창 안쪽에 앉아 아드리안과 사랑 이야기를 했다.
'인생은 어머니와 나를 혹독한 현실로 던졌지.
그러니 우리가 각자 덩치만 커다란 어린애를 하나씩 끼고 소꿉놀이를 즐기면서 위안을 찾는 것도 괜찮을 거야.’
그녀는 애수 띤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뭐라 해도 사랑받는 건 기쁜 일이었다.
그녀에게서 마법 같은 기운이 흘러나온다느니 그녀에게 청혼했을 때 자기 태도가 너무 부끄럽다느니 그가 늘어놓는 이야기를 듣는 건 즐거웠다.
청혼 때만 해도 그는 그녀가 어떤 마법을 쓸 줄 아는지 몰랐다고 했다.
그녀의 곁에 다가가는 남자들은 누구나 그녀의 마력으로 사랑에 빠지고 만다.
하지만 그동안 자신이 그녀에 비해 너무 초라해 보여서 주눅이 들어 있었다는 게 아드리안의 증언이었다.
닥친 일이 마리안에게는 딱히 큰 행복도 불행도 아니었지만 그녀는 이 남자와 같이 살아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녀는 자기 자신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었다.
그녀는 그리움의 새인 비둘기를 다룬 옛 노래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비둘기는 맑은 물을 마시지 않는다.
제 발로 물을 휘저어 흐리게 만든 뒤에야 부리를 축인다…’
그녀의 우울한 천성도 비둘기를 닮았다.
그녀는 인생의 샘물에서 깨끗하고 맑은 행복을 바로 마시려 하지 않았다.
우수에 뒤섞인 삶이 그녀에게는 가장 잘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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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백한 친구이자 해방자인 죽음은 용맹하다.
그는 달아오른 대포알을 타고 허공을 날기를 즐긴다.
그는 모가지 위에 쉬익 소리가 나는 수류탄을 얹고 있다가 그것이 터지며 파편들이 날아갈 때 깔깔거린다.
교회묘지 유령들의 춤판에서 스텝을 밟기도 하고 구호소의 역병환자 수용실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직하고 착한 사람들이 사는 집 앞에서는 걸음을 주저한다.
인간들이 자신을 기쁘게 맞아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죽음은 인간의 영혼을 고통의 굴레에서, 더러운 진창에서 해방시켜 저 하늘에서 자유롭고 행복한 새 삶을 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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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들은 대단한 일들을 해낸다, 얘야. 위대한 거장들이지!
너도 그들 중 하나가 되면 무엇을 하고 싶니?
끌과 정 없이도 미와 백합들을 빚어내는 조각가가 될 테니, 아니면 저녁놀을 흩뿌리는 예술가가 될 테니? 해가 곱게 질 때면 난 앉아서 생각할 거다. 이게 우리 아들의 작품이지 하고
사랑하는 내 아들아, 네가 얼마나 많은 것을 경험하고 이루어낼지 기대하렴!
봄이면 네가 깨워낼 씨앗들을 떠올려라.
네가 방향을 알려줄 비구름들과 네가 인간들에게 보낼 꿈들도!
그리고 저 하늘에서 별들 사이를 오가는 긴 여행도 잊으면 안 되지.
근사한 것들을 잔뜩 보고 나면 이 어미 생각도 해다오, 얘야.
네 불쌍한 어미는 평생 베름란드 밖을 나가보질 못했다.
어느 날 너는 사랑하는 하느님 앞에 나아가 저 하늘을 도는 작은 별들 중 하나를 달라고 부탁할 거다. 그분은 들어주실 거야.
네가 받은 별은 처음에는 캄캄하고 차갑기만 하고 낭떠러지와 돌벽투성이이지.
꽃도 동물도 거기엔 살지 않는다.
하지만 너는 신께 받은 별을 열심히 보살필 거야.
별에는 빛과 온기와 공기가 생길 거다.
너는 거기에 풀을 심고 밤꾀꼬리와 눈 밝은 영양들을 보내겠지.
절벽에는 폭포가 흐르고 곳곳에 산이 솟는다.
평원에는 아름다운 붉은 장미를 심을 거야.
페디난드야, 죽을 때가 되면 내 영혼 역시 정든 땅을 떠나 긴 여행을 앞두고 무서워 떨거다.
그때 네가 천국의 새들이 끄는 반짝이는 황금마차를 타고 날 맞으러 오는 거야.
내 아가 페디난드가 마차의 창가에 앉아 날 기다리지.
너는 불쌍하고 겁에 질린 내 영혼을 마차에 태워서 네 옆에 앉힌다.
나는 여왕님이 된 기분일 거야.
그리고 우리는 빛나는 별들을 지나 하늘을 질주하겠지.
가까이 갈수록 더욱 환히 빛나는 별들을 보며 하늘나라가 처음인 나는 물을 거다.
'여기 멈춰서 계속 있으면 안 되겠니?’
하지만 너는 가만히 웃으면서 새들을 더욱 몰아가는 거다.
마침내 우리는 내가 본 중 제일 작지만 제일 아름다운 별에 도착하지.
거기엔 황금의 성이 있고 너는 이 영원한 기쁨의 보금자리에 날 안내할 거다.
성 안은 식재료 창고도, 서고도 가득 차 있지.
그곳의 전나무들은 여기 베리아의 나무들과는 달라서 아름다운 세상에 그늘을 드리워 가리지 않는단다.
나는 저 멀리 바다 넘어 햇살이 가득 비치는 땅들을 내려다볼 수 있을 거야.
그곳에서는 천 년이 하루와도 같다.”
빛나는 환상에 둘러싸인 페디난드는 곧 만나게 될 영광을 향해 미소 지으며 숨을 거두었다.
내 창백한 친구이자 해방자인 죽음은 이토록 행복한 경험을 한 적이 없었다.
페디난드 우글라의 임종 자리 역시 눈물범벅이 된 인간들로 둘러싸이긴 했지만 병자 자신은 낫을 들고 침상 가장 자리에 앉은 죽음을 향해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의 어머니 역시 아들이 죽어가면서 내는 가쁜 숨소리를 달콤한 음악처럼 들어주었다.
그녀는 죽음이 제 일을 주저할까봐 떨었다.
모든 것이 끝났 을 때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넘쳐 아들의 굳어버린 얼굴 위로 흘렀지만, 그것은 기쁨의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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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생명 없는 사물도 사랑을 할 수 있다면, 땅과 물이 친구와 적을 구별할 줄 안다면, 나는 기꺼이 그것들에게 사랑받고 싶다.
나는 푸른 대지가 내 묵직한 걸음을 귀찮은 짐으로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쟁기질로 상처를 낸 것을 대지가 흔쾌히 용서 해주었으면 좋겠고, 내 죽은 몸뚱이가 쉴 곳을 스스럼없이 열어 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품안에 달라붙은 아이가 들썩여대며 축일의 옷을 망가뜨리더라도 웃어넘기는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내가 젓는 노에 고요한 수면이 깨질 때도 호수가 날 용서했으면 좋겠다.
푸른 산 위를 지나는 바람과도, 빛나는 태양과 아름다운 별과도 나는 친구가 되고 싶다.
내게는 곧잘 무생물 또한 인간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듯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들과 우리 사이의 울타리는 우리 스스로 믿는 것만큼 높지 않다.
이 대지의 티끌 중 삶의 순환을 함께하지 않았던 것이 한 알이라도 있을까?
한길에서 부옇게 일어나는 먼지도 한때는 선량하고 호의에 찬 손길의 일부가 되어 부드러운 머리
칼을 쓰다듬어준 적이 있지 않겠는가.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도 언젠가는 박동하는 심장에서 뿜어 나오는 세찬 피였던 적이 있지 않겠는가.
무생물에도 생명의 혼은 담겨 있다.
꿈 없는 잠 속에 빠져 있는 동안 그 혼은 무슨 소리를 들을까?
신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그 혼은 인간의 소리에도 귀가 열려 있을까?
후세의 아이들아, 너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느냐?
증오와 분쟁이 지상을 지배할 때는 무생물들도 괴로워한다.
대양은 강도들처럼 거칠고 사나워지고 들판은 수전노처럼 인색해진다.
숲을 한숨짓게 하고 산을 울리는 자들에게 화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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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뷔 교회에서는 막 설교가 끝났다.
늘 하던 기도도 마쳤다.
목사는 설교단 계단을 내려갈 참이었다.
그러나 주저하던 목사는 마침내 털썩 무릎을 꿇고는 비를 내려달라 호소했다.
그의 기도는 절망한 인간의 기도였다.
실제로는 몇 마디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고 그나마 맥락도 잘 이어지지 않았다.
"당신의 분노를 일으킨 것이 저의 죄라면 저만을 벌하소서.
은총의 하느님, 당신이 자비로운 분이시라면 비를 내리소서!
제 치욕을 가져가소서!
제 탄원을 듣고 비를 내리소서!
가난한 자들의 밭 위로 비를 내리소서!
백성들에게 빵을 주소서!”
날은 덥고 참기 힘들 정도로 습했다.
신도들은 반쯤 자고 있었다.
하지만 이 터져 나온 소리가, 목쉰 절망이 그들을 모두 깨워냈다.
"제가 새사람이 될 기회가 아직 남아 있다면 부디 비를 내리소서…”
그는 침묵했다.
문은 열려 있었다.
불현듯 세찬 바람이 불어 들어 왔다.
들판을 지나온 바람이 교회까지 휘몰아치며 죽은 나뭇가지와 지푸라기로 가득한 먼지구름을 일으켰다.
목사는 더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설교단으로부터 휘청거리며 내려왔다.
인간들은 전율했다. 이것이 대답일까?
돌풍은 폭풍의 전조였다. 폭풍은 유례없이 빠르게 닥쳤다.
찬송가가 끝나고 목사가 제단 앞에 서자마자 벼락이 쳤고 귀를 먹먹하게 울리는 우레가 목사의 말이 들리지도 않게 했다.
교회 문지기가 마지막 구절을 연주할 때, 첫 빗방울이 녹색 유리창을 두드렸다.
모든 사람들이 비를 구경하기 위해 뛰쳐나갔다.
그들은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억수 같은 소나기를 맞으며 어떤 이들은 울었고 다른 이들은 웃었다.
아, 그동안의 곤궁이 얼마나 지독했던가!
그들은 얼마나 불행했던가.
하지만 신은 좋은 분이셨다.
그분이 비를 내려주셨다.
기쁘도다, 기쁘도다!
브루뷔의 목사는 비를 맞으러 뛰쳐나가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일어나지 못했다.
기쁨이 그에게는 너무나 컸다.
그는 기쁨으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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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절차가 사흘째에 접어들 무렵, 아기 어머니는 완전히 건강을 되찾고도 며칠이 지난 상태였다.
오후에 교구장이 와서 그녀와 예스타 베를링을 혼인시켰다.
하지만 이게 진짜 결혼식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었다.
하객은 따로 초대되지 않았다.
이것은 그저 아기에게 아버지를 마련해주는 의식일 뿐이었다.
아기 엄마는 어마어마한 목표를 달성해낸 듯 고요한 기쁨으로 온 얼굴이 환했다.
신랑은 우울해했다.
그는 자신과 결혼함으로써 그녀의 미래가 어찌 망쳐질까 생각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없는 사람인 양 개의치 않는 걸 보고 경악했다.
그녀의 생각은 온통 아기에게 쏠려 있었다.
며칠 후 아기의 부모는 상을 치렀다.
아기는 발작을 일으키다가 죽었다.
여러 사람들은 아기 엄마가 예상했던 것만큼 격렬하고 깊이 슬퍼하지는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오히려 그녀에게는 승리자의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녀는 아기를 위해 자신의 온 미래를 희생했다는 데서 기쁨을 얻은 듯했다.
만약 아기가 천사들 곁으로 간다면 아기는 저 지상에서 자신을 사랑해주었던 어머니가 있었음을 기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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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랑의 신이여!
오 사랑이여, 너는 진실로 영원하다.
이 지상에서 인간 종족의 시간은 오래되었으나, 그들을 그 시간 내내 이끌어온 것은 너였다.
벼락을 무기로 삼고 신성한 강가에서 젖과 꿀의 제물을 흠향하던 동방의 신들은 어디 있는가?
그들은 죽었다. 강대한 전사 바알은 죽었다. 매의 머리를 한 전사 토트도 죽었다.
올림포스 꼭대기 구름 위에 거하던 위대한 신들도, 방패로 뒤덮인 발할라의 영웅들도 죽었다.
이 오래된 신들은 모두 죽었으나, 유일한 예외가 만물을 지배하는 에로스였다.
우리의 시선 아래 존재하는 건 모두 사랑의 신의 업적이다.
만물의 종을 유지하는 것도 사랑의 신이다.
온갖 곳에 거하는 그를 보라!
우리가 가는 곳 중 그의 발자취가 찍히지 않은 곳이 어디이랴.
우리의 귀가 듣는 소리 중 그의 날갯짓이 깔려 있지 않은 음이 무엇인가.
사랑의 신은 인간의 가슴 속에도, 잠든 씨앗 안에도 거한다.
무생물에도 미치는 그의 위엄을 경의에 차서 느껴보라!
사랑의 신을 동경하지 않고 사랑의 신에게 이끌림을 느끼지 않는 존재도 있는가?
복수의 신들은, 강한 권능의 신들은 모두 스러질 것이나 오 사랑이여, 너만은 진실로 영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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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후세의 아이들아!
칼스타드의 시장 광장에서 요정을 만난 이가 너희나 나였다면, 우리 또한 숲으로 가서
"요정이여, 요정이여! 내가 왔소!" 하고 외쳤을까?
하지만 과연 오늘날 요정을 본 자가 있으랴.
우리 시대에도 너무 큰 재능을 선물 받았다고 한탄하는 자가 과연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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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대단한 연설을 하셨어요, 예스타.
우선은 신의 순례자에 대해 알고 있던 것들을 모두 우리에게 들려주셨어요.
그 후에는 이 사내가 휘황찬란한 외양이나 어마어마한 재산 덕이 아니라 언제나 신의 길을 걸어간 덕택에 존경을 받았음을 상기시키셨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하나님과 예수님을 위해 렌나트 대위의 모범을 따르라 당부하셨죠.
우리 역시 이웃을 사랑하고 도와야 마땅하다고요.
이웃에게 선한 믿음을 가지고 렌나트 대위처럼 행동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큰 재능도 필요 없이 경건한 마음만 갖추면 충분하다고요.
그리고 이르시기를, 올해 벌어진 모든 일들은 앞으로 머지않아 올 사랑과 행복의 시절을 위한 준비라고 하셨어요.
그분은 지난 몇 년간 황폐한 곳에서도 점점이 인간들의 선의가 빛나는 것을 보아오셨대요.
곧 그 빛들은 휘황찬란한 태양이 되어 떠오를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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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찌 보면 죽을 권리를 얻은 거니, 앞으로 당신의 삶은 더 이상 마냥 즐겁지 않을 거예요. 지금까지 당신과 나의 관계는 불명확했죠, 예스타.
당신은 날 아내로 대할 엄두를 내지 못했고 나도 우리가 함께 지내게 된 게 신의 뜻인지 내가 아팠던 탓인지 분간할 수 없었어요.
난 한동안 남쪽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어요.
나처럼 죄 지은 여자가 감히 당신의 아내가 되어 남은 생을 함께 해선 안 된다고 여겼거든요.
하지만 이제 난 여기 남겠어요.
당신이 살아갈 용기를 낸다면 나도 여기 남을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행복할 거라고 기대하진 말아요.
난 당신이 험난한 의무의 길을 가도록 몰아갈 거예요.
내게서 기쁘고 희망찬 말을 들으리라 영영 기대하지 마세요.
우리가 지금껏 가져온 근심과 불행이 앞으로 우리의 보금자리에서도 우리를 감시할 거예요.
나처럼 고통 받았던 마음이 아직도 사랑을 할 힘이 있을까요?
난 울지도 웃지도 않으며 당신의 곁을 걷겠어요.
선택을 내리기 전에 명심해둬요, 예스타!
당신이 살아남는다면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속죄의 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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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자는 에케뷔의 소령 부인이 아니야. 마르가레타 셀싱이 돌아왔어."
그녀가 복수심을 품지 않고 온화한 마음인 것을 보았을 때 기사 들은 기뻐했으나, 그녀가 병이 든 것을 알자 기쁨은 근심으로 변했다.
그녀는 즉시 침실로 실려가 누워야 했다.
문지방에서 그녀는 뒤를 돌아보며 기사들에게 말했다.
"신의 폭풍이 이 땅을 지났지. 이제 그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었음을 알겠다."
그 후 병실 문이 닫혀서 기사들은 더는 그녀를 볼 수 없었다.
곧 죽을 사람에게는 남은 사람들의 할 말이 많아진다.
바로 옆방에 오늘 내일 하며 곧 더는 말을 걸 수 없을 사람이 누워 있을 때는 해야 할 말이 너무나 많다.
"친구여, 나의 친구여, 지난 일을 용서해줄 수 있겠는가?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자네를 사랑했음을 믿어주겠나?
우리가 함께 인생의 길을 갈 적에 어쩌자고 내가 자네 마음을 그리 아프게 했을까?
아, 나의 친구여, 자네가 내게 주었던 모든 기쁨에 감사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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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더 이상 여길 떠나기를 바라지 않아요, 소령 부인.
제 남편은 마침내 수수께끼의 답을 구해 제가 살아갈 만한 삶을 찾아냈습니다.
저는 그의 곁에서 차갑고 냉랭하게 속죄를 요구할 필요가 없어졌어요.
빈곤과 곤궁함과 부지런한 노동이 이미 충분한 속죄가 될 거예요.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찾아가는 길을 저는 죄 없이 밟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북쪽에서의 삶이 더 이상 무섭지 않아요.
하지만 이 사람을 부자로 만들지는 말아주세요.
소령 부인. 전 부자가 된 이 사람 곁에는 남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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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가레타 셀싱이 후세에 남길 명성이 울리고 있습니다!
술 취한 기사들이 농지거리를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노동의 찬가가 긴 생애 동안 충실하게 일해온 한 여인을 기리고 있습니다.
저 소리는 말하고 있어요.
'고맙습니다'라고!
당신이 행해온 선한 일들에 감사합니다, 당신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던 빵에, 당신이 닦은 길에, 당신이 지은 집에, 당신이 집으로 불러들인 행복에 감사드립니다!
저 소리가 말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제는 편히 쉬십시오, 당신의 업적은 앞으로도 길이 남아 죽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의 집은 계속 노동의 터전이 되어 인간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겁니다!
저 소리가 말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한때 길을 잃고 헤맸던 것을 단죄하지 마십시오. 이제 평화의 집으로 떠나는 당신은 아직 지상에 남아 있는 저희를 자비롭게 기억해주십시오."
예스타는 말을 끝냈으나 망치는 계속 울리며 말을 전했다.
소령 부인에게 다정했던 모든 목소리들이 그 망치 소리에 섞여갔다.
그녀의 얼굴에서는 점차 긴장이 풀렸다.
마치 죽음이 그녀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듯 그녀의 표정에서 힘이 빠졌다.
안나 리사가 들어와 회그포슈의 나리들이 도착했다고 알렸다.
소령 부인은 그녀를 도로 내보냈다.
소령 부인은 유언장을 작성 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예스타 베를링, 너는 행동할 줄 아는 사내였지.
이렇게 너는 또 한 번 승리를 거두는구나. 이리 몸을 숙이렴, 너를 축복해주마."
그 후 소령 부인은 예전보다 갑절은 심한 고열에 시달렸다.
죽음의 고통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녀의 육신은 아직 무거운 고통에 맞서 싸워야 했으나 그녀의 영혼은 곧 풀려날 것이다.
그녀의 영혼은 죽어가는 자들에게 열리는 하늘나라의 문 안쪽을 이미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 지나자 무시무시한 임종의 고통도 끝났다.
그녀는 주위에 선 사람들이 깊이 감동받을 정도로 평온하고 아름답게 누워 있었다.
"우리 좋으신 소령 부인." 예스타 베를링이 말했다.
"저는 당신의 이런 모습을 이미 한 번 뵌 적이 있습니다.
이제 마르가레타 셀싱이 되살아났군요.
마르가레타 셀싱은 다시는 에케뷔의 소령 부인에게 자리를 빼앗기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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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간에서 돌아온 기사들은 소령 부인의 부고를 들었다.
"그분이 망치 소리를 들으셨나?"
기사들이 물었다.
그렇다는 대답을 그들은 위안으로 삼아야 했다.
기사들은 후에 그녀가 에케뷔를 그들에게 물려주려 했으나 유언장을 작성하지 않았음을 전해들었다.
그들은 그 사실을 큰 영예로 알고 죽는 날까지 자랑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들 중 그 누구도 놓쳐버린 재산을 안타까워하는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 따르면 예스타 베를링은 이 성탄절 밤 젊은 아내 곁에 서서 기사들에게 마지막 연설을 했다고 한다.
그는 그 들이 모두 에케뷔를 떠나야 하는 운명을 애석해했다.
늙은 기사들은 나이를 먹으며 기력이 쇠할 것이다.
늙고 괴팍한 인간들은 어딜 가든 환영받기 어렵다.
농부들에게 말년을 의지해야 하는 가엾은 기사들의 앞날은 밝지 않았다.
기쁨과 모험의 세월이 끝난 기사는 고독 속에 시들어갈 것이다.
온갖 산전수전에 단련된 천하태평의 기사들에게 예스타는 말했다.
그는 이 혹독한 땅의 혹독한 시절에 기쁨을 심기 위해 와준 늙은 신들과 기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했다.
하지만 나비의 날개를 단 기쁨이 팔락이던 이 뜰에 해충들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수확할 과실들이 모두 사라졌다고 그는 탄식했다.
이 땅의 아이들에게 기쁨이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자산임을 그는 잘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간이 어떻게 행복과 선량함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느냐는 질문은 늘 묵직한 수수께끼처럼 버티고 있다.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쉽고도 어려운 질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기사들 역시 지금껏 이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기쁨과 곤경이, 행복과 근심이 공존했던 이 해에 모두가 마침내 해답을 찾아냈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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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든 기사들이여. 이 작별의 순간은 내게도 쓰디쓰구나.
이것이 우리가 함께 깨어 있는 마지막 밤이다.
호쾌한 웃음소리와 밝은 노랫소리를 나는 더는 들을 수 없겠지.
이제 나는 너희 기사들과 뢰벤 호숫가의 다른 명랑한 주민들에게 작별을 고해야 한다.
정든 옛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내 어린 날 근사한 선물들을 주었다.
그대들은 외로이 사는 사람들을 찾아와 인생의 온갖 굴곡을 들려주었다.
어린 날 나는 호숫가에서 그대들이 신들의 마지막 전투를 장엄하게 치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 대가로 내가 그대들에게 준 것이 뭐가 있을까.
당신들이 사랑했던 농장과 영지를 이야기할 때 당신들의 이름 또한 함께 기억된다는 것이 위안일지도 모르겠다.
당신들의 인생 위로 쏟아졌던 광휘가 당신들이 살았던 땅에도 남아 있기를!
보리 성도, 비에네도, 뢰벤 호숫가의 에케뷔도 폭포와 호수, 산책 할 만한 숲과 미소 짓는 초원에
둘러싸여 여전히 당당히 서 있다.
널찍한 발코니 위에 서면 전설들은 마치 여름날의 벌 떼처럼 주위를 휘감는다.
벌 떼 이야기가 나왔으니 작은 일화 하나를 마저 이야기하게 해 다오.
스웨덴 군의 선두에서 북을 쳤던 작달막한 루스테르는 1813년 독일 땅을 밟고 돌아온 이래 틈만 나면 신비한 남쪽나라에 대해 떠들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저 남쪽에서는 사람들이 교회 탑만큼이나 덩치가 크고 제비들도 독수리만 하고 벌들도 거위만 하다는 거였다.
“그러면 벌통은 얼마나 큰가?”
"벌통이야 여느 벌통 크기지."
"그러면 벌들이 어떻게 벌통에 들어가나?"
"잘 살펴서 들어가야지." 작달막한 루스테르가 대답했다.
친애하는 독자들이여, 나 역시 같은 대답을 해도 될까?
지금까지 환상이라는 이름의 커다란 벌들이 우리 주위를 내내 맴돌았다.
이 벌들이 어떻게 현실이라는 조그만 벌통 속에 들어갈 수 있느냐고?
잘 살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