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인 삶
(홍성남 마태오 신부)
이타심을 가진 존재가 점점 많아진다 해도 소수의 이기주의자들은 뻔뻔하게 살아남는다.
이기주의자들이 발을 붙일 수 없는 경우는
이기주의자들만 살아남아 더 이상 이득을 얻을 수 없게 되거나
이타주의자들이 그들을 응징할 만큼 숫자가 많아지는 것뿐이다.
복음적인 삶을 사는 신앙인이 많아져야 하는 이유이다.
복음적인 삶이란 무엇인가?
상위욕구를 지향하는 삶이다.
심리학자 아브라함 마슬로우는 인간은 욕구의 존재이며 지향하는 욕구는
하위욕구와 상위욕구가 있다고 했다.
하위욕구란 생리적 욕구. 먹고 마시고 입고 등등 소유의 욕구를 말하며
상위욕구는 자기의 존재의미를 추구하는 삶을 말한다.
즉 복음적인 삶이란 풍성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로 존재하는 것을 뜻한다.
이태석 신부는 수단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분들을 보곤 한다.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희생적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그런 말을 하는 분들은 대개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
마치 하느님의 뜻인 양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정말로 이태석 신부는 자기행복을 포기한 사람이었을까? 아니다.
심리치료에서는 사람은 다섯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행복하다고 한다.
생존. 사랑과 소속감. 힘. 자유. 즐거움
이 조건들이 충족될수록 행복하다는 것이다.
이 신부는 수단에서 의료 활동을 하면서 주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자신이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강한 소속감을 느꼈다.
또한 일하는 즐거움. 그리고 자신의 능력으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힘도 느꼈다.
물론 살아있음의 맛과 영혼의 자유로움도 가졌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삶을 산 것이다.
이태석 신부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희생한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남수단에서의 삶이 행복을 주었다고 한다.
행복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느끼고 산 이태석 신부야말로 가장 부러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