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동자동 쪽방촌에 '우리동네 구강관리플러스센터'가 문을 열었다.
오후2시 무렵 구강관리센터 앞으로 갔더니, 행사 준비하느라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였다.
그 골목은 식당들이 몰려있는데다 ‘온기창고’까지 있어 사람들의 통행이 많은 곳이다.
더구나 내가 사는 골목인데다 단골로 밥 먹는 ‘완도집’까지 있어
하루에 한두 번씩은 골목을 오르내리는 친숙한 거리다.
온기창고 옆에는 임백수, 이기영씨 등 동네사람이 모여앉아 시간 죽이는 곳이기도 하다.
이기영씨는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해 나만 보면 사진을 찍어달라는데,
그날도 영정사진 한 장 찍어달라고 닦달이다.
‘버려진 사람들’ 초상전 때 액자까지 만들어 주었으나, 흑백 말고 컬러로 찍어 달라는 것이다,
찍는 것이야 어려운 일이 아니라 앉은 자리에서 한 장 찍어두었다.
그 골목을 매일같이 지키고 앉은 임백수씨에게 궁금한 걸 한 가지 물어보았다.
얼마 전 구강관리센터 공사를 마무리할 즈음 새로 만든 정문 유리는누가 박살냈는지 물었더니,
알려고 하지 말라며 손사래 쳤다. 대략은 짐작가지만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우리동네구강관리플러스센터'가 들어선 자리는 본래 구멍가게가 있었는데,
서울시에서 임차하여 인테리어 공사를 한 것이다.
서울시 오세훈시장은 ‘약자와의 동행’이란 케치프레이드를 내걸고
여러 가지 빈민들을 위한 좋은 일을 많이 했다.
대표적인 것이 '동행식당'으로 하루에 한 끼는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고,
오랜 관행이었던 줄 세우기를 없애기 위해 ‘온기창고’라는 매장을 열어
한 달에 10만원 상당의 상품을 가져 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늘 고맙게 생각하지만, 가끔은 정치적 처신에 실망할 때도 있다.
오래전 박원순 시장이 재임할 때는 동자동에 ‘돌다리골 빨래터’를 만들어 준적도 있었다.
쪽방 사는 사람들의 고민거리를 덜어 준 것이다.
그러나 개장식 날 기자들을 잔뜩 불러놓고 주방장 차림으로
화채를 퍼 주기에 제발 정치적인 쇼하지 말라고 나무랐다.
잘 아는 고향 후배여서 말했지만, 많이 섭섭했던 모양이다.
뒤늦게 생각하니 정치적 속성을 이해하지 못했음이 늘 마음에 걸렸는데,
난데없는 구설수로 목숨을 잃어 지울 수 없는 아픔으로 남고 말았다.
사실 쪽방에 살아보니 제일 힘든 것이 좁은 방에서 밥해먹는 일이고 두 번째가 빨래하는 일이다.
그 골칫거리인 빨래를 해결해준데다 이젠 밥해 먹는 일까지 줄여 주었는데,
구강관리까지 해 준다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치아야 아프면 다른 병원이라도 갈 수 있어 덜 와 닿지만, 날이 갈수록 살기 좋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쉽게 떠나지 못하는 것도 동자동만의 빈민복지도 한 몫 할 것이다.
아산 작업실은 밥해먹는 일도 그렇지만 농사 일이 몸에 부친다.
동자동은 주는 밥 먹고, 활동반경이 좁은 쪽방에 살아 육신이 편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작업실이 있는 아산으로 쉽게 못 떠나는지 모르겠다.
동자동은 근본적인 주거문제부터 해결해야 된다.
찜질방 같은 콧구멍만한 방에서 한여름을 지낸다는 것은, 가보지 못한 지옥이나 다름없다.
오죽하면 길바닥에 누워자는 노숙인이 부럽겠는가?
동자동을 공공개발 한다고 떠 벌린지가 벌써 몇 년째인데,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다.
하기야! 가진 자들이 욕심을 거두지 않는 한 죽기 전에 개발하기는 어려울 듯 싶다.
동자동의 '우리동네 구강관리플러스센터'는 서울특별시에서 서울역, 남대문, 영등포 쪽방주민
700여 명을 대상으로 시비 9400만원을 들여 만들었다.
‘우리금융미래재단’에서 사업비를 제공하고 서울대 치의학대학원의 진료인력으로 운영하게 된다.
쪽방촌 무료 치과의 시작은 지난 22년 12월 돈의동에서 문을 열었는데,
주민들이 가장 필요한 의료서비스라는 호응에 힘입어 동자동에 2호점을 열게 된 것이다.
이날 개소식에는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롯하여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과
권호범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장 등이 참석했는데, 많은 기자들도 불러 모았다.
나 역시 주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취재하러 갔으나 입구에서 제지했다.
혼잡하여 주민들의 행사장 출입을 막는다지만 내가 구경하러 가는 것은 아니잖은가?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좋은 의미를 쪽방상담소에서 빛 좋은 개살구로 만들고 있었다.
다음 날 보도되면 다 알 수 있는 내용인데다,
늙은 나까지 나설 일은 아니다 싶어 행사장에 들어가지 않았다.
행사가 끝난 후 구강관리센터를 돌아보았는데, 한 쪽의 텐트는 병실로 사용할 것 같았고,
치과진료의자 4대를 비롯하여 파노라마 X-ray 등 전문장비를 갖추어 놓았더라.
본격적인 진료는 오는 8일부터 시작되니, 많은 활용있기를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