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 때 대치동의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가면 옆 좌석의 고딩들이 영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흔히(?), 가끔(?) 볼 수 있습니다.
방학을 맞이하여 SAT를 배우러 잠시 귀국한 유학생들이지요.
저는 세상에서 그 모습이 가장 부러웠어요.
변변하게 영어공부를 해 본 적이 없는지라
한국어로만 말하고, 한국어로만 생각하고, 한국어로만 읽고, 한국어로만 쓰고, 한국어로만 들을 수 있는 저는
그들에 비한다면 마치 한국어라는 언어의 감옥에 갇힌 죄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우리 아이들에게라도 그런 능력을 갖게 해 주고 싶었지만 유학을 보낼 돈도, 유학을 보낼 의지도 전혀 없었던 지라
그냥 그럭저럭 조금씩 영어공부를 시켰어요.
작년에 이사를 했습니다.
중 3인 딸 친구들이 이사했다고 놀러 왔어요.
그런데 문밖에서 우연히 대화를 듣게 되었는데
두~둥~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겁니다, 저 이게 꿈이냐 생시냐 했습니다.
친구 중 한 명이 미국에서 9년 살다 온 건 알고 있었는데 다른 한 아이도 네이티브처럼 말하고 있었어요.
원래 말수가 적은 딸은 듣기만 하는지 별로 말이 없고...
친구들이 돌아가고 저 완전 흥분해서, 왜 영어로 말할 수 있다고 알려주지 않았냐, 고 물었더니
딸 왈, 엄마.. 애들 다 말할 줄 알어, 하는 겁니다.
제가, 말할 줄 아는 것과 실제로 말하는 것은 다르잖아, 했더니
딸 왈, 그래 엄마.. 나 쟤들이랑 이야기하면서 영어 진짜 많이 늘었어, 했어요.~~
딸은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엄마표 영어로 공부했습니다.
처음 영어를 접한 것은 초등 2학년 때였어요.
런투리드로 시작했어요.
방콕에서 한 달간 지낼 때 알파벳만 익힌 다음 매일 이 테입을 들려 주고 내용을 일러 줬어요.
교재의 그림이 예쁘고 라임 운율이 잘 살아있어 들으면 재미있고 약간 흥겨워지기도 해요.
런투리드 30개를 다 하지는 못했어요, 마음이 급해서...
3학년 때인가부터 오빠가 했던 튼튼영어를 시작했습니다.
오빠보다 배 이상의 속도가 났어요.
(오빠는 초등학교 들어가자 마자 했으니 속도가 더뎠어요.)
튼튼영어 할 동안 욕심이 나서 서점에서 파는 영어전래동화, 창작동화책 엄청 사다 날랐는데 10%도 못 봤어요.
(그 책들 작년에 이사하면서 텐인텐분께 드림했어요.)
많은 책 중에서 옥스포드리딩트리는 엄청 재미있게 보더군요. 보고 또 보고, 거의 외울 지경 ㅋ
2, 3, 4학년 때까지 많은 교재를 구입했지만 (거의 학원비와 맞먹을 듯)
돈값을 한 건 런투리드, 튼튼영어(이건 오빠가 쓰던 거니 공짜), 옥스포드리딩트리 시리즈, 한국출판사가 만든 외국전래동화이구요,
외국출판사에서 만든 창작동화는 많은 돈을 써가며 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안 읽혀지더군요.(돈 날렸쓰ㅠㅠ)
듣기 때문에 사이사이 리틀팍스도 좀 봤던 거 같아요.
초등 5때 grammar in use 하면서 코스트코에서 사온 세계명작전집 중 두 세 권 강독했는데요,
이건 제 영어 실력으로 무리여서 아빠가 일주일에 한 번 두세시간 정도 봐 줬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위의 내용으로 공부하다 6학년이 되면서 최*어학원에서 학원영어공부를 하게 됐습니다.
딸로서는 생전 처음 학원이라는 델 가보게 된 거지요.
최*어학원 8개월만에 외고준비반으로 레벨업 되었구요, 이 학원에서 영어의 기본을 많이 다진 것 같아요.
그런데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일주일에 3회, 하루 4시간 수업이 정말 엄청난 부담이 되었어요.
많은 양의 공부를 해 본 적 없는 딸은 매일 밤 1시 넘어까지 울면서 영어 숙제를 하더군요.
그래서 오히려 제가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게 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 5월부터 12월까지 문법과 독해 공부를 집에서 했는데 그리 많이 하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아들에게 정신이 팔려 딸을 좀 방치... ㅠㅠ
다음 해 1월부터 그동안 대기하고 있었던 대치동의 작은 영어교습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 2시간 수업인데 두 세명의 학생을 데리고 올 영어로 진행하는 수업이었어요.
방학 때는 매일 가고 100만원 ㅠ
이 교습소에 1년 동안 다니면서 영어실력이 많이 는 듯 해요.
그런데 1년 정도 다니다 보니 약간 매너리즘에 빠지는 듯 했어요.
해서 토플 공부도 시켜볼 겸 2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학원을 삼*어학원으로 바꿔 줬어요.
그런데 여기도 시간투자가 장난이 아니어서 결국 수학공부를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ㅠㅠ
(다 해내는 애들도 많더구만...)
토플공부하면서 2학기 때부터 미국에서 살다온 친구들이랑 영어로 이야기 시작했구요.
초딩 5때 어릴 때부터 빡세게 영어학원 다니던 딸 친구가 놀러와서 그램머인유즈 베이직 책 보며,
나 이거 작년에 다 했는데 너 아직도 이거 하니?,
하는 말 들으며 진도가 느린 건 아닌지 살짝 걱정도 했었고...
초딩 6학년 가을에 딸 친구 엄마가 캐나다 3개월 1800만원 단기유학 프로그램 같이 보내자고 했지만
제가 돈이 없어 결국 그 친구만 가게 되어 딸이 좀 안쓰럽게 된 상황도 있었는데
지금은 딸의 영어 실력이 그 친구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월등해요.
(자랑질 죄송-.-;; 다음 글부터는 자랑할 거 하나도 없어요.ㅠ)
영어 공부에서 딸의 문제점은 아직 공인영어 성적이 없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을 확률이 더 크긴 하지만
학원 공부를 좀더 일찍 시작하고 중학교 때 모질게 공부를 시켰다면 좋은 토플 점수가 있을 수도 있는데
그때는 그런 걸 생각하지 못했어요. 독하게 시킬 자신도 없었고...
(유학을 가지 않아 공부를 열심히 했어도 토플 점수 따기가 쉽지는 않을 듯)
모의토플에서 리딩은 30점이 나오고 리스닝도 거의 되어서
지금은 1주일에 한 번 스피킹, 라이팅 수업 받으러 다니는데
제가 대치동에 살지 않았다면
유학을 가지 않은 딸이 단기간에 이 정도의 영어 실력을 성취하기도 힘들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비단 영어만이 아니라
대치동은 딸 키우기 정말 좋은 동네 같아요.(전 아들에서 실패하고 있는지라_)
딸이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는 작년에 서울대에 20명을 합격시켰다고 합니다.
올 6월 모의고사에서 1학년 학생 630 명 중 130명이 영어 만점이어서
딸이 전국 등급은 1등급이지만 학교 등급은 3등급이더군요.(1,2 등급이 없는 학교__)
고교선택제가 되면서 일원동 학생들의 강제배정이 없어지고 인근 지역의 학생들로만 충원된 지라
딸 말로는 중학교(같은 재단의 중학교 졸업) 때와는 달리 소위말하는 날라리도 전혀 없고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공부 열심히 한다고 합니다, 학교에 대한 자부심도 크구요.
(대신 내신따기가 장난이 아니어요.)
딸이 좋은 친구를 만나 착하고 순수하고 품위있게 자라는 것 같아 정말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크게 공부를 잘하지는 않지만 곱게 자라고 있는 데는 좋은 동네 사는 게 상당한 이유가 되는 것 같습니다.
딸만 생각한다면(아들은 잘 모르겠어요)
다시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대치동에서 키우고 싶어요.
PS : 딸의 경우를 일반화해서 읽지 말아 주세요. 전 하나의 케이스를 말한 것이고, 앞으로 대부분의 이야기는
케이스로 쓰여질 거예요.
첫댓글 어제글이었던가요...반박글 올리신다기에 기다렸답니다ㅠ
지금 6살 아들녀석 때문에 목동으로 이사가려고 준비중인데....
대치동은 분위기상 왠지 저랑 수준이 안 맞는 것 같아 고려도 안하고 있거든요.
제가 자격사로 내년 개업 준비중인데...
학연,지연이 참 중요하더라구요.
전 뭐 통 그런쪽으론 기댈 곳이 없어서....
우리나라에 영어에 투자하는 시간관 돈이 어마어마한것 같아요...가끔씩 우리도 홍콩처럼 자국어와 영어를 같이 구사하면 그 많은 아이들이 영어로 이렇게 많은시간을 쓰지 않을 거 같단 생각이 드네요.
요즘 아이들 기본 두시간씩 학원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보며 그런생각들어요..그렇다고 자유자재로 영어구사가 쉽지도 않고 시험에선 동명사인지 현재분사인지 가려내는 문제 투부정사용법틀린것 그런걸 왜 구별해야하는지 가끔씩은 의문이 들어요..슈렉님 따님 영어공부시키실때 재미있으셨겠네요..
잘 읽고 갑니다. 너무 훌륭히 잘 해내셨네요. 학원 돌린 애들보다 따님이 지금도 앞으로도 훨씬 잘 해나갈 거에요.
작년에 드림받았던 사람이예요. 받아온 영어책을 보며 큰아이가 (남자) 열심히 보고있어요.보는 책 마다 (따님이였나보네요)열심히 공부한 흔적이있어 근면한 학생이구나.생각했었답니다.
아이도 초4라 집에서 엄마표로 하고있지만 순간순간 불안하고 올 겨울쯤 학원을 보내야하는지, 아이가 가고싶다고할때까지 기다려야하는지 고민하고있어요.
그때 주신 책들이 큰 밑거름이 되고있어 다시한번 감사인사 드립니다.^^친언니가 대치동살아 자주가지만 갈때마다 참 부러운건 사실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