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세상 끝날에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지금 새벽기도하는 분들부터 해서 예수 믿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날에 ‘믿는 자가 많아지겠다’가 아니라,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믿음’을 뜻하는 헬라어 ‘피스티스’는 신실이고 입증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오늘날 한국교회에 믿는 분들이 정말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하나님 자녀로서 믿음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지 각자 되돌아보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 단 몇 %만 있어도 세상은 달라질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소수이긴 하지만, 실제로 그런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 분들을 통해 한국교회는 미래의 소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덧붙이자면, 아프리카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에 가면 학살기념관이 있습니다. 그 나라는 1994년 다수 인종인 후투족이 소수 인종인 투치족을 석 달 동안 100만명 가까이 학살했던 끔찍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그 기념관의 여러 기념물들 중에는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한 여성이 말하는 영상이 있습니다. 그 여인은 소수 인종 출신으로, 죽음의 대학살 속에 살아난 경험에 대해 ‘그 광란의 대학살 속에서 5%는 선했고, 5%는 중립적이었고, 90%는 악했다’고 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을 찔러 죽이려는데, 100명 중 90명은 창으로 찔러 죽였고 5명은 방관했으며, 단지 5명만 말렸다는 것입니다.
언뜻 생각하면 ‘인간 중 90%가 저래? 역시 인간은 소망이 없어’라고 하기 쉽지만, 저는 그 영상을 보면서 그래도 인간에게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5%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대학살극 속에서 ‘죽이지 말라’고 하면 자신이 죽을 수도 있음에도, 그렇게 한 5%가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 나라는 형식적으로 전부 크리스천인 국가로, 이들 중 5%가 정말 신앙으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이들이 있기에 세상은 지탱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겉으로 드러난 한국교회의 90%는 그야말로 세속에 물들었다 할지라도, 정말 신앙을 삶으로 입증하려는 자들 5%가 있습니다. 그래서 소망이 있는 것이고, 그런 사람들의 비율이 늘어날수록 세상은 더 맑아지고 밝아질 것입니다. 저는 항상 주님 때문에 그렇게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첫댓글 인터뷰 기사 전문
http://m.chtoday.co.kr/view.html?id=269885
" 5%는 선했고..5%는 중립적이었으며.. 90%는 악했다"
타민족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임을 발견합니다, 5%의 선함과
90%의 악함이 뒤섞혀 시시각각으로 교차하는 내 자신의 내면의 싸움과 크게 다를바가 없는..
어쩌면 내안의 5%의 선함에 근거하여 착한사람이라고 스스로 속고 있지는 않은지..
5%의 선함에 숨겨진 하나님 성품의 임재를 티끌만큼이라고 느끼며 살수 있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충분한 이유와 소망이 될것입니다. 그 흔적이 인간의 전부이며 본질 그 자체라고 굳게 믿기에..
그럼에도 그 티끌이 너무도 작아서.. 떼론 보이지 않아..없는것은 아닌지.. 깊은 의심에 빠져 들기도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