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에 위치한 독일은 면적도 넓고 인구도 많은 큰 나라다. 사람들의 허우대도 큼직하지만 길도 널찍널찍하다. 그래서 일찍이 자동차 산업이 발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메이커가 벤츠다. 벤츠는 Benz 라 쓰고 독일식 발음에 따라 벤츠(bents)라고 읽는다. 벤츠는 아우디, BMW와 함께 독일의 3대 고급 승용차 메이커로 통한다. 공식 명칭은 Mercedes Benz로 1926년부터 공식 브랜드로 생산을 시작했다고 한다. 승용차, 버스, 트럭의 브랜드로 근 100년 동안 세계 굴지의 종합 자동차 회사로 성장해온 것이다. 특히 승용차 부문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고급 메이커로서의 명성을 누리며 우리 나라에서도 고급 승용차의 명성과 품격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겠다.
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매스컴과 영화 등을 통하여 벤츠의 인기와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고 먼 후일 언젠가 타볼 기회가 있기를 꿈꾸며 지냈다. 그러다 그 꿈은 우연한 기회에 이루어졌다. 1990년대 중반 정부의 한 부처에서 일하던 나는 서유럽 5개국 출장을 가게 되었다. 유럽은 국경 통제가 그리 심하지 않아 굳이 비행기를 타지 않고 승용차를 이용하여 국경을 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우리 일행도 독일에서 스위스로 넘어갈 때 렌터카를 이용하게 되었다.
그때 렌트한 차량이 바로 벤츠 E 클래스 220이었던 것이다. 스위스까지의 주행에 그 이름도 유명한 독일의 고속도로 '아우토반'을 이용하게 되었고, 차량은 일행 3명이 교대로 일정 거리를 운전하기로 했다. 그 당시 나는 첫 차를 갓 시작한 초보 소나타 드라이버였다. 그러기에 외국에 와서 벤츠를 몬다는 것이 두렵기도 했지만 각자의 몫을 해야 하기에 용기를 냈다. 오토 차량이라 막상 시작하니 그리 어렵지는 않았는데, 특이한 것은 약간만 엑셀을 세게 밟아도 차량 속도가 급 가속되어 금방 200km에 이르는 것이었다.
지금은 우리 차량들도 워낙 발전하여 벤츠와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당시 나로서는 색다른 경험이었고 왜 벤츠의 이름이 널리 회자되고 있는가를 느끼게 되었다. 또 아우토반을 달리는 차량들은 종류를 불문하고 대낮에도 모두 전조등을 켜고 주행하는 사실도 신기했고, 선진국의 자동차 문화를 배우는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되었다. 요즘 들어 우리도 고속도로에서 불을 켜고 운전하기를 권장하고 있으니 그것이 선진 자동차 문화인가 생각하게 된다. 아울러 독일에서 렌트한 차량의 이용을 마치고 스위스의 한 지점에 반납하니 편리했고 그런 발전된 렌트 시스템이 갖춰져 있음이 부럽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뇌리에 새겨진 벤츠의 기억은 지금까지 지워지지 않았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벤츠를 모는 드라이버가 되겠다는 로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 후 20여 년이 지나면서 내 차는 여러 번 바뀌어 현재는 H사의 중형차 G 모델을 타고 있다. 이미 10년이 지났고 주행거리도 10만 km를 훨씬 넘었지만 아직도 성능이나 승차감에 전혀 문제가 없다. 잔 고장도 거의 없고 엔진 소음도 없어 늘 좋은 차로 인식하고 만족하면서 타고 있다. 아직은 바꿀 생각이 없는 상태인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차량 딜러를 하는 초등학교 후배와 골프를 함께 했는데 라운드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급히 문자를 보내왔다. 이왕 부부가 함께 골프를 다니려면 벤츠 한 대 장만하라는 내용이다. 차도 튼실하고 가격도 적정하니 새로운 자동차 인생을 느껴보라는 권유와 함께 차량의 최근 사진까지 전송했다. 모델은 E300 중형이다.
그 순간 나는 벤츠 로망이 실현될 기회가 왔구나 생각했고 모델도 평소 보던 것이라 첫눈에 맘에 들었다. 집사람과 의논하니 싫지 않은 표정이다. 길게 끌 이유가 없다. 마음을 정하고 나니 급해졌다. 혹시나 팔려버릴까 걱정마저 되었다.
즉시 연락해 차량 확보를 위한 계약금을 지불하겠다고 했다. 잠시 기다리면 계좌번호를 주겠다고 했던 후배가 한참 후에 전화가 왔다. 다른 매장에 있던 차량이라 어느 손 빠른 고객이 그새 계약을 해버렸다는 것이다. 단 몇 시간 만에 벤츠의 꿈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모습은 아직도 눈에 삼삼하고 같은 모델이 지나다니는 것을 볼 때마다 더 유심히 보게 되었다. 저 차를 내가 탈 수도 있었는데, 언제 다시 찾아 나서야 하나 맘을 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 내 생각은 스스로 정리가 되었다. 왜 이유 없이 현재의 성능 좋은 차를 버리고 벤츠를 타려고 잠시라도 마음을 먹었을까. 좋은 차에 대해 미안하기도 하고 벤츠로 바꿔 세금이나 운행비가 늘 것을 생각하면 부담스러워 그때 그냥 넘어간 것이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문득문득 벤츠의 모습이 떠오르고 내 인생 황혼기의 승용차는 삼각 로고가 달린 멋진 벤츠를 타보고 싶다는 생각에 강력히 빠져들기도 한다. 근데 우리나라도 자동차 산업이 급속히 성장 발전하여 세계 최 상위의 메이커로 변모하였으며 성능이나 안전성 면에서도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며 잘 팔리고 있다고 한다. 특히 '제네시스'는 승용차 고급화에 성공하여 선진 각국의 판매 수요가 크게 늘었으며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최근 제네시스 SUV 한 모델을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가 타면서 사고를 냈으나, 당시 안전성능이 우수하여 그의 생명을 지켜낸 차로 알려지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내 벤츠 로망은 이제 바뀔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그리 성급할 것은 없다. 지금의 애마가 아직 제대로의 성능을 유지하고 있기에 당장 바꿀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차를 바꿀 때가 되면 내 젊은 시절부터 품어왔던 그 로망이 되살아날지 아니면 애국심의 발동으로 국산 차량으로 바뀌게 될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때까지는 나의 벤츠 로망 또한 내 맘속에서 떠날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