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천녀유혼이 리메이크됐더군요. 이소룡의 사부, 엽문(叶问)의 일생을 그린 '엽문'과 '엽문2'를 만들었던 홍콩의 엽위신(叶伟信) 감독이 손을 댔는데요. 아름다운 요괴인 섭소천역을 유역비(刘亦菲)가 맡았습니다. 어리벙벙하고 착한 영채신역은 여소군(余少群)이, 신출귀몰한 도사 연적하역은 고천락(古天乐)입니다.
엽위신 감독의 말이 눈길을 끌더군요. " 이전의 천녀유혼을 단순 재생한 것이 아니다. 시대가 달라지면, 우리는 각각 다른 천녀유혼 이야기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원래 이 천녀유혼이 어떤 영화던가요? 제목으로만 보면 '아리따운 여인의 영혼'이라는 뜻인데요.
1987년에 개봉됐습니다. 서극(徐克)이 제작하고, 정소동(程小东)이 감독을 맡았습니다. 홍콩 무협영화의 신시대를 열었다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입니다. 장국영과 왕조현이 출연했습니다.
한국 관객들 역시 이 영화에 매료됐었지요. 사람과 요괴의 사랑이야기는, 애절했습니다. 왕조현의 출중한 미모가 돋보였구요. 우리 뇌리에 각인되어있는 '천녀유혼'이라는 영화입니다.
1990년에는 천녀유혼 2가, 1991년에는 장국영 대신 양조위(梁朝伟)를 남자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천녀유혼 3가 개봉됐지만, 원래의 천녀유혼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천녀유혼 2, 천녀유혼 3도 역시 서극과 정소동 콤비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들입니다.
그렇다면, 서극과 정소동 이전에 영화 천녀유혼이 있었을까? 네, 있었습니다.
1960년, 역시 홍콩에서 개봉된 이한상(李翰祥) 감독의 '천녀유혼'입니다. 중국영화사상 불후의 명작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작품입니다. 이한상 감독은 중국 문화와 고전예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었다고하는데요.
그런 그가 청나라 시기 문인 포송령(蒲松龄)의 소설집 '요재지이(聊斋志异)'에 실린 '섭소천(聂小倩)' 이야기를 각색, 연출합니다. 영화 '천녀유혼'의 탄생이었습니다. 애초 섭소천 이야기는 비교적 단순한 구조였습니다. 거기에, 인물에 대한 묘사나 감정변화의 모티브, 배경의 설정등 구체적인 터치가 추가됐습니다. 이한상 감독의 손끝에서 나온 것들이었습니다.
1960년, 이한상 감독의 천녀유혼은 프랑스 깐느 영화제에 출품됩니다. 국제영화제에 최초로 참가한 중국 컬러영화였습니다.
30년후, 서극 감독은 이 영화를 리메이크 한 것입니다. 물론, 서극과 정소동 콤비 역시 원래 영화에 새로운 요소들을 불어넣었습니다. 하지만 인물, 배경, 영화의 모티브 등 중요한 것들은 이한상 감독의 그것들을 그대로 살렸습니다. 서극의 천녀유혼은, 이를테면 이한상 감독에 대한 '헌사'인 셈입니다.
그 천녀유혼이, 20년만에 엽위신 감독의 손을 거쳐 다시 우리앞에 등장했습니다.
소설집 '요재지이'에 실린 '섭소천(聂小倩)' 이야기. 그 대략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절강성 사람 영채신이 길을 떠났다가 인적 없는 절에 들르게 됩니다. 그런데 그 절에는 연적하라는 남자가 이미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각기 떨어져 잠을 자는 두 사람. 영채신에게 묘령의 여인이 접근해 같이 잠자기를 청합니다. 자신은 이미 결혼한 몸이라며, 이를 단호하게 거절하는 영채신. 며칠후 다시 이 아름다운 여인이 찾아옵니다. 수많은 나그네들을 봤지만, 당신같이 강직한 사람은 보지 못했다며. 당신에게는 사실을 말 할 수 밖에 없다며. 여인의 이름은 섭소천. 18살에 병으로 죽은 여인의 혼령이었습니다. 요괴의 협박에 따라 나그네를 유혹하고 죽이면, 요괴는 그 나그네의 피를 빨아먹는다고 했습니다. 영채신은 섭소천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요괴를 피할 수 있는지. 연적하 같은 기인과 같이 있으면 요괴를 피할 수 있다고, 자신의 유골은수습해 깨끗한 곳에 묻어달라고, 섭소천은 말합니다. 연적하와 같은 방에서 잠을자고 요괴를 피한 영채신. 연적하는 자신을 검객이라고 소개합니다. 이곳의 요괴와 싸우고 있는. 영채신은 섭소천의 유골을 수습해 집으로 돌아갑니다. 집으로 돌아온 영채신, 약속대로 섭소천의 무덤을 만들어 줍니다. 이때 갑자기 나타난 섭소천, 영채신의 배필이 되어 평생을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비록 병석에 있지만 영채신에게는 부인이 있었습니다. 또 영채신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이 귀신과 같이 사는걸 반대합니다. 효심깊은 영채신은 어머니의 말을 따르고. 섭소천은 지극정성으로 영채신의 어머니를 모십니다. 영채신의 부인이 병으로 죽자, 마침내 어머니는 영채신과 섭소천의 결혼을 허락합니다. 그들의 행복한 결혼식. 결혼후 요괴가 다시 영채신과 섭소천을 찾아오지만, 두 사람을 이를 물리칩니다. 영채신은 과거에 급제하고, 후처를 들입니다. 영채신과 두명의 부인은 모두 세명의 아들을 낳습니다. 그 아이들도 훌륭한 어른으로 자라납니다.
포송령(蒲松龄). 산동사람입니다. 명말시기에 태어나 청조 강희제 54년,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습니다. 몰락한 지주집안에서 태어나 평생을 과거시험에 매달립니다. 19세부터 과거에 응시해 지방시에서는 승승장구, 이름을 떨칩니다. 그러나 이후 연이어 낙방, 입신출세하지 못하고 71세가 되어서야 비로서 공생(贡生)이 됩니다. 공생은 북경의 국립대학격인 국자감에서 공부하는 학생을 일컫습니다. 결국 71세가 되어서야 '대학생'이 된셈이지요. 입신양명의 꿈이 과거제도의 불합리성에 의해 좌절된 경우입니다.
그가 40세 전후에 기본을 완성하고, 이후 수정보완을 거듭한 것이, 단편소설집 '요재지이(聊斋志异)'입니다. 평생 혼신의 힘을 불어넣었다고 할 수 있는데요.
요재지이(聊斋志异). 중국고전단편소설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 책입니다. 모두 8권에 491편의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글자수는 40 만자에 달합니다.
요재(聊斋)는 포송령의 서재 이름입니다. 지(志)는 '기술한다'라는 의미이며, 이(异)는 '신기한 이야기'를 일컫습니다. 결국 '요재에서 신기한 이야기들을 기술하다'또는 '요재가 신기한 이야기를 기술하다' 정도의 뜻이 되겠지요. 이 이야기들의 포괄범위가 넓은데요. 당시의 사회상이나 가정생활, 남녀간의 애정, 귀신이나 동물의 변화, 천상의 세계나 자연재해등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
전해지는 포송령의 이야기 수집 방법이 재미있습니다. 그는 집앞에 찻집을 열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손님에게는 차값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들을 정리해, 책을 만들었다는 겁니다.
이 요재지이에 실린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희곡, 영화, 드라마가 160 여개에 이른다고 하구요. 한국에도 요재지이 완역본이 있습니다. 2002년, 민음사에서 모두 6권으로 정리되어 나왔습니다. 김혜경이라는 분이 번역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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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중학교 2학년때 이류 극장에서 본 왕조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네요... 참 세월 빠릅니다.
聊斋<<<이거 중국 소설인가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천녀유혼...정말 걸작이었는데 이한상 감독 작품도 찾아서 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