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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십계명 준수의 날"을 지켜보면서
강병국 목사
미국에 있는 복음주의파 기독교인들이 2006년 5월 7일을 “십계명의 날” (The Ten Commandments Day)로 제정해 놓고 워싱턴 디씨 국회의사당 앞에서 대규모 성토 대회를 열었다.
미국 기독교회의 유명한 목사들과 이름있는 미니스트리들, 그리고 기독교 방송국들이 앞을 다투어 참여 하였고, 전 미국 그리고 나아가서는 전 세계에 하나님의 십계명에 대한 중요성과 준수에 대하여 알리는 일에 성공하였다.
이러한 즈음에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십계명이 어떠한 것들이며 과연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이며, 또한 그 속에 들어 있는 내용들이 과연 무엇인지를 자세하게 알고 지나가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삶인가에 대하여서 연구하여 보고 나서, 우리 자신들을 계명들에 비추어 살펴 보는 일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한 때 과거의 기독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계명이 폐해 졌다고 가르치는 일까지 있었다. 그러나 미국과 전세계에서 도덕이 심각하게 타락하게 되자, 이 타락을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일에서부터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보수적인 목소리들이 높아지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미국의 복음주의 파들은 법원 같은 공공기관의 건물 벽에 십계명을 새겨 넣은 돌비들을 부착 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알라바마 주와 켄터키 주에서 기독교인들이 공공 건물 벽에 십계명 돌비를 붙여 놓자, 반대하는 자들이 고소하여 그 돌비들을 제거해 내는 공방들이 오가면서 이 문제가 전 미국의 핫 이슈로 떠 오르게 되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는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란 어떠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인지에 대하여 연구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지고 있는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요한 계시록 12:17).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요한 계시록 14:12).
이와같이 하나님의 마지막 참된 교회는 예수를 믿는 믿음만 가지고 있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말씀을 읽으면서 많은 그리스도인들 마음 속에 의아한 생각이 들어가게 된다. 그 이유는 많은 교회들이 십자가에서 십계명이 폐했으므로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다고 가르쳐 왔던지, 아니면 믿음만 가지면 되는 것이지 계명을 지키는 일은 우리의 구원과 상관이 없다고 가르쳐 왔기 때문에 위에서 읽은 것과 같은 성경 말씀들은 많은 믿는 자들에게 의구심을 주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미국의 기독교회가 하나님의 십계명을 존중하며 지켜야 한다고 외치면서 “십계명의 날” 까지 만들어 놓고 그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준수하도록 촉구 해야 한다고 나선 것이다. 그것이 바로 5월 7일 “Ten Commandments Day” 의 의미이다.
감리교회를 창시한 요한 웨슬레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골로새서 2장 14절에 말씀하신 대로 주님께서는 의문에 속한 율법(모세의 의식에 관한 율법)을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도말 하시었다. 그러나 십계명이 들어 있고 선지자들에 의하여 강조된 도덕적 율법을 없애 버리신 것은 아니다.. 도덕적 율법인 십계명은 의식법인 의문의 율법과는 완전하게 다른 기초 위에 세워져 있다.. 십계명의 모든 부분은 어느 시대에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으로 남아 있어야만 한다” (Sermons on Several Occasions, Vol. 1, 221).
Billy Graham 목사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요한 웨슬레가 말한 것처럼 나도 은혜와 사랑을 말하기 전에 율법과 심판에 대하여 설교하여야만 한다.. 십계명은 인간이 어떻게 행해야 할지에 대한 하나님의 도덕법이다. 어떤 이들을 그 계명들이 폐했다고 말한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계명을 가르치셨다. 이 계명들은 오늘날 아직도 유효하다. 사람들이 변한 것이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빼 놓고는, 다 십계명을 어겼다. 죄는 계명을 어기는 불법이다. 성경은 모두가 다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십계명은 우리가 하나님의 표준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보여 주는 거울이다. 우리의 부족함을 보여주는 이 거울은 우리를 십자가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Billy Graham and the New York Crusade, pp. 108,109)
그렇다! 하나님의 십계명은 폐하지 않았다! 법은 그 법을 만든 자의 성품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의 사본 그 자체이기 때문에 계명을 지키는 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예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한가지 알고 지나가야 할 것은 우리가 구원받기 위하여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기 때문에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이다. 계명이 우리를 구원하여 주는 것은 아니지만 계명을 지키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은 구원 경험이 없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계명을 지키는 삶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연한 것이요 결코 율법주의가 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셨기 때문에 당신의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지, 그들이 계명을 지키면 구원해 내 줄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요 14:15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계명을 지키는 것은 우리가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외적 표현이다. 그러므로 계명을 지키는 것은 성령의 은혜를 통하여서만 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을 통하여서 우리 마음 속에 흘러 들어 와야만 진정한 순종이 가능한 것이다. 순종은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경험이야 말로 그 사람이 거듭났다는 증거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전도서 12:13,14은 이렇게 말씀을 맺고 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자, 그러면 이제 출애굽기 20장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께서 친히 손가락으로 써 주신 십계명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간단하게 요약하여 살펴 보도록 하자.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이 계명은 우리의 충성심에 대한 계명이다. 이 계명은 전체 모든 계명들을 한 마디로 줄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우주의 하나님은 당신께서 우리의 하나님 되심과 우리의 구속주가 되심을 말씀하시고 있다. 그 분께서는 우리가 다른 신을 가지지 않음으로 우리의 사랑을 표현하기를 요구하신다. 창조주이신 성경의 하나님만이 유일한 경배의 대상이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과 경배를 다른 어떤 존재나 물건들과 나누어 가지실 수가 없다. 이 지구와 인간들의 시작과 끝은 하나님의 창조와 심판이기 때문이다.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거전 8:5,6)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둘째 계명은 예배에 관한 법이다. 첫째 계명은 누가 참 하나님인가를 알려 주고 있고, 둘째 계명은 참 하나님을 어떻게 경배하는 것인가에 대하여 알려 주고 있다. 첫째 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 알려 주고 있고, 둘째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있어서 우리의 외적 행위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이나 새긴 형상들에게 절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마음 속에 무엇을 원하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가 우리의 외적 예배의 행위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눈에 보이는 형상들이나 의식들 자체가 우리를 구원한다는 오해 속에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어떤 종류의 것들이라도 우리 마음 속에 우상으로 자리 잡을 수가 있는 것이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셋째 계명은 경외심에 관한 계명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분의 거룩한 이름을 경외하고 함부로 사용치 말라고 말씀하신다. 히브리어로 망령되이 일컫는다는 뜻은 불경함을 나타낸다는 말이다. 우리가 어떠한 대상에 대하여 말하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그 대상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가를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는 영원히 거룩하신 하나님께 경외하는 태도로 나와야 할 것이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넷째 계명은 성화에 관한 계명으로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명령이다. 이 계명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시간에 대하여 명령하고 있다. 안식일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과 그분의 사랑과 보호하심을 신뢰함으로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쉬는 경험을 말해 주고 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과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어느 것 보다 더 귀중하게 여기는 신자들만 이 계명의 의미를 이해 할 수 가 있는 것이다. 안식일 계명은 인간과 하나님을 하나가 되게 해 주는 계명으로서 첫 돌비에 있는 네 계명들, 즉 하나님께 대한 계명들을 하나로 묶어 주고 있는 계명이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을 매주마다 기억나게 하는 기념일이요, 또한 우리를 구속하신 것을 기념하게 하는 날이다. 인간의 몸은 영과 혼과 함께 일주일에 하루씩 휴식이 필요하도록 창조되었고, 특히 매주 하루씩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우리들의 영혼이 회복 될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예배하는 시간을 정해 주시고 그 날, 곧 제 칠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령하신다. 에덴 동산에서 모든 실과들은 임의로 먹되 선악과는 따 먹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안식일은 우리가 거룩하게 다루어야 하는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날이다. 이 날은 우리가 새롭게 함을 입는 날이요,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로 정해 놓으신 특별한 날이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다섯째 계명은 둘째 돌비인 인간 관계를 다룬 하나님의 명령들 중에 제일 첫 계명으로서 우리를 낳아주신 부모에 대한 공경심을 명령하고 있다.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 인간을 사랑하는 첫째 의무요 도리이다. 참된 종교에는 하나님과 인간관계를 묶어 주는 도덕적인 율법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인간들 간의 도덕을 세워 주는 계명이 없이는 참된 관계가 이루어 질 수 가 없다. 인간들 간의 도덕적 관계가 이루어지는 그 기초는 가정이요, 그 가정의 첫째 계명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하는 계명이 깨어진 사회는 파괴되게 마련인 것이다. 이 계명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다.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레위기 19:3)
“살인하지 말지니라.”
이 계명은 인간의 생명에 대한 존경심에 대한 계명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웃을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라고 명령하신다. 살인은 꼭 남의 생명을 취함만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마음 속으로 남을 증오하는 것도 살인이라고 정의 하셨다. 마음 속의 미워함이 결국에는 살인을 낳는 씨앗이기 때문이다. 계명에 대한 진정한 순종은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요한일서 3:15)
“간음하지 말지니라.”
이 계명은 인간 관계의 순결함에 대한 계명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간음하지 않음으로 이웃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라고 명령하신다. 간음은 현대 가정을 파괴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제도임으로 거룩한 것이다. 간음은 마음 속의 생각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임으로 마음 속으로 음욕을 품는 것도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다시 말하지만, 그러므로 계명은 마음으로 지키는 것이다. 유혹을 저지하거나 품는 것은 자신의 결정이기 때문이다.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여덟째 계명은 정직에 대한 계명이다. 하나님께서는 도둑질 하지 않음으로 이웃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라고 명령하신다. 개인의 소유에 대한 권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권리와 권한을 인정하며 살아야 한다. 다른 사람을 찬탈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권리를 빼앗는 것이기에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이 된다. 남의 것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사회와 국가를 파괴시키는 부도덕한 죄가 된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이 계명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거짓 증거를 하거나 속이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다. 사단은 거짓말의 아비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요 8:44 참조).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그 사람에 대하여 거짓 증거를 하여 그 사람의 인격을 무너뜨리거나 짓 밟는 것은 어떤 의미에 있어서 살인 보다 더 악한 영향을 끼칠 수가 있는 것이다. 남을 속이는 죄악은 사람들 간에 사랑을 식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하나님께서 탐내지 말라고 하시는 이유는 이 죄악이 모든 다른 죄악들의 뿌리가 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평판과 인기를 탐내고, 이웃의 소유와 토지들을 탐내는 마음이 생길 때에 그 죄악은 다른 죄들을 짓도록 인도하는 동기가 된다. 남의 아내를 탐하다가 간음하게 되지 않는가! 루스벨은 하나님의 능력을 탐내다가 반역하여 사단이 되었고, 하와는 사단의 꼬임에 빠져 더 높은 지위와 하나님과 같아지는 것을 탐하다가 범죄하게 된 것이다. 가인은 하와의 죄를 본받아 하나님께서 자기 동생 아벨에게 주시는 인정을 탐내다가 첫 번째 살인자가 되었다.
우리는 위에서 간단하게 십계명과 그 내용들의 의미들을 살펴보았다. 하나님의 참된 백성들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는 사람들이라고 성경은 선포하고 있다. 마지막 시대에 누가 참 신자인가를 나타내는 특징은 바로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고 하나님의 말씀은 강조하고 있다. 계명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자들만이 진정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이기에 그러하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가 바로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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