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렸다.
코로나 시대에 회사에서 잘린 사람이 어디 한 둘 이겠냐만은 사람은 역시 남의 큰 고통보다 문지방에 찧인 내 발가락이 더 아픈 법이다. 아팠다.
<여행 가이드 사진>
나는 여행 가이드이다. 유럽에서 거주를 하고 일을 하려면 비자가 필요하여 비자를 갱신하러 한국에 왔다. 비자도 취득하고 대학원도 졸업했다. 이때까지는 유럽에서의 아주 낭만적인 미래가 펼쳐질 것 같았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졌고 여행사들은 문을 닫았다. 계획했던 미래가 우르르 무너져내렸다.
시간이 지날 수록 마음 속에 우울감이 몰려왔다. 이건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이를 ‘코로나 블루(covid-blue)’ 라고 불렀다.
바로 그 때, 제주도가 기억이 났다. 무채색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 그렇게 푸른 섬이 기억이 났다. 그리고 한 동안 제주도에서 보았었던 하염없이 맑은 바다가 기억이 났다. 그리웠고 그리웠다. 끊임 없이 제주도가 머리 속에 맴돌았다. 얼룩진 내 마음을 파도가 쓸어내려주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일까. 푸른 바다를 보면서 우울감이 떠나갔다.
상실감 때문에 한 동안 넋을 놓고 살다가 제주도로 도망을 쳤다. 집에서 눈치를 주진 않았지만, 내 스스로가 눈치가 보였다. 혼자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누군가에게 방해 받지 않는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있어야 무언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했다.
가족들에게는 유튜버를 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제주도로 도망쳤다. 집에 있는 참치캔과 라면, 그리고 스팸을 챙겼다.
제주도 동남쪽에 있는 표선에 한 달 살기 집을 구했다. 제주의 첫 일정은 여행이었다. 친구와 함께 렌트카를 빌려 제주도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이 날은 안개가 자욱한 날이었다. 성 이시돌 목장에 도착하여 앞을 걸어가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저 멀리 소들이 우두커니 서있을 뿐이었다. 회색의 안개가 자욱하게 껴있는 모습이 마치 내 현실 같았다. 나는 친구와 무작정 걸었다. 그렇게 나의 제주 생활이 시작됐다.
며칠 간의 여행을 마치고 친구는 응원과 함께 햇반을 몇개 사주었고, 비행기를 타고 다시 육지로 올라갔다. 그렇게 나는 자취방에 혼자 남게 되었다.
그런데 이 시기 즈음에 표선에는 고열이 나는 상태로 타이레놀을 먹고 참으며 여행을 하다가 코로나 양성반응이 나왔던 여행객이 한참 이슈가 되었다. 혹시라도 돌아다니다가 코로나에 걸릴까 무서웠다. 나는 그렇게 집 안에 갇혔다. 처음 하는 자취였기에 자유롭고 여유로운 시간들이 좋았다. 한편으로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수능이 한 달 남았는데 PC방에 간 수험생이 이런 느낌일까. 제주도에 와서 영상 공장장이 되겠다고 마음 먹었었는데 마음만 먹고 하나도 하질 않았다.
오래간만에 바다를 보러 나왔다. 바다는 언제나 그랬듯이 푸르렀다. 수평선을 멍하니 보다보니 어느새 내 발목까지 물이 찼다. 정작 멀리만 보고 내 자신을 보지 않았다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으로 혼자 있을 시간을 얻은 기회를 이렇게 망쳐버릴 수 없었다. 엉망인 나에게 이 귀한 마지막 자리를 빼앗기기 싫었다.
2주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나는 오랜만에 집에서 나와 밖을 걸었다. 혹시 몰라서 캄캄한 새벽에 걸었다. 걷다보니 눈 앞에는 바다가 나타났다. 표선의 바다는 밀물과 썰물의 폭이 굉장히 넓다. 때문에 썰물 때의 모래사장의 면적이 굉장히 넓다. 간조와 만조의 시간을 체크하고 모래사장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그리고 바다를 마주했다. 돌아온 길이 멀어서였을까. 밀물이 들어올 시간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검은 밤바다의 경계는 무척이나 무섭게 느껴졌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은 무척이나 본능적인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겁을 먹고 뒷걸음칠하다가 넘어졌다. 그러자 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한 달이 거의 다 되어가고 있을 때, 나는 집 밖으로 나와서 푸른 바다를 보았다. 말 없이 바다를 우두커니 보고 있었다. 바다가 나를 위로해주었다. 바다는 내가 말해주니 다 들어주었다. 나는 그런 바다가 좋았다. 그런데 어머니는 내가 무언가를 이야기 하지 않아도 모두 아셨다. 어머니가 바다보다 크다. 내게 가끔 오는 걱정 섞인 안부 연락에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닷가를 따라 걷는데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내가 떠나고 싶었던 것처럼 여행에 대한 사람들의 수요는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 여행은 본능에 가까운 욕망이기 때문이다.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고싶은 마음이 몰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주도를 정착하기로 마음 먹었던 이유였다.
그렇다면 제주도에서 무엇을 해야할까? 처음엔 유튜브 영상을 몇 개 찍어보았다. 그런데 이걸 누가 볼까 싶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아직까지 간직만 하고 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니 제주도가 궁금해졌다. 그렇게 제주도에 관련된 책을 몇 권 빌려와 공부하다보니 유럽에서 하던 가이드를 제주도에서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에서 했던 것처럼 가이드 투어를 만들어보자.”
누가 제주도까지 와서 제주도 역사, 문화, 예술 이야기를 듣게냐고 하는 피드백이 많았다. 없는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요즘 그들에게서는 역시 잘 될 줄 알았다는 연락이 온다. 사람의 마음은 참 알쏭달쏭이다.
여행 코스를 짜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면 그럴 수록 제주도가 점점 더 좋아졌다. 그렇게 제주도에서의 가이드 생활이 시작됐다. 가이드가 되기 위해서는 제주도에서의 경험이 많이 필요했다. 많이 먹고, 많이 보고, 많이 느끼고, 많이 공부해야했다. 여행 가이드가 살아가는 제주도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