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田忌)가 제(齊)나라를 버리고 초(楚)나라로 도망가자, 초나라 왕이 교외에까지 나와 그를 맞이하여 숙소로 인도하였다.
그리고 나서 전기에게 물었다. “우리 초나라는 만승지국(萬乘之國)입니다. 제나라도 역시 만승지국이지요.
그런데 서로 항상 겸병(兼竝)하려고 으르렁거리고 있으니, 어떻게 하였으면 좋겠습니까?”
이에 전기는 이렇게 일러주었다.
“알기 쉽지요. 제나라가 만약 신유(申孺)를 장수로 삼아 쳐들어오거든,
이 초나라는 5만인의 군사를 내어 상장군으로 하여금 거느리고 싸우게만 해도,
그 나라 장수급의 인물을 사로잡아 돌아 올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제나라가 전거(田居)를 장수로 삼아 쳐들어오면
그때는 20만인의 군사를 내어 상장군으로 이를 거느리게 하되,상대를 경우에 따라 나누어 상대하도록 하면 됩니다.
다음 제나라가 면자(眄子)를 장수로 삼아 쳐들어오면,
왕께서는 국경내의 군사를 다 모아 왕 스스로가 이를 거느리고, 저 전기도 그 뒤를 따르며 상국(相國)과 상장군을 좌우 사마(司馬)로 삼아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왕께서는 겨우 버티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과연 제나라는 먼저 신유를 장군으로 하고 초나라를 쳐들어왔다.
초나라에서는 5만인의 군사만 내어 상장군으로 하여금 맞서 싸우게 했는데도 제나라 장군을 사로잡아 돌아올 수 있었다.
이에 제나라 왕은 분함을 품고 다시 면자로 장수를 바꾼 다음 쳐들어왔다.
초나라에서는 국경 내의 군대를 다 모으고 왕 스스로가 이끌고 나섰으며, 전기가 이에 따르고 상국과 상장군은 좌우 사마가 되고, 다시 왕의 전차에는 구승(九乘)을 덧보태어 맞서서야 겨우 멸망을 면할 수 있었다.
싸움이 끝나고 돌아온 왕은 북면(北面)하여 전기 앞에 옷깃을 여미고 앉아 이렇게 물었다.
“선생은 어찌하여 그런 예견이 있었소?”
이에 전기는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신유는 그 사람됨이 어진 자는 경멸하고 불초한 자는 무시하는 인물이지요.
그래서 어진자건 불초한자건 누구나 그에게는 등용되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망한 것이지요.
다음 전거라는 사람은 어진 자는 높일 줄 아나 불초한 자에게는 천박하게 대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어진 자는 임무를 짊어지지만 불초한 자는 그로부터 떠나 버리지요.
그래서 싸움에 맞붙어보면 서로 경우에 맞게 나누어 상대해야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면자라는 인물은 어진 자는 높여주고 불초한 자도 아껴줍니다.
그래서 어진자건 불초한 자건 모두 그에게 책임을 다하지요.
이 때문에 왕께서는 그와 맞붙어 겨우 존속하는 것입니다.
✼ 전기(田忌): 전국시대 제나라의 장수. 제 선왕 때의 인물. 추기의 계략에 말려들어 초나라로 도망 갔다.
✼ 면자(眄子): 제나라 장수. 齊나라의 반자(盼子). 제 宣王 때에 전기와 함께 장수를 지냈던 田盼子를 말한다.
-《설원(說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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