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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여행기 1부
젊은시절 함상생활때 울릉도와 독도를 선회를 하여서 섬이 대략 어떻게 생겼구나 하는것은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울릉도와 독도라는 그 땅을 밝아보고 싶어서 몇년전에 인천 산악회에서 울릉도 예약을 하였는데, 기상악화로 배가 출항을 못한다고 취소된바가 있었다. 이번에는 인천에 삶의 터전을 잡을때 5층 아파트에 같이 살던 모임이 지금까지 이어져 약 26년을 함께하는 친목회에서 순수 여행을 목적으로 울릉도를 향하게 되었다.
나는 무조건 성인봉을 올라보고 싶었지만, 일행을 두고 나홀로 행동하기도 그래서 성인봉은 아예 처음부터 접어두고 부부동반으로 출발을 하였다.
울릉도행 여객선은 묵호와 삼척, 포항 등 세 곳서 출항한다. 수도권 여행사에서는 주로 묵호에서 출항한다. 인천에서 보통 새벽 2시 30분경인데 이번에는 3. 1절 연휴로 영동고속도로가 지체된다고 00:30분에 부평역앞에서 출발하여 송내를 거처 영등포에서 일행을 태우고 출발 하였다. 서울은 반포, 영등포, 시청 앞에서 새벽 4시경 버스가 출발한다.
3,4시간 걸려 묵호에 도착하여 아침 식사를 들고 아침 7시 묵호항을 출발하여 울릉도까지 배로 약4시간 걸린다. 오늘도 가상이 않좋아 파고가 높다고 미리 배멀리약을 들라고 안내방송까지 하는데 명색이 청산인데 무슨 멀미약을 들수 있겠는가~~~^*^
울릉도 투어를 취급하는 여행사는 수십개나 된다. 여러 회사가 모집하여 공동으로 운영하는데 우리 경우 그 중 '홍익여행사'가 통합 운영하고 있었다. 2박 3일이 보통인데 1인당 35만원 정도이다.
그리고 선택 자유 투어로는 독도(45,000원), 울릉도 일주(25,000원), 죽도(16,2,00원) 세 곳이다.
저기 보이는 향나무가 우리나라 최고령 향나무로 수령이 약 2,000년으로 높이 4m,둘레 2m, 경상북도 지정보호수다. 울릉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무렵 척박한 암벽에 뿌리를 내리고 오가는 이들을 묵묵히 지켜보는 울릉도의 상징나무다. 도동소공원에서도 쉽게 볼수 있으며 일반인들의 현장 접근은 불가능 하다.
***울릉도는 지금으로부터 300만년 전 화산폭발로 이루어진 화산섬이다. 200만년전형성된 제주도보다 먼저 형성된 섬이다. 독도는 울릉도보다 더욱 이른시기에 이뤄진것으로 추정한다.
행정구역으로 경상북도 울릉군이다. 한 개의 읍(울릉읍)과 두 개의 면(북면,서면) 그리고 25개의 리(里)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장 가까운 내륙은 경북 울진군 죽변면으로 130km이다. 면적은 72.89㎢, 섬둘레는 56.5km, 동서직경은 10km 남북은 9.5km다. 2011년 12월 31일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5.322세대 인구 1만 742명이다. 그러나 상주 인구는 실제로 8.500에서 9.000명 정도라고 한다.
울릉도의 역사를 보면 옛날에는 무릉, 우릉 또는 우산국이라 불렸다. 우리나라 문헌에는 신라 지증마립간 13년(512)에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한 내용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1693년과 1696년에 안용복이 일본과 담판을 지어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영토임을 확인하였다.
울릉도의 3無5多, 도둑, 공해, 뱀이 없고 향나무, 바람, 미인, 돌, 물이 많다. 특히 울릉도의 물은 어디가나 넘쳐 흐르는데 모두 1급수에 해당한다. 울릉도에서 꼭 맛봐야 할 별미로는 '약소불고기' 홍합밥' '따개비밥' '오징어내장탕'이다. 보통 1인분 15,000원이다. 11시경 울릉도의 새로 생긴 항구라는 사동항에 입항후 26인승 미니버스로 도동읍으로 이동하여 현지 가이드와 말다툼 해가며 숙소를 민박하는 곳으로 배정 받았는데, 이곳은 욕실있는 방 3개에 거실이 있고 거실에는 주방시설이 있어서 우리 일행에게는 더없는 편의를 제공하게 되는데 2부에서 자세히 언급 할것이다.
위의 사진은 숙소아래의 가장 친절하였던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자칭 울릉도의 최고의 미인이라는 유일한 여기사인 김기사의 버스를 타고 내수전 전망대에 오르는 길목에 있는 소나무이다. 나무 계단길이 많은 내수전 전망대에 오르니 흐린 날씨에 바람이 얼마나 거센지 제대로 서있기도 힘들정도여서 사진도 어떻게 담았는지 모를 정도이다. 내수전 전망대에서 건너다보는 성인봉 방향 산악지대의 저~ 얼어붙은 흰눈은 언제나 풀릴거나아~~^*^ 저동항 앞의 조그만 돌섬을 줌업하여 담아보았다. 사진 몇컷 담았는데 거센 바람에 흔들려버렸다^*^ 약 30여분 소요하여 저곳에 올랐다가 내려와서 담은 저~ 내수전 전망대는 우리나라에서 독도 다음으로 일출을 빨리 볼수 있다고 한다.
울릉도 해맞이의 명소인 내수전은 닥나무가 많이 자생해서 저전포라고도 했다. 흐린 날씨속에서도 매력포인트인 죽도를 이정도로 담았는데, 죽도는 울릉도의 부속섬 중 가장 큰 섬으로 땅의 주인은 산림청으로 대나무가 많이 자생해서 일명 대섬이라하기도 한다. 저동항에서 동북방향으로 4Km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 207,818㎡(경지 52,549m2), 높이 116m(L=619,B=365)로 현재 1가구 2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 죽도는 특히 무공해 더덕으로 유명하다. 헬기장, 낚시터 등 각종 편의시설을 갖추려 노력하고 있으며 현재는 조형물 5점이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이 곳 죽도에는 아직 식수원이 없어 빗물을 받아 생활용수로 사용하며 식수는 울릉도 본섬에서 가져다 사용하고 있다. 계단 수는 365개이고, 계단 수를 세며 올라가는 재미도 있지만 연로하신 분들에게는 이 계단때문에 죽도록 고생한다고 하여 죽도라기도 한다 자녀들을 공부시키고 결혼시킬때 이곳 죽도에서도 소를 키웠다 송아지를 지고 올라가 어미소가 될때까지 키워 장에 내다 팔때는 현지에서 도축을 하여 내다 팔기도 하였다 울릉도 본섬으로 유학을 와야만 했다 말하자면 울릉도와 죽도로 오가며 생활하여야 했기 때문 현지 생활하시는 분들은 그당시 경제적으로 이중 부담을 감수하여야만 했다 접근 할 수 있는 지역이기도한 죽도에는 전화시설은 물론 2007.11월부터 위성인터넷을 이용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비상시를 대비 디젤발전기를 구비하여 언제라도 전기를 이용 할 수 있도록 시설을 구비해 놓았다고 한다.
자칭 울릉도 최고의 미인이라는 김기사의 걸쭉한 관광지 해설인지 농담인지를 들어가면서 내수전 전망대를 벗어나 봉래 폭포로 이동 하였는데 입구에는 풍혈이 있다. 봉래폭포 내의 풍혈은 땅 밑으로 흐르는 지하수의 찬 공기가 바위틈으로 용출되어 항상 섭씨 4도를 유지하므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느껴진다. 이 풍혈은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천연냉장고로 이용되었고 더운 날엔 주민들의 휴식처로 사랑받던 곳이다. 울릉도의 용암에는 향나무가 많은데 이곳에는 삼나무인듯 하다. 기상이 좋지않으니 모든 관광객들을 태운 관광버스들이 한곳으로만 몰려다니는 내수전 전망대에 이어서 봉래폭포를 30여분 걸어서 당도한다. 미끄러운 눈길을 걸어서 올라간 봉래폭포는 저동항에서 2Km 상부에 위치한 3단폭포로, 원시림 사이로 떨어지는 물줄기는 바라만 보아도 시원한 느낌을 준다. 1일 유량은 약 3,000톤 이상이며, 물 좋기로 소문난 울릉읍 주민들의 수원이다.
봉래폭포 내에는 삼나무 숲을 이용한 삼림욕장과 에어컨보다 더 시원한 자연 바람이 나오는 풍혈, 울릉도의 옛 가옥구조인 너와집이 있어 주민과 관광객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봉래폭포 관광지 내의 너와집은 섬에서 많이 나는 솔송나무와 너도밤나무를 우물정자 모양으로 쌓고, 틈은 흙으로 메워 자체 온습도 조절이 가능하며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은 따뜻한 것이 특징인 울릉도의 옛 가옥이다. 봉래폭포를 내려와 버스 기다리는 시간에 김기사의 언니가 운영한다는 주차장 길건너편에서 더덕구이 1만5천원 호박막걸리 한되 1만원을 시켜 들었는데, 양도 꽤 많이 맛도 참 좋았다. 이 얘기는 2부에서 다시 할것이다. 그곳 막걸리집 액자속에 있는 독도 사진을 다시 사진으로 담았는데 볼만 하지요?*^^ 어차피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독도는 모두 취소라고 하니 어쩌겠누우?~~ 봉래폭포를 내려와 저동에 숙소를 잡은분들을 위하여 잠시 저동항에 들렸는데, 이곳 수산물시장에서 생선회를 뜨고 매운탕거리도 받아서 가지고 왔다. 이튿날 오후에도 이곳에 들려서 생선회에 쐬주 한잔 하고 돌아왔으니 그래도 울릉도에서 생선회에 한잔 하고싶거들랑 저동항을 찾는것이 좋다.
***문제는 도동항에 돌아와 김기사의 안내로 "형제횟집" 이라는 곳에 들어갔는데, 생선회 두접시 12만원이 저동항에서 사온 단 몇만원 양보다 적거니와 불친절과 관광객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는것 같아서 매우 불쾌하였다. 그런데 그집 사진을 안담아와서 아쉽다.
숙소에 돌아와 저동항에서 가져온 매운탕거리로 끓인 매운탕과 내가 준비해간 닭근위를 안주를 맛나게 들며 쐬주만 신나게 들었는데 공기가 좋아서인지 전혀 숙취라고는 기미도 없었다. 또한 숙소의 물이 얼마나 좋은지 비누 없이도 손이 미끌 미끌 부드러웠다.
통구미 거북바위 관광지 기이한 바위풍경, 정상부의 큰 거북이가 마을을 향하는 형상이다. 한 마리가 아니다. 보는 방향에 따라 6-9마리의 새끼거북이도 보인다. 그래서 거북이가 통(마을)으로 들어가는 모양새라 하여 '통구미 마을이다. 관광객들의 인기있는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다. 그 앞바다는 바다낚시로도 이름난 곳이라고 한다.
울릉도 육로 일주 관광은 남서 방향의 A코스와 동북 방향의 B코스로 나뉘는데 어제 B 코스는 다녀왔고, 둘쨋날 9시부터 관광길에 올랐다. 도동에서 다시 사동으로 넘어와 여기서부터 A코스의 출발이다.
A코스 안내 도동→ 사동 → 가두봉등대(터널)→ 통구미와 거북바위 → 남양 사자바위 → 구암곰바위터널 → 학포 → 태하항과 황토굴 → 현포해양박물관 → 송곳바위,코끼리바위 → 천부항 → 나리분지인데
나리분지는 눈이 많아서 못가고 우리는 오전에 A코스를 버스로 관광했다.
더덕즙을 종이컵 한잔에 1천원에 파는데 달콤한 그맛을 보면서 다시한번 담아본다. 통구미 마을 산에도 향나무가 많이 보인다. 울릉도에 신호등이 2곳이 있는데 저산의 터널길이 좁아서 한번은 가고 또한번은 그 신호등 따라서 오니 저산 터널 양쪽에 있다. 통구미를 지나서 조금 가면 남양항에는투구봉과 사자바위가 있는데 처음 만나는 서면의 마을이 남양리로 울릉도의 가장 남쪽 마을이다.
투구봉은 우산국 시절의 전설이 깃든 곳으로 우해왕이 신라의 이사부에게 항복하며 벗어놓은 투구가 투구봉이다. 해안도로의 사자바위, 산쪽으로 오리의 형상을 한 오리바위도 눈길을 끈다. 길가로 얼굴바위도 만나는데, 사람의 웃는 얼굴을 닮았다. 오뚝한 콧대와 살짝 올라간 입꼬리가 매력적인 바위다. 달리는 버스기사의 설명만 들으며 사진은 담을수가 없었다. 태하동 대풍감 해안 절벽 대풍은 바람을 기다리는 언덕을 뜻한다. 정상에는 바다 위를 비추는 울릉도 항로의 표지관리소가 자리한다. 그 아래 사방으로 펼쳐진 비경이다. 왼쪽 해안에는 천연기념물 제49호로 지정된 대풍감향나무 자생지가 위치한다. 바닷바람의 영향을 받아 일대의 향나무는 키가 크지 못하고 사납게 자랐으며 부근의 산세가 험하여 출입이 어려운 곳이다. '산' 잡지가 우리나라 10대 비경으로 선정한 명승지다. 황토구미 앞에 설치된 원형사다리를 올라서 해안절벽에 설치된 출렁다리 비슷한 길을 따라간다. 용두암 비슷하여 담았는데~~^*^ 태하의 해안절경이 속이 후련하기까지 하다. 보이는 사진이 태하동 마을인데 산세도 아름답다. 이번에 보지못한 태하 성하신당에 관한 이야기다. 조선 태종시(1417년) 삼척인 김인우를 울릉도 안무사(按撫使)로 명하여 울릉도 거주민의 쇄환(刷還)을 위하여 병선 2척을 이끌고 이곳 태하동에 도착하여 유숙지로 하고 도내 전선(全船)에 대한 순찰을 마치고 내일이면 출발 귀임(歸任)할 작정으로 취침 중 이상하리만치 기이한 꿈을 꾸었던 것이다. 이 섬에 남겨두고 가라는 계시가 있어서 안무사는 의아스럽게 생각했으나 별로 그 일에 대해서 관심이나 구애됨이 없이 다음날 출항할 것을 결심하고 날이 밝아짐을 기다리는 중 예기하지 않던 풍파가 돌발하여 출발을 중지하고 풍파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수일간은 이렇게 기다리던 중, 안무사는 문득 전일의 현몽이 생각나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일행 전원을 모아놓고, 동남동녀 2명에게, 일행이 유숙하던 곳에 필묵을 잊고 왔으니 찾아올 것을 명하였다. 그렇게 심하던 풍랑은 거짓말처럼 멎어지고 항해에 적당한 바람만이 불어오는 것이었다. 안무사는 결국 일행을 재촉하여 급히 출항할 것을 명하니 배는 순풍을 받고 일시에 포구를 멀리하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해변으로 돌아와 보니 배는 벌써 수백리 해상에서 쾌조로운 순풍을 타고 육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땅을 구르며 고함을 쳤으나 배는 어느 듯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말았다. 본래 유숙하던 자리로 돌아왔으나, 날이 감에 따라 공포와 추위, 그리고 굶주림에 시달리다 결국은 죽어갔을 것이다. 당시 연민의 정과 죄의식이 마음 한구석에서 떠날 날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에 태하동에 상륙하여 수색을 하였던 바 전년에 유숙하던 그 자리에 두 동남동녀가 꼭 껴안은 형상으로 백골화(白骨化)되어 있었던 것이다. 간단한 신당을 지어 제사를 지내고 귀임하였다. 농작이나 어업의 풍년도 소원하고 위험한 해상작업의 안전도 빌었다. 그리고 신조 선박의 진수(새로 만든 배을 처음으로 물에 띄움)가 있으면 꼭 태하의 성하신당(성황당)에 제사하여 해상작업의 무사안전과 사업의 번창을 기원한다. 원래 이곳은 황토가 많이 난다는 "황토구미" 이다. 원형 오르막길 저편의 버스방향에 붉은 황토가 보인다. 조선조때 이곳의 황토가 나라에 상납까지 하였다고 한다.또 조종에서는 3년에 한번씩 삼척영장(울릉도가 강원도 소재시)을 이섬에 순찰을 보냈었고, 순찰을 하였는지 여부를 알기위해 황토와 향나무를 바치게 하였단다. 이규원의 일기에는 '대황토구미(大黃土邱味)"로 되어 있으며, 개척때 사람들이 이곳에 와보니 바닷가 산에 황토를 파낸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큰황토구미라 하였던 것이다. 태하를 떠나 현포항 방파제에 와서 태하방향을 담은 모습이다. 공암 또는 코키리바위로 불리는 모습이다. 바다에는 코키리바위 산에는 송곳바위가 위치하고 있다. 한국 10대 비경이라고 하는 절경과 울릉도 등대를 줌업하여 담아보았다. 이제 천부항과 삼선암을 지나 관음도 입구가 있는 섬목이라고 하는 해안도로 끝까지 왔는데 이곳에서부터는 오던길로 되돌아간다. 보이는곳이 자궁바위라고 하는데 저 터널을 지날적에 차가 급정거를 몇번씩 한다. 기사왈 자궁이 꽉~ 꽉 물어서 그랫다나 뭐래나~~^*^ 자궁바위의 바다방향 모습 되돌아오면서 계속 이 절경들을 차창을 열어가면서 담게 되는데 보이는것이 삼선암이다. 자궁바위 터널과 그앞의 솟아오른 바위가 넘 일품이다. 섬목에는 관선터널을 공사하고 있었고, 저 구름다리를 건너서 관음도를 가려면 입장료를 내고 간다고 하는데, 관광버스 모두가 그냥 돌아서고 만다. 관음도와 연륙교를 줌업^*^ 이 삼선암은 보는 각도에 따라서 하나가 되기도 하고 세개가 되기도 한다. 삼선암 부근의 딴바위라고 한다. 하나만 가리켜서 일선암(가위바위)도 있다. 차창을 열고 담은 사진 치고는 작품이다. 이제 코끼리 바위를 지나고 있다. 저 바위의 뚫린 구멍이 잘 보인다. 차량이 달리면서 다른 각도에서 담는다. 코끼리 변이라는 바위와 저 멀리 딴바위가 보인다. 하늘에는 힌구름이~~바다에는 구름같은 파도가~~^*^ 이 풍경 사진들을 일행에게 모두 보내주었다. 사동항이 있는 동네의 호박엿공장 앞에서 담은 모습으로 도동에서 키이블카를 타고 오를수 있는 독도 전망대가 다가온다. 이제는 정해진 해솔식당에서 점심 식사후 울릉도여행 2부로 간다.
2013. 3. 1~ 2 (금~ 토요일)
♣ 여수 - Bar.윤치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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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청정바다의 진수를 맛보셨네요 동해바다의 웅장함을 느껴봅니다 ^^
시원타~~
섬 구비 기암 절벽 어느화백이 붓을들었나.......
갑자기 불러 보고픈 노래가 생각힙니다.
가만히 앉아 울릉도의 절경에 취해봅니다.
태하의 해안 절경에
멧돼지 한마리 누워있는 모습이네요~
울릉도 ...하나의 산뿐인 줄 생각 했는데
산겹겹 물 겹겹 광광객 겹겹이군요
걸죽한 김기사의 입담이 그럴 듯 ㅎ합니다
자궁섬과 솟은바위 자연의 오묘함
저렇게 뽀얀 파도는 처음봐요
옛날 생사람 바다에 던져 용왕꼐 빈디더니
그 두 어린 남녀는 춥고 굶주리고 오죽 두려웠을까요~?
정말 나뻤어....구경 감사합니다
가거든 형제식당엔 가지 말아야지...요~^
한번은 가보고싶은곳입니다...
배를못타...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