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계시록 21장 1~2절
"또 내가 보니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요한계시록에서 '보다'는 경험하다는 뜻입니다.
사도요한은 십자가를 지는 은혜를 입고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경험하고 하나님 나라를 영혼으로 경험을 당하는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경험하는 일은 사람의 힘이나 노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신부로써 남편이신 하나님을 준비해야 하는
우리의 신앙행위는 있습니다. 거룩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거룩이란 하나님과 나 사이에 빈틈이 없는 영혼의 상태를 말합니다.
주님과 나 사이에 다른 세상의 것들이 없어지는 상태를 뜻하는 것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대명령을 따르는 일보다
거룩한 신앙은 없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은 자기 소유를 더 크게 확장하는 일을 부흥으로 믿습니다.
하지만 큰 성 바벨론의 멸망이 작정된 것은 크기 때문이 아닙니다.
바벨론을 수식하는 큼의 뜻은 거룩의 반대말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지 못하기 때문에 멸망이 작정된 것입니다.
1. 큼의 실체 '자기의 의'
바벨론의 멸망이 작정된 이유는
자기를 크게 만드는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의롭다 여기는 까닭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바벨론은 크다고 한 것입니다.
자기의 의를 높이는 것은 하나님의 의인 십자가의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크게 만드는 일을 한 가지로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인 곳이 바벨론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저것으로 혼합하여
다양성을 추구하는 형태로 신앙을 변질시키기 때문입니다.
2. 천국은 구별하는 세계
복음의 그물을 바다라는 세상에 치고 모은 물고기는 신자들입니다.
그물에 가득한 모든 물고기가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다시 내버리는 것이 천국그물입니다.
거룩한 것만이 천국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세상은 규모와 양과 숫자를 보지만, 하나님은 거룩한가를 보십니다.
이로써 바벨론은 멸망으로, 새 예루살렘은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큼의 반대말은 거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