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송사리 있네.” 나는 평평한 바위에 앉아 발을 물에 담그고 있었다. 물은 맑았지만 흙이 가라앉아 있어 물속 돌을 조금만 뒤집으면 흙탕물이 일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줄줄 흘러내리던 땀이 어느 새 잦아들어 있었다. 몸에서 발 하나만 물속에 있어도 이리 시원한 것을. 열흘 넘게 35도가 넘는 폭염이 계속되고 있었다. 에어컨이 작동하는 실내는 시원하기는 했지만 오래 머물다보면 몸이 이상해졌다. 으슬으슬해져 밖으로 나오면 대뜸 더위가 포옥 솜이불을 덮어씌우고 감싸 안았다.
밤에도 마찬가지였다. 열두시 넘는 시각에 강변에 나가거나 옥상에 올라가 서성거리기를 벌써 사흘째 되풀이 하고 있었다. 팔월 중순, 입추가 지난 지 일주일째, 아침저녁으로 아주 약간 바람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내가 사는 남양주에는 여전히 폭염경보가 발효 중이었고 오늘 14일도 마찬가지였다. 밤새 식지 않은 열기가 아침이라고 해서 물러날리 없다.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대체 이 더위가 언제까지 지속되나 싶으니 아득해졌다. 산을 떠올렸다. 그래, 작년 이맘때 이런 꽃들이 피어 있었지.
더울 때는 무언가 열중하는 것이 현재를 잊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 일이 실내에 앉아서 하는 일이건 바깥에 서서 하는 일이건. 그러나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 늘 하던 일에 늘 집중하기란 쉽지 않다. 익숙함이란 정신에서 활기를 뺏는다. 들여다보고 있는 일이 아니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민감해지게 만들고 어느 결에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든다. 자극이 필요한 것이다. 그때 우리는 일탈을 필요로 한다. 경계를 벗어남으로써 변화를 느끼고 다시 돌아와 일상을 계속할 힘을 얻는 것인데.
실상 그 때 필요한 것은 순수한 아날로그적 체험이다. 기가 움직여 가라앉은 고요를 흔들어놓는 일이 바로 마음을 바꾸어놓는 체험인데, 그 체험이 인위적인 곳에서 일어나느냐 자연에서 일어나느냐에 따라 느낌의 강도가 달라진다.
꽃을 찾는 일은 강렬한 체험이다. 천천히 걸어야 하고 눈을 허투루 돌리지 말아야 한다. 그늘이거나 돌밭이거나 개울가거나 풀숲이거나 무언가 다른 모습을 찾아 의식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하는 것인데,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는 천양지차라 이름을 모르면 모든 풀과 꽃과 나무가 식물이 된다. 이름을 알고 피는 곳을 알면 그때부터 이야기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작년과 올해가 다르고 시선이 다르며 겪고 있는 일이 다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야기는 자라고 변화하며 형체를 갖추어간다.
이곳에 올라 처음 흰진범을 만난 것은 재작년, 2014년 일이었다. 흰오리가 떼 지어 걷는 것 같은 그 꽃이 얼마나 신기했던지 그늘이 온통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때도 나는 혼자였고 늘 다녀 익숙해진 산길에 싫증이 나 있었다. 늘 지나치던 팻말이 갑자기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예봉산 올라가는 길목, 개울 건너기 직전, 길가에 선 팻말이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가지 말라는 왼쪽. 길이 있었다. 개울을 따라 올라가는 길, 실새삼들이, 환삼덩굴들이, 온통 옆을 뒤덮고 있는 길, 그 길을 따라 올라가 흰진범을 만났던 것이다. 그곳에도 역시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태풍으로 토사붕괴가 일어나 길이 끊겼으니 더 이상 가지 말라는 경고가 서 있는 바로 그곳에서..
돌아내려왔다. 개울을 건너다 미끄러지는 바람에 얼굴을 돌에 박았지만 다행히 살짝 따갑기만 한 정도로 그쳤다.
지금 앉아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꽃을 찾으러 와 찾지 못하고 땀에 흠뻑 젖은 채로 투덜대면서 내려오다가 발길을 멈추었던 것이다. 남편은 돌멩이를 집어내고 바닥을 골라 물을 맑게 해놓았다. 고요했다. 그늘이 갑자기 짙어진 듯싶었다. 방금 지나온 곳임에도 숲이 캄캄해졌던 것이다. 나무를 감고 올라간 덩굴식물들은 아주 소중한 것을 지키는 성벽처럼, 어디에서나 눈을 부라리는 엄한 수문장처럼 보였다.
문득 저 위에서 나래를 활짝 편 듯한 파란 꽃이 나타났다. 내 눈높이보다 약간 낮은 곳, 바위 옆에 핀 닭의장풀 꽃이 고개를 쭈욱 펴고 아래를 살피는 것처럼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매번 같은 코스를 오가지만 그때마다 눈길을 끄는 꽃을 만나는 것은 아니다. 매번 같은 곳을 오르지만 매번 순간이 소중한 것도 아니다. 어느 순간 어느 꽃 하나가 눈 속에 들어와 박힌다. 마치 그곳에 혼자 핀 것처럼. 때로는 입술을 쑤욱 내민 것처럼. 때로는 트럼펫을 부는 것처럼, 때로는 신비를 품은 것처럼 산과 풀과 나무와 햇빛과 그늘을 들러리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들꽃 하나가 그처럼 빛나는 일은.
첫댓글 늘 좋은글 잘 읽고 있어요
제가 사는 동네 강가에도 이름모를 꽃과 나무들이 계절마다 피고지면서 때때로 여명님의 글처럼 어느 순간 제 가슴에 쑤욱 들어앉는 꽃이 있답니다
글재주가 없어 그저 참 감사하게 아름답다 생각하기만 했는데 님의 글에 마치 제 마음을 풀어 놓은것 같네요 ㅎ
공감해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공감 또한 인연이 아닐까요? 제가 글을 올리는 이유는 마음 치유를 추구하기 때문이지요. 그 마음에 동참하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봉산 달개비를 올리려고 뒤적이다가 결국
못 찾았네요 ;;;
예봉산 벙개로 이명님 주관했던 산행에서 하나하나 꽃들에
얽힌 유래와 전설 꽃말 등을 전해 들으면서
참 이분이 뭐든 예사 넘기거나 어영부영 아는법이 없구나 생각 했었죠.
느끼는 감정도 보는 시각도 유난히 섬세하세요.
아무도 들여다 봐 주지 않는 길섶의 들꽃을 이리 어여삐 봐 주시니
이명님 발길 닿는 산길의 들꽃들은 행복 하겠어요.
맑은 샘물을 들여다 보는 듯한 이명님의 에세이 한페이지를
읽으며 얼룩진 마음을 달래 봅니다.
좋은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하고 건강한 나날 만드세요~
ㅎㅎ 저도 생각나는 사진을 찾으려다가 못찾곤 하네요. 조금 있으면 저위에 언급한 흰진범과 누린내풀 꽃이 필거예요. 지금은 누리장나무가 한창인데 막 지기 시작하더라고요. 꽃도 사람과 같아요. 어느 순간 마음에 들어오고 그리고 이야기가 자라나지요. 사람 사이도 동일한데 다들 바쁘다는 이유로 대강대강 건너가니 참 아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