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의 시간 (외 2편)
박수빈
빵 냄새가 나요 아니 꽃이 뭉개지고 있어요 아니 삐죽한 암술이 고양이 수염을 닮았네요 야옹 소리 들리지 않아 얌전한 부뚜막인 줄 알았죠 어디서 칼과 도마가 나타났을까요 머리와 꼬리가 잘려 나가고 번지는 핏빛 개와 늑대의 시간 불그스름한 치마 속 가랑이가 부풀어요 목소리도 바뀌어 쇠고기 사주세요 자주 바뀌는 낯, 낮이 환해 밤은 득시글하죠 안심스테이크 안심되나요 와인과 달빛을 오려서 붙여 넣으면 쥐도 새도 모르나요 그림자들이 마스크를 쓴 짐승처럼 엎드려요 이 풍경에서 나만 사라지면 될까요 너무 멀지 않고 너무 가깝지 않은 거리는 얼마쯤인지 하늘은 다 지켜보고 있지요 말의 화살이 심장을 통과해 알 수 없는 곳으로 뒹굴어요 믹서기에 몸이 끼는 거 같아요 후두두위이이 빗발치는데 칫솔질을 하고 나는 입을 다물어요 다물어요 입을
고양이의 입구
희망은 자주 거짓말을 한다
커튼이 흩날린다 네 소식이 묻어있다
그 곁의 고양이 울음과 눈빛
내 마음도 잉잉하게 차오른다
고양이를 지우면 네가 다가온다
그려지는 너는 짝눈
혈관을 타고 오르는 피톨
전생처럼 머리카락과 먼지가 엉켜있는 숨결
몸을 돌고 돌아 손톱과 발톱이 겹쳐진다
바람의 혀들
빗방울의 음계들이 더듬거린다
솔기를 빨고 싶은 여미한 눈빛
공기가 차고 숨이 차고
너는 가슴 밑바닥의 상처
첼로를 켠다
없는 것이 많아 가벼운 새들이
진공으로
음악으로 날아오른다
석류
붉게 벌어지는 저 입을 악어라고 부르는 순간
석류는 비로소 석류라는 이름에서 벗어난다
빤질한 아가리가 되려고
내 안에 자라는 늪을 향해
밤이면 달빛을 베어 먹는 악어
목구멍을 조여와 달빛이 일렁거려
토해지는 이빨들은 냄새나는 주검처럼 박힌 못들
어떻게 살아 펄떡이는 말들이 되나
둥근 감촉 알알이 맺힌
핏빛 惡, 惡, 語들
턱관절을 벙긋할 때 잇몸이 으악
세상의 질서란 똑같은 발성으로 일제히 따라하는 으악
석류라고 쓰고 석양이라고 읽을 수도 있다
석유 냄새 미끄러질 때
날개는 돋치고 의미는 규정하지 않는다
더러 죽고 더러 깃털 흩어지지만
악어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악어들이 덤벼든다 으아악
⸺시집 『비록 먹구름의 시간』 (2019년 7월)
------------
박수빈 / 1963년 광주 출생. 아주대 국문과 박사 졸업. 2004년 시집 『달콤한 독』으로 작품 활동 시작. 2013년 《열린시학》에 평론 등단. 시집『청동울음』, 평론집 『스프링 시학』『다양성의 시』, 연구서 『반복과 변주의 시세계』. 현재 상명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