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바라 소리가 울리니 포와 북소리가 겸하여 진동했다
조선군과 명군이 좌우에서 엄습하니 화살과 돌이 섞여 떨어지고,
불붙은 섶이 마구 날아다녀 허다한 왜선을 태반이나 불태웠다
적병은 목숨을 걸고 혈전하였으나 형세를 지탱할 수 없어
바로 물러가 관음포로 들어가니 날이 이미 밝았다 >
-난중잡록-
<왜군 전선 100여 척을 포획하고 200여 척을 불살랐으며,
500여 급을 참수했고, 180여 명을 생포했다
물에 빠져 죽은 자는 아직 떠오르지 않아
그 수를 알 수 없었다>
-선조실록-
<관음포 앞바다는 왜군의 시체,
부서진 배의 나무판자, 무기나 의복 등이 온통
수면을 뒤덮었고 바닷물은 붉었다>
-선조실록-
사료에 실린 노량해전의 기록들이다
<노량해전>은 임진왜란을 통틀어
가장 규모가 큰 전투이고 가장 큰 전과를 거둔 전투지만
애석하게도 이순신 장군이 전사하고 말았다
임진왜란 이순신 장군의 3대 해전을 연도별로 보면
1592년 8월 14일 <한산대첩>
1597년 9월 16일 <명량해전>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이다
김한민 감독은 이순신의 3대 해전을 소재로
10년에 걸쳐 3부작 프로젝트 영화를 완성했다
2014년 최민식이 이순신으로 나오는
<명랑:외오리 바다>는
한국 영화 최다 관객 1,760만 명을 동원
역대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2022년 박해일이 이순신으로 분장한
<한산: 용의 출현>은 726만 관객을 동원했고
지난 20일 세 번째 작품 <노량: 죽음의 바다>가 개봉됐다
김한민 감독의 3부작 프로젝트 야망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한산해전은 학익진으로 대승
명량해전은 12척의 배로 대승
노량해전은 이순신이 전사한 해전이다
한산해전과 명량해전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와
이순신 장군이 올린 장계에 아주 상세한 기록이 남아있다
그러나 노량해전은 이순신 장군이 전사했기 때문에
난중일기 기록으로는 남아있지 않다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시리즈 세 편 영화 중
<노량: 죽음의 바다>가 개인적으로
가장 잘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 이순신의 죽음을
어떻게 연출했을까?
이순신의 3부작을 어떻게 마무리했을까?
무척 궁금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이순신 장군의 죽음을
왜곡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 김한민 감독은
사료에 가깝게 이순신의 죽음을 연출한 흔적이 돋보였다
-노량해전 이순신의 죽음에 관해서는 본 향우카페
수다방 코너 No 563
<충무로, 이 거리를 욕되게 하는 자 처단하라!~> 편에
상세하게 실림-
이순신 장군은 적의 흉탄에 왼쪽 겨드랑이 밑을
관통상 당하며 쓰러져 숨을 거둔다
가끔 사람들은 이순신이 죽으면서
<자기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라고
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틀린 얘기다
전투에서 장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는 경우가 있겠는가?
단지 이순신은 목숨을 거두면서
자기의 죽음을 군사들이 알면
사기가 떨어질까 봐 조선 수군에 알리지 말라고 했다
사실 이순신은 임진왜란 중 적의 총탄에 두 번 맞았다
1592년 사천해전 거북선이 처음 등장하는 전투에서
왼쪽 어깨에 총탄을 맞았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그러니 노량해전에서는 왼쪽 겨드랑이 심장을
관통했기 때문에 거의 절명했다
戰方急,愼勿言我死(전방급,신물언아사)
싸움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류성룡<난후잡록>-
諱言我死 勿令鷺軍(휘언아사 물령경군)
싸움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숨겨 군사를 놀라게 하지 말라
-이항복 백사집-
조경남이 쓴 <난중잡록>에는 이순신의 죽음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순신이 친히 북채를 잡고 먼저 추격하며 죽이는데,
적의 포병이 배꼬리에 엎드렸다가 이순신을 향해 일제히 쏘았다
이순신이 총알에 맞고 인사불성이 되었다
급히 장좌(將佐)에 명해 방패로 신체를 지탱하게 하고,
그들이 비밀로 하여 발상(發喪)하지 못하게 했다
이때 그 아들 이회(李薈)가 배에 있다가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북을 울리며 기를 휘둘렀다>
이순신이 죽자, 조카 <이완>과 아들 <이회>
그리고 군사들이 빠르게 방패로 이순신의 시신을 에워싸
우리 수군과 적들이 보이지 않게 막았다
영화에서도 사료에 충실하게
죽음의 장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한민 감독의 전편
<명랑>에서는 불같은 통쾌함
<한산>에서는 물 같은 냉철함에
영화가 끝나고 와!~ 했는데
<노량>에서는 영화가 끝나고
가슴이 먹먹함에 젖어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왠지 모를 울컥함에 눈에서 눈물이 나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눈물이 난다
<노량: 죽음의 바다>는 러닝타임 152분 동안
전반부 60분 정도는 전투신 하나 없이
심리적 갈등을 그린 극으로 후반부 100분 정도는
치열한 전투신의 스펙터클함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특이하게도 영화가 끝나고
5분 이상의 크레딧 자막이 올라가고
티져 영상이 첨부되 있다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 자막이 올라간다고
영화관을 나와 버리면 진짜 중요한 영상을 놓친다
티져 영상은 김한민 감독이 이순신 장군의
3부작 프로젝트를 완성하면서
장군에 대한 김한민 감독의 헌사(獻詞)로 보였다
김한민 감독이 정말 존경스럽다
영화는 1598년 8월 18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도요토미가 죽으면서 남긴 그 유명한 서사구
<몸이여, 이슬로 와서 이슬로 가나니.
나니와(오사카)의 영화여, 꿈속의 꿈이로다> 가
깔리면서 일본군을 조선에서 철수하라는 유언을 남긴다
도요토미가 죽을 무렵 조선과 일본의 정세를
잘 모르면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이 영화
전반부 60분가량 심리적 갈등을 그린 부분이
좀 지루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당시 일본은 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아니었다
일본 전국은 무사의 우두머리가 봉건영주가 된 <다이묘>들이
일본 각 지역을 지배하던 시대였다
도요토미는 일본 전역의 <다이묘>를 통일
전국시대를 만들었다
<다이묘> 들은 잘 훈련된 사무라이 군사를 거느리고 있었다
도요토미는 다이묘를 통일 했지만 늘 그들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다이묘들에게 나누어 줄 땅이
부족해지자 명나라를 쳐서 빼앗은 땅으로
다이묘들에게 나누어줄 생각이었다
그래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20만 대군을 조선으로 보내
정명가도(征明假道:명나라를 정벌하려고 하니 조선 땅을 빌려 달라)를
내세워 임진왜란을 일으킨 것이다
도요토미가 죽을 무렵 조선은 정유재란 후
전쟁이 지리멸멸한 상태였다
당시 울산성은 <가토 기요마사>가
사천성은 <시마즈 요시히로>가
순천성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지키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다이묘 출신 들이다
각각의 성은 수장이 다른 독립된 군사들이다
이에 조.명연합군 13만 병사(명 10만, 조선 3만)는 일본군이 집결한
울산성, 사천성, 순천성 그리고 바다를 공격하기 위해 4개 조로 나누었다
동쪽에 있는 울산성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동로군>
남해 중앙에 있는 사천성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중로군>
가장 큰 서쪽의 순천성(순천왜교성)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서로군>과 바다의 <수로군>을 편성해 같은 시기
동시다발로 일시에 공격하는 작전계획을 수립하였다
즉 육상의 육로군과 수로군을 동시에 병진하게 하여
일본군을 공격한다는사로병진작전(四路竝進作戰)을 세웠다
4로병진책으로 <서로군>과 <수로군>이 순천왜교성을
포위하고 있었다
이때 일본 본국에서는 도요토미가 죽으면서
철군을 명하니 동쪽 울산성을 지키던 <가토 기요마사>는
쉽게 일본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는데
서쪽 순천성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사천성의 <시마즈 요시히로>는 우리 수군이
버티고 있어 쉽게 빠져나가지 못했다
명나라 황제 만력제는 조선에 계속 원군을 파병
노량해전 때는 처음으로 진린(陳璘)이 총지휘하는 수군을 파병했다
진린(陳璘)은 어떤 사람인가?
유성룡의 <징비록>에는 진린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진린은 성질이 거칠고 포악하고 교만한 자다...
진린은 자기 군인들이 조선의 수령을 구타하여
모욕을 주는 것을 내버려 두었다... 나는 재상들에게
"장차 이순신의 군사가 패하겠구나!" 라고 말했다
진린과 같이 있으면 행동을 견제당할 것이고
의견이 맞지 않으면 장수의 권한을 빼앗고
군사를 학대할 것이다>
영화에서 진린(陳璘)은 다 끝난 전쟁이니
싸울 필요 없이 순천성의 <고니시> 부대를
빠져나갈 수 있게 퇴로를 열어주자고 하지만
이순신은 단 한 명의 적이라도 살려 보내면
이들은 또다시 침공해 올 것이라며
전투를 벌여야 한다고 팽팽히 맞선다
이 갈등구조가 중간중간 에피소드 곁들여
영화 전반부를 장식한다
이순신 역의 김윤석과 진린 역의 정재영 연기는
관객을 스크린으로 빠져들게 만들기 충분했다
진린과 이순신의 갈등구조는 후반부
노량해전 전투의 당위성으로 이어져 끝까지
팽팽한 긴장감으로 유지한다
노량해전은 한산해전과 명량해전과는 다르게
야간에 치러진 전쟁이자
또 조.명 연합군이 결성된 다국적 전쟁이다
후반 100여분의 전투장면도 3국의 장수들이
전면전을 펼쳐 매우 흥미롭고 풀샷 클로즈업
원근의 적적한 조화와 웅장한 음향에
해전 전장 속에 들어있는 착각에 빠진다
영화 노량에서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캐스팅이다
이순신역의 김윤석
시마즈역의 백윤식
진린역의 정재영
이 세 사람의 삼각구도 캐랙터는
이 영화를 살리는 압권이다
이순신역의 김윤석은 대사 없이 풍기는
이미지 만으로도 품격유지, 절절한 원한감, 복수심,
절제미, 진중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명량의 최민식도 이순신역을 개성 있는 연기로
보여줬지만 김윤석은 최민식을 뛰어넘어
마지막전투 노량해전으로 진짜 전쟁을 끝내야겠다는
처절한 이순신의 심정을 몸으로 보여줬다
시마즈역의 백윤식은 가만히 앉아 발사하는 눈빛 만으로
사무라이 수장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정말 배우 중의 배우라는 느낌이 든다
영화 후반부 이순신이 북채를 휘두르며
북소리 <음도공격>이 있는데 음도공격에 백윤식이
히스테릭해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다
이순신과 시마즈 사이에 진린역의 정재영도
정말 적격의 캐스팅이다
위에서도 언급한 유성룡의 징비록에 나오는
진린의 포악하고 진중하지 못한 성격을
정재영은 유감없이 연기한다
정재영은 똑똑하고 영리한 배우라는 느낌이든다
이순신과 시마즈를 무게감 있게 보이기 위해서는
진린을 약간 떨어지게 만들어야 한다
감독의 역량이 그대로 보인다
난중일기 1593년 3월 22일 자에
이순신 장군은 이렇게 적었다
편범불반(片帆不返)
단 한 척의 왜선도 돌려보내지 않겠다
용장과 기장의 이순신이 북을 둥둥 친다
카메라는 슬로우 풀샷으로 뒤로 빠진다
관객은 배에 타고 배가 뒤로 후진하는 느낌이다
북을 친 이순신을 저 멀리 바다의 일점으로 보내며
영화는 종료된다
그러나 영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크레딧 자막이 오르고
이순신은 하늘의 별이 되어 일점으로 다시 우리에게 나타난다
비로소 영화는 끝난다
영화가 끝나고 가슴이 먹먹하다
<노량: 죽음의 바다> 무대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