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수경 / 아트플랫폼 누아트 디렉터
[앵커]
황금색의 옷을 입은 두 남녀가 서로를 꼭 안은 채 입맞춤의 포즈를 취하는 작품 '키스'는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인데요. 명화 속 '키스'를 의학 관점에서 재해석한 결과가 나왔는데, 남녀의 옷 속 기하학적인 패턴 무늬마다 인간 탄생의 신비가 담겨져 있다고 합니다. 과연 어떤 이야기인지 <사이언스 in Art>에서 살펴봅니다. 온라인 아트 플랫폼 누아트 박수경 디렉터와 함께 합니다. 어서 오십시오.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클림트의 대표작 하면 당연히 키스가 먼저 떠오르는데요. 그런데 최근에 국내 연구진이 이 작품에서 굉장히 유의미한 해부학적 발견을 했다고 하는데, 예술작품에서 해부학적 발견이라고 하니까 의아한데요. 어떤건지 소개해주시죠.
[인터뷰]
네,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는 굉장히 유명한 작품이죠, 20세기 최고의 걸작 중 하나이기도 하고, 또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그림으로 꼽히기도 할 정도인데요. 이 작품을 의학자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한 연구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바로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연구팀에서 분석한 연구인데요, 세계 최고 의학저널인 미국의학협회저널에 실렸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이 논문의 내용은, 작품 <키스> 속 남녀의 옷 패턴에 대한 내용인데요, 이 패턴이 단순히 기하학적인 무늬가 아니라 인간 탄생의 신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는 연구 결과입니다. 이 패턴에 대한 의학적 해석은 1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밝혀진 사실이라고 합니다.
[앵커]
디렉터님 뒤에도 이 그림이 나오고 있는데요. 이 그림은 정말 수도 없이 봤는데, 인간 탄생의 신비가 담겨있다니, 과연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너무 궁금한데요. 구체적으로 들려주시죠.
[인터뷰]
작품을 보면서 각각의 요소들을 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두 남녀가 서로 온 힘을 다해 껴안고 있는 듯한 그림인데요. 이 연인의 뒤로는 마치 금가루가 쏟아지는 것처럼 아득한 배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 땅에 핀 꽃으로 봤을 때는 봄 같기도 한데, 그것 외에는 딱히 시공간에 대한 힌트가 안 보이죠? 작품 속 남성의 옷자락을 보시면 흑백으로 그려진 직사각형 형태 옆에 지금 빨간색 동그라미로 표시를 한 게 보이시죠? 저게 바로 정자의 목을 감싸는 미토콘드리아라는 것을 도식화해 표현한 것이라고 하는데요. 클림트는 당시 메브스라는 독일 과학자가 스케치한 정자 그림을 보고 저렇게 예술적으로 그림을 형상화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부분을 살펴볼까요? 여성의 옷에는 원형의 형태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빨간색 동그라미로 표시된 부분은 난자를 표현한 것으로 보고요, 이것 또한 클림트가 에른스트 헤켈이 그린 그림을 참고하여 형상화한 것으로 분석됐는데요. 그림을 보면 중간중간 동그란 형태에 마치 꼬리가 달린 듯한 모양은 유영하는 정자로 볼 수 있는데요. 클림트는 작품에서 난자와 정자가 만나서 수정되는 그 순간을 나타낸 부분도 있고, 난자 막은 오렌지색으로 그렸다고 분석합니다.
[앵커]
설명을 듣고 보니까 전혀 다른 그림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클림트는 왜 세포 표본을 그림에 녹여냈을까요?
[인터뷰]
이 의학적 연구 결과는 '키스'가 탄생한 1900년 전후 시기의 의학 역사와도 연관이 있는데요. 19세기부터 현미경 광학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고요, 클림트가 활동했던 이 1900년 전후는 17세기에 발명된 현미경이 당시 현대적으로 발전되면서 세포와 세균의 미세 구조를 막 이해하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추가적으로 이 클림트가 머물렀던 오스트리아 비엔나는 특히 살롱문화가 발달되어 있었는데요. 이 살롱문화는 예술가, 의학자, 과학자 등이 모여서 경계 없이 다양한 만남과 토론이 이루어졌던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클림트는 살롱을 통해 의학자들과 친목이 있었고요, 당시 의학자들은 문화예술인들을 위해서 해부학 실습실 견학이나 인체에 대해 강의를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 결정적으로, 이 살롱을 운영했던 베르타 주커간들의 남편이 비엔나 의대 해부학 교수였는데요. 이 주커간들이 클림트에게 당시 유럽을 휩쓴 진화론자 헤켈의 세포 그림들을 클림트에게 소개합니다. 이런 의학자들의 영향들로 인해 클림트가 두 연인의 옷자락에 생명 탄생의 순간을 담은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 발견을 했던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연구책임자인 유임주 교수는 "클림트가 일생을 통해 추구했던 큰 주제 중 하나는 생로병사로 이어지는 인간 삶의 주기였고, 이러한 관점에서 '키스'라는 작품은 그가 인생을 주제로 구성한 작품 포트폴리오의 제1장에 해당한다. 또, 과학의 발전이 문화 곳곳에 큰 영향을 끼친 20세기 초 대표 사례로 주목해 볼 만하고, 융합이 강조되는 4차 산업시대 현대인들과 학생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앵커]
디렉터님 말씀을 듣는 중에 의문이 드는 게 클림트는 살아생전에 자신의 작품에 대한 설명이나 기록 등을 남기지 않는 작가로 유명하잖아요. 그렇다면 더욱 다양한 해석들이 가능할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보시나요?
[인터뷰]
네, 클림트가 한 말 중에는 이런 말이 있는데요, "화가로서의 나를 알고 싶다면, 내 그림을 보라" 라고 했을 정도로 비밀스러운 화가입니다. 때문에 작품마다 여러 가지 해석들이 존재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키스' 작품 속 요소들을 한 번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굉장히 매력적이고 어떻게 보면 좀 에로틱한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남성이 입은 강인한 느낌이 나는 각진 패턴의 코트와 여성의 옷에서 보여지는 어떤 유기적인 형태의 부드러운 패턴들이 대비되면서도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두 연인의 자세를 한 번 보겠습니다. 딱 보면 로맨틱하긴 한데, 어딘가 좀 어색해 보이는 부분이 있거든요. 이 남성은 온 힘을 다해 몸을 굽히고 있는 것 같고, 여성은 좀 불편해 보이는 자세로 이를 받아주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또, 여성의 발 쪽을 한 번 보시면, 발밑으로 마치 낭떠러지처럼 그려진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여성이 입은 화려하게 늘어뜨려진 옷자락의 바로 옆에 너무나 대비되는 허무한 낭떠러지 같은 이 부분. 뭔가 좀 이상하죠. 이 '키스' 작품에 대한 여러 해석들이 있는데요, 결국은 '사랑'에 대한 면모들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가지고 있는 어떤 갈망, 절망, 황홀경, 앞날을 알 수 없는 불안함 또는 설렘일 수도 있겠고요. 아마 한 번쯤 사랑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이런 감정들을 공감 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남녀의 옷이나, 자세 등 여러 요소들이 서로 굉장히 대비되는 상황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무척 조화롭게 보인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앵커]
그런데 클림트의 다른 작품들을 봐도 황금색이 많이 보이는데 왜 클림트는 작품 속에 황금을 사용했을까요?
[인터뷰]
네, <키스>라는 작품은 클림트가 금박이나 금색 물감을 주로 사용했던 1907년에서 1908년인 클림트의 '황금 시기'에 그려진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클림트의 어머니는 오페라 가수이기도 했고 아버지는 금세 공사이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클림트가 주로 금을 사용해서 작업하게 된 영향도 있다는 추측이 있습니다.
[앵커]
여러 해석과 비밀들을 알고 나서 다시 보게 되니까 더 풍성하게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온라인 아트 플랫폼 누아트의 박수경 디렉터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