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역의 아침을 여는 열차소리에 눈을 떴다.
사방이 어두웠다..
몇시인지 분간하기 힘든 찰나의 혼돈이 엄습하고...
겨우 몸을 추스려 창문을 열었다.
사방이 환했다.
시계를 보니 7시15분...
얼마만에 7시 넘어까지 잠을 자 본 것인지...
어제밤 편의점에서 사 놓았던 삼각깁밥과
나의 영원한 음료 "환타 오렌지"로 허전한 속을 채웠다.
잠시후 다시 바깥을 보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길을 나서야 할 참이다.
대범한 척 여기고 싶었지만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아
고난의 여정이 될 것을 각오해야만 했다.
짐을 챙겨 주차장으로 내려가 스쿠터에 짐을 묶기 시작했다.
모텔 주인 할머니가 전주에 다시 오면 꼭 들르라고 배웅한디
수중전을 벌여야 하기에 채비를 단단히 하느라 1시간 이상을
소비했다.
무엇보다 몸, 특히, 발이 젖지 않아야 체온유지가 수월하다는 것을
알기에 등산화에 비닐봉지와 슬리퍼를 이용하여 임시장화를
만들었다.
시간을 보니 오전 10시30분 !
자 ! 이제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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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비게이션에 집을 목적지로 설정하고 전주역을 빠져 나왔으나
GPS 수신이 되지 않아 비를 맞으며 10분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럼~ 그렇지... 하하하~^^
이제 내게는 모든 일이 웃음으로 덮여진다.
여유인지... 체념인지...
GPS 수신이 되는 걸 확인하고 전주시내를 벗어나자마자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주유했다.
차량들은 비에 아랑곳 없이 제 갈길로 쏜살같이 가고 있다.
관광버스에 탄 수학여행단 학생들이 신기한 눈으로
차창밖을 쳐다보며 쑥덕이는 것이 보였다.
다른 이가 보기에 오늘은 내가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이지 않겠지..ㅎㅎ
장수방향으로 길을 틀어 지방도로 들어섰다.
지리산의 작은 구릉들이 구름에 감싸여 있는 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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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군 삼봉마을 지나면서 비가 그쳤다.
해는 보이지 않지만 가끔씩 맑은 하늘이 보였다.
'다행이다...'
비가 그친 것 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드니~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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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을 세개를 달고 출발하였는데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깃발은 쏘팸깃발 하나뿐이었다.
하나는 출발한지 얼마 안되어 떨어져 날아가 버리고,
또 하나는 머플러 열에 녹아버리고...ㅠㅠ
3일을 나와 함께 한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다.
내겐, 특별한 의미로 남을 깃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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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군의 고개마루를 넘어서자 드넓은 평원과
지리산의 수많은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전라남북도,경상남도에 걸쳐있는 우리 민족의 명산 !
지리산 !
저 산 너머에는 누가 살까...
한가로운 풍경에 잠시 젖어 집에 가야 한다는
생각마저 잊고 멍하니 바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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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을 넘어가는 지리산 고개길에 접어 들었다.
제발 바람만 불지 않기를...
비는 감당할 수 있었지만 바람은 혼다PCX의 갸녀린
몸으로 지탱하기엔 너무 벅찼다.
나의 튼실한 엉덩살이...
평소의 엄청난 식성이 아니었다면...
어제 논산을 넘어오던 고속화 국도에서 무슨 일이 생겼을 수도...
쳇 !!! 다이어트는 개나 물어가라 해야겠다. 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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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구름을 함빡 안고 있는 지리산이 나를 보고
얼레리 꼴레리 하는 것 같다.
잠시 멈춰서서 고민을 했다.
그러나... 어쩌랴...
집을 가기 위해서는 저 고개를 넘어야 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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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걱정이 현실로 나타났다.
10미터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바람과 안개에
온 몸이 흠뻑 젖었다.
아까 장수 고개를 넘어서며 비가 그쳐 좋아라 했는데
이 곳에서 비를 다시 만나니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옛 어른들에게서 웃다가 울면 똥꼬에 뭐 난다는 교육을
워낙 철저히 받은 탓에 울지는 않았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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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의 어느 마을을 지나다가 비를 털어내기 위해 잠시 멈췄다.
어릴적 향수를 떠올리는 집 한채를 발견하고 잠시 상념에 젖었다.
'저 곳에서 수많은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을까...'
'저 집에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무엇을 하고 있을까...'
대답해 주는 이 없고...
집과 주변의 나무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여행자를 지켜보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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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옆구리를 끼고 고개를 구비구비 돌아
운무를 품고 있는 마을을 보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직접 볼 수 있다니...
오늘따라 두텁게 껴입은 보호복과 비옷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저 곳으로 맨발로 뛰어가 마음껏 비를 맞고 싶었다.
산허리에 조용히 앉은 예배당이 아련한 옛 기억을 떠올렸다.
풍금에 맞추어 친구들과 찬송가를 뜻 모르며 따라 불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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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과 의령의 경계에 있는 마을을 지나다가
마을을 지켜주는 오래된 당산나무를 보았다.
수백년을 살고도 늘 그렇듯 한결같이 이로움을
주는 저 나무 !
늘 푸르기를...
의령의 도로는 공사구간이 많아 잠깐 어려움을 겪었다.
네비도 제대로 안내해 주지 못해...
할 수 없이 물튀기기로 방향을 결정해서 가다보니
어찌 어찌 마산으로 길을 잡을 수 있었다.
마산에서 부산까지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집에 다다르고 있다는 안도감에 비 따위란 !!!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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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10분 !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아파트 주차장에 들어서며 경적을 두번 울리니
와이프가 창문으로 내다보며 생글거린다.
나도 그냥 좋다~ㅎ
사진으로 찍지 못하고 글로 다 표현하지 못했지만
지난 2박3일의 여정은 이미 과거의 추억이 되었고
내 인생의 추억창고에 소중히 접어 두었다.
아무도 모르고...
나 자신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내 삶에서 특별한 시간이 되었음은 느끼고 있다.
일상으로 돌아 온 지금~
내 마음에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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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86학번쯤이시겠지요 여러모로 공감이 가는 여행기였습니다. 저랑은 동년배시고 또 같은 부산이니 더 반갑습니다.
5월말에 한주간 서울출장이 있어서 아내의 만류를 무릅쓰고 스쿠터를 타고 나섰는데 언양지나니 벌써 춥기 시작하고 경주 쯤 이르니 비까지 내리더군요 결국 경주시내로 들어가서 낯선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바이크를 모셔 놓고 고속버스를 이용해서 서울을 다녀왔습니다. 30초반에 125cc 딩크 타고 서울나들이도 다녀왔는데 이제는 400cc 마제스티 타고 가는 서울길이었지만 예전 같지 않더군요 구찌뽕님 여행기 읽으면서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습니다. 여름 휴가 때 다시 한번 장거리 투어에 도전해 보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투어 하시고 안전운전 기원합니다.
한편의 단편영화 잘보고 갑니다^^ ㅎ
감사합니다.^^
달려보고 싶은 일인 입니다.
조심 조심 안전운전 기원합니다.
글하나 사진하나 안빠트리고 잘 보고 갑니다. 전 84학번입니다. ㅋ 이번 하반기에 우리 같이 여행을 해보아요. 무작정 달리기 보다는 텐트도 싣고가서 정말 경치좋은 야외서는 멋진 노을과 경치를 안주삼아 한잔빨고 밤하늘 별보고 .....정말 여행다운 투어를 떠나보아요.....아아아,....괜히 이글 읽었어 괜히 이글 읽었어..... 부러워 미치겠어 떠나고싶어 미치겠어 ^^
ㅎㅎ 같이 라이딩 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부러워만 마시고 그냥 떠나세요.
뒤를 돌아보면 잡는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랍니다.
지리산쪽이 맘에 드네요..즐감했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