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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 시절 경북청송 두메산골에서 자랐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산에서 땔감을 모아 지게로 지고 오고, 오후면 산과들에서 쇠꼴을 베고 말
그대로 산 전체가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것이 가을걷이 때면 알곡을 떤 볏단이 마당 가득히 쌓여 있었다. 밤이면 쌓인 볏단
깊숙이 파고들어 집을 짓고는 그 속에서 잠자곤 하였다. 그 시절 소원이 산 속 칡덩굴이 쌓인 숲 속에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조그마한
나무집을 가지는 것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대구로 나와 살게 되면서 그런 소박하였던 꿈은 사라지고 73세가 된 이 나이에 이르도록 그냥 꿈으로만 잠자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그 꿈을 현실로 옮기게 된 것이다. 숲 속에 나무집(Tree House)을 짓는 명분은 청소년들을 위한 집이라는 명분이지만 실상은 나 자신을 위해 짓는 집이다. 어린 시절에 품었던 그런 꿈을 늦게나마 이루어보려는 것이다. 나무 위의 집을 짓는 것에는 다음의 4가지 기준이 있다. 첫째가 안전성이다. 나무 집에서 놀고 잠자던 아이들이 떨어지거나 집이 무너져 다쳐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 첫 번째가 안전성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숲길을 걸으며 높은 나무 가지에 지어진 까치집이나 까마귀집들이 심한 태풍에서도 끄떡없이 견디는 모습을 신기하게 여기며 살피곤 한다. 까치, 까마귀들은 무슨 재주로 그렇게 안전한 집을 지을 수 있을까를 궁금해 한다. 둘째는 예술성이다. 나무 위의 집 한 채가 글자 그대로 예술이 되어야 한다. 예술적인 작품이면서 숲이나 나무를 상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숲과 나무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작품이 되어야 한다. 셋째는 실용성이다. 나무집에 머무는 아이들이나 가족들에게 편리하고 즐거움을 주는 구조여야 한다. 나무들은 특수한 화학물질을 배출한다. 대표적인 것이 패톤-치드이다. 소나무, 잣나무, 상수리나무 등이 많이 뿜어주는 패톤-치드는 사람의 정서에 안정감을 주고 아이들의 아토피 같은 피부병을 치료하여 주는 역할까지 해 준다. 넷째는 창조성이다. 나무집에서 놀이하고 머물면서 아이들의 상상력의 세계를 넓혀 주고, 마음속에 숨어 있던 창조적인 능력을 높여 주는 기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은 자신 속의 창조적 능력이 되살아나게 되면 행복하여지고 자긍심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동두천 쇠목골에는 500만평에 이르는 숲이 있다. 두레마을 소유의 숲만 하여도 6만평이다. 이 숲에는 산돼지들이 떼를 지어 살고 있고, 노루나 토끼 다람쥐들이 활개 치며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던 숲이어서 희귀종 곤충들이 살고 있다. 이런 숲 속으로 들어가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자연과 나무, 산짐승, 곤충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신바람 나는 일이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