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즘 A] 중국 주전 GK가 한국전에 결장하는 이유
기사입력 2010-11-15 09:39:43 |최종수정2010-11-15 09:39:43
그는 왜 나설 수 없을까?
한국과 중국이 16강전에서 맞붙는다. 오늘 밤 8시다. 홍명보 사단 우승 레이스의 일대 고비다. ‘짜요’로 상징되는 홈 팬들의 일방적인 응원을 등에 업을 중국의 기세가 꽤나 부담스럽다.
다행스러운 건 미드필더 구자철, 센터백 김영권의 복귀다. 경고 누적으로 조 예선 최종전 팔레스타인전에 결장했던 두 선수가 중국전에 맞춰 복귀한다. 이렇다 할 부상 공백이 없다. 전력에 특별한 누수가 없다. 팀 컨디션이 많이 올라와 있는 한국 팀이다.
청소년 시절부터 중국에 강한 면모를 보인 박주영, 또 다시 중국을 울릴 수 있을까 |
중국의 사정은 다르다. 주전 골키퍼가 한국전에 나설 수 없다. 일반적인 부상과 경고 누적 등의 징계 때문이 아니다. 낯설지만 자체 징계에 따른 결정이다. 팀 자체적으로 주전 골키퍼의 경기 출전을 제한한 것이다.
팀 스스로 주전 선수를 경기에 나서지 못하게 한다? 고개가 갸웃해지는 일이다.
"그들은 X와 다르지 않다" 파문
사연은 이렇다. 중국 아시안게임대표팀의 넘버원 키퍼는 왕 달레이(상하이)다. 왕 달레이는 인테르와 맨시티 트라이얼 캠프에 참가한 바 있는 유망 GK다. 근래 아인트호벤과 연결되기도 했다. A조 첫 경기 일본전의 선발은 주전 수문장 왕 달레이였다. 하지만 왕 달레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숙여야 했다. 중국이 전반 30분 전까지 단 한 차례의 슈팅도 날리지 못하는 최악의 졸전 끝에 0-3으로 완패했기 때문이다. 안방에서 열린 데다 영토 분쟁으로 관계가 껄끄러워진 일본과의 경기라 중국 팬들의 관심이 실로 뜨거웠는데 중국이 무기력하게 무너지자 분노 섞인 비난이 인터넷과 미디어 등을 통해 쏟아졌다.
이날 경기를 중계한 중국의 TV 해설자는 “우리의 프로 선수들이 대학생이 주축인 일본의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무너졌다. 중국 축구의 수치”라고 한탄하기까지 했다.
2007년 영국 런던을 방문해 램파드와 함께 중국 커뮤니티 행사에 참석한 왕 달레이(오른쪽). 중국 아시안게임대표팀 주전 골키퍼로 광저우 대회에 나선 왕 달레이지만 '막말 파문'으로 대표팀 내 자체 징계를 받아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
문제가 터졌다. 중국의 골키퍼 왕 달레이가 대표팀에게 온갖 비판과 비난을 퍼부은 네티즌과 미디어를 향해 적나라한 표현을 동원해가며 공개 대응에 나선 것이다. 왕 달레이는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참는데도 한계가 있다. 그들(대표팀을 비난한 네티즌)은 더 이상 서포터가 아니다. 개와 다르지 않다. 벼랑 아래로 사람이 떨어지는데 손을 내밀지 못할망정 어떻게 돌을 던질 수 있나. 중국축구의 진보를 방해하는 일”이라고 일갈했다. 미디어를 향해서도 가시 돋친 말을 쏟아냈다. “중국에 축구 기자가 7000명이나 있다고 하던데 이중 4000명은 축구를 싫어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불필요하고 한심한 집단이다.”
논란이 거세졌다. 나이 어린 선수들이 받을 과도한 스트레스를 이해하는 시선이 존재했지만 정제되지 않은 표현과 일본전 참패, 중국 축구의 더딘 성장 등이 맞물려 왕 달레이와 대표팀에 대한 여론이 극도로 악화됐다. 결국 축구협회가 나서 왕 달레이의 공개 사과와 한시적 소셜 미디어 폐쇄, 남은 경기 출장 정지 처분(경기 수를 명시하지 않음)을 내려 불붙은 비난 여론을 수면 아래로 일단은 가라 앉혔다.
징계의 전격 해제? 객관 전력 이상의 승부
한바탕 홍역을 치른 탓인지 중국의 팀 분위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일본전 완패 이후 키르기스스탄전과 말레이시아전을 승리하며 A조 2위로 16강전에 진출했지만 대표팀을 둘러싼 안팎의 공기가 어수선하다. 팀 동료가 자체 징계를 받아 나오지 못하고 대표팀을 바라보는 중국 현지의 시선이 역시 여전히 마땅치 않은데 따른 심적 부담이다.
경기 내용, 전술적으로도 틈이 좀처럼 메워지지 않고 있는 중국이다. 4-2-3-1 포메이션을 주 시스템으로 활용하는데 왼쪽 날개 장 유안을 제외하고는 최전방과 오른쪽 측면의 움직임이 무겁다. 허리진영의 패싱 게임이 원활치 않아 전방으로 길게 때려 놓는 롱볼 형태의 단순 패턴이 반복된다. 키르기스스탄전에서 선제골을 내준 뒤 경기 막판 어렵사리 역전 승리했고 말레시아시아전에서 상대 선수 3명이 퇴장 당한 수적 우위에도 경기를 완전히 지배하지 못한 데서도 알 수 있는 중국 팀의 현재다.
그렇다고 한국의 승리를 낙관하는 건 위험하고 또 적절치 않은 일이다. 토너먼트 단판 승부는 객관 전력 이상의 승부다. 전력 외의 변수가 커질 수밖에 없는데 가장 위협적인 변수 중 하나가 홈의 이점이다. 단판 승부의 특성상 분위기와 흐름 싸움으로 경기가 전개 되곤 하는데 중국의 경우처럼 침체해 있다 홈 이점의 탄력을 받아 기세가 차고 오르면 상대에겐 적잖은 부담이 가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과 중국의 16강전은 특히 경기 초반 2,30분의 기선 제압 여부가 중요하고 그 흐름에 따라 희비가 갈릴 공산이 적지 않다. 중국이 팀 사기 진작을 위해 한국과의 16강전을 앞두고 왕 달레이의 징계를 전격적으로 해제 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 때는 서둘러 질문을 바꿔 고민하고 대처해야 한다.
그가 왜 다시 나서는가?
단판 승부의 관건은 집중력과 순간 대응의 위기관리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