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5월을 느끼는 여행특집
목포 신항, 광주_1박 2일, 삼헌, 아시아문화경제신문 2018 신년호 기고
http://www.asiac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300
고유의 형상
삼헌三軒 금태동_차인, 다도사랑방‘보이객잔’ 팽주
Ⅰ
따뚜 tattoo
낯선 고장 원주의 한적한 시골마을 부론면 정산리 외딴 집으로 이사 온 후 원주는 새벽의 어둠 속 짙은 안개가 서서히 벗겨지듯 시야에 들어왔다. 원주로 이사를 왔으니 외지에서 나를 찾아온 사람에게 원주를 이야기해야 했는데 아는 것이 없다. 내 의식 속 원주는 어떠한 지역인가를 정의해 보려하지만 뚜렷하지 않다. 군사도시인가? 교통도시? 강원도의 중심인가? 이런 저런 생각을 떠올려도 뚜렷한 무엇이 잡히지 않는다. 그나마 치악산, 혁신도시, 의료기 산업도시... 이런 정도가 연상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치악’이 들어가는 관용어가 많음을 알고 원주는 치악산의 정기를 먹고 사는 도시로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 치악산이 가팔라서 정상을 오르려면 치를 떨고 악을 써야 오를 수 있다는 지인의 말에 그럴듯하다는 공감을 표하기도 했다. 강릉 원주의 머리글자를 따서 강원도라 한 것이니 아무튼 원주는 치악산과 섬강 남한강을 낀 유서 깊은 오래된 도시로 일단 밑그림을 그린다. 내가 정의하고 싶은 유서 깊음에 상반되는 정서적 충돌용어가 ‘댄스페스티벌’ 이었고, ‘따뚜 공연장’이다. 세종 영릉이 있고, 명성황후 생가가 있는 인근 여주시 마냥 훈민정음 일색이기를 바라는 마음은 아니더라도 전통이 살아 숨 쉴 것 같은 원주가 혁신 쪽으로 비중을 심하게 가져간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면서 몸에 맞지 않는 끼인 옷을 입은 듯이 마음 한쪽이 불편하다. 따뚜가 궁금하다. 인터넷에 ‘따뚜의 뜻’을 검색하였다.
「‘타투’라는 말은 17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네덜란드 등 베네룩스 국가에서 선술집 주인(innkeeper)들이 외치는 소리에서 유래하였다. 문 닫을 시간이 되면 지방부대의 고적대가 시가를 행진하였는데, 행진음악은 숙소로 돌아갈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고적대의 음악이 울리면 술집 주인은 술병 마개를 닫으세요! ('Doe den tap toe')하고 외쳤다. 아마도 당시 네덜란드 등에서 술집의 영업시간 제한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시계가 흔치 않던 시대였으므로 지방의 고적대가 돌아다니며 파이프와 드럼으로 영업시간이 끝났음을 알렸고, 술집 주인은 여기에 장단을 맞춰 'Doe den tap toe' 하고 외쳤던 것이다. 'tap toe'에서 유래한 'tattoo'는 군악대의 행진의식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즉, 과거에는 군 병력 통제를 위해 귀영을 알리는 북소리였고, 이후 군사 목적의 점호나 의식을 알리는 소리였다가 현재는 군사의식의 일부 또는 연극의 일부로 음악·노래·춤·희극 등을 포함하는 화려한 쇼 의식 축제를 말한다.」 (출처 ; 네이버블로그 ‘다존’ 게시 글 인용) 이 특별한 용어를 공연장 명칭으로 도입하고 승인한 분에게 경의를 표한다. “나팔을 불 때 나는 ‘따따따’와 ‘뚜뚜뚜’의 머리글자 의성어를 사용하여 따뚜 일 것이다.”라는 게시 글을 접하면서 그도 그럴 법 하다며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보이차다도사랑방 「보이객잔」을 만들어 원주 시내로 나온 지 육 개월 만에 처음으로 따뚜공연장 주차장을 찾았다. 따뚜공연장에서 무슨 공연을 얼마나 하는지 잘 모른다. 나름 문학과 문화에 관심이 많은 일인이라 자부하지만 그간 가깝게 지내는 누구도 따뚜공연장에 무슨 공연이 있으니 함께 가자고 낯선 길을 안내하는 분이 없었다. 다만 무슨 행사가 있을 때 따뚜공연장 주차장에서 버스가 출발 한다는 안내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접해 왔고, <광주의 오월 느끼다> 제하의 역사체험 프로그램 초대 또한 따뚜공연장 주차장에서 출발 하였기에 찾은 것이다. 집을 나설 때 다소 추운 겨울날씨임을 느꼈지만 막상 차창에는 흐느적거리며 내리는 겨울비가 알알이 흩어져 내린다.
Ⅱ
목포행
좌빨!
목포신항의 세월호 답사, 광주로 이동, 국립 5 ·18민주묘역 참배, 전남대학교 및 오월길 사적지, 전남도청 답사 등의 내용이 적힌 이틀간의 여행에 내가 참가하기로 한 것은 참가비 만원이라는 획기적 문구가 눈에 들어온 것이 가장 큰 동기가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웬일인가요?”
“뭐가요?”
전화로 친구가 ‘웬일?’이냐고 물었을 때 ‘뭣이?’라고 반응했지만 내 입가의 웃음근笑筋 속으로 가느다란 실지렁이 한 마리가 빠르게 꿈틀거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평소에 그 친구를 서슴없이 ‘좌빨’이라 부른다. 나와 같은 보이차다도를 하는 그 친구와 나름의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호칭이었지만 성향이 매우 다름을 대변한다. 지난 사월에 귀래면 운남리 펜션에서 주변의 다양한 인사를 초치하여 일명 다·락·시茶樂詩 행사를 개최하는데 친구와 다툼이 있었다. 그에게 진행을 부탁했고, 흔쾌하게 수용하였지만 국민의례로 국기에 대한 경례를 순서에 넣자는 내 의견과 그런 절차는 생략하지는 의견충돌이었다. 결국 내 의지대로 하기로 했다. 속속들이 찻자리 손님들이 도착하였고, 큰 주전자에는 뜨거운 김이 연기처럼 피어오르자 행사는 시작되었다. 친구가 마이크를 잡았다.
“국민의례가 있겠습니다. 단상의 태극기를 향해 모두 일어나 주십시오!”까지는 좋았다. 다음 순간 나는 아뜩했다. 내 치렁거리는 자연인의 머리가 하늘을 향해 뻗쳐오르며 고개를 숙이고 감은 눈 속으로 봄날 아지랑이가 현란하게 몸 속 기운을 앗아갔다.
“국기에 대한 묵념!”
이 의도된 구호에 나는 인내하였지만 분노하며 “이 좌빨 새끼야!”를 되뇌었다. 행인지 불행인지 “바로, 착석해 주십시오.”의 짧은 시간이 지나는 동안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친구는 보수가 아닌 수구가 뿌리 깊은 영남 북부도시에 살면서 제 돈을 들여 광화문 촛불시위 현장에 버스를 인솔하는 몇 차례의 여정을 통하여 그의 행위들이 건전한 민주시민사회의 의식이라는 생각에 닿기도 했고,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새로운 각도로 시선을 이끌어 주기도 했다. 그는 수구 꼴통 같은 내 의식에 입을 다물곤 했지만 아직은 대한민국의 이념과 노선이 다른 구성원 중에 가장 내밀한 친분을 과시하지 않나 싶다. 그런 친구의 눈에 내가 떠나는 세월호며, 5 ·18민주항쟁 관련답사 여행은 경이로운 일임에 분명하였다.
“정권이 바뀌었짜너~”
후보시절의 문재인을 북한과 내통하는 간첩처럼 묘사하던 보수언론이 당선자 확정이 되기도 전에 용비어천가를 부르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인간이 지닌 오래된 처세속성 하나를 뱉어낸다.
강원도 원주 따뚜공연장 주차장에서 목포 신항만까지는 약 400킬로미터. 대륙에서는 근교라 할 만한 거리일 수 있어도 우리에게는 먼 거리다. 9시 10분에 출발한 버스가 15시 10분에 도착하였으니 중간에 휴게소 두 곳에서 쉬거나 식사를 한 시간을 더해 여섯 시간이 걸렸다. 내겐 익숙하지 않은 길이지만 차창 밖을 스치는 조국의 산하는 교과서에서 배운 그대로의 형상을 평화롭게 유지하고 있어 기우에 불과한 안도를 하게 한다. 아침부터 오락가락 하던 겨울비가 그치니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산천경계山川境界가 더더욱 아름답다.
Ⅲ
자는가 누웠는가
순창을 지나가는데 먼 산과 들에 하얀 눈雪이 덮였다. 눈目이 설다. 강원도에서 남도로 오는 사람에게는 스무 살 남짓 해녀의 검은 물옷에 달린 안경을 위로 들추며 배시시 미소 짓듯 따사로운 봄날의 햇살이 반겨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목포에도 제주에도 눈이 올 수 있다. 한라산에 흰 눈이 덮인 사진을 보는 것이 별로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초행길 순창과 목포에 내린 눈이 유난히 차갑게 들어온다. 목포대교 밑으로 일렁이는 바다는 무심하다. 바다는 그저 지구를 형성하는 70퍼센트를 차지하는 물과 연계하여 수평선을 이루어 밀리고 섞이며, 그들의 불규칙한 형상을 토대로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신항만에 가지런하게 정돈된 인공 구조물과 건물들, 하얀 색으로 깨끗하게 칠한 연락선이며 바지선들이 평화롭다. 미끄러지듯이 버스는 정해진 행로를 따라 종착지를 정확하게 찾아 들어가고 있다. 버스 안의 사람들이 우르르 우측창문 쪽으로 몰려가 ‘우~’하는 작은 신음을 토한다. 시야에 들어 온 것은 작은 산만큼이나 큰 상처투성이 괴물 같은 배가 옆으로 누워 고통스런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그 모습을 한번 보고 그 고통을 조금 이해하고 싶어 우리는 천릿길을 달려 왔다. 버스에 탄 어른이나 아이들 누구하나 말이 없다. 텔레비전 화면으로 생중계와 뉴스를 통하여 수없이 보아 왔던 그림이지만 일순 호흡을 정지시키고 몸속의 순환을 억제하여 진공상태로 빠진 듯이 먹먹하다.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었는다/홍안紅顔은 어디두고 백골白骨만 묻혔는다/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형상을 띠는 사물 어떠한 것도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 때 아름답다. 사람도 자연도 우주의 모습도 그러하다. 사람의 눈에는 질서정연한 모든 것에 깊이 익숙하다 그 질서가 무너지면 보는 것이 불편하고 느낌이 불안하고, 호흡이 불안정 해지는 법이다. 우리는 사물이 지닌 원래의 형상을 웬만큼 기억하고 있다. 그 형상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곧 사람 사는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일이다. 입구의 철망에 매어달린 노란리본에 쓰여 진 수많은 기원들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신분증을 맡기고 받은 출입증을 목에 걸고 선체를 향해 걸어가는데 부두 전체가 기울어지더니 한쪽으로 풍랑이 일어 사람들이 우왕좌왕 하고 넘어지기도 한다. 나도 균형을 잡지 못해 겨우 몸을 지탱하여 현기증을 이기고자 울타리 철망을 잡고 정신을 가다듬는다. 어지러이 흩어지는 부산물들이 흩날리는 공중에서 잡음보다 투박한 방송음이 들려온다.
“승객 여러분, 우왕좌왕 하지 마시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시오.”
버스에 다시 올라 신항을 벗어나기 시작한 시각이 15시 40분이니 겨우 30분을 그곳에 머물렀다. 60년 가까운 세월을 살면서 처음 찾은 목포를 이렇게 벗어나는 것이 못내 아쉽지만 인솔자의 말대로 우리는 여행을 온 것이 아니라 아픈 역사의 현장을 체험하는 것이니 다른 일정을 꿈꾸는 것은 아름답지 못한 일탈이리라.
Ⅳ
택시운전사
몰입이 만들어내는 신기루현상일까? 이정표에 ‘광주’가 나오면서 곳곳에 바리게이트가 쳐 있고 완전무장을 한 군인들이 날선 대검을 장착한 총을 들고 차를 세울 것만 같다. 37년 전의 일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빛 한줄기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암막커튼을 벗어나지 못한 진실을 덮고자 하는 무리와 이를 깨치자 하는 양심 간의 갈등이 첨예하다. 광주로 가는 길목에서 헌병을 만나지 않았지만 망월동 묘역을 찾는 버스운전사는 시장통 소롯길을 넘나들다가 기어이 참배를 할 수 없는 시각에 도착하여서는 휑한 주차장을 돌아 나오고 말았다. 묘역을 참배 할 시간을 주지 않은 주체가 계엄군이 아니고, 진실을 덮고자 하는 무리의 추종세력도 아니며, 촛불을 거부하던 반대편 사람들이 아닌 것은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굳이 책임소재를 따지자면 퇴근길의 도심교통 정체가 주범이었고, 뚫린 길을 제대로 안내하지 못한 내비게이션이 유죄다. 기어이 지정한 숙소로 돌아가야 했지만 슬프지 않다. 나름 의미 있었던 흔들리는 시간 30분의 목포항을 제외한 무려 9시간의 여정이 버스 안이었다. 영암이 고향인 Y형의 일상 속에서 재미있던 통화가 되살아난다.
“어디세요?”
“차 안이야!”
두어 달 전, 홀로 사무실에서 빈둥거리며 인터넷을 보는데 어느 게시판에 ‘택시운전사 영화 보실 분_원주, OO시네마’의 글이 올라 왔다. 연락을 했더니 본인이 사정이 생겨서 가까이 계신 분이 관람하여 사표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올렸다면서 오히려 내게 감사해 한다. 점심시간이 가까워 허기가 왔지만 불과 30분밖에 남지 않은 예약시간을 맞추기 위해 급히 차를 몰고 영화관으로 갔다. 천만관객을 동원했다는 기사를 보았는데 의외로 객석은 한산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가난하게 산다는 것이 자본주의 체재 안에서는 수치일까. 나의 여행도 영화 관람도 우연한 기회에 마주하는 무료탑승이다.
5 ·18기념사업회에서 운영하는 기념관숙소에서 여장을 풀고 제공하는 식사를 했다. 숙소로비에 둘러앉아 각자의 여행담론을 나눈 후에 북을 들고 온 소리꾼 C형의 신명나는 한의 창가는 우리를 몰입의 경지로 크게 이끌었다. 늦은 시각 깔끔한 양복차림으로 숙소를 찾은 이기봉 기념재단 사무처장이 바쁜 일정 때문에 지금에야 찾아왔다는 정중한 인사를 받고 예향 광주의 범절에 대하여 각인하는 계기를 삼았다. 이튿날, 서둘러 일정대로 움직인 곳이 전남대학교다. 이날도 비가 내렸다. 슬픈 역사의 현장을 찾은 여객에게 비는 의미 있는 장식이며, 가장 적절한 소품이다. 굳이 울지 않아도 가슴을 적시고 눈가에 이슬을 머금게 하는 강력한 도우미다. 이 평화로운 대학에서 고지전高地戰을 연상케 하는 총격전이 있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다만, 끝이 보이지 않는 흑백사진이 그것을 증명해 보인다. 도청에서 만난 힌터펜츠는 영화의 잔상이 크게 남아 있어 거부감 없이 다가왔다. 광장 시계탑 앞에서 일행은 <님을 위한 행진곡>을 힘차게 부른 후에 금남로 5 ·18민주화운동기록관을 찾았다. 무료로 배포하는 탁자 위의 유인물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서재에 꽂힌 관련 서적을 내 마음대로 한권씩 뽑아 들었더니 그곳을 지키는 봉사 요원이 제지를 한다.
“그 책들은 나누어 드리는 것이 아니에요.”
“그럼, 살께요!”
“파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 훔쳐 갈께요~”
“(웃음)그러셔요.”
영화, 여행, 도서...... 나는 욕심나는 모든 문화상품을 구걸하는 도시빈민인가 보다.
Ⅴ
용서, 화해
배우 전도연이 주연한 영화 ‘밀양’에서 아들을 유괴하여 살해한 범인을 면회하러 간 이유는 용서하기 위해서였다. 철창 안에 있는 범인은 매우 온화한 표정으로 “이미 나는 주님을 믿고 모든 것을 용서 받았다.” 며 고마워했다. 돌아온 그녀는 격분했다. 아들이, 내가 너를 용서하기도 전에 누가 누구를 용서한단 말인가.
목포항에 옆으로 누운 세월호 앞 게시판에는 수학여행을 가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한 학생들의 단체사진이 생생한 모습으로 웃고 있다. 생명 하나의 가치는 수치로 가늠할 수 없다. 100조원을 준다 한들 아들의 목숨을 담보할 부모가 있겠는가? 우리 사회의 구난체계가 어떤 걸림돌이 있어 그들을 차디찬 수면 아래로 내려가기를 기다렸는지 나는 이해 할 수 없다. 살아 있는 사람의 어떤 욕망 때문에 그리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하기 어렵다. 그럴 리 없을 것이다. 광주의 슬픈 역사에 대해 돌아다 본 짧은 시간동안 나는 무슨 진실을 볼 수 있었을까. 그냥 아리고 아픈, 가슴 먹먹한 기억을 더듬었을 뿐이다. 절대 권력을 꿈꾸는 소수의 군인에게 짓밟힌 그날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에게 다시는 이러한 역사가 되풀이 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
“그들과 그들의 정권을 승계하는 정부는 그렇다 치고 김대중 정부는 왜 그냥 지나갔을까요?”
“정치 보복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고, 화해를 선택하면서 그들을 석방했습니다.”
역사의 현장을 여고생으로 지켜보았다는 해설 자원봉사자에게 던진 우문에 대한 현답이다. 고개를 끄덕였지만 화해와 용서보다 진상규명이 우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끝내 망월동 묘역을 참배하지 못하고 돌아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시간에 쫒기는 일정 때문이다. 조금의 아쉬운 여지를 남겨 두어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위안을 삼는다. 주마간산走馬看山이 따로 없다. 그렇다고 며칠 동안 머물면서 논문을 쓸 의지도 시간도 허락하지 않는다. 나는 가난한 보수 우익이다. 변화가 싫은 기성세대다. 끓어오르는 욕망이 있어야 부자로 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물질적 풍요가 싫지는 않지만 그것을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 심신의 부요를 꿈꾼다. 나는 중산층임을 자부하고 있고 중산층이란 어휘에는 수식어를 요구하고 있다. 문화적 지식중산층이다. 멋지지 아니한가. 여행을 주선해준 관계자 분께 감사를 표한다. 이틀 동안 여행을 함께 한 분들과 어린 학생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무엇보다 모든 경비를 부담해 준 5 ·18기념재단 사무처에 큰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