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 시달린 마마보이
군주
선천적
약골, 감기 달고
살아….
울화, 스트레스 잊으려 희귀
음식에 집착
조선
13대왕
명종(이
환: 1534~1567,
재위1545~1567)을
‘마마보이’
로 칭하는 학자들이
있다.
그 이유는 단지
그가
12세의 소년왕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명종은 중종의 둘째
아들로 배다른 형인
인종이
즉위 9개월 만에 죽자 왕위에
올랐다.
유교 군주의
정점,
‘바른 생활
사나이’
인종에게는 후사가
없었으니 어린
동생이었던 명종이 왕위를
계승한 것이다.
명종의 어머니는 조선 역사상 권력에 대한
집착이가장 강해 이른바
여인천하
시대를
열었던
문정왕후로,
요즘 말로 하자면
자식을 들들 볶는
‘치맛바람’의
대명사였다. 딸을
내리
셋
낳고
35세의 늦은 나이에
혼인
17년만에 본
아들인데다,
아들의 입장에서는 편집적 성격을
가진 어머니 밑에서 자란 만큼
마마보이’라는 별명이 걸맞을
법도
하다.
심지어 문정왕후는 아들이
지존인 왕의 신분에 오른 후에도 자기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대놓고 욕을 하고
뺨을 때리기까지 했다지
않나.
수렴청정으로 시작되어
어머니가
65세로
숨을 거둘 때까지
어린 시절은 물론이고
왕위에
있는
20년 동안 그 치마폭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명종은 문종왕후가 세상을
뜬 지 2년 후
자신도 허망하게 따라 죽고
만다. 보위에
오른
지
20년 만에
어머니의‘압제’에서
풀려났음에도, 그 후
겨우 2년간의
독립치세를
끝으로 32세에 숨을 거두게 되니
‘엄마 없는
하늘
아래’에서 오히려 그는
자유를 맛보지
못했던
것이다. 일생 갇혀만 지낸 새장의
새가
막상 새장 문이 열리자 자유롭게
날아가기는 고사하고 제
자리에 얼어붙은
채 극도의 두려움을
느꼈던 것일까.
명종은 선천적으로
약골이었다.
면역력이 약해 감기에 자주
걸렸던 것이다.
감기를 달고 사는 임금을 위해 궁전 처마
밑에 털로 만든 장막을 치자는
제안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감기와 추위에 약했다는
말은 신장의 양기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자식 농사도 부실하여 왕비
외에도 후궁을
8명 두었으나
겨우 아들 하나를 얻었고
그마저도
명종
18년,
13세에 죽고
말았다.
금개구리
명종은 모후의 사망이 충격이 되어 마음의
고통이 심해졌고 해수가 겹쳐 병고에
시달렸다.
설상가상 외아들을
잃으면서 건강은
급전직하한다. 원체 허약체질이었고
평생 드센
어머니로 부터 받은
스트레스에다 하나 있는 아들까지
잃으면서 울화병을 앓았던 것으로 보인다.
명종
19년 2월에
“심기가 편하지 않고 비위가
화하지
않으며가슴이 답답하고
갑갑하다.
한기와 열기가 번갈아
일어나며 원기가
허약하여 어지럼증과 깜빡깜빡
졸음 증세가 있고 밤의 잠자리도
편치가
않다.
지난 해 세자를
잃은 뒤 심기가 어찌
화평하겠는가…”
라고 심신이 병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그러면서 평소 소화불량도
잦은데다
찬 음식을 좋아했기
때문에 심열증과 음식의
부조화로 간을 상하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그는 후사를 다시 보기 위해 지나친
방사를 했다는 말도 전해지는데 그것이 원인이
되어 죽음을 맞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기가 허약하고 병골에다 평생
극성스러운 치맛바람 엄마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풀려고
했을까.
명종 역시 아버지
중종의 식습관을
이어받아 사슴 꼬리를
좋아하는 등
희귀 음식에 대한 집착이
심했다.
‘죄
없는’ 사슴 꼬리는
연산군, 중종,
명종에
이르기까지 수난을 당했던
것이다.
구하기 힘든 사슴 꼬리 대신 노루 꼬리를
바쳤다가 곤욕을 치른 신하를 비롯해서 백성들의
굶주림에는 아랑곳없이 요즘 말로
하자면
이른바
‘맛집’ 순례에만
급급했다.
그 결과 그 시대의
상처받고 지친 민심은
임꺽정의 난 등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유약한 기질에다 몸까지 부실하게 태어나
독하고드센
어머니로부터일생 시달림을
받아오던
심약하고 철없고 무기력한
군주, 명종.적지 않은
기간인
22년을
치세했으나
‘명종’하면 문정왕후를
중심으로
한윤원형과 정난정 등의
외척 세력이 먼저 떠오른
것만 봐도
그러하다.
명종친림서총대시문무도
명종의 릉은 강릉으로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에위치하는데 ‘태릉선수촌’과
‘태릉갈비’로 익숙해져 있는
문정왕후의
묘인 태릉과 함께
있다.어머니를 떼어
놓고는 그 존재감을 설명할 수 없었던
명종은 죽어서도 어머니 묘 자락을
부여잡고 있는
형상이다.
[명종과
인순왕후의 강릉 :
노원구
공릉동의 태릉과 같은곳에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