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배를 마치고 경내를 둘러보았습니다.
보광전에는 석조비로자나부처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나무로 된 광배와 함께 보물95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통견의 법의에는 평행계단식 옷 주름과, 무릎 사이의 부채꼴 모양으로 넓게 퍼진 옷 주름은 물결무늬 형태인데, 9세기 후기 불상의 특징이랍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0C603F5BCD6FF807)
![](https://t1.daumcdn.net/cfile/cafe/9905183D5BCD6E6724)
불상 대좌입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CB5A405BCD6E881A)
닫집과 광배의 모습입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DBA63B5BCD6EB31B)
![](https://t1.daumcdn.net/cfile/cafe/9920653D5BCD6ED033)
축서사 삼층석탑(문화재자료 제157호)은 적묵당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하층기단과 3층 지붕돌 이상이 없어졌지만 지금은 복원되어 모습을 갖추고 있는
이중기단의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3층 석탑입니다.
867년(경문왕 7)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했다는 석탑조성명기(石塔造成銘記)가 발견된 탑으로, 일제 때 도괴하고 탑 속의 사리 등은 일본으로 가져가버리고, 옥석 사리함만 발견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하고 있지요.
![](https://t1.daumcdn.net/cfile/cafe/993E673F5BCD6F381D)
축서사 석등(문화재자료 제158호)는 고려시대 전기에 만들어진 석등으로 삼층석탑앞에 있던 것을 보광전 앞으로 옮겨 왔다고 합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63F1415BCD6F8A37)
인증삿은 필수!!!
![](https://t1.daumcdn.net/cfile/cafe/99A96B3C5BCD6FD72C)
![](https://t1.daumcdn.net/cfile/cafe/994A4B3C5BCD6FD923)
축서사에서 각화사 가는 길목에 지림사가 있습니다.
신라 진덕여왕 시절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 지림사는 폐사 후 방치되어 왔으나, 1949년 수월암이 세워지는데 나중에 지림사로 바뀌었답니다.
호랑이가 걸터앉은 것과 같은 형국인 호거산에 자리하는 지림사는 국보 제201호로 지정된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이 있으며 축서사의 창건설화에도 나옵니다.
신라 문무왕 13년(673)에 의상대사가 지림사에서 산쪽을 바로 보니 멀리 서광이 비취는 것이 보여 빛이 도달한 곳에 지금의 축서사를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으며, 조선 정조 때(18세기)에 저술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지림사는 문수산에 있다(智林寺在文殊山)’라는 기록하고 있답니다.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국보 제201호)입니다.
자연암벽을 파서 감실을 만들고, 그 안에 마애불을 조성하였답니다.
불상 뒤편의 광배에 화불을 표현하였고, 두광의 중심에는 정교한 연꽃무늬가 있습니다.
오른손은 떨어져 나가 한 옆에 놓여져 있어 시무외인을 한듯하며 , 왼손은 흥원인을 짓고 있는 7세기 후반기 조성된 마애불로 추정됩니다.
지금은 감실의 석벽은 무너졌고, 뒷부분인 광배와 불상도 군데군데 파손되었지만, 여전히 위엄을 갖추고 계시는 신라시대의 거대한 마애불좌상입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ED4F3B5BCD706D12)
![](https://t1.daumcdn.net/cfile/cafe/99E9BC3B5BCD706F30)
![](https://t1.daumcdn.net/cfile/cafe/990E423B5BCD707002)
대웅전 뒤편의 암벽에는 마애여래삼존좌상이 모셔져 있는데, 좌협시보살 옆에는 삼층탑이 조각되어 있지요.
조성시기를 7세기 중반 이전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당시 경배의 대상으로, 민초들의 고달픔을 이루만져주는 자비의 부처님이었겠지요?
![](https://t1.daumcdn.net/cfile/cafe/990A2E3D5BCD721D03)
![](https://t1.daumcdn.net/cfile/cafe/99C3CC3D5BCD722023)
절 입구의 애기사과(?)입니다. 색깔이 이쁘지요?
![](https://t1.daumcdn.net/cfile/cafe/99D39D3D5BCD722105)
각화사로 갑니다.
각화사 가는 길에 위치한 한국산림과학고등학교의 한 켠에 서동리 동,서삼층석탑이 있습니다.
이곳이 신라의 고찰이었던 남화사지로 추정되는 곳으로, 이 절을 원효대사께서 이건하여 각화사를 창건하였다고 합니다.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졌으며,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몸돌을 올린 모습으로 ,두 탑 모두 같은 양식인데 동탑이 서탑보다 조금 큽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DB4B385BCD72D138)
1962년 10월에 해체 복원하였는데, 이 때 서탑에서 사리공이 발견되었고, 동탑에서 사리병과 함께 99개의 작은 토탑이 발견되어 현재 경주 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64DD385BCD797102)
석탑 앞에는 석조좌불상이 나무에 기데어 쉬고 계십니다.
불신만 있었는데 불두는 언제인가 만들어 올려 놓았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0AC2385BCD72D228)
태백산 각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이지요.
「봉화군태백산각화사중건기」에 따르면 신라 문무왕(661~681) 때 원효가 창건하였다고 하며, 원효대사께서 남화사를 이곳으로 이건하여 각화사를 창건한 뒤, 옛 절인 남화사를 생각한다고 하여 각화사라 하였다고 합니다.
고려 예종 때 국사 무애계응스님이 중건하였으며, 왕조실록을을 보관하였던 태백산사고를 건립된 후 사고의 수호사찰이기도 했습니다.
일제때 소실되었으나 1926년이후 지속적으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B2354C5BCE4F8D28)
사찰 진입로 입구에 백월대사부도탑 등 10기의 부도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11763D5BCD746409)
각화사 입구의 부도전 입구에 ‘통진대사비’의 일부로 전해지고 있는 각화사 귀부(도유형문화재 제189호)가 있습니다.바닥돌과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비좌는 약간 파손된 상태이지만 몸체는 6각형의 귀갑문양으로, 그 속에 ‘王’자와 ‘卍’자를 돋을새김 하였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C8663A5BCD749304)
![](https://t1.daumcdn.net/cfile/cafe/999EA13A5BCD749613)
![](https://t1.daumcdn.net/cfile/cafe/99D7873A5BCD749810)
월영루 앞 오른쪽에있는 삼층석탑은 완전히 도괴된 것을 다시 모아 조성하였답니다.
높이는 약 3m이며 지붕돌이 몸돌에 비해 둔하게 보이지만 각화사의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B29D4C5BCE4F8F28)
태백산 각화사의 편액이 걸린 월령루와 대웅전, 태백선원 앞에서 또 한번 찰깍!!!!!
첫댓글 자세한 설명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도 함께 하셔야 더 좋은 순례가 되었을 터인데,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