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지금으로부터 삼백여 년 전. 무림에 한 괴인이 등장했다. 이름도 출신문파도 분명치 않은 자로 그는 고작 동전 몇 닢에 목숨을 걸고 칼을 뽑는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무공만큼은 가공스러운 것이었다. 수천 회에 달하는 생사의 혈전을 통해 스스로 창안한 그자의 무예는 기존의 무학상 식을 뒤엎는 파격적이며 독랄무비한 것이었다. 따라서 당시의 무림계를 좌지우지 하던 절세고수들조차 그와의 대 전을 가급적 회피하려 했다. 언제부터인가 그에게는 살황(殺皇)이란 별호가 붙었다. 그러나 무림계에서는 돈을 받고 살인을 저지르는 그를 경원시했 다. 만년에 접어들자 살황은 무림계에 떠도는 살수들을 모아 하나의 조직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무림최초의 살수집단인 자객문이었 다. 살황이 죽은 후에도 자객문은 그 맥을 이어오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약 십여 년전, 칠대문주인 백야검제(白夜劍 帝)가 위에 오른 후 갑자기 자객문은 자중지란(自中之亂)이 벌어 지게 되어 문도의 상당수가 이탈하게 되었다. 이탈자들은 하북으로 이동하여 새로운 방파를 세우게 되었다. 그 것이 바로 현재의 살막이었다. 또한 남아있던 자들은 자객문을 무 영각으로 개칭하여 새로운 문파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후 두 살인전문의 방파는 서로가 자신들이 진정한 자객문의 정 통임을 주장하며 사사건건 격돌하게 되었다. 결국 긴 싸움에 양자간의 손실이 커지게 되자 그들은 장강을 경계 로 하여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기로 약조를 맺게 되었다. 그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무영각과 살막은 그 세력을 더욱 넓히게 되었다. "무림인들이 그토록 천대하던 살수 출신이 무림지존의 후보로 꼽 히게 되다니... 그야말로 오늘날 무림계가 얼마나 혼탁해져 있는 지 알겠군요." 철화접의 말에 팽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맞추었네. 강호에 모래알처럼 널려있던 영웅호걸들은 대부 분 죽임을 당하거나 자취를 감춘 지 오래라네. 이제 거들먹거리며 강호상에 나도는 것은 오직 사마의 무리들 뿐이라네. 그러니 살수 출신의 두 사람이 무림지존의 물망에 오르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것일세." "그밖에 또 누가 있습니까?" "당연히 있지. 난세에 영웅이 탄생한다고 하지 않던가? 천하제일 인이 되려는 야망이야 누군들 꿈꾸지 않겠는가?" "그들이 누구입니까?" "철혈제왕성(鐵血帝王城)의 현 성주인 만절신군(萬絶神君)을 빼놓 을 수 없지. 비록 과거 무림지존의 자리에 올랐던 전 성주 천무성 군(天武聖君)이 갑작스럽게 죽은 후 쇠락의 길을 걷고 있긴 하지 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철혈제왕성이 백도무림의 보루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철혈제왕성이 아직도 영향력이 있단 말입니까?" 철화접은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철혈제왕성은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무림천하를 좌지우지하던 최강 의 문파였다. 그것은 철혈제왕성을 세웠던 천무성군이 이론의 여 지없는 천하제일고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십 년 전 그가 절세신공을 연마하던 중 주화입마에 빠져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 불상사를 겪은 후 만절신군이 성주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후 철혈제왕성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이었 다. "아암, 비록 예전의 영화와 권세는 잃었다고 하나 당시의 위명을 많은 무림인들은 기억하고 있지. 더구나 요즘처럼 혼란의 시대에 는 천무성군과 같은 대영웅의 현신을 간절히 바라고 있기에 만절 신군은 능력과 관계없이 세인들의 추앙을 받고 있는 것이네." 철화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인의대협이라곤 어디를 봐도 단 한 명 찾을 수 없는 터에 모든 기대가 만절신군에게 집중되는 것도 무리는 아 니겠군요." 팽가의 말이 행여나 끊길세라 철화접은 틈틈이 장단을 맞추어 주 었다. 일행은 어느덧 광동성의 성도인 광주(廣州)의 성문을 넘고 있었다. 철화접은 저만치 앞에서 마땅치 않은 표정으로 팽가를 바라보는 그의 동료들을 보고 마음이 조급해져 급히 물었다. "그리고 또 누가 천하제일고수라 불릴만 합니까?" "...글쎄, 사람들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내가 보기 엔......." 팽가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동료 중 한 명이 버럭 외쳤던 것이 다. "야 이놈 팽가야! 대체 얼마나 수다를 떨겠다는 거냐? 어서 닥치 고 오지 않으면 널 떼두고 가버리겠다!" "어이쿠! 이보게, 젊은이. 인연이 닿으면 다시 만나도록 하세. 저 놈들 성질을 돋구었다간 필시 오늘밤 내 꼴이 성치 않을 것이네. 자, 그럼 다음에 또 봄세." 팽가는 허겁지겁 철화접에게 작별을 고하고 빠른 걸음으로 동료들 에게 달려갔다. 철화접은 아직도 그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많았으 나 별 도리가 없었다. '어쩔 수 없군. 하기사 이 정도 귀동냥도 어디야? 더구나 개방의 발발이를 통하면 더 정확한 무림동향을 들을 수 있을 테니 오늘은 이 정도면 됐지 뭐야.' 철화접은 팽가를 단념하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나저나 이 살인마를 어떻게 찾아낸다? 노잣돈도 이제 거덜이 날 판인데.......' 잠시 서서 궁리하던 철화접은 이내 마음을 굳히고 광주의 번화가 를 향해 잰걸음을 떼어놓았다. '그 살인마가 다시 살인을 벌일 때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어. 내키진 않지만 발발이 이름을 한 번 팔아먹는 수밖에 없겠어.' 걸음을 재촉하는 동안에도 그녀의 눈망울은 분주히 좌우로 움직였 다. 누군가를 찾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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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향설 시인님의 좋은글 "철화접 2권 제10장-4"와 아름다운 영상 즐감하고 갑니다.
하지(夏至) 오늘은 좋은것을 양보하고 배려하며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즐감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