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수경 / 아트플랫폼 누아트 디렉터
[앵커]
2018년, 영국 런던 소더비 경매장에서는 한 미술 작품이 낙찰되자마자 파괴되는 사건이 있었는데요. 이런 일을 계획한 사람은 다름 아닌 해당 작품을 만든 작가 본인이어서 더욱 세상을 놀라게 했죠. 오늘 사이언스 in Art 에서는 경매봉을 두드리자마자 스스로 파쇄되어버린 작품 '풍선과 소녀'의 작가, 뱅크시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온라인 아트플랫폼 누아트 박수경 디렉터와 함께 합니다. 어서 오십시오.
앞에서도 잠깐 소개해드리긴 했지만, 미술 작품이 낙찰되자마자 파괴되는 일은 정말 놀라운 일인데,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을 좀 해주시죠.
[인터뷰]
네, 말씀하신대로 2018년에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있었던 해프닝인데요, 뱅크시라는 작가의 '풍선과 소녀'라는 작품이 당시 한화로 약 16억 원에 최종 낙찰이 됐습니다. 경매사는 낙찰가를 3번 외쳤고요, 낙찰봉을 두드렸겠죠. 그런데 그 순간에 일이 벌어집니다.
보통 경합이 치열하거나 하면 낙찰 후에 경매장에 박수 소리가 들리기도 하는데요. 사람들이 박수를 치는 찰나에 갑자기 벽에 걸려있던 이 '풍선과 소녀'라는 작품이 스스로 파쇄되기 시작합니다. 누가 건드린 것도 아니고요. 갑자기 벽에 걸린 작품이, 액자 밑으로 흔히 종이가 파쇄되는 것처럼, 그림의 절반이 세로 방향으로, 여러 갈래로 파쇄 돼서 나오게 됩니다.
참고로 미술품 경매 과정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을 드리면요, 한 작품의 경매가 시작되면 가장 낮은 금액인 시작가부터 응찰이 가능하고요. 응찰이 들어올 때마다 작품가가 점점 올라가는 시스템입니다. 최종적으로 더 이상 응찰이 들어오지 않는 그 금액이 최종 낙찰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낙찰의 순간에 더 응찰할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경매사가 연속해서 3번 작품가를 외치게 되고요. 아무도 응찰하는 사람이 없으면, 낙찰봉을 두드리는데요, 이 순간에 비로소 한 작품의 낙찰가가 확정되고 다음 작품 경매로 넘어가게 됩니다. 요즘은 온라인 경매도 워낙 활발합니다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번호가 적힌 패들을 들고 응찰하는 경매가 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앵커]
치열한 경매 끝에 낙찰된 그림이 순식간에 파쇄됐으니 낙찰자는 물론이고, 그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도 무척이나 놀랐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 이런 일을 벌인 사람이 작가 본인이어서 더욱 큰 주목을 받았죠?
[인터뷰]
네, 당시 경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16억 원 가치의 작품의 절반이 눈앞에서 파쇄된 것을 보고 마치 귀신에 홀린 것처럼 굉장히 당황했다고 합니다. 이후에 다들 이 일에 대해서 해당 경매사에서 꾸민 일 아니냐, 낙찰봉에 어떤 장치가 되어있는 게 아니냐 라는 등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했는데요.
경매 다음 날 작품의 작가인 뱅크시는 이 해프닝에 대해서 직접 본인의 SNS에 게시물을 올렸습니다. 그 게시물에서 자신이 몇 년 전에 이 작품이 경매에 부쳐질 것을 대비해서 액자 안에 아무도 모르게 파쇄기를 설치해두었다고 밝혔거든요. 또, 후드티를 입은 누군가가 장치를 설치하는 모습과 리모컨으로 작동해서 작품을 파쇄하는 내용 등을 공개했습니다. 덧붙여서 파블로 피카소가 한 말이기도 한 '파괴하고자 하는 욕망 또한 창조적인 욕구다.' 라고도 했습니다.
[앵커]
뱅크시가 사전에 이런 해프닝을 의도하고 장치를 해두었다는 이야기인데요. 그래도 약간은 의문이 남는 게 경매사는 정말 파쇄기의 존재를 몰랐을까요?
[인터뷰]
네, 당시 경매를 주관했던 소더비 측에 따르면, 액자 안에 설치된 파쇄기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그 이유로는 이 작품에서 프레임, 즉 액자가 작업의 핵심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사전에 이 액자 부분이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조심하라거나 건드리지 말라는 요청이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더불어 이후에 이 작품은 독일의 한 뮤지엄에서 전시되었는데요. 앞서 뱅크시가 자신의 SNS 게시물을 통해서, 원래대로라면 캔버스의 3분의 2가 아니라 전체가 파쇄되었어야 했다고 밝혔었죠. 뮤지엄의 관장은 파쇄되지 않은 3분의 1 정도의 캔버스가 마저 파쇄되는 것을 방지하고 싶어 했고요. 관계자들이 액자를 열어서, 파쇄기가 작동하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언론사들을 초대한 자리에서 직접 관계자들이 흰 장갑을 끼고 캔버스와 장치를 분해했다고 하고요. 해당 작품의 낙찰자였던 여성은 그대로 작품을 소장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낙찰자는 "처음에는 충격을 받았지만, 나만이 경험한 예술사를 남긴다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앵커]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인데요. 이쯤 되니깐 뱅크시란 작가가 궁금합니다. 어떤 작가입니까?
[인터뷰]
네, 영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뱅크시는 동시대 아티스트 중에서도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굉장히 핫한 작가입니다. 더 흥미로운 건 어떤 신원도 밝히지 않고 활동하는, 즉 얼굴 없는 아티스트라는 것입니다. 현재까지 뱅크시의 정체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추측이 많은데요. 알려진 바로는 10대 때 학업을 중단하고 낙서화를 시작했다는 것과, 1974년생이다, 백인 남성이다, 등의 이야기들이 전해집니다.
[앵커]
뱅크시는 앞서 이야기했던 경매 사건 외에도 미술계와 대중을 깜짝 놀래킬 만한 이벤트를 많이 벌여왔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박물관에 자신의 작품을 몰래 설치하는 도둑 전시로도 유명해졌죠?
[인터뷰]
네, 뱅크시는 소더비 경매에서의 해프닝 뿐만 아니라 꾸준하게 자신만의 스타일로 목소리를 내며 활동하는 뜨거운 감자 같은 작가입니다. 대영박물관이나 메트로폴리탄, 루브르 박물관 등 유명 기관에서 몰래 작품을 설치해서 이슈가 되기도 했는데요. 특히 미국의 자연사 박물관에 몰래 놓아둔 딱정 벌레 작품은 20일 이상 전시되었다고 하고요. 이런 퍼포먼스를 통해서 예술품을 제대로 감상하지 않는 사람들을 풍자한 것이라고 합니다.
[앵커]
이쯤되면 미술계가 악동아닌가 싶은데요, 뱅크시는 아무도 모르게 길거리나 건물에 그림을 그려놓고 사라지는 일이 많다고 하는데, 그 작품도 소개해주시죠.
[인터뷰]
네, 뱅크시의 대표작 중에는 스카프를 머리에 두른 채로 재채기하는 노인의 벽화도 있습니다. 뱅크시는 이 그림을 영국 브리스톨의 한 주택가에 있는 건물 외벽에 그렸는데요. 이 벽화가 뱅크시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집값이 크게 상승했다고 합니다. 또, 뱅크시는 노팅엄의 한 건물 외벽에도 '훌라후프를 하는 소녀'를 그려놓기도 했는데요. 단순한 낙서 같았던 이 그림도 알고 보니 뱅크시의 작품이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건물 주인이 작품을 거액에 판매해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뱅크시는 자신의 작품을 상업적으로 판매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주로 건물이나 다리의 벽 등에 그래피티 작업을 하는데, 뱅크시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사람들이 이 거리의 작품들마저 뜯고 분해해서 소유하고, 또 경매에 내놓는 등 거래가 만연하게 되거든요. 뱅크시 본인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으나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놓는 건 이 또한 미술계의 상업주의를 비판하는 하나의 풍자 아닐까 싶습니다.
뱅크시는 2010년에 다큐멘터리를 만드는데요, 제목이 참 재밌습니다.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입니다.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제목이죠. 선물 가게를 지나야 나갈 수 있는 곳들이 있잖아요. 전시 예술의 상업적인 성격에 대해서 풍자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국내에도 개봉한 작품으로, 베를린 영화제에도 초청되어 호평을 받았다고 합니다.
[앵커]
담벼락에 그렸더니 가격이 상승할 정도로 신의 손 인 것 같은데, 최근에 뱅크시는 '그래피티'로 아주 특별한 기부 활동을 했다고 하는데요. 어디서 어떤 일을 한 건가요?
[인터뷰]
가장 최근에는 전 세계 공통의 과제였죠, 코로나19가 한창이었던 2020년에, 뱅크시가 '게임체인저'라는 그림을 영국 남부에 있는 사우스햄튼 병원에 기증합니다. 무채색으로 그려졌고요, 작품 속에는 어린 소년이 등장하는데요. 이 소년은 스파이더맨과 배트맨 같은 히어로 피규어들은 바구니에 둔 채, 마치 영웅 같은 자세를 한 간호사 피규어를 들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코로나의 최전선에서 말 그대로 목숨 바쳐 희생하는 의료진들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보이는데요. 뱅크시는 "모두에게 감사드리며, 이 그림은 흑백이지만 병원을 조금이라도 밝게 하길 바란다."라는 메모와 함께 작품을 기증했습니다. 또한 이 작품은 경매에서 한화 약 224억 원에 낙찰되었다고 하고요. 작품가는 전액 의료진과 환자들에게 쓰였다고 합니다.
[앵커]
마지막으로 궁금한 게 낙찰된 후 파쇄됐던 '풍선과 소녀' 작품이요. 다시 경매에 나왔는데, 어떻게 됐나요!?
[인터뷰]
네, 저로서는 참 아이러니한 일인데요. '풍선과 소녀' 작품은 해프닝 이후에 '사랑은 쓰레기통에'라는 새 이름이 붙게 되고요, 시의 인증 기관을 통해서 정식 작품으로 인증됩니다. 2018년 경매 당시에 한화 약 16억 원이었던 작품이 3년이 지난 2021년, 그러니까 작년 10월에 다시 경매에 출품됐는데요. 약 18배 오른 약 304억원에 낙찰되었다고 합니다. 낙찰자는 아시아의 한 컬렉터라고 알려졌습니다.
[앵커]
네, 오늘은 자신만의 기행으로 세상에 메시지를 던지는 작가 뱅크시에 대해 들어봤습니다.'사이언스 인 아트' 박수경 디렉터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