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 전쟁터에서
청 랑
1. 수국꽃 축제장에서 품바 공연이 열렸다. 작은 여자가 장구를 치고 북을 두드리며 신명 나게 한판 놀고 있다. 그녀 허리춤에 둘린 지폐들이 팔랑거린다. 여자의 땀방울이 질펀해질수록 지폐 숫자도 늘어갔다.
2. 오래전 일이다. 모임에서 아는 동생이 4대 보험이 보장된 정규직 회사에 취직했다며 자랑했다. 나는 귀가 솔깃해졌다. 그때 대면 영업 보험회사에 다니고 있었지만, 시간에 반비례해 내 영혼과 주머니는 황폐해져 갔다. 그래서 그녀가 다니는 그 4대 보험이 보장된다는 회사에 서류를 넣었다. 서류 제출 분량이 만만치 않았다.
3. 교육은 꼬박 한 달 동안 받는다고 했다. 100명 정도 되는 젊은 남녀들과 교육받으려니까 맥없이 위축되었다. 수업은 주로 순발력과 담력을 평가하려는지 앞에서 발표하는 미션으로 주어졌다.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줄타기였다. 그런 과정을 통과해야 등록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다. 보름 정도 지나자 빽빽하던 자리가 헐렁해졌다.
4. 그렇게 나는 L회사 텔레마케터가 되었다. 이번만은 제대로 정착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먼저 일했던 보험회사에서는 모든 여건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매일 고객을 방문해 시간적 정신적 무한 투자해야 했고, 팀장의 앞선 고객관리도 불만이었다. 정장에 하이힐로 걷는 것도 고달팠고 내 발바닥은 티눈으로 엉망이었다.
5. 아이러니하게도 실적이 우수한 텔레마케터(TM)들이 근무하는 팀으로 발령받았다. 한 팀에 보통 30명 정도 되는 직원들이 세 팀으로 나누어졌다. 그 빌딩 층마다 같은 업무를 하는 직원들로 늘 엘리베이터 안이 붐볐다.
6. 나는 팀장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배정받았다. 사무실 안은 통화하는 소리로 시끄러웠고 마치 사이비 종교집단의 기도 시간 같았다. 어쨌든 내겐 모든 것이 두렵고 낯설었다. 나의 밥줄이 되어줄 고객 명단을 받았다. 모니터를 응시하고 헤드셋을 끼었지만, 입술이 바작바작 타들어 갔다. 내 옆과 앞뒤에서는 계약을 따내려고 한창 설전舌戰 중이었다. 통화를 끊으려는 자와 어떻게든 붙잡아 설득하려는 자의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팀장은 내 옆에 딱 붙어 내 일거수를 참견했다. 고객과 통화한 녹음을 빈틈없이 확인했다. 보험 내용이 규정선을 벗어나면 컴플레인(고객 불만)에 걸렸다. 벌점만큼 불이익도 당했다.
7. 하루 고객과의 통화 시간만 2시간 30분 이상을, 기본 계약 금액을 넘어서야 최소한의 월급을 보장받았다. 선배 동료 몇은 월급날에 월급이 없었다. 수시로 게시판에는 직원의 실적과 순위가 공개되었다. 더 분발하라는 영업방침이겠지만 꼭 재판받는 기분이 들어 불유쾌했다.
8. 우리 팀에 여왕이 있었다. 직원 전체에서 1위를 독식하는 이십 대였다. 그녀의 수입은 매달 천만 원을 넘었다. 강남에 야무진 빌딩 한 채 갖는 게 그녀의 꿈이었다. 직원들은 모이면 수군거렸다.
“저 집안은 아무래도 DNA가 달라. 어떻게 엄마와 이모 셋에 저 아이까지 저렇듯 잘할 수가 있는 거지.”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엄마, 이모 셋이 늘 상위권을 차지했다. 나도 궁금했고 부러웠다.
9. 그녀들은 우리의 우상이었다. 나는 1위인 그녀가 판매한 상품 내용을 쉼표까지 그대로 ‘콜뜨기’ 했다. 그녀를 복제하기 위해 ‘콜뜨기 대본’을 가지고 다니며 달달 외웠다. 머릿속에는 온통 일밖에 없었다. 화장실 가는 것은 물론 점심 먹는 시간까지 아꼈다. 일찍 출근해 늦게 퇴근했고 주말에도 되도록 자리를 지켰다.
10. 매일 주어지는 고객 명단은 다시 돌고 돈다. 고수들은 그동안의 노하우로 고객의 심리를 이용해 나긋나긋 밀고 당기지만, 하수들은 다급해져 목소리를 키운다. 통화를 얼른 끊으려는 자와 어떡하든 붙잡는 자의 실랑이로 사무실은 꼭 시골 장터 같다. 여기저기서 애끓는 소리에 내 애간장도 같이 타들어 갔다. 저러다 죽으면 어떡하나 걱정되어 얼른 달려가 내 것이라도 들어주고 싶었다.
11. 휴게시간만 되면 옥상이 온통 뿌옇다. 몸속 구석구석 쌓인 찌꺼기를 쏟아내려는지 연달아 담배 연기를 뿜어댄다. 고달프고 속상하다 보니 알코올과 폭식으로 위안받는다. 끼리끼리 모여 노하우도 교환하고 정보도 얻어낸다. 결국,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이 텔레마케터’가 되고 만다.
12. 출근하면 어제까지 함께 했던 동료의 책상 위가 어수선하다. 한때 희망을 품었던 빈자리에는 먼지들만 떠돈다. 우울증과 불면증, 고혈압, 당뇨, 심장병은 기본이고 공황장애에 이름도 모르는 병까지 얻는다. 특히 고액 자일수록 약봉지 종류도 많아지고 병원 찾는 횟수도 늘어간다. 그렇지만 황금알을 낳는 돈맛을 알게 되면 쉽게 그만둘 수 없다.
13. 텔레마케터들의 대우가 같은 건 아니다. 고객 명단을 씨앗이라고 한다면 우수자는 기름지고 비옥한 땅에서 나온 씨앗을 실적이 저조한 자에게는 척박한 땅에서 거둔 씨앗을 받는다. 그래서 좋은 씨앗을 받은 사람은 금밭에서 금 캐내기다. 나 같은 신입은 캐도 캐도 헛곡괭이질만 하다 스스로 나가떨어진다. 그곳은 내가 해독할 수 없는 암호가 숨겨져 있고 극한 감정 노동터다.
14. 내게 위기가 닥쳤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갱년기가 시작된 것이다. 된더위와 한파가 수시로 몸을 들락거려 일하기가 힘에 부쳤다. 몸집은 점점 보름달이 되어갔고, 안구건조증에 욕심에 헤드셋 볼륨을 키웠더니 이명인지 난청인지 어질어질했다. 다닥다닥 붙어 있어 옆의 사람이 독감에 걸리면 주변 사람에게 전염되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한 달 동안 악착같이 교육받던 과정이 아까웠다.
15. 몸이 먼저 아우성을 쳐댔다. 답도 없는 앵벌이 짓 좀 그만두라는 듯. 그러고 보니까 밥벌이하러 나왔는데 제대로 마음 편히 밥을 먹어 본 기억이 없었다. 좀 아쉽다면 그 좋다는 4대 보험 보장도 못 받은 거랄까.
16. 그 동생은 잘 버텨내고 있었다. 얼굴은 누렇게 떴고 족저근막염, 무지외반증으로 목발을 짚으면서까지 출근했다.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4대 보장 보험 혜택을 받는 곳도 그리 흔한 것은 아니니까. 무엇보다 그녀는 두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었다.
17. 작은 체구인 그녀가 지치지도 않고 흥을 돋운다. 그런 신들림은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걸까. 보고만 있던 한 무리가 더는 못 참겠다는 앞으로 뛰어나왔다. 요란스럽게 몸을 흔들어 댄다. 노랑머리 여인은 가방을 쑤셔 넣고 곱사춤을 춘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그때였다. 품바 타령하던 그녀가 냅다 소리를 질렀다.
“춤 그만 추세요. 내 밥그릇 뺏으려고 해욧.”
졸지에 불청객이 된 그들의 춤은 멈췄고 구경꾼들은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컴플레인(complaint)
고객이 상품의 질이나 서비스 따위에 불만족하여 제기하는 불평
첫댓글 겨우 겨우 올렸습니다.
청랑, 수고했어요.
느티님들, 열심히 공부해서 7.8. 10:00에 거기서 만나요~~!!
청랑, 잘 읽었어요. 수고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