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몽골여행
카페 가입하기
 
 
 
 

회원 알림

다음
 
  • 방문
    1. 산사내
    2. 청룡산
    3. win98
    4. 마타
    5. 삼만리
    1. 사공
    2. 버찌
    3. Suvdaa
    4. claudio
    5. 빅샘
  • 가입

회원 알림

다음
 
  • 방문
  • 가입
    1. 울라라
    2. 빵봉투
    3. 자오
    4. 참꽃
    5. 일견필살
    1. ddouner
    2. 잔달마
    3. 가보쟈고
    4. 녹띠
    5. 몽고오오오올
 
 

친구 카페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몽골 여행기 스크랩 몽골기행산문 19 - 에르디네뜨에는 마르크스와 레닌이 산다
몽랑 추천 0 조회 89 10.11.18 18:5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에르디네뜨에는 마르크스와 레닌이 산다



스나이퍼호텔 창을 연다. 다르항이 어둑어둑 밤을 허리 아래로 밀어내린다. 시가지 서쪽 기차역 가까이 호텔 쯤인 곳의 불빛만 붉게 부풀어 있다. 사람 기척이 드물다. 멀리 쉬레노르 산은 여명 속에 한껏 목을 웅크린 모습이다. 눈 덮인 서쪽 능선만 하얗다. 스나이퍼는 다르항 옛 시가지와 새 시가지 사이 언덕진 경계에 자리잡은 작은 호텔이다. 북쪽으로 옛 다르항에 들기도 가깝고 남쪽으로 새 다르항 길로 내려서기도 쉽다. 해가 온전히 뜨기를 기다렸다 여덟 시 무렵 호텔 문을 나선다. 영하 3도 남짓 바람이 없어 걷기 좋은 날씨다. 흰 면장갑을 낀다.




다르항 불상공원과 하라진히드




새 다르항으로 길을 잡으니 오른쪽 멀리 쉬레노르 묏줄기와 그 뒤로 어둡게 내려앉은 하늘이 보인다. 쉬레노르와 옛 다르항 사이로 하라골, 곧 하라 강이 남북으로 흐를 터이지만 길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철길을 건너서면 바로 다르항 옛 시가지도 가장자리다. 들은 햇살을 받아 발그스레 들떴다. 주유소를 지나 다르항 고개에 세워진 불상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두 세 사람이 바삐 지나친다.


불상공원은 지난 봄에 봤을 때와 달리 많은 손질이 이루어졌다. 관리인이 머무는 자그만 단칸집에는 음악 설비를 끝내 불경 염송까지 들려 준다. 불상 앞에 커다란 금강저를 깎아 세운 것도 재미 있다. 게다가 큰 불상 가까이 법륜통을 하나 더 만들었다. 일찍 잠을 접은 노인 둘이 법륜통을 굴리며 기도를 하고 있다. 콩알처럼 많은 비들기가 불상 언저리를 날았다 내린다. 남쪽으로 울랑바아타르 길은 시원하게 틔였다. 그 왼쪽 예술회관과 체육공원이 널찍하게 이어져 있어 아침 산책이나 가벼운 운동에는 그저 그만이겠다.


불상공원 맞은 쪽 산자락에는 마두금공원이 따로 세워져 있다. 몽골제국 800주년을 기려 몽골 모든 아이막에서 기념물을 만들어 떠들썩하게 세웠는데 다르항은 말을 탄 채 마두금을 켜는 이를 올려 세운 높다란 탑을 마련한 것이다. 흔히 징키스한이나 그와 관련한 기념물이 중심인데 착상이 새롭다. 혹 마두금 켜는 이가 징키스칸일까? 들리는 말로는 일본 쪽에서 돈을 밀어주어 세운다 했던가. 널찍하니 자리잡은 공원 안에 우뚝 돋은 조각상이 빼어나다. 몽골이 지닌 힘찬 선을 잘 살려 담은 작품이다.


불상공원과 마두금공원은 새 다르항과 옛 다르항을 가르는 길 두 쪽 언덕에 마주 서서 오래도록 도시 상징물이 될 것이다. 밤에는 그 둘레로 설치 조명을 밝혀 바깥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은 한눈에 그곳이 다르항임을 알 수 있도록 했다. 어젯밤 아마르바야스갈란트 절에서 돌아올 때 화려하게 다르항을 밝히고 있었던 그 불빛이다. 공원을 둘러 본 뒤 옛 다르항으로 가는 미크로버스에 오른다. 짧은 거리나 시간을 줄이기 위해 탄 차 안에는 학교 가는 학생들이 몇 보인다. 150투그릭. 새 다르항과 옛 다르항 사이가 200투그릭인데 가운데 쯤인 고개에서 탈 경우애는 값을 깎아주는 모양이다.


옛 다르항 시장을 지나 내린다. 길 아래 아파트 단지 안에 하라진히드가 있다. 두어 사람에게 물어가며 하라진 절에 닿는다. 아침 일찍 찾은 자그마한 절은 조용하다. 이미 1930년대 파괴된 곳이다. 1990년대 새로 지은 것인데 옛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큰 법당에 들어서니 스님 여남은 분이 아침 예불을 드리고 있다. 도시 절이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스님이 많다. 불상마다 시줏돈을 얹었다. 한 아주머니가 바삐 참배를 마친 뒤 법당을 나선다. 




에르디네뜨로 가는 길




아침은 어제 저녁과 마찬가지로 고기덥밥에다 홍차로 떼운다. 짐을 챙겨 호텔 문을 나서니 열 시다. 택시로 금새 새 다르항 아파트 단지 동쪽 끝 노민백화점에 닿았다. 그런데 맞은 쪽에 있어야 할 아이막박물관이 보이지 않는다. 지나는 사람에게 몇 차례 물어도 고개를 흔든다. 젊은 처녀가 지나기에 다시 물어보니 문을 닫았단다. 그래도 미심쩍어 하는 나를 박물관 자리로 이끈다. 4층으로 된 긴 건물 아래층을 사무실로 쓰는 곳이다. 그 자리가 아이막박물관이었다는 것이다. 새로 짓고 있거나 수리를 하고 있어 휴관을 한 모양이다. 그래도 아무런 표지가 없는 게 영 미덥지 않다. 한 아이막마다 박물관과 예술관을 하나씩 어김없이 세운 점이 사회주의 체제가 남긴 한 즐거운 제도 아니었던가. 지역박물관이 문을 닫았다면 무슨 표지라도 있어야 할 터인데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더 머물 수 없다. 다시 택시를 타고 새 다르항 서쪽 끝머리 정류장으로 간다. 울랑바아타르나 에르디네뜨, 또는 북쪽 수흐바아타르로 가는 미크로버스, 택시들이 손님을 기다리는 곳이다.


에르디네뜨에서 다르항까지 미크로버스 값은 한 사람마다 5000투그릭. 시각은 10시 30분. 그러나 곧 떠나리라 했던 차는 다시 다르항 동쪽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게르판자촌으로 들어간다. 타고 있는 할머니의 짐을 싣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한 번 울타리 안으로 들어간 할머니가 쉬 나오지 않는다. 짐을 죄 싸두지 않았던 모양인가. 이렇게 차가 늑장을 부리는 데에는 이미 익은 몸. 몽골 미크로버스는 손님이 타기로 하면 그 사람 집까지 가서 데려오기도 하고, 짐을 싣기 위해 다시 들렀다 가는 일이 흔하다. 그래서 미크로버스든 택시든 먼길 떠나는 차일수록 채비만도 한참 뜸을 들인다.


차에서 내려 골목 안을 기웃거리고 있자니, 미크로버스 기사가 말을 건다. 그는 뜻밖에 한국에서 3년 동안 일을 하고 몇 해 앞서 돌아온 사람이었다. 그러나 한국어 실력은 매우 모자라 나와 짧은 대화도 쉽지 않은 수준이다. 아마 산업연수생으로 가서 일하다 왔으리라. 한국에서 돈을 벌어 지금 몰고 있는 현대 미크로버스를 샀다고 자랑한다. 게다가 그는 다르항 노민백화점에 한국 화장품 상점까지 갖고 있다. 한국에서 일하고 돌아와 자리잡기에 성공한 전형적인 몽골 젊은이였다. 세 형제 가운데 막내인데 큰 형은 미국에, 둘째형 내외는 아직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 한다. 집안 모두 일찌감치 외국에 나가 일하는 용기를 냈던 셈이다.


할머니는 짐을 다 실은 뒤에도 며느리, 손자와 한참 배웅 인사를 나눈다. 차는 잘 닦인 아파트 공원을 달려 한 곳에 이른다. 거기에서도 아주머니의 짐을 싣는다. 기다리다 못해 기사가 두어 번 경적 소리를 올려 보내자 아주머니가 내려온다. 그리하다 정작 다르항을 떠난 시각은 11시 30분이었다.


미크로버스는 어제 달렸던 다르항과 에르디네뜨 사이 잘 닦인 길을 달린다. 어러헝 강가에  앉아 물고기를 팔던 이들도 어김없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강 둘레로는 지난 밤 눈이 끌어다 놓은 눈나무가 희다. 1시 바롱부론 마을, 100킬로미터 남짓되는 거리를 1시간 30분 달린 셈이다. 잠시 차를 세워두고 사람들은 아침겸 점심을 먹는다. 앞으로 1시간 남짓 더 가면 에르디네뜨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을 터라 나는 요기를 하지 않고 둘레를 둘러본다. 눈 내린 남쪽으로 높은 산이 하나 바롱부론 마을 너머로 훌쩍 발돋움을 하고 있다. 마을 둘레 넓은 경작지, 고랑 이랑을 밟으며 멀리서 말 탄 젊은이 셋이 달려 온다.


자르갈란트 솜만 지나면 에르디네뜨다. 풀을 뜯는 양떼에 낙타떼까지 보인다. 뜻밖이다. 북부인 셀렝게 지역도 낙타를 치는가 보다. 2시 40분에 에르디네뜨 버스정류장에 이른다. 2시간 10분 걸렸다. 에르디네뜨는 몽골에서 두 번째 큰 도시다. 그런 사실을 뻐기기라도 하듯 분위기부터 매우 활발하다. 눈이 두텁게 도시를 덮고 있다. 에르디네뜨 명물인 한데 구리광산이 왼쪽으로 길다. 하얗게 눈 덮인 그곳은 세계 10대 광산으로 알려진 곳이다. 러시아가 일찍 개발했으나 지금은 캐나다 회사에서 꾸린다. 에르디네뜨 구리광산에서 쓰는 전력만도 한때 몽골 전체 전력의 7할이었다 하니, 그 규모와 중요도를 금방 알겠다. 몽골은 자원의 보고. 에르디네뜨야말로 그 점을 몸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에르디네뜨는 따로 어르헝이라 일컫는 특별행정 지역으로 남아 있다. 돈이 잘 돌아가는 경제, 문화 중심지답게 시가지가 화려하다. 버스에서 내려 점심밥부터 챙긴다. 




마르크스와 레닌이 한 동리에 산다




에르디네뜨는 중심가가 동서로 벋은 도시다. 중앙 난방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관공서와 주요 상가가 앉아 있다. 그리고 그곳을 벗어난 서쪽과 북쪽으로 독립 난방을 하는 게르판자촌이 몸집을 불렸다. 그런 까닭에 전형적인 몽골 아이막 소재지의 도시공간 배치를 보여 준다. 둘레 중심 경관은 북쪽에 솟아 있는 낮은 산과 남동쪽 에르디네뜨 입구에 힘차게 벋어 있는 한데 구리광산의 드러난 머리일 것이다. 그 사이에 도심이 앉은 형상이다. 눈에 젖어 미끄러질 법도 하다. 조심조심 중심가를 걸어서 동쪽 택시승강장에 있는 아파트 단지로 간다. 거기 살고 있는 마르크스와 레닌을 만나기 위한 일이다.


버스정류장에서 1킬로미터 남짓 동쪽 거리 끝에 이르러자 길 건너 마르크스부터 눈에 든다. 널리 알려진 그의 사진을 본으로 삼은 커다란 모자이크 조상이다. 아파트겸 사무실로 쓰는 다층 복합건물 바깥 벽에 새긴 마르크스 조상은 에르디네뜨가 일찌감치 소련에 의해 만들어진 곳이라는 사실을 한 눈에 일깨워 준다. 사회주의 시절에 지은 몽골 아파트나 공공건물의 경우, 벽면을 뜻 있는 무늬로 꾸민 곳이 많은데 이곳에서는 마르크스와 레닌을 감으로 삼았다. 마르크스 조상을 새긴 아파트와 나란히 레닌 옆모습을 붙인 아파트가 서 있다. 마르크스와는 올린 솜씨가 다르다. 돋을새김 효과가 나도록 만들었다. 이 두 조상은 앞으로도 굳이 지울 필요가 없을 것이다. 고스란히 에르디네뜨가 변화하는 길과 함께 도시의 명물로 자리잡을 터. 에르디네뜨 사람들이야 아침 저녁으로 예사롭게 지나칠지 모르지만 멀리 보자면 도시가 지닌 한 시대의 가장 특징 있는 모습을 품고 있는 벽화가 아닌가.


다르항과 에르디네뜨는 둘 다 소련 영향을 유별나게 느낄 수 있는 도시다. 러시아 사회주의식 건축과 공간 배치를 실현하고자 했던 뜻이 고스란하다. 다르항은 신시가지 동서로 벋은 아파트 단지 사이로 넓찍한 광장겸, 공공 공원을 마련한 것이 인상적이다. 에르디네뜨에는 쏘련 사회주의의 핵심 인물 두 사람을 부조로 나란히 살렸다. 망치와 곡괭이가 표상하는 노동계급의 힘찬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구리광산의 한뎃머리와 마르크스, 레닌의 벽화가 사뭇 도시이미지를 뒷받침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활기찬 소비재와 자본주의 문화가 싱싱하게 살아 오르는 듯한 에르디네뜨에서 그 두 사람의 조상은 사람들 관심 밖에 있다. 비장한 낯빛으로 나란히 입을 다물고 있을 따름이다.




눈밭의 연인




나는 두 사람을 두고 시가지가 끝난 북동쪽 언덕으로 걸어 올라간다. 도심공원이다. 에르디네뜨의 도시 모습이나 눈 내린 구리광산의 바깥 모습을 좀더 자세히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야트막한 언덕 눈길에는 사람들 오간 흔적이 별로 없다. 언덕은 이어서 뒷산으로 차고 오른다. 그리고 언덕과 뒷산이 만나는 펑퍼짐한 허리 자리에 기념탑과 무덤, 어워가 나란히 산 꼭대기를 축으로 서 있다. 기념탑은 소련과 몽골 우호를 기원하는 뜻으로 세운 것. 탑 아래 앉음자리에 젊은 연인 둘이 껴안고 있다 나를 보곤 금방 고개를 돌린다. 추운 날씨여서 발갛게 익은 얼굴임에도 껴안은 자세를 흐뜨릴 생각이 없다. 저 둘의 마음은 어떨까. 더 풀기 어려울까 아니면 이미 풀린 뒤일까. 


탑을 지나 돌무덤 쪽으로 걷는다. 도심 가까이 있는 탓에 많이 허물어 내렸으나 흉노시대 돌무덤 하라기수르의 외형을 간직한 모습이다. 둘레에 다른 유구는 보이지 않는다. 돌무덤을 지나 다시 그 위에 있는 어워. 눈길을 따라 가며 바라 보는 돌 어워는 산 꼭대기를 향해 기도했을 숱한 사람들의 마음을 다잡아주기 좋은 터에 자리 잡았다. 어워며 산꼭대기가 그래서 더욱 성스럽게 여겨진다. 어워에 서서 멀리 구리광산 쪽을 건너다 본다. 하얀 눈 속에 길고 커다랗게 앉았다. 저 안으로 차며 사람들은 쉬임없이 광맥을 파들고 있을 것이다. 내가 선 산등성이와 구리광산 사이로 다르항 쪽 한길이 벋어 바쁘게 차들을 보내고 받아 들인다.


광산 오른쪽은 낮은 산등성이로 이어졌다. 그 한 꼭대기에 어워가 보인다. 에르디네뜨에서는 어워를 두 개 확인한 셈이다. 왼쪽으로 펼쳐진 도심 시가지, 그리고 북쪽 산밑으로 이어져 있는 게르판자촌이 넓다. 에르디네뜨 도심 풍광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아도 활발하다는 느낌을 준다. 긴밀하게 모여 앉은 건물 모습도 그렇지만 그 사이로 사람들이며 차들이 부지런하게 움직인다. 흰 눈발 위로 역광이 되돌려 주는 도시 서쪽 풍경은 흐릿하다. 볼강 쪽으로 나아가면서 게르판자촌이 낮게 이어져 있으리라. 시계를 들여다 보니 4시를 조금 넘은 시각이다. 볼강까지는 80킬로, 해가 떨어지기 전에 닿을 수 있을 것 같다.


서둘러 택시를 타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정류장과 나란히 붙어 있는 에르디네뜨 시장에는 아직 사람들이 번잡하다. 볼강으로 가는 미크로버스가 있으리라 했으나 생각과 달리 차편이 보이지 않는다. 내일 아침 떠날 예정인지 모롱을 거쳐 홉스걸로 가는 미크로버스만 한 대 보인다. 가까이 에르디네뜨 바깥 셀렝게 소지역 이저 곳으로 나가는 차들이 몇 대 서 있을 따름이다. 한 옆에 러시아제 짜리스 지프가 하나 보인다. 기사보다 안에 탄 젊은 여자가 나를 더 반가워한다. 볼강까지 지금 바로 가니 타라고 손짓이다. 그러나 지프 안에는 그녀와 나뿐이다. 앞으로 세 사람이 더 타야 떠날 수 있을 것이다. 느긋하게 손님이 찰 때까지 기다려 볼 요량이다. 혹 떠나는 시각이 너무 늦어지거나 떠나지 못할 경우에는 미리 찍어 두었던 호텔에 묵으면 될 일. 지프 안쪽과 위쪽에는 먼저 탄 그녀 것으로 보이는 짐이 여려 겹으로 실렸다.




에르디네뜨를 떠나다




지프에 앉자 앞자리에 앉아 있던 그녀는 내가 한국인임을 확인한 뒤, 재미 있는 제안을 한다. 에르디네뜨에서 볼강까지 20000투그릭에 가는 택시인데 자신이 앞에 한 자리 잡았으니 5000투그릭을 내고 세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뒷 좌석에 내가 앉았으니 세 사람 값인 15000 투그릭을 물어서 둘이 바로 볼강으로 떠나자는 것이다. 그녀가 10000투그릭, 내가 10000투그릭을 물어서 떠나자고 말했더니 그녀도 웃으며 도리질을 친다. 계산법이 이상하지만 억지는 아닌 셈이다. 분임택시를 탈 때, 손님을 한참이나 기다려도 오지 않을 경우 가끔 나머지 사람의 택시비를 부담해서라도 떠나고 싶었던 때가 어디 한 두 번이었나. 혼자 택시를 빌리는 경우가 아니라면 언제 다 찰지 모를 손님을 마냥 기다리는 불편을 덜고 여행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 한 차례도 그리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몽골 차들이 어떻게 오가는지 몽골식으로 겪어볼 수 있는 기회를 버릴 수 없었다. 게다가 몽골 기사나 다른 손들에게 바람직스럽지 못한 한국인 여행객의 기억까지 남길 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 경우에는 다르다. 먼저 그녀가 제안을 한 데다 매우 절실한 낯빛이다. 그녀는 짐도 많다. 에르디네뜨 시장에서 사들인 요구르트며 잡화다. 한눈에 장사하는 사람이다. 오늘 안으로 틀림없이 볼강에 들어가야 하렸다. 나는 미기적거리다 짐짓 못 이기는 척하고 그녀의 제안을 따르되, 대신 자리를 바꾸기로 했다. 내가 앞자리에 타고 그녀는 짐이 실린 뒷자리로 옮긴다. 시계를 보니 4시 25분. 이제 빠르면 두 시간을 넘기지 않아 80킬로미터 거리 바깥에 숨어 있는 도시 볼강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잘 알려져 있는 다르항, 에르디네뜨와 달리 가보기 쉽지 않은 곳. 이름난 관광지도 없어 기껏해야 더 북쪽 헙스걸 호수를 둘러보고 가는 사람들이 잰 걸음으로 지나치면서 기름이나 음료수를 사기 위해 들린다는 자그마한 도시 아닌가. 그래서 더욱 보고 싶은 볼강을 향해 지프는 달릴 것이다. 그러나 지역을 오가는 거의 모든 택시들이 그렇듯 기름을 채우고, 볼강에 가야 할 이가 한 사람 더 탈 때까지 걸음을 늦춘다. 그리고 정작 에르디네뜨를 떠난 시각은 5시. 눈이 녹았다 얼었다 되녹는 검고 질척한 흙길을 따라 지프는 마냥 서쪽으로 움찔움찔 턱을 쳐들기 시작한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