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재공후 (소경공파)
● 21세 소경공(少卿公) 휘 지회(之會) - 익재공후 소경공파
경주이씨 시조 은열왕 휘 알평(始祖 李謁平)의 후손으로 중시조(遠代孫 中始祖)인 소판공 휘
거명(蘇判公居明)에서 17세인 문충공(文忠公) 익재(益齋) 휘 제현(齊賢)의 4세손으로 세계(世系)가 이어진다.
고조(高祖)는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 문충공(文忠公) 익재(益齋) 휘 제현(諱齊賢)이고
증조(曾祖)의 휘는 서종(瑞種)이니 종부시 부정(宗簿寺副正)으로 증직(贈職)이 문하시랑(門下侍郞)이요.
할아버지의 휘는 원익(元益)이니 대사성(大司成)이오,
아버지의 휘는 선(瑄)이고 호는 정헌(正軒)이며 벼슬은 고려조에서 이조(李朝)로 왕조가 바뀜에 따라
비로소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올랐다.
아버지 정헌공(正軒公)은 효행(孝行)이 있어 동경지(東京誌- 慶州邑誌. 동경은 경주를 일컬음)에
기재되어 있다.
소경공(少卿公- 휘 지회之會)은 중조 21세로서 소경공파(少卿公派) 파조(派祖)이시다.
즉 익재공파에서 중파(中派)로 분파 되어 장자(長子)인 소경공(휘 지회之會)은 소경공파를,
차자(次子)인 동생 판윤공 휘 지대(之帶)는 판윤공파로 분파 된다.
호는 가은(佳隱)으로 익재공(益齋公-휘 제현齊賢)의 현손(玄孫-손자의 손자. 증손 다음)이고 병조판서 선(瑄)의 아들이다.
젊었을 때부터 아름다운 자질로 마음을 닦고 효우(孝友)를 행하여 소문이 자자하고 학업을 갈고 닦아
경전(經典)에 통했으며 학행(學行)으로 발탁되어 일찍이 발탁되엇다.
여러번 좋은 벼슬을 지내고 자리에 있을 때마다 직분을 다하여 벼슬이 태상소경(太常少卿)에 이르렀다.
더욱 조심하고 겸손하니 당시에 어진 대부(大夫)의 풍도(風道)가 있다고 했다.
임금의 신임을 얻어 방촌(尨村) 황희(黃喜)정승과 경암(敬菴) 허조(許稠) 등 제공(諸公)이 조정에
천거하여 상경(上卿-判書)의 물망에 있었는데 공이 듣고서 말하기를
"곤궁(困窮)함을 참고 글을 읽으며 초야(草野)에 늙음이 나의 본분인데 다행이 밝은 시대의 임금을
만나 그릇 되이 깊은 은혜를 입어 지위가 아경(亞卿-參判)에 이르렀으니 나에게 만족한다" 하고
스스로 글을 올려 상소하고 물러나기를 구하여 경주의 고향으로 돌아왔다.
인하여 *가사(佳沙)의 이천리(利川里)에 살면서 스스로 호를 가은(佳隱)이라 부르며 조그마한 정원에
소나무와 국화를 심고 좌우에 도서를 비치하고 쾌적하게 즐기면서 이르기를
"누가 이 속에 복의 천황씨(伏義天皇氏)적 사람이 있는 줄을 알겠는가?
*방덕공(龐德公)의 훌륭한 곳도 자손에게 편안함을 물러 주는데 있었으나 이것도 또한 한가지 도리라" 하였다.
세상을 멀리하여 살다가 천명(天命)을 다했다.
장지는 경산 자인(慈仁)의 금박산 아래 염불암(念佛岩) 묘좌(卯坐) 양지 바른 곳에 정부인 안동 권씨
사간 정의 녀(安東權氏司諫定女)와 함께 묻혔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에 알려져 명망이 이어졌고 후손들은 도천서원(道天書院)에서 제사를 지내고있다.
*현손(玄孫) - 손자의 손자. 즉 증손(曾孫) 다음 고손자(高孫子)를 말하나 손자에게 높을 고(高)자를
붙일 수 없어 고손(高孫) 대신에 현손(玄孫)이라고 말한다.
* 가사(佳沙)- 아름다운 풍경과 모래가 있는 곳.
* 복의 천황씨(伏義天皇氏)- 중국 태고 시대의 전설적인 인물. 삼황(三皇)의 으뜸.
*방덕공(龐德公)- 후한 말(後漢末)의 은자(隱者). 유표(劉表)가 여러 번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다.
처자들과 평생 녹문산(鹿文山)에서 살았다.
○ 도천서원(道天書院)
* 소재지 : 경북 경산시 진량면 당곡(慶北慶山市珍良面堂谷)
* 향사일(享祀日) : 춘3월(春三月) 상정일(上丁日) . 추9월(秋九月) 상정일(上丁日)
^ 상정일(上丁日)- 그 달의 초순에 '丁'이 들어가는 날
○ 소경공(少卿公)의 묘소(설단)
* 장소 : 경북 경산시 자인면 신관리 후산(慶北慶山市慈仁面新冠里後山)
* 묘제일(墓祭日) : 음 10월2일(陰十月初二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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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 소경공(少卿公. 휘 지회) 묘소
익재공후 대사성공(大司成公 휘 원익) 계대 소경공파 파조
소재지 : 경산시 자인면 신관리 염불암
소경공 지회후계로는 23세 강릉부사
仲玄이 강릉아중에서 사망하고
24세 어모장군 평(平)이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반발해 의성군 신평면 중하동으로 낙향해서 세거하고
23세 희열(凞悅)이 경산자인에 세거하고
23세판관 옥년(玉年)이 경북 청도에 세거하고
23세 의동 이 수원에 예동이 위평에 세거함
23세 이성지(李成枝)의 대에 제천(堤川)에 각각 정착하여 살게 되었고,
52世(17) 제현(齊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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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世(18) 서종(瑞種)-달존(達尊)-창로(彰路)밀직공파(密直公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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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世(19) 보림(寶林)-실림(實林)-원익(元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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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瑄)5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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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회(之會) 소경공파----지대(之帶)판윤공파(判尹公派)56(21)
*소경공과 판윤공은 형제지간이며
군수공인 인로 하고는 6촌지간 이랍니다.
군수공,소경공,판윤공 이 3파는 익재공의 큰아들에서 이어진 파네요
익재공후 소경파에서는 목사공.참봉공.사직공.부사공등으로 소파가 갈라져 내려오는데
목사공파 후손들은 춘천.삼척등지에, 참봉공파 후손들은 경산.영천등지에
사직공파 후손들은 전남 담양에 , 부사공파 후손들은 안동.의성등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 하고 있는것을 알수 있답니다.
제가 올려놓은 자료를 보니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인 이상화님이 소경공 후손이었네요
첫댓글 운영자도 소경공후 부사공파입니다
대구 출신의 이상화형제분들도 대단하죠. 이상정 장군(중국군), 이상백박사(전 IOC위원) 등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선조님의 훌륭함을 알고 후손으로의 자긍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보고 갑니다. 수고가 많았습니다. 건강 하세요.
좋은자료 잘보고요.
저는 사직공파 후손으로 석손 "돈암공파"로 담양 월산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습니다.
공부 잘하고 감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