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雨)의 연가
김영애
장마가 시작되었다.
어느 날은 장대비가 쏟아지고 어떤 날은 궂은비가 하염없이 내리기도 하면서 뜨겁게
달구어졌던 한여름의 열기를 식혀 가고 있다.
사람들은 지루한 장마에 염증을 내고 있는 것 같지만 나는 내심 이 雨氣를 즐기고 있
는 중이다.
차를 몰고 가로수 길을 달려본다.
비를 맞아 더욱 푸르게 생기가 도는 나무들은 장마기간 내내 물기를 잔뜩 머금은 촉촉
한 내 마음을 보는 듯하다.
차창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저마다의 음표가 되어 흘러내린다.
비가 오는 날의 드라이브 길엔 오디오를 켜지 않아도 차안 가득히 음악이 흐른다. 쇼
팽의 즉흥 환상곡처럼 세차게 창을 두드리는가 하면 솔베이지의 노래처럼 조용히 눈물
로 흘러내리기도 한다.
이 길이 끝나는 곳 어디쯤에선가
누군가와 차를 마시면 좋겠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편안한 누군가와 마주 앉아서 뜨거운 커피에 프림 대신 빗물이
녹아들면 더욱 좋겠다.
비가 오는 날이면 기차표를 사서 더 멀리 떠나고 싶어진다.
비를 맞고 서있는 이정표를 하나 둘 지나 칠 때 차창에 어리는 그리운 얼굴들을 하나
씩 썩썩 닦아내며 이제는 웬만큼 지워내고 싶다.
고르지 못한 삶의 편린들처럼 내리는 빗줄기가 조용히 강에 내려 그 강물에 섞이며 바
다로, 바다로 흘러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섞이고 섞이며 함께 흘러가는 것이 삶이려니 하면서 돌아오고 싶다.
그러고 보면 나는 물(水)에 관련된 것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차를 마시며 찻잔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걸러내는 시간을 좋아하고 술에 관한한 자타
가 공인하는 애주가이다.
주종을 불허하고 누구와 자리를 하느냐에 따라 주량이 유동적인 나는 좋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마시는 술자리를 즐겨한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길엔 이미 마음이 먼저 취할 때가 종종 있기도 하다.
비가 오는 날의 사색은 가벼워지려는 나를 차분히 가라앉혀 주는 듯해서 좋다. 멈춘
듯 굽이굽이 흘러가는 강을 좋아하고 사시사철 바다를 보지 못해서 안달을 한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모두 물(水)과 관련이 되어 있다.
어떤 심리학자는 사람은 누구나 어머니 뱃속에 잉태되어 있을 때 양수 속에 있었기 때
문에 본능적으로 물(水)을 좋아하고 물(水)을 가까이 할수록 우뇌의 작용이 활발해 진
다고 한다.
사람의 우뇌는 창의력이나 상상력을 관장한다.
대학의 캠퍼스 안이나 큰 회사의 정문 입구에 연못을 조성하는 이유도 상상력이나 창
의력이 왕성해져서 학문에 대한 열정이나 생산성 향상을 촉진시키기 위한 조경학적인
설계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 오는 날을 좋아하고 그토록 바다를 그리워하는 걸까!
아직도 장마 비는 그치지 않고 내리고 있다
우산을 쓰고 걸어볼까!
내 삶의 작은 우산 속으로 누군가 뛰어 들어와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2005년 21집
첫댓글 비를 맞고 서있는 이정표를 하나 둘 지나 칠 때 차창에 어리는 그리운 얼굴들을 하나씩
썩썩 닦아내며 이제는 웬만큼 지워내고 싶다.
고르지 못한 삶의 편린들처럼 내리는 빗줄기가 조용히 강에 내려 그 강물에 섞이며 바
다로, 바다로 흘러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섞이고 섞이며 함께 흘러가는 것이 삶이려니 하면서 돌아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