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11일 수요일 오전 10시, 서울숲공원에서 글두레 가을소풍과 더불어 정기모임을 가졌습니다.
아직 단풍이 들긴 이른 시간이었지만 온통 초록이 넘쳐나는 숲속에서 다함께 웃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 신혜진님의 깜짝 방문에 더욱 기뻤답니다.
10월의 시는 김봄희 시인의 동시 <세상에서 가장 큰 우산을 써 본 날>를 감상하였는데 동시가 주는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답니다. 11월의 추천도서는 류량청의 <한 사람의 마을> 입니다.
10월의 책 <리흐테르 - 회고담과 음악수첩>으로 토론의 주제를 정해 토론하기 보다는 리흐테르의 음악적인 삶에 대해 서로의 감상을 자유롭게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번에는 독서소감의 정리를 생략하고 회원님의 독서후기로 대체하겠습니다.
##### 독서후기
------러시아하면 시베리아의 스산한 풍경과 함께 러시아의 대문호들이 연이어 떠오른다. 러시아는 혹독한 추위로 사람들의 바깥 활동이 제한된 탓에 문학과 예술이 발달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리흐테르는 이번 책을 통해 처음 알게된 러시아의 피아니스트다. 이전에 재밌게 본 드라마 '밀회'에서 리히테르가 언급되었다지만 시간과 함께 내 기억에서 사라진 듯 하다.
책을 읽으면서 음악 기행을 하듯 책에서 언급되는 음악들을 하나하나 찾아보는 즐거움에 빠졌었다. 책만 읽을때는 책이 평면적으로 다가와서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지만 책에 음악을 덧입히니 비로소 책의 내용이 입체적으로 완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책을 읽고 난 후에 유튜브에서 다큐멘터리 '리히테르 수수께끼'를 찾아 보았다. 리흐테르의 연주를 짧게나마 접할 수 있어서 참으로 좋았다. 다큐멘터리의 도입부에서는 슈베르트의 소나타 음악이 흐르며 잔잔하고 평화로운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리히테르는 열여섯에 투르게네프의 단편소설에서 나올법한 세묘노프 8자매의 집에서 슈만의 협주곡을 성공적으로 연주하고 피아노스트의 꿈을 가지게 된다. 그에게 스승은 아버지, 네이가우스, 바그너라고 했다. 리히테르는 음악원 스승인 네이가우스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그처럼 많은 매력을 지닌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책은 프로코피에프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그 중 리히테르가 프로코피에프의 5번 협주곡을 성공적으로 연주했을 때, 프로코피에프는 리히테르에게 청중들이 앵콜로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해 달라고 박수를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때 프로코피에프의 유머감각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리히테르는 유디나를 굉장한 인물이라고 언급했지만 아쉬운 점은 그녀가 악보대로 연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연주자로서의 철학이 있었는데 연주란 하나의 거울이라는 점이다. 즉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은 자신의 개성으로 음악을 오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연주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했다. 유디나는 리히테르가 라흐마니노프가 딱 어울리는 피아니스트라고 폄하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리히테르는 유디나의 장례식에서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했다.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지 정말로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말미에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이 장렬하게 흘러나왔는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이라 벅차오르는 감정을 한껏 만끽했다.
리히테르는 소련에서 최초로 슈베르트의 소나타를 연주한 피아니스트다. 처음에 사람들은 그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했다. 그는 주위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철학 즉 '나는 청중에 아무 관심이 없다'며 오직 자신의 음악을 한 점, 지조있는 예술가의 기질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가족사를 언급한 부분은 애잔했다. 아버지는 독일군이 오데사를 침공하기 전인 1941년에 소비에트 사람들에게 총살당했다. 가족의 비극을 읽으면서 가슴이 저리고 답답하고 아팠다. 리히테르는 그 세월들을 어떻게 감내하고 살았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리히테르를 잘 모를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그가 스탈린의 장례식에서 피아노를 친 것만 봐도 그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소련에서는 낭만주의의 전통으로 바흐를 별로 연주하지 않지만 리히테르는 스탈린의 장례식장에서 바흐를 연주하였다. 그는 자기 색깔이 확실한 사람이었고 그러한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리히테르와 함께하면서 수많은 클래식 음악을 접하게 되었다. 예술과 함께하면 무미건조한 삶이 색채를 입고 조금은 덜 쓸쓸하고 더 아름다워지는 듯 하다. <쿠키별님>
--------가끔 라디오에서 그의 연주를 듣긴 했지만, 무심히 넘기고 작곡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곤 했는데...독일계 러시아 출신에, 전쟁과 함께 연주자로서의 길을 걸었던 리흐테르. 직전에 <전쟁과 가족>을 읽어서인지 비극적인 가족사를 넘어 전쟁의 시대가 남다르게 와닿았다.
그럼에도 기라성 같은 음악가들이 연신 탄생하고, 끊임없이 작품을 발표하고, 심지어 참호에서, 때로는 폭탄이 터지는 중에 연주를 하고, 청중들이 연주회를 즐기는 장면들은, 참으로 놀라웠다.
연주자란 무엇인가? 자신의 개성을 앞세우는 대부분 연주자들과 달리, 리흐테르는 작곡가의 의도대로 연주해야 하는, 그래서 정확하고 세심하게 악보를 읽어야 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하지만 리흐테르의 개성이 너무 강해서 한 음만 들어도 그의 연주라는 것을 알 수 있다니. 악보 원칙주의자임에도, 뜻하지 않는 것, 예상 못한 것,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연주를 원했다니.
어쩌면 어릴 때부터 정규교육을 받지 않고 즐기며 연주했기에, 음악의 본질에 더 다가갈 수 있었던 게 아닐지. 연주자의 역할에 대해 자신만의 방식을 추구할 수 했던 게 아닐지.
책을 읽어가면서 음악에 대한 그의 애정이 얼마나 큰 지, 작품이 지닌 보석을 청중에게 제대로 전달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청중의 반응에 상관없이 자신만의 잣대를 끊임없이 들이대는 게 얼마나 외롭고 힘든 일인지, 가슴이 흔들렸다. 만성적인 우울증에 시달리곤 했다니, 연주에 대한 완벽주의와 엄격함이 어땠을 지도.
그래서 오랜 침묵을 깨고, 자신에 대해 잘못 알려진 소문들을 해명하고자 전기를 쓰기로 한 그의 마음이 헤아려졌다. 자신에게 음악이 어떤 의미였는지, 어떤 음악세계를 추구했는지 이제 밝히고 싶었다는 것을.
때로는 냉정하다, 신랄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 또한 전부인 음악을 통해서, 연주를 통해서 바라보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음악속으로 삶이 들어와 있구나, 모든 길이 음악으로 통하는구나!
마지막으로 작가 몽생종이 놀라웠다. 연주자로서 리흐테르가 작곡가의 의도에 충실했듯이, 작가로서 몽생종은 연주자로서 리흐테르의 의도를 충실하게 전달하고자 했다. 두 사람의 예술 세계가 흐르는 물처럼 하나의 구조로 어찌나 잘 엮였던지, 깊이 탄복했다.
책에 담긴 의도를 충실하게 읽고 싶어하는 한 독자로서, 리흐테르와 몽생종의 지극한 노력에 경외감이 들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음악을 들으니, 한 예술가의 마음에 어느새 다가간 듯도, 따뜻하기도 하고 저리기도 하다.
<늘보님>
-------리흐테르는 러시아의 피아노 연주자로 유명한 연주가였던 모양인데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했다. 작가는 리흐테르의 음악적 해석과 연주형태를, 그의 성장기와 함께 주변에서 겪어온 일과 그가 생각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써냈다. 크게 오버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대로의 음악을 사랑하는 연주자에 대한 얘기이다. 그래서 책을 덮었을때 그의
감정보다 음악의지와 연주가 남아있게 된것이라고 여겨진다.
“음악은 작곡자의 의도를 떠나 자신의 개성으로 오염 시켜서는 안된다고,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연구나 분석하지 말고 이미 작품속에 있는 것만 들려줄뿐 아무것도 보태지 않아야 한다. 재능이 있는 연주자는 작품의 참모습을 언뜻언뜻 보여준다. 그 자체로 천재적인 작품의 진실이 그를 통해 반영되는 것이다. 그는 음악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속에 녹아 들어가야 한다.”
고 말한다. 겸손한 그의 연주의 기본정신이다.
음악을 잘 알지는 못해도 때때로 그것을 작곡하고 또 연주하는 이들의 섬세하고 격조 높은 예술성이 삶의 질을 높인다는 것은 안다. 리흐테르, 그는 천재로 태어났다. 거기에 더해 소리와 인간을 연결시켜주기 위해 끝없는 수고를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의 천재성은 자연의 배려이지만, 시간까지 쪼개어 힘을 다하는 그의 노력은 존경스럽다. 리흐테르가 말하는 악보의 진실, 음악의 진실, 행동의 진실이란 소리의 순수함만으로 아프고 서럽고 아름다운 세상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제는 천재 손을 떠난 진실이 나에게도 답이 되었으면 좋겠다. 음악이든 그림이든 새로운 경험으로 소통이상의 헤아림을 가져다 주는 예술인들에게 고맙다. 평범한 나같은 사람까지도 가끔은 다른 차원의 세계로 이끌어 주고 고단함을 쉬게 해주니까 말이다. 음악은 참 위대하다. 그것을 우리 삶에 가져다주는 음악가들은 참으로 고맙다. 리흐테르를 읽으면서 덕분에 피아노곡들을 다양하게 들을수 있어서 고마왔다. <솔로호프님>
-------- <리흐테르 회고담과 음악수첩>은 낯설었던 클래식 음악에 조금씩 발길을 옮겨 놓은 책이다. 클래식보다는 팝이나 인디음악을 주로 들었던 나의 음악적 취향이 서서히 클래식으로 옮겨가고 있는 중이니 말이다.
리흐테르의 회고담을 읽는 동안 그가 연주했던 곡을 유트브에서 찾아 들으면서 책을 읽었다. 피아노 연주자에 따라 작품에 대한 곡해석이 다르다는 것에 대해서 알아챌 수는 없었지만 부담스럽거나 불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끝까지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면서 한가지 알았다. 들으면 들을 수록 다른 음악처럼 내감정을 다 쏟아내지 않아도 충분히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태어난 리흐테르이지만 그는 새로운 작품을 익힐 때면 순전히 반복적인 방법으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특히 까다롭고 미묘한 대목들을 찾아내어 기계적으로 익히면 그것을 완전히 익히지 않으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않는다고 하였다. 한 작품을 그렇게 반복적으로 연습하는 것을 리흐테르, 스스로도 어리석은 일로 보일 수도 있다고 인정하였고 그 어리석음의 해독제로 새로운 작품을 계속 연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였다.
‘연주자란 하나의 거울이다.’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은 자신의 개성으로 음악을 오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음악을 연주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말은 악보를 충실하게 겸허하게 읽어내려는 그의 의지가 담긴 말이며 그가 자신의 연주를 듣는 청중들에게 다가가는 것 이기도 하다.
리흐테르는 ‘음악의 수도승’이라는 별명의 걸맞게 음악이 아닌 곳에는 눈을 돌리지 않았고 무수한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았으며 오직 연주자의 외길만을 걸어왔을 뿐이다. 또한 그는 25년 넘게 음악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음악수첩을 써왔다. 이 책의 삼분의 일 정도를 차지하는 음악수첩은 그의 세계가 온통 음악이었음을 알게 해준다.
그리고 그가 진실로 소박하고 순수하고 인간적인 사람임을 느끼게 해주는 일화가 있다. 리흐테르가 유명하고 큰 극장에서 연주하는 것 보다 러시아의 작은 시골 마을을 여행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을 위해 조율되지 않은 허름한 피아노 앞에서 연주하는 것을 더 좋아했던 사람이다 라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에 적절하게 배합된 사진들을 함께 보는 재미도 즐겁고 음악적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 자세하게 알려주는 피아노 이야기와 작품들, 그리고 리흐테르가 만난 당대의 유명한 음악가까지….
음악가가 아니어도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위대한 사람의 발자취를 만나는 것은 삶을 계속 살아내는 우리들에게는 더없이 든든한 벗임을 알게 되었다. <우이도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