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전 세번의 시도에도 실패했던 금연을 너무나 사소한 계기(1)로 성공한 이후
삶의 질이 개선된 만큼 비만이라는 불청객이 소리 없이 찾아왔다.
상쾌해진 입과 혀는 잊고 있었던 밥맛과 술맛의 매력을 다시 찾아줬고
내가 타고난 식탐의 소유자라는 사실 또한 상기시켜 주었다.
그러던 몇 년 후 아무 생각 없이 올라간 체중계 바늘이 93을 가리킬 때의 충격
이후로 체중계는 물론 전신거울이나 반사외벽도 철저히 외면하고 살았다.
이전까지 평생을 슬림한 62로 살아온 나에겐 인정할 수 없는 껍데기였다.
세월이 흘러 2024년 잔인한 4월 어느 날, 홍상수사건(2)이 일어났고
그로 인한 충격은 빙하기의 내 연애감정에 불을 지폈다.
불행인지도 모를 다행히 에피소드로 정리된 그 사건 이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오늘만 살자던 내 영혼은 미래를 준비하는 건강하고 착한 어른으로 변해있었다.
물론 언제 다시 돌아갈지 모르지만, 오늘까지 50일 넘게 간헐적 단식과 식단관리,
운동을 겸한 성실한 라이프 스타일을 유지하는 걸 보면 지속가능한 속성이
생성되지 않았나 기대해 볼 수 있겠다.
아침 6시 기상 후 복식호흡 명상하고 유튜브 뱃살빼기운동 15분으로 워밍업,
집 앞 헬스장으로 가서 1시간 반 걷기와 뛰기 반복 및 30분간 근력운동을 한다.
사우나를 끝내고 집으로 와 어제저녁 7시부터의 공복을 유지한 채 집안청소 및
도시락과 식사 준비를 마치고 11시경에 오이반개 사과한개, 생고구마반개와
생양배추와 방울토마토 다섯알의 아침을 천천히 복용한다.
출근 후 2시경에 점심으로 닭가슴살구이 한 덩이, 양상치, 볶은당근과 브로콜리,
삶은계란 흰자 두 개 먹고 간식으로 아몬드15알, 바나나한개 섭취, 저녁6시경
고등어구이 한 토막과 두부구이 상추쌈, 그릭요거트나 저지방우유와 오트밀 로
적지 않은 하루 식사를 마친다.
근 손실 예방 등을 고려해 극단적 소식은 피하라는 유튜브의 조언도 따랐다.
물론 어느 날은 현미밥, 찐 고구마, 감자 등 건강한 탄수화물을 보충하기도 하며
하루 한 끼나 두 끼로 버티기도 했고 다이어트로 인한 살 처짐 방지로 레몬수는
하루 1.5리터 매일 꾸준히 마셨다.
인고의 한 달 후 체중계 숫자에 79.70이 찍혔다.
유튜브들이 이구동성으로 권장하는 식단70~80%, 운동20~30%을 적용했다.
즉 식단만으로도 감량할 수 있으나 시간이 오래걸리니 운동을 보충하면 효과적이며,
식단관리 없는 운동은 근육돼지가 된다는 이론을 감안했고 천천히 식사하기 및 야채,
단백질, 탄수화물 순으로 섭취하기, 빵떡면 등 정제 탄수화물 절대금지,
16시간의 철저한 공복 유지 등이 비결이라면 비결이었던 것 같다.
다이어트 중 찾아본 수많은 유튜버들의 이론을 조합해 논문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을 감량비결이지만 때론 목구멍으로 들어가기 싫어하는
오트밀죽을 억지로 삼키거나 퇴근 후 사력을 다해 참아야 했던 냉장고 속 맥주 한 캔,
가볍게 오르지만 10분이 30분 같은 힘들고 지루한 런닝머신, 스물한개째 들어 올릴 땐
눈물을 찔끔 흘리고야 마는 바벨의 중압감들은 경험해본 자만이 알 수 있을 고난이었다.
행운의 77을 찍었을 땐 자축 치팅데이를 가졌다. 홍상수사건의 주인공과 삼겹살에 소주,
오징어링과 치즈돈가스, 어묵탕을 겸비한 호프2차, 노래방 맥주까지 원 없이 들이부었다.
그 친구 오피스텔 앞 편의점에서의 4차는 그 친구가 말해주기 전까진 기억에도 없었다.
가물가물 생각나는 헤어질 때의 허그는 에피소드의 아름다운 완결이었다.
전날의 취침 전 술을 겸한 폭식이 항상성의 원칙을 자극해 다음날 80을 찍었지만
강도 높은 운동과 한 끼 식사로 이틀 만에 77로 복귀했다.
고도비만은 식단이나 운동에 따라 하루 이틀 만에도 3~4 키로가 오르내린다는
놀라운 사실도 경험했다. 몸의 70%가 물이라 했던가? 초기엔 2시간 흠뻑 땀흘리고
사우나만 들어가도1키로 이상 줄었다.
목표인 70을 달성하고 나면 전성기의 아놀드슈와제네거를 목표로 인생 2막을 꿈꾸려 한다.
생각을 바꾸고 삶을 바꾸는 것이 예기치 못한 계기를 통해서란 경험을 습득하고 나니
버라이어티한 라이프로 또 다른 계기를 통한 행복을 찾아 새로운 치팅 여벙에 나서려 한다.
선택적 TMI 주석 : 두 번의 운명적 계기
(1) 사소한 계기
25년 전 난 10시에 퇴근하고 나면 소주 한 병과 그날의 초이스 안주, 담배 한 갑을 준비하고
매일같이 새벽 5시까지 디아블로와 스타를 즐겼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 어느 날 미처 준비못한 여분의 담배한갑 때문에 집을 나섰지만
그 당시 개발이 한창이고 지하철역마저 땅만 파놓은 상태인 신도시에는 편의점도 없었고
밤 12시 에 담배를 살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길바닥의 장초마저 비에 젖어 아쉬움을 뒤로한 채 마지막 남은 쌍대와 소주를 위안삼아
가상 세계에 몰입하기로 했다.
전날 밤 소중히 아끼고 참고 참았던 담배 두 개비가 아침에 깨어날 때까지 건재해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건 양치질을 해도 헛구역질이 나오지 않아서였다.
신기한 마음에 하루 이틀 참아보니 하루가 다르게 기분이 상쾌하고 밥맛도 좋고 술맛 또한
소싯적 느끼던 신의 물방울로 회귀했고 매일 퇴근 1시간 전부터 나를 괴롭혔던 단발성 번아웃
에서도 해방이 되었다.
취침 전의 허기가 괴로움에서 즐거움으로 바뀌는 계기는 자신의 개선된 건강을 자각하는
순간이라 했듯, 몸의 변화를 자각한 후엔 담배를 피우지 않는 즐거움이 독한 연기로 폐를
채우는 쾌감보다 컸다.
그로 인해 내 몸과 주변에서 맴도는 쾌쾌한 담배 냄새, 매일 아침 우웩거리던 양치질,
제발좀 끊어라시던 어머님의 잔소리, 왠지 모를 피곤함과 퇴근 전 번아웃에서의 탈출은
물론 매월 몇만원의 부수입까지 생겼다.
그날 깜빡했던 담배준비와 무섭게 퍼부었던 소나기가 나의 폐를 복원시켜주는 사소한 계기
였다.
(2) 홍상수 사건
같이 일하는 25살 애교 많고 애쁘고(오타아님.라임임) 애인있고 애주가인 친구가 있었다.
물론 애는 없다. 일과 인생을 안주 삼아 가끔 술 한잔 기울이는 술친구이기도 했다.
사건이 일어난 밤 그날따라 흥이 오른 그 친구가 굳이 한잔 더하자며 떼 쓰는 바람에
그 친구가 좋아하는 양주 한 병과 회 한사라를 사 들고 그 친구의 오피스텔을 방문했다.
혹자는 나의 행동을 비난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의 신뢰는 서로 충분히 쌓은 상태였다.
동이 틀 때까지 이어진 술자리를 끝내고 일어나 집을 나서려는 순간, 난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격한 키스 세례의 희생자가 되고 있었다. 떼어내고 나니 또다시 달려들어
퍼붓는 2차 공격에 그야말로 내 뇌는 경직되고 애먼 심장은 눈치 없이 요동쳤으며
판단력조차 흐려졌다.
5분 같은 5초가 흘렀을까? 정신을 곧추세운 후 그 친구가 기억이나 할지 모르겠지만 내일
일자리에서 마주할 때 민망하지 않도록 가벼운 인사만 건네고 오피스텔을 나섰다.
다행히 기억을 못하는 것 같아 말없이 넘어갔지만 그 이후로는 오피스텔에 가는 일은 없었다.
아니 가지 않았다. 남녀7세 부동석이란 선조의 말씀에는 세대를 초월한다는 부연 설명까지
필요치 않았나 생각되었다. 그 친구가 블랙아웃이 되어 날 남친으로 착각했거니 하며 묻어둔
기분 나쁘지만은 않은 에피소드가 홍상수사건이다.
그날 이후 바뀌어버린 나의 삶의 태도에 대한 이유나 고마움은 영원히 전하지 못하겠지만
가끔 맛난 식사들로 보답을 하곤 한다.
첫댓글 거참 괴이하고도 짜릿한 두사건 이후로 담배와 다이어트를 성공하셨군요
특히 연애세포 회생 시켜주신 그분 덕에 다이어트까지 안전궤도에
도달하신거 축하드려요 ^^
감사합니다! 다이어트는 평생 하는 거라던데
식단은 몰라도 운동과 늦은밤 금식은 유지하려구요.
가끔 치팅데이를 가져도 무방할 만큼 궤도에 도달해
스트레스도 없어졌네요~
저는 이 글이 왜 쓰여졌는지
딱 보니까 알 것 같네요
김민희 같은 그녀의 격렬한 키스에도
반응하지 않는 본인의 몸을 보고 충격을 받으신거죠?ㅎㅎ
매우 바람직한 경험이십니다~
연애의 순기능이죠~ㅋ
그러한 통찰력은 따로 배울 수 있는 학원이 있는지요.
아니면 타고나신 건지.
뭘 훔쳐 먹다 걸린 아이 같아지네요 TT
크~흑! 이글을 놓치고 이제서야 보다니
단아한님의 댓글에 오~올~ 역쉬~
드라마틱한 스토리입니다.
두분이 점점 궁금해지는 1인
드라마틱이란 고급진 단어가 안어울리게 글에다가 밑바닥 다 드러내고 빤스까지 보이는데 벙개 나가서 멀쩡한척~ 하는 저도 참.. 제가 이해가 안가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