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수필 창작론 연구
서태수(시조시인, 수필가)
*이 논문은 <[부산수필]제28집 (2017.8. 해암)>에 수록된 자료임
<차례>
1. 연구의 의의
2. 한국 현대수필과 전통성
(1) 수필의 형식미학
(2) 수필의 전통성 문제
3. 고전문학의 형식미 계승
(1) 율격미
(2) 문체미
(3) 구성미
4. 전통 계승의 작품 분석
(1) 창작 의도
(2) 전통 접맥 요소
5. 결론
6.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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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구의 의의
한국 현대 수필의 현주소는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가.
백철은 1964년 간행한 [문학개론]에서 한국 문학계에서 인정하고 있는 수필은 그 내용으로 보아서 개인적인 신변의 잡감雜感이나 시감時感을 엮은 것으로 그 내용과 형식이 천박한 인상을 갖게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수필문학도 그 내용과 형식을 재검토하고 수정할 필요를 느낀다고 했다.
50여년 전의 일갈一喝이 아직도 유효하다. 왜 그런가. 한국 근대문학 형성 이후 시조, 소설, 희곡, 시 등의 문학양식은 ‘현대’라는 접두어를 붙이면서 다양한 이론 연구와 참신한 창작을 통해 진화를 거듭해 왔다. 모든 국문학사는 모두 개화기 이전의 문학양식과 개화기 이후의 문학양식 사이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현재 국문학 연구 분야 중 개화기문학이라고 독립된 분야가 설정되어 있는 실정인데, 이 개화기 문학 연구의 초점이 전대前代 양식과 새로운 양식 사이의 관계양상을 규명하는데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바꾸어 말해서 한국 문학은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으로 구분을 짓는 양상에서 연구와 창작을 담당해 왔다. 그리하여 새로운 서구적 문학 이론에 입각하면서도 한국 전통성에 접맥된 문학 양식으로서의 현대소설, 현대시, 현대시조 등은 자연스러운 문학용어로 정착했다.
그러나 고전수필에 대응하는 한국 현대수필이라는 개념은 이론도 창작물도 그 성과가 별무인 실정이다. 1930년 전후와 1960년 전후의 치열한 전통논의를 거치면서 현대문학사 100년의 눈부신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국 현대수필’이라는 개념의 이론이나 창작 개념은 몽테뉴, 베이컨, 찰스램 중심의 서구적 이론에다 홍매洪邁가 사용한 명칭인 수필隨筆의 축자적逐字的 해석으로 일반화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도 한글로 쓰인 수필이 엄연히 존재한다. 고전수필이라는 양식의 존재에 문학적 미감美感의 의문을 제기할 필요는 없다. 조선시대의 문학 미감은 성리학에 예속되어 미학적 미분화 상태였기 때문에 이는 비단 수필에만 해당되는 사안이 아니라 예술 전반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2010년대 현재, 폭증한 수필 인구에도 불구하고 ‘수필의 명목으로 쓰인 문장이 많지만 대개가 신변감상의 잡문’이라는 50여 년전 백철의 지적이 아직도 유효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 대표적인 요인을 수필 양식에 대한 문학원론 연구의 부족과 미학적 창작론 실천의 미흡으로, ‘붓 가는 대로 쓰는 수필’이라는 통념적 지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결국 수필이 지녀야 할 문학 미학적 가치가 발현되지 못한 작품의 양산量産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 살펴보면 위에서 언급한 백철의 지적도 한국 수필의 전통적 가치를 고려한 논지는 아니다. 백철의 수필 개념에서도 한국 고전수필과 접맥된 가치를 인식한 요소는 찾을 수 없으며 이 경향은 현재까지도 그대로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문학의 연면한 흐름을 통시적으로 일별해 보더라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던 고전수필의 현대적 계승은 단절되어 버렸고 당연한 귀결로서 고전수필의 현대적 계승 발전에 관한 논의나 이에 근거한 작품 창작은 별무였던 것이다.
결국 붓 가는 대로 쓰는 작업에 따른 문학적 미감 상실에 덧보태어 한국전통 수필의 맥락마저 단절된 현상이 한국 현대 수필의 현주소가 되었다. 이러한 당면 과제를 해결하는 방법론으로 현대수필 창작에서 전통문학의 기법을 접맥한 수필 작법의 연구가 필요한 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이 논문을 쓰게 된 직접적 계기는 전통수필의 성격을 담은 자작 수필집 [조선낫에 벼린 수필]을 읽은 이관희 발행인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왜 우리 고전수필의 맥을 잇는 현대수필이라는 개념은 정립되어 있지 않은가? 어찌하여 그 학술 체계가 세워져 있지 않은가?’라고 탄식하면서 이미 전통수필을 창작한 필자에게 그 이론을 정립해 보라는 간곡한 권유의 작품평이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의 견해는 수필은 최소한의 작법 이론에 입각한 창작이어야 하며, 특히 시조시인이 창작하는 수필은 전통에 접맥된 특징적 차별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나 창작 이론에 대한 강의를 간헐적으로 하면서도 필자의 창작활동의 주류가 현대시조인 관계로 이를 이론화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던 중 전통수필에 관한 창작이론의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관희 발행인의 지적에 공감하면서 이 기회에 초보적으로나마 전통수필 창작에 적용한 필자 개인의 작법作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기로 하였다.
한국 현대 수필의 현주소는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나아가 한국 수필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고에서는 수필의 형식미학을 중심으로 원용 가능한 한국 문학의 전통적 기법을 모색해 보겠다. 한글로 쓰인 고전문학 작품 속에서 현대에도 접맥이 가능한 요소를 찾아 새로운 시도를 계승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할 것이다. 아울러 전통 기법을 접맥한 이론에 근거해서 창작한 자작 전통수필들의 기법을 분석함으로써 한국 현대 수필의 이론과 창작에 작은 디딤돌을 제공하고자 한다.
2. 한국 현대수필과 전통성
(1) 수필의 형식미학
문학적 미감은 인간이 사용하는 일상적 어휘를 어떻게 정서적으로 직조하느냐의 기술적 문제이다. 문학적 미감이란 작품 형성에 사용되는 개별 어휘가 지닌 본래의 특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사용된 어휘의 외연이 크든 내포가 강하든, 상징이든 비유든 서술이든 상관이 없다. 문학은 작가가 언어라는 도구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회화, 음악, 무용 등과의 변별성을 지닌다. 언어라는 매체로 인하여 문학이 다른 예술과 구분되듯, 같은 매개체인 언어를 도구로 사용하는 문학에서도 각 양식의 변별력은 언어 직조의 차이 즉, 표현 방식에서 기인한다. 그 변별성은 통상적으로 시는 리듬, 소설은 구성, 수필은 무형식으로 인식하고 있다.
크로체(B. Croce)는 예술은 직관(intuition)의 표현(expression)이라고 했다. 직관은 지식이 아니며 표현은 재현이 아니다. 직관으로 표현된 예술은 미적 가치의 창조가 생명이다. 백철은 그의 [문학개론]에서 문학은 언어라는 간접적인 기호를 매개로 어떤 형태적인 형성을 본질로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코울리지(Samuel T.Coleridge)의 지론을 인용하면서 철학, 역사, 과학도 언어를 도구로 사용하지만 이와 달리 문학은 작문법(composition)이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문학의 작문법은 궁극적으로는 진리를 목표로 하지만 우선 직면하는 것은 즐거움(pleasure)을 주는 언어적인 작문으로서 각 부분과 전체의 조화와 통일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문학상의 종류는 일종의 制度이다. 우리들은 현존하는 제도로 해서 활동하며 자기를 표현한다. 우리들은 또 새로운 제도에 참여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개조할 수도 있다. 이처럼 문학의 다양성은 한계가 없다. 문학에서 미감 창출은 언어 직조에 대한 작가 능력이 절대적 역할을 담당한다. 작가의 언어 직조 능력에 따라 양식상의 변별뿐만 아니라 동일 양식 내에서도 문학성의 질적 차별성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같은 주제이면서도 걸작과 졸작이 생기는 이유는 바로 언어 연금술의 기능과 연관이 있다는 점이다.
문학의 형식이란 어떤 내용적인 것을 형상화하는 과정을 통일, 조직한 형태이다. 같은 내용이라도 그 형식에 따라 시가 되고 소설이 되고 수필이 될 수 있다. 극단적으로 역사, 철학, 종교와도 달라지는 요인은 그 형식 때문이다. 결국 작품의 양식은 물론, 질적 우열에 대한 결정은 그 내용 여하를 막론하고 그 형식의 실행에 달려있다.
시나 소설과 변별되는 수필적 인식은 일차적으로 작품의 특징적(characteristics) 작문법(composition)에서 기인한다. 문학의 형성론에서 언어를 중심으로 하여 내적조건, 외적 조건으로 문학의 속성을 살펴볼 수도 있고, 문학 형식을 용기用器로 볼 것이냐 형성의 원리로 볼 것이냐의 견해 등 많은 심층적 논쟁이 가능하다. 문학을 하나의 유기적 구조체로 인식하는 관점에서는 문학의 내용과 형식 분리는 논쟁적 요소가 크겠지만 본고에서는 이 특징적 작문법을 편의상 형식이라는 대중적 용어로 사용하고자 한다.
작품적인 형성을 한다는 것은 우선 형태적인 미의 창작을 가리킨다. 수필의 미감도 다른 양식과 마찬가지로 일상적 어휘를 어떻게 정서적으로 직조하느냐의 기술적 문제 즉, 형식 구현에서 기인한다. 이 형식 구현의 능력은 오롯이 작가의 역량에 달려 있다. 그런데 시, 시조, 소설, 희곡 등의 양식은 만인이 공유하는 기본적 형식을 제공하므로 작가는 일차적으로 그 형식의 범주 안에서 출발할 수 있다. 문제는 산문성이라는 통념 이외에는 그 어떤 힌트도 제공하지 않는 수필의 형식이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수필의 형식을 두고 ‘무형식의 형식’이라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한 미학적 깊이를 숨겨 놓은 탁견이다. 다른 그 어떤 양식보다도 수필의 제재와 주제는 다양성을 지닌다. 이렇게 광범위한 양식을 어떤 특징적 제한으로 형식을 한정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할 것이다. 형식이 없다는 말은 일견 아무렇게나 쓰는 글이라는 오해의 소지도 있지만 실상은 수필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낸 특징적 용어이다.
수필에서 무형식이란 뒤집어 말하면 곧 작가가 창출해 내는 개별적, 개성적 형식을 용인하는 말이다. 시, 시조, 소설, 희곡과 달리 작가마다 형식을 다르게 창출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아가 작품마다 그 형식이 다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각 작품의 특징적 내용을 가장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최상의 형식미를 구현하는 것이 작가의 능력이 될 것이다.
가장 훌륭한 수필 형식은 작품의 주제와 제재에 걸맞은 그만의 개성적 형식을 창출하는 것이다. 여기에 무형식의 형식이라는 수필의 심오한 형식적 묘미가 있는 것이다. 결국 무형식의 형식이라는 말은 수필이 지닌 미학적 묘미를 변증법적 모순형용으로 새겨놓은 탁견이라 보는 것이 옳다.
수필의 형식미학이 지닌 엄연한 양식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전통 기법과 결별해 버린 한국 현대수필의 뿌리는 실종상태다. 모두冒頭에서 수필은 그 내용으로 보아서 개인적인 신변의 잡감雜感이나 시감時感을 엮은 것으로 그 내용과 형식이 천박한 인상을 갖게 하며 우리나라의 수필문학도 그 내용과 형식을 재검토하고 수정할 필요를 느낀다고 지적한 50여 년 전 백철의 일갈이 유효한 상태이다. 이천년대 이후 수필문단의 일각에서 본격수필, 창작 수필의 다양한 이론을 전개하면서 격조 높은 문학성 창달에 힘쓰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매우 다행한 작업이지만 개인적인 신변의 잡감雜感이나 시감時感을 엮은 것은 극복하고 있을지라도 특히 형식미 창출에서 한국 전통 요소의 발굴 계승은 외면해 온 것이 한국 수필단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 수필 이론의 바탕이 철저히 서구적 개념을 도입한 문학 양식이라는 점에 매몰되어 한국 전통적 내용 가치와 형식 기교가 접맥된 문학으로 진화시키지 못한 데에서 연유된 것이라 여겨진다. 문학에서 미감 창출은 언어 직조의 기능이 절대적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한국 현대 수필의 형식미학을 우리가 잃어버린 고전문학에서 모색해 연면한 전통으로 계승한다면, 현대의 독자들에게도 새로운 수필 미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2) 수필의 전통성 문제
한국 현대 수필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T.S. 엘리옷은 [전통과 개인의 재능](Tradition and Individual Talent)이라는 논문에서, 천재 시인이란 전통을 이어받아 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서 새로운 창작 세계를 열어가는 사람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전승적 요소로서의 전통과 개별적 존재로서의 작가 사이의 역학 관계를 규정한 엘리옷의 시각에 따른 위 명제의 해명은 ‘한국’과 ‘현대’와 ‘수필’을 아우르는 논지여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 현대 수필의 정체성은 ‘현대문학 이론을 바탕으로 한국 전통적 내용 가치와 형식 기교가 접맥된 수필’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이 쓴 수필도 당연히 일정 부분 전통적 맥락을 계승한 요소가 있긴 하다. 전통 계승론이나 단절론을 떠나 전통은 외래문화의 유입 과정에서 변형 굴절되면서 흡수, 융화되고 새로운 창조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고에서 논하고자 하는 전통성 문제는 자연발생적으로 승계되어 오는 요소가 아니라, 작가가 특정 작품에서 구체적으로 구사하는 수필 미학 창조의 의도적 장치로서의 전통적 가치를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위의 명제 해명 중 현대 수필론에서 현대문학의 수필 이론을 바탕으로 한다는 말은 현대수필이 서구적 개념을 도입한 문학 양식이라는 점 때문이다. 또한 한국 전통적 내용 가치와 형식 기교가 접맥된 문학으로 정리한 것은 국어국문학의 협의의 개념을 따른 것이다. 우리나라의 한문예漢文藝에 있어서도 이화적異化的 요소가 있어 외래문학을 풍화시켜 새로운 문학 창조의 원동력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글로 표현된 문학작품만이 우리 문학의 정통적 개념이라는 명제는 변함이 없다. 따라서 표기수단이 문학 창작의 미감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한국수필의 사적 고찰에서 논하는 한문수필은 논의에서 배제하였다.
진정한 의미의 한국문학은 기왕의 전통문학을 전제로 하여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이식문화론 내지 전통단절론, 그리고 서구 중심주의 사고와 가치판단의 수동적이고 소극적 인식이 주도해 온 지난 한 세기의 문학을 반성해 볼 때, 자칫 서구의 현대문학을 한국문학의 현실로 전제한 상황에서 민족문학을 귀납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오류를 범할 우려가 있다. 이보다는 현대의 작품 분석을 통해서 추출되는 전통 요소를 근거로 전통과의 접맥 문제를 귀납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온당한 방법일 것이다.
필자는 오래 전에 한국문학의 현주소는 모두 전통문학의 형식과 내용의 창조적 계승에서부터 이룩되어야 할 것이라는 지론 아래, 현대시조의 발전 문제는 낡은 것의 부활이 아니라 한국문학양식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의미가 있다.고 했는 바, 이는 시조단의 문제만이 아니라 모든 한국문학에 공통되는 요소일 것이다.
한국 현대 수필은 어떠한 전통적 요소를 어떻게 계승 발전시켜 왔는가.
한국문학의 역사는 일반적으로 개화기를 기점으로 그 이전의 양식과 이후의 양식상의 차별성을 초점으로 운위하고 있다. 국문학 전개에서 개화기문학이라는 분야를 설정하고 있음은 그 전후의 문학 양식에 심대한 변곡점을 이룩한 방증인 것이다.
한국 현대 문학은 고전문학에 담긴 오랜 전통성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 유입된 서구문학의 통합을 이룩하여 형성되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 문학양식 중 시(한시)는 표기수단의 변화를 통해 천년의 지위를 박탈당하면서 완전히 소멸해 버리고 신체시라는 양식의 후예인 ‘자유시’로 자리잡았다. 변방문학의 지위를 지녔던 소설은 ‘현대’라는 새로운 옷을 걸치고 화려하게 소생하였다. 음악 양식의 노랫말이었던 시조는 소멸 운명 앞에서 인위적 부활 운동을 거쳐 현대시조라는 문학양식으로 진화하였다.
이에 반해서 수필은 불행한 문학사의 후면에 자리잡게 되었다. 전통적 교술 양식인 가사문학歌辭文學은 개화가사로 변신을 도모하여 초기에는 시가와 문필이 합쳐진 율문과 산문이 혼용되었다. 그러나 개화 후기에 이르러는 오히려 전통의 4음보 율격으로 회귀하였고, 이후 소멸해버렸다. 이는 초기의 산문적 시대정신을 배격하고 획일적 율문의 복고적 형식으로 회귀하여 시대상에 대한 적응력 부족으로 말미암아 사라져 버린 것으로 여겨져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 현대수필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구축할 미학적 요소를 충분히 갖추었던 고전수필은 연면한 전통 계승은 고사하고 고전으로만 독립 된 채 불행하게도 미아가 되어버렸다.
문학에서 전통의 단절과 계승에 관한 심층적 논의는 1930년대와 50년대의 논의를 거치면서 다양한 결론을 도출하고 있지만 수필은 전통과의 맥락 문제 자체를 관심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있다. 조선의 가사양식을 계승한 개화가사가 소멸한 이유는 융통성 없는 고정된 정격율 때문일 것이다. 현대문학의 대표적 양식인 시, 소설, 희곡, 평론 등에서는 변곡점 전후의 문학 양식면에서 획기적인 차별성이 보이고 있다. 그것은 조선시대까지의 문학 이념은 성리학의 소속 개념에서 미학적 독립성을 이룩하지 못했던 이유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문학 창작 도구의 주류가 한문이었기 때문이다. 김만중의 좌해진문장 지차삼편(左海眞文章 只此三篇)이라는 탁월한 견해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지극히 소수의 선구적 견해일 뿐이다. 소위 언문으로서의 훈민정음은 문학 내지 학문의 도구가 아닌 보조역할만 기능했기 때문에 조선시대 문학은 소위 여기餘技로서의 지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개화기 이후 한글문학은 고전문학과 서구문학의 굴절적 수용 속에서 형성되어 이전과는 사뭇 다른 새로운 양식의 탄생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현대문학 각 양식에서 전통에 관한 논의는 이미 상당한 성과를 얻었다. 그러나 한국 현대 수필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핵심을 잘 못 짚은 것 같다. 그 첫째가 서구 문학이론 중심의 연구이고 다음으로 조선시대 수필에 대한 미학적 계승의 소홀이고 끝으로 한국 전통적 요소를 계승할 수필 창작법 연구의 외면이다. 개화기 이후 수필 양식의 본격적 등장에서부터 현재까지 서구수필의 이론과 작법 등은 부분적으로 연구가 되었으나 그마저도 비전문적 교양물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붓 가는 대로’라는 작법 요인도 한몫을 한 것이다.
구인환은 근대문학에서 본격수필은 1910년대의 태동기, 20년대의 병립과 상충기, 30년대의 형성기로 정리하였다. 그 근거로 관동별곡 연행가 등을 예로 들면서 본격수필은 고전수필의 기행적 성격을 계승하고 서구수필의 개성적 시각을 수용한 이원적 근거를 제시하였다. 특히 근대 수필의 성숙기로 설정한 30년대의 평가에서 개인적, 사색적 유형에 속하는 몽테뉴 형의 수필과 객관적 사회적, 경구적인 베이컨 형의 수필로 분류하면서 고전수필이 현대수필에 계승되어 그 다채로운 양상을 보여준다고 정리하였다.
현대수필 창작론의 접맥 근거를 고전수필에 연계하여 추출한 점에서 상당히 공감이 가는 연구이다. 그러나 두 유형으로 나뉘어 전개되는 본격수필은 30년대 문학을 성숙하게 하여 그대로 현대수필에도 계승되어 그 다채로운 야상을 보여준다고 하였는 바 이는 수필창작 면에서 내용 전개에만 그 시선이 머물러버렸다는 한계에서 현대 수필 창작이론이 더 발전할 여지를 놓쳐버린 것이다.
교술양식의 측면에서 현대수필과 유사한 조선 문학 양식은 가사, 사설시조, 고전수필 등이다. 이 3종은 공통적으로 운문 지배적 사회에서 산문정신의 발현으로 형성된 양식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가사문학, 사설시조, 고전수필이 현대수필로 접맥되어 계승되지 못한 것은 이 작품들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수필의 작법 연구나 평가가 서구식의 문학관이나 내용면에 치우쳤을 뿐이기 때문에 전통성 접맥의 연구 문제에서 외면을 받은 것 같다. 더구나 가사문학이나 사설시조는 형식면이나 내용면에서 훨씬 현대수필의 특징적 요소에 근접하지만 이들도 4음보 정격의 양식적 한 변주로만 취급되기 때문에 산문 양식인 수필 창작 미감의 대상으로 취급되지 못한 것이다.
정부래는 고전문학에서 수필이 차지하는 장르적 위치는 타장르에 못지 않는 것이었으며 작품의 분량면에서의 풍부함과 제재면에서의 폭넓음을 주목하면서 앞으로 수필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은 우리 수필 전통에 대한 올바른 성찰을 토대로 진지한 문학정신의 바탕 위에서 창작에 임해야 할 것을 강조하면서도 그 구체적 미학의 방법론은 제시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수필은 지식인의 교양물로, 또는 전문 작가의 창작물로 발전을 거듭하였다. 30년대 이후 70년대까지만 하여도 한국 수필은 내용면에서는 평균적으로 품격 있는 위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다 구성도 클라이맥스도 필요 없는 ‘붓 가는 대로 쓰기’라는 작법의 대중적 일원화 과정을 거치면서 수필문학은 심화 발전은커녕 그 방향성마저 상실해 버려 신변잡기가 난무하는 현상으로 전개되어 버렸다.
1990년대 이후 국민소득 향상과 문단의 여러 분위기 조성으로 수필인구가 급증하였고 이에 비례하여 작품의 질적 저하도 심각해지기 시작하였다. 수필 인구의 양적 팽창 속에서 수필문학이 잡문의 나락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세태를 맞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역설적으로 뜻있는 작가들의 반성을 견인하기 시작하였다. 2000년대 이후 본격수필, 창작수필 등 다양한 개념의 수필문학 창작론이 새롭게 전개되면서 문학적 성과를 거둔 작품들이 수필단의 선두를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연구와 창작이 서구 개념의 이론과 한국의 현대적 공간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었다. 다시 말해 한국 전통적 맥락에 닿은 현대수필 이론이나 작품의 창작이 별무였다.
모든 문학 활동은 전통을 바탕에 두고서야 비로소 생명성을 지닌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전통에 관한 논의야말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반적으로 한국문학은 민족의 고난이나 인생의 보편적 서정을 함께 노래하는 동반자로 존재해 오면서 낡은 것과 새로운 것, 그리고 외래적인 것과 내재적인 것이 서로 갈등하고 공존하면서 새로운 세계의 변용을 이룩하려 노력해 왔고 현재에도 그 진행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성기조는 바람직한 전통론을 정립하려면 국문학사 전체에 관한 일관된 논리를 구축하는 것이 일차적 과제이고 그에 따른 실증적인 검토가 수반되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오늘의 현대문학 작품 속에서 고전 작품들과 어떠한 연결이 있는가를 귀납적으로 밝히는 문제로의 귀결을 제언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문학을 한국문학이게 하는 요소를 찾아내어 우리 문학의 전통으로 확립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으로 논하고 있다.
한국 현대 수필의 발전 문제는 공시적으로는 전통문학의 연면한 계승과 아울러 통시적 보편성의 확인으로 그 창작의 방향이 설정되어야 한다. 특히 전통 요소의 계승은 전통의 부활이 아니라 한 집단이 잃어버린 성정의 회복을 유도하면서 독서의 격조 높은 재미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 진정한 가치를 발현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조선시대와 현대가 시공의 보편성으로 통합될 때 현대 한국 현대수필의 확고한 공간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2. 고전문학의 형식미 계승
수필 작법에서 전통과 접맥된 형식은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창출이 가능한가.
본고 논의의 주제인 ‘한국 현대수필’이라는 관점에서 살펴 볼 때, 한글로 표기된 고전문학에서 원용 가능한 작법 요소는 생각보다 다양하다. 전통적 요소는 한국인의 성정에도 적합하거니와 쉽게 응용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고전문학에서의 미감은 엄밀히 보아서 미감의 미분화 시대이다. 조선의 문학미감은 성리학에 예속되어 있었다. 설상가성으로 미분화된 문학 미감마저도 한문문학에 예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현전하는 소수의 한글 문학 작품에서도 다양한 미학적 요소를 추출하여 현대 수필에 원용할 수 있는 점은 큰 다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국문학사적으로 살펴보면 수필 형식미 창출에 원용 가능한 한글 문학은 향가, 고려가요, 경기체가, 사설시조, 가사, 고전수필, 판소리사설 등이다. 이 중 사설시조, 가사, 고전수필 3종은 공통적으로 운문 지배적 사회에서 산문정신의 발현으로 형성된 양식이라는 점에서 수필의 성격과 공통성이 매우 짙다. 특히 조선 후기에 새로운 문학양식으로 융성한 판소리 사설은 이전의 모든 문학이 지닌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적용된 융합양식이라고 할 수 있어 현대 수필 문학에서 원용할 수 있는 전통적 요소의 보고寶庫라 할 수 있다.
현대수필에서 창출 가능한 세부적 요소로는 향가의 3단 구조와 낙구, 고려가요의 3음보 율감 및 연장체적 요소와 반복적 구조, 경기체가의 4음보 율감과 후렴의 반복 등에서 제한적으로 추출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교술양식인 가사문학에서는 일관적 4음보 율격미가 주요 요소일 것이다. 내용면에서는 상춘곡, 면앙정가 등의 서정가사,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의 충신연주지사, 관동별곡, 일동장유가 등의 기행가사, 남정가, 태평사 등의 전쟁가사, 규원가, 계녀가 등의 내방가사 등 실로 그 내용적 양상이 다채롭지만 현대의 다양한 서정에는 별 도움이 못될 것 같다. 형식면에서 볼 때 가사문학은 정격 4음보의 연속되는 고정적 양식이므로 순수 산문문학인 현대수필과는 4음보 율격의 부분적 원용 외에는 그 접점을 찾기란 어려운 노릇이다.
시조는 4음보의 정격양식이다. 그러나 사설시조, 특히 김수장 안민영 등이 창작한 장편 사설시조는 4음보의 기본 율격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부분적으로 정격을 일탈하여 산문성을 드높이고 있으며, 중장의 분량도 50음보 이상의 장편이다. 특히 문장의 표현과 내용면에서도 서정 혹은 서사적 요소에 국한된 가사문학을 훌쩍 뛰어넘는다. 해학과 풍자, 반어, 비유 등의 시적 경지의 산문적 미감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요소는 현대 수필에서도 충분히 맥락을 계승할 가치가 있는 점이다.
조선 후기에 활발히 창작된 수필문학으로는 조침문, 의유당일기, 규중칠우쟁론기 등의 산문문학이다. 이 작품들이 지닌 비정형적 율격미, 익살, 영탄 등의 표현미는 매우 뛰어난 기교이다. 구성면에서도 일기체, 기행체, 대화체, 제문형식 등 다양하다.
전통문학 양식의 융합양식이라고 할 수 있는 판소리 사설은 이상의 모든 요소들을 보유한 획기적 작품이다. 판소리는 산문적 서사성을 기반으로 하면서 정격 혹은 변격 율문을 산문 속에 용해시키고 있으며 다채로운 어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존비법 사용도 극존칭에서부터 극단적 하대下待에 이르기까지 운용되며, 어휘나 어구 사용도 양반의 시문詩文, 한문고사에서부터 비어, 속어, 심지어 욕설에 이르기까지 그 진폭이 크다.
앞 장에서 형식이란 어떤 내용적인 것을 형상화하는 과정을 통일, 조직한 형태로서 작품의 좋고 나쁨에 대한 결정권은 그 내용 여하를 막론하고 그 형식의 실행에 달려있다고 한 백철의 견해를 인용했다. 이에 입각하여 고전에서 원용할 수 있는 주요한 전통 요소 중 형식미 창출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주요한 방법 몇 가지를 추출할 수 있다. 그 가장 핵심 요소는 정격 또는 비정격의 율감律感과 특징적(characteristics) 작문법(composition), 그리고 문장 전개 양상이 될 것이다.
이 요소들을 문장의 호흡과 장단을 통어通御하는 율격미, 문장의 개성을 드러내는 문체미文體美, 문단 전개를 형성하는 구성미로 대별하여 계승 요소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율격미
율격은 고저, 장단, 강약의 규칙적 반복에서 형성되지만 한국 전통 율격미는 특정 보격步格을 기반으로 하면서 변주變奏를 형성하는 기법이다. 한국 음보율의 특징은 반복과 시간의 등장성에 근거를 두어 음수율의 고정성을 극복한다는 점이다. 전통의 정격음보定格音步는 2음보, 3음보, 4음보가 있다. 운용 방법도 정격률, 변격률, 자유율, 혼합률 등 다양하다. 2음보는 4음보 형성의 기본 음보로 정적靜的인 요소가 강하며, 3음보는 고려가요와 민요 등에서 주로 운용되어 동적動的인 특성이 있다. 문학작품에는 사설시조, 가사 등에서 나타나는 4음보격이 일반적인데 이는 조선의 성리학적 가치관과 연관이 있다.
율감은 모든 문장을 통어通御한다. 필자가 40여 년 동안 현대시조 창작을 통해 느낀 바는 율감은 본질적으로 서정을 흥청거리게 한다는 점이다. 율감으로 쓴 글 속에서는 표창도 던지면 원반으로 날아간다. 그래서 참여문학 논쟁이 치열한 독재시절에도 정격시조 작품은 현실 참여에 대한 서정도 자유시처럼 그렇게 신랄하게 표출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고시조든 현대시조든 현실참여 작품에서 시조 작가들이 4음보 정격의 파괴를 구사하고 사설시조의 율격을 운용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한국문학의 전통적 맥락의 대표적 요소는 리듬이었다. 전통문장은 한문이든 한글이든 모두 리듬감을 지닌다. 첨단의 현대문학 시대에 웬 율격 타령이냐는 소리를 할 수 있겠으나 율감律感은 언어가 지닌 대표적 속성이다. 어떤 언어도 이 율감을 외면할 수 없다. 다만 고전문학에서는 필수적 장치로 사용했으며, 개화기 이후의 현대문학에서는 의식적으로 배격한 가치관의 차이일 뿐이다. 필자가 근대문학 이후 현대시에서마저도 외면당한 운율미를 산문문학에도 원용하자는 데는 당위적 이유가 있다.
리듬의 존재 의의는 무엇인가. 필자는 현대에도 600년 이상 낡은 양식의 시조가 필요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논한 적이 있다.
현대는 리듬 상실의 시대이다. 속도를 추구하는 현대는 리듬을 배격하기 때문이다. 고전적 이동법인 발걸음, 말[馬], 자전거, 증기기차, 배[船] 등은 2박자, 3박자, 4박자의 리듬을 지녔지만 이제는 이들 리듬을 구경하기 힘들다. 율격적 보법步法을 잃어버린 현대의 이동 도구들, 자동차나 비행기나 쾌속정이나 KTX에는 리듬이 없다. 이러한 도구들로 인하여 현대인은 체감적 율동감을 상실해 버렸다. 그래서 현대인의 삶의 양식도 리듬을 잃게 되어 생활만 삭막한 것이 아니라 문학마저 메마른 시대를 살고 있다. 이 리듬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 정형률을 지닌 현대시조의 소명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시의 형식은 운율이다. 그러나 자유시는 시조와 달리 실제 시를 읽을 때 운율이 외형적으로 체득되는 것이 아니다. 자유시란 운율로부터의 자유라는 의미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내재율內在律이다. 물론 자유시의 내재율을 전면 부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작가든 독자든 자유시의 창작과 감상에서는 운율이 주요 관심사가 아님은 분명하다. 그리하여 시의 중요한 한 요소인 형식, 즉 운율적 요소는 설 자리를 잃게 되었고, 운율을 잃어버린 메마른 시가 현대시를 대표하게 된 것이다.
현대시가 리듬을 외면한다는 것은 감수성의 분리가 아니라 정서의 상실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형정신에 입각해서 창출된 현대시조가 지닌 현대적 의의는 자유시가 잃어버린 정형적 서정을 시조적 리듬을 통해 보완하여 대중의 운율적 향수를 자극해야 하는 것이다. 그 역할의 일부를 전통수필을 통해서 담당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정형에는 리듬이 창출된다. 그러나 정형에도 여러 유형이 존재한다. 하나의 특징적 정형 속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변주가 이루어지는 것이 문학이다. 마찬가지로 수필이 산문이라 할지라도 굳이 율격을 천편일률적으로 배격해야 할 이유는 없다. 고전문학 작품이 정격 속의 변격을 구사했듯이 현대문학 작품도 산문 속에 율격을 가미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다. 우리의 모든 전통문학은 그렇게 획일적 구조를 지닌 양식이 아니었다.
시조도 마찬가지다. 현전하는 고시조 작품 4700여 수를 일별해 보기만 해도 시조의 형식은 진폭이 매우 넓은 문학양식임을 알 수 있다. 시행과 잣수, 음보까지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시조의 율격은 한시나 일본의 단가(短歌), 배구(俳句)와는 달리 일정불변의 잣수율을 초극지향한 자유자재성(自由自在性)의 시형이다. 그런데 엄밀히 고찰해 보면 시조 형식에 깃든 이 자재자유성은 음수율만이 아니라 음보율의 자유성도 이미 내재되어 있었다. 그래서 고시조에서도 많은 작품들이 음보의 변격을 자연스럽게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고시조는 3장 6구 12음보의 단순한 시형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어와 져므러 간다 宴연息식이 맏당토다
눈 / 쁘린 길 / 블근 곳 / 흣더딘 / 흥치며 / 거러가셔
雪셜月월이 西셔峰봉의 넘도록 松숑窓창을 비겨잇쟈(윤선도, 어부사시사, 제40수)
어부사시사 40수 중 제39수까지는 한결같이 종장의 잣수율은 파격을 보였으나 이 마지막 수에서는 종장의 정형을 고수하되 중장에서 넘치는 흥취를 그대로 토로하고 있다. ‘ 눈 쁘린 길 블근 곳 흣더딘 흥치며 거러가셔’에는 단순히 봄과 겨울이 겹친 계절의 풍광만이 아니라 4계절의 대표적 풍광을 담고 있다. 여기에다 아울러 잔치는 끝났으되 넘치는 그 여흥을 주체할 수 없어 ‘흥치며 거러가셔’라는 과음보(過音譜)를 통해 묻어나고 있다. 시조의 정격과 변격의 멋과 맛을 충분히 체득하고 실천하는 고산의 치열한 시정신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이 부분을 단순한 정격음보로 운용하여 4음보로 마무리하였다면 시적 분위기는 사뭇 약화되었을 것이다.
시조의 형식적 외연은 폭이 넓지만 가사는 매우 획일적 정형양식이다. 4음보 정형 율격의 무한 진행인 가사문학도 작가의 흥취에 맞춰 정형의 변주가 드러나는 것이 우리 고전의 멋과 여유이다. 가사문학의 효시라고도 일컬어지는 정극인의 상춘곡에서 이미 변주가 드러난다.
칼로 말아낸가 붓으로 그려낸가
조화신공(造化神功)이 물물(物物)마다 헌롭다.
수풀에 우는 새 춘기(春氣)를 못내계워 소리마다 교태(嬌態)로다.
물아일체(物我一體)어니 흥(興)이야 다소냐
가사의 율격은 4음보 경적이지마는 위에서 제3행은 6음보이다. 그 이유는 제4행에 드러나 있다. 흥겨움의 엇박자로 변주를 일으키는 여유다. 이러한 율감은 관동별곡에도 나타난다.
藍남輿여 緩완步보하야 山산映영樓누의 올나하니
玲녕瓏농 碧벽溪계와 數수聲셩 啼뎨鳥됴난 離니別별을 怨원하난 닷
開개心심臺대 고텨 올나 衆듕香향城셩 바라보며,
萬만二이千쳔峯봉을 歷녁歷녁히 혀여하니
위 첫 인용 부분의 제2행은 6음보로서 흥취의 잉여 표현을 위해 4음보의 고정율을 파격했다. 반대로 아래 인용의 제2행 ‘萬만二이千쳔峯봉을’에서는 3(4)-4조 기본 음수율을 1-4조로 과감한 변격을 사용했다. 송강이 ‘일만一萬’이라는 표현을 피한 것은 금강산 숱한 봉우리를 표현함에 ‘일一’이라는 숫자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정신이 창작의 묘법이다.
엄격한 율격의 조선 시대 문학작품에서 파격을 운용한 창작 기교는 대단한 개성 발현의 소산일 것이다. 이러한 기교를 거꾸로 현대에 적용한다면 다음과 같은 이론이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정격 리듬을 배격한 현대문학에서 산문문장 속에 부분적으로 정격 리듬을 활용하는 것은 새로운 창작법이 될 수 있다.
조선 문인들의 인식은 정형문학을 고정불변의 양식으로만 한정한 것이 아니었다. 시조나 가사의 4음보 정형은 절대불변의 고정적양식이 아니라 정형을 지향할 뿐이다. 이를 두고 필자는 이미 정형정신으로 명명한 바 있다. 정형정신이란 특정 형식에 머무르는 맹목적 정형定型이 아니라 정형성을 지향하는 자세이다. 시조의 형식적 특성을 두고 리태극 박사는 ‘정형이비정형定型而非定型’이라고 했다. 바로 여기에 성리학적 속박 속에서도 여유와 멋을 구가하던 조선 사회의 참된 정신이 있으며 이러한 변주變奏에 시조 형식의 정치精緻한 미학적 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필자는 시조론에서 율감 회복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논한 적이 있다.
현대를 살면서도 굳이 율감의 회복을 논하는 데는 현대에 걸맞은 당위적 이유가 있어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당연히 시조를 써야 한다는 민족문화적 논리가 아니라 ‘왜 현대에도 시조가 필요한가.’ 하는 점이다. 이 명제에 대한 대답은 시조의 문화적 폭과 깊이가 현대 사회에 어떻게 수용될 수 있는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결론적으로 시조가 현대에도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자유시가 잃어버린 리듬을 시조가 지닌 정형정신을 통해 보완하는 데 있다.
그런데도 현대문학에서는 이 리듬을 버렸다. 시마저도 그렇다. 시의 형식이 운율임에도 자유시는 운율로부터의 자유 정신을 기본으로 삼는다. 시적 원론의 자기모순에 봉착하자 내재율이라는 묘한 장치를 끌고 오지만 그 모순을 전적으로 극복할 수는 없다. 대표적으로 ‘자유시’란 다름 아닌 형식으로부터 자유정신을 의미한다. 시의 형식은 운율이고 내용은 정서와 사상이다. 실제 낭독에서 느끼는 운율이 내재율이라면 기미독립 선언문도 어린이 예찬도 형식상으로는 시적 영역이 되는 셈이며 극단적으로 어떤 과학 이론서도 율감으로 낭독 가능하다. 소리의 모형화가 리듬이다. 언어의 형식이 소리이듯이 리듬의 근거에서 보면 시와 산문과의 절대적 차이는 없다.
고전문학에서는 정격 율감을 기본으로 삼은 양식이다. 그러나 고정된 율격에 얽매이지 않았다. 작가의 개성에 따라, 또는 산문정신의 시대적 발현에 부응하면서 그 운용 방법도 정격률, 변격률, 자유율, 혼합률 등 다양하게 창작하였다. 이렇게 율격미를 변주함으로써 작품의 전체 흐름을 생동감 있게 재현하였다. 인간은 생래적으로 율감을 느끼는 존재다. 율격미를 인위적으로 배격한 현대는 거꾸로 산문 정신의 바탕 위에 다양한 율격미를 변주함으로써 잃어버린 율감의 향수를 자극해내는 새로운 미감을 창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고전은 리듬을 주조主調로 삼았으나 현대는 이 리듬을 배격한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모든 생명체는 리듬을 타고 흐르며 문예문이든 실용문이든 훌륭한 글은 모두 적절한 리듬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2) 문체미
전통 접맥의 다음 요소는 문체미文體美다. 문체미란 작가가 표현하는 특징적(characteristics) 작문법(composition)으로 문장에 드러나는 표현상의 빛깔이다. 문체란 작가의 미적 이상에 적합하며 개성이 잘 반영된 일정한 구조의 문학이다. 문학은 선택된 언어의 집합체다. 선택한 어휘, 조사, 어미 등을 어떤 조합으로 직조하느냐 하는데서 문체가 달라진다. 이 문체미를 통해 작가의 개성이 변별적으로 드러난다. 문체는 그 자체 통일되고 독립적인 의미의 조직체인 문장으로 이루어진다. 그런 면에서 율격미도 대표적 문체미에 속하지만 현대는 리듬을 배격한다는 현실적 상황을 고려하여 본고에서는 전항에서 독립시켰을 뿐이다.
작가가 작품 속에서 의도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특수하고도 개별적인 문체미에는 운율 다음으로 어조語調의 영향이 크다. 현대문학에서는 율감을 인위적으로 배척하고 있으므로 실질적으로는 문장의 분위기는 어조에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어조를 형성하는 요소로는 해학과 익살, 영탄, 생략, 6분법상의 강건체, 우유체, 화려체, 건조체, 만연체, 간결체 및 수사법상의 억양법, 연쇄법, 댓구법, 대조법, 반어법, 설의법 등과 의성어, 의태어 사용, 문장의 장단長短도 포함될 것이다. 그리고 어휘, 어구와 구문 등의 요소도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변칙적 어휘나 어구, 문장 구조 등은 점잖은 문어체 전개 속에서 분위기를 배가 혹은 반전시키는 구수한 입담이 될 수 있다. 댄지거와 존슨의 [문예비평 입문]에는 문체의 기본 패턴을 몇 가지 대립되는 짝으로 열거하고 있다. 딱닥한․부드러운 어조, 거만한․겸손한 어조, 냉정한․감정적 어조, 직선적․반어적 어조 등이 그것이다.
현대의 문장가들이 이러한 사실을 모를 리가 없지만 문제는 현대의 작가들이 이러한 다양한 문체미 활용에 고전문학보다 민감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현대수필 작법의 문체는 대부분 문어체의 평어 서술형이다. 이런 점에서 전통 문학에서 원용 가능한 주요한 요소는 고전문학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다양한 어조일 것이다. 이는 문체의 모든 요소들, 소리와 조직, 리듬, 낱말, 구문, 비유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문제가 되는 것으로, 소재와 독자에 대한 개성 있는 작가의 태도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어조는 문장 통어면에서 율감 다음으로 영향력이 큰 요소이다. 실제 언어 소통 과정에서 언어적 분위기, 일테면 억양, 표정, 동작 등이 미치는 영향은 담긴 내용보다 몇 배 더 큰 영향력을 발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연구 결과이다. 평범한 문장에서도 어조를 형성하는 주요 요소는 용언의 활용어미다. 국어의 다양한 존비법과 문어체, 구어체, 생략 등의 어미활용은 각양의 어조를 생성할 수 있다.
문학 표현의 통상적 활용어미는 문어체를 사용하며 문장도 평어 형태다. 그러나 고전문학에서 어조의 다양한 변주는 문학사적으로 민요, 내방가사, 사설시조에서 먼저 드러나는데 아래 민요 시집살이 노래를 보자.
형님 형님 사촌형님 시집살이 어떱데까
이애 이애 그 말 마라 시집살이 개집살이
(중략)
외나무다리 어렵대야 시아버니같이 어려우랴?
나뭇잎이 푸르대야 시어머니보다 더 푸르랴?
시아버니 호랑새요 시어머니 꾸중새요,
동세 하나 할림새요 시누 하나 뾰죽새요,
시아지비 뾰중새요 남편 하나 미련새요,
자식 하난 우는 새요 나 하나만 썩는 샐세.
(중략)
울었던가 말았던가 베갯머리 소(沼) 이 졌네.
그것도 소(沼)이라고 거위 한 쌍 오리 한 쌍
쌍쌍이 떼들어오네.
율감은 이렇게 서러운 내용도 흥청거리게 만든다. 여기에 보태어 다양한 어조 변화가 동반한다. 용언 활용면에서 살펴보면 대화체를 기반으로 의문형, 생략형, 반어형, 서술형, 감탄형 등이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어조를 바탕으로 하면서 내용면에서도 호응하여 시집살이의 매움과 서러움을 다양한 비유를 통해 해학과 풍자로 엮고 있다. 시집살이를 개집살이로, 자신은 썩는 새로, 밤에 남몰래 흘린 눈물이 연못을 이루었는데 자식들이 품에 안긴다고 풀어간다. 전체 2연 구조에 한시 배율의 대구로 이어진 12행이다. 그러다 마무리에는 2음보 첨가로 마무리하였다. 이 첨가 부분은 한 많은 사설을 다 풀어헤치고도 남은 서정이 될 수 있다.
개를 여라믄이나 기르되 요개 치 얄믜오랴
뮈온님 오며 리를 홰홰 치며 락 나리 락 반겨서 내닫고 고온님 오며 뒷발을 바동바동 므르락 나으락 캉캉 즛 요 도리암
쉰밥이 그릇그릇 날진들 너 머길쥴이 이시랴
두터비 리를 물고 두험우희 치라 앉아
건넛산 리보니 白松骨이 잇거 가슴이 금즉여 풀덕 여내다가 두험 아래 쟛바지거고
모쳐라 낸 낼싀만졍 에헐질 번괘라
작자 미상의 사설시조들이다. 평시조의 성리학적 권위가 담긴 점잖은 문장은 현대에서도 수필 문장의 기본이다. 그러나 위의 사설시조 표현의 어미활용 ‘-랴’,나 어미를 생략하고 명사로 끝낸 ‘도리암’, ‘-거고’, ‘-괘라’ 등 주제와 분위기를 살린 구사는 작품을 한껏 생동감 넘치게 한다. 첫째 수 강아지의 반동적 행위 묘사, 강아지에 대한 주인의 반어법적 협박과 둘째 수의 동물에 비유한 양반과 서민, 넘어진 거름무더기 앞에서의 위선 풍자 등은 재치 있는 묘사다. 짧은 한 편의 글 속에서도 다양한 어조 변화의 기법을 찾을 수 있다.
판소리 사설에는 현대 수필 창작에 응용 가능한 문장 표현 기법이 총체적으로 담겨 있다. 판소리가 지닌 음악 양식으로서의 율감은 물론이려니와 다채로운 어조를 형성하는 해학과 익살, 영탄, 생략, 수사법상의 억양법, 연쇄법, 댓구법, 대조법, 반어법, 설의법 등과 의성어, 의태어 사용 등이 가히 폭발적이다.
섬섬옥수 번듯들어 양 그네줄을 갈라잡고 선뜻올라 발구를 제, 한번굴러 앞이높고 두번굴러 뒤가멀어 앞뒤점점 높아갈제, 발밑에 나는티끌 광풍 좇아 휘날리고 머리위에 푸른잎은 몸따라 흔들, 푸른속에 붉은치마 바람결에 나부끼니 구만리 백운간에 번갯불이 흐르는듯 꽃도 툭차 떨어치고 잎도 담북 물어뵈니, 이도령이 그 거동을 보고 어안이 벙벙 흉중이 삭막 사대삭신 육천마디를 벌렁벌렁 떨며, 방자를 불러 말을 해야 할터인데 떨려서 부를 수가 있나. 하인보는데 떨 수는 없고 눈은 춘향에게 달아두고 입술만 달삭거려 건성으로 부르것다.
“이애, 방자야, 방자야.”
눈치 빠른 방자놈이라 도련님이 춘향 보고 벌써 넋나간줄 알았지.
춘향가 결연장면의 일부이다. 먼저 4음보의 율감이 전체 문장을 흥청거리게 통어하면서도 ‘머리위에 푸른잎은 몸따라 흔들’ 부분에서는 반음보를 변주한다. 또한 ‘도령이 그 거동을 보고 어안이 벙벙 흉중이 삭막 사대삭신 육천마디를 벌렁벌렁 떨며’에서는 정형율감에 파격을 운용한다. 특히 어조면에서는 ‘떨려서 부를 수가 있나’처럼 판소리사설 특유의 화자 개입이 일어나기도 하면서 ‘건성으로 부르것다’, ‘넋나간줄 알았지’ 등 구어체의 비겸양 어미를 활용하여 주인공의 심각한 서정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흔들어 재미를 더하고 있다. 어사의 춘향 편지 읽는 대목 다음에는 비속어가 노골적으로 사용된다.
방자 조을다 깜짝 놀라 깨어보니 편지가 눈물에 젖어 묵사발이 되었는지라. 방자 기가 막혀
“오메, 저놈의 어른이 남의 편지를 물걸레를 만들어 놨네그려. 아, 이놈의 어른아. 그 울고 남의 편지 물어내어.”
‘저놈의 어른’, ‘이놈의 어른아’ 등은 문맥상 모순되는 지칭이나 호칭이다. ‘묵사발’, ‘물걸레’도 서민적 상관물을 통한 어긋나는 비유이다. 이러한 변칙적 어조가 비극적 긴장미를 이완시키면서 결국은 독자의 감정을 더욱 짙게 순화시키는 묘미를 담고 있는 표현들이다.
우리가 이 박을 타서 박속을랑 끓여를 먹고 바가질라컨 부잣집에 팔어다가 목숨보명 살아나게 당겨주소. 강상에 떳난 배가 수천 석을 지가 실고 간들 저희만 좋았지 내 박 한 통을 당할 수가 있느냐. 시르르렁 실건 시르르렁 실근 시르렁 실근 당기어라 톱질이야. 시르렁 시르렁 시르렁 시르렁 식삭 툭 쾍. 딱 쪼개 놓고 보니 박속이 휑 하고 비었지.
흥보가 박타는 장면에도 다채로운 어조가 드러난다. 4음보 율격을 바탕에 깔고 있으면서도 자유율의 변주를 운용하고 있다. 어조도 ‘당겨주소’, ‘있느냐’, ‘톱질이야’, ‘비었지’ 등의 활용어미를 청유, 설의, 감탄, 독백조로 화려하게 구사하여 흥취를 돋우고 있다.
만좌 맹인이 눈을 뜬다. 전라도 순창 담양 새갈모 떼는 소리라. 짝작짝 허드니 모도 눈을 떠버리는구나. 석덜 동안 크잔치으 먼저 와서 참예하고 나려간 맹인들도 저희 집에서 눈을 뜨고 미처 당도 못헌 맹인 중로에서 눈을 뜨고 가다 뜨고 오다 뜨고 서서 뜨고 앉어 뜨고 실없이 뜨고 어이없이 뜨고 화내다 뜨고 울다 뜨고 웃다 드고 떠보느라고 뜨고 시원이 뜨고 일허다 뜨고
심청가에서 맹인들이 눈을 뜨는 절정 장면에서도 익살은 펼쳐진다. ‘실없이 뜨고 어이없이 뜨고 화내다 뜨고 울다 뜨고 웃다 뜨고’ 등은 상황에도 맞지 않는 표현이지만 그 어긋난 상황이 오히려 즐거움을 배가한다. 이러한 문장 기법은 모자람도 아니요 넘침도 아닌, 오로지 자신감 있는 장면 통제의 능력이다. 반면에 아래 문장은 같은 장면에서 고사와 한문을 사용하여 양반 흉내를 내면서 유식한 체한다.
얼시구나 절시구. 어둠침침 빈 방안으 불켠듯이 반갑고 산양수 큰 싸움에 자룡子龍 본듯이 반갑네. 흥진비래興盡悲來 고진감래苦盡甘來 날로 두고 이름인가. 얼시구나 절시구. 일월이 다시 밝아 요순천지가 되었네. 부중생남생녀不重生男重生女 날로 두고 이름이로구나.
판소리 사설에 드러나는 이러한 다채로운 문체미는 어디서 연유하는가. 이것을 정병욱은 서민예술의 성격에서 찾고 있다.
판소리 예술은 신흥 예술을 대표하는 소위 서민예술의 정화라고 불러 옳으리라고 생각한다. 바꾸어 말하여 단원이나 혜원의 풍속화에 나타난 서민들의 생활, 사설시조에 나타난 서민 의식의 반영, 그리고 후기 가사에 나타난 현실성 등, 신흥 예술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희극미, 이러한 요소들이 한덩어리가 되어 이루어진 것이 곧 판소리 예술이라는 말이 되겠다.
조선 후기에 등장하여 한 시대를 풍미했던 판소리의 저력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성리학적 규범, 사회 지배계층의 부패와 폭압 등 사회 모순에 대한 서민정신의 고양에 있을 것이다. 더구나 작품 속에 표출된 그 해방감이 세계에 대한 획일적 해석의 도덕적 관념에서 벗어나 해학과 풍자로 정서적 자극을 극대화하고 있다.
정병욱은 판소리는 서민예술의 정화라고 하면서 그 특징을 서민의식의 반영, 사실적인 표현, 희극미의 구현이라고 말한다. 더구나 판소리는 비극적인 내용도 희화화된 경우가 많다. 판소리 사설은 극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고 추임새도 가능하여 관중이 참여할 수 있는 예술양식이다. 판소리사설에는 일상어, 비속어, 의성어, 의태어 등을 도입하여 새로운 표현기법을 확립했다.
한국 현대수필의 전달 내용은 자아의 세계화로 인식하여 세계에 대한 작가의 인식이 자칫 관념적 가치관에 매몰되어 있음을 볼, 때 판소리 예술의 특징인 서민의식의 반영, 사실적인 표현, 희극미의 구현은 매우 의미심장한 지침이 될 것 같다. 그것은 당면하고 있는 한국 사회 현상이 조선 후기와 비슷한 양상이기 때문이다. 그 근거로 첫째 독자충의 지적 수준 향상을 들 수 있다. 5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작가는 독자보다 월등한 지적 수준의 계층이었기에 작가의 글 한 줄이 곧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었지만 현재는 독자의 비평 능력이 작가를 상회한다. 이에 병행하여 한국 서민들도 조선 후기처럼 매우 합리적 의식으로 변모하여 사회의 제반 구조에서 모순덩어리를 발견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사회, 역사, 철학의 내용을 담은 훌륭한 서적들이 다량 출판되고 있어 문학으로서의 수필 서적은 언어예술 본연의 기능을 발휘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참고로 판소리 사설과 달리 조선 여류 최고의 지성적 문장을 비교삼아 살펴보자.
세손世孫이 어미 떨어지기 싫어 저리 우니 두고 가자 하시기 혹 당신은 지극히 자애하시나 어미만 못하게 여기시나 어찌 생각하실 듯 하야 나려오오면 우희 그립삽고 올라가오면 어미가 그립다 하오니 환궁還宮 후後는 또 우희 그립사와 이리하오실 것이니 다려가옵소서. 한즉 즉시 안색을 고치시고 그리하라 하시고 세손을 다리고 가오시니
혜경궁 홍씨가 남편 사도세자를 잃은 후 그 아들인 세자를 타궐他闕에 떠나보냈는데, 몇 달 후 영조가 세손을 데리고 왔다. 돌아갈 무렵 우는 아들을 다시 데려가게 하는 장면이다. 숙연한 분위기를 어찌 판소리나 사설시조의 어조에 비길 수 있겠으랴만 현대 한국 수필 문장의 대동소이한 점잖음을 반성해 볼 일이 아닌가 싶다.
“자네의 수필을 읽으면 꼭 야단맞는 것 같다네.”
2014년 <부산수필문학협회>의 연말 총회에서 지금은 작고하신 황정환 수필가께서 오랜 벗에게서 들은 말이라면서 우리 수필가들이 경계해야 될 사안이라면서 공개하신 말씀이다. 자아의 세계화로 드러나는 고백적 문학양식인 수필의 특성상 수필 내용의 주류는 교훈적이고 논쟁적인 데서 결실된 참담한 문학성을 반성하신 말씀이다.
문체면에서 어조가 자아내는 분위기는 매우 구체적 미감을 환기한다. 전통 문학 작품에 구사된 이러한 다채로운 어조 구현의 변주는 현대 수필 작법에 지대한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김준오의 아래 주장은 다만 시론에만 국한된 점은 아닐 것이다.
변주, 곧 어조 변화는 미학적으로 보아 첫째 단조로움의 탈피라는 시적 긴장과, 둘째 시적 화자의 제재의 여러 면을 관찰하고 이에 적절한 태도들을 취하는 가변성을 지녀야 한다. 말하자면 리얼리티의 폭넓은 인식과 복합성의 미학을 시사한다.
문체는 작가가 현실을 어떤 차원 위에서 다루고 있느냐는 개성언個性眼과 함께 작가의 대현실태도對現實態度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현대수필 작가는 새로운 작법을 구현할 필요가 배가되는 이유다. 자기에게 맞는 문체, 주제에 맞는 문체, 상황에 맞는 문체를 구사한다는 것은 어려운 노릇이다. 그리 되기 위해서는 주제에 대한 확신과 글의 구성에 대한 철저한 기획, 미묘한 어감의 분화, 문장 부호 하나까지도 조절하는 등 시종일관 작품을 통어하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 나아가 문장에서 음색音色까지도 고려할 수 있다면 이는 시적 경지를 뛰어넘는 작풍作風이 될 것이다.
(3) 구성미
고전문학의 문단 전개 양상은 개성 발랄한 현대문학보다는 다양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수필에서 원용 가능한 고전문학 양식의 구성미는 기서결, 기승전결, 제문형식, 대화체, 선경후정, 대구 형식 등으로 나타나는 바, 이러한 요소들 중에서 앞 장의 운율미와 문체미를 겸하면서 원용할 수 있는 몇 가지 양식을 각 작품에 맞게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우리나라 고대 여류 수필의 백미白眉로 꼽히는 <조침문>과 <규중칠우 쟁론기>의 특징적 형식미도 개성 창출이 발랄한 작품이다. <조침문> 작가 유씨부인(兪氏夫人)의 필력은 현대 수필가들도 익히 참고해야 할 작법이다.
유세차(維歲次)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미망인(未亡人) 모씨(某氏)는 두어 자 글로써 침자(針者)에게 고(告)하노니, 인간 부녀(人間婦女)의 손 가운데 종요로운 것이 바늘이로대, 세상 사람이 귀히 아니 여기는 것은 도처(到處)에 흔한 바이로다. 이 바늘은 한낱 작은 물건(物件)이나, 이렇듯이 슬퍼함은 나의 정회(情懷)가 남과 다름이라. 오호 통재(嗚呼痛哉)라, 아깝고 불쌍하다. 너를 얻어 손 가운데 지닌지 우금(于今) 이 십 칠 년이라. 어이 인정(人情)이 그렇지 아니하리요. 슬프다. 눈물을 짐깐 거두고 심신(心身)을 겨우 진정(鎭定)하여, 너의 행장(行狀)과 나의 회포(懷抱)를 총총히 적어 영결(永訣)하노라.
(중략)
아깝다 바늘이여, 어여쁘다 바늘이여, 너는 미묘(微妙)한 품질(品質)과 특별(特別)한 재치(才致)를 가졌으니, 물중(物中)의 명물(名物)이요, 철중(鐵中)의 쟁쟁(錚錚)이라. 민첩(敏捷)하고 날래기는 백대(百代)의 협객(俠客)이요, 굳세고 곧기는 만고(萬古)의 충절(忠節)이라. 추호(秋毫) 같은 부리는 말하는 듯하고, 두렷한 귀는 소리를 듣는 듯한지라. 능라(綾羅)와 비단(緋緞)에 난봉(鸞鳳)과 공작(孔雀)을 수놓을 제, 그 민첩하고 신기(神奇)함은 귀신(鬼神)이 돕는 듯하니, 어찌 인력(人力)이 미칠 바리요.
(하략)
가슴에 품은 감정을 다 토로하고 있다. 인간 성정의 표출을 극도로 제약하던 사회구조를 극복하기 위해 바늘을 비유적으로 형상화한 기법은 탁월하다. 운율미는 비정격 산문율에 4음보 율격을 혼용하고 있으며 어조는 제문 형식의 주제에 맞추어 비장하고 영탄적이다. 신변잡기적 내용이라도 이만한 형식미 창출이라면 현대적 평론 감각이라도 고급수필이다. 이러한 기법은 <규중 칠우(閨中七友) 쟁론기>에도 나타난다.
이른바 규중칠우(閨中七友)는 부인내 방 가온데 일곱 벗이니 글하는 선배는 필묵(筆墨)과 조희 벼루로 문방사우(文房四友)를 삼았나니 규중 녀잰들 홀로 어찌 벗이 없으리오.
이러므로 침선(針線) 돕는 유를 각각 명호를 정하여 벗을 삼을새, 바늘로 세요각시(細腰閣氏)라 하고, 척을 척부인(戚夫人)이라 하고, 가위로 교두각시(交頭閣氏)라 하고 인도로 인화부인(引火夫人)이라 하고, 달우리로 울랑자( 娘子)라 하고, 실로 청홍흑백각시(靑紅黑白閣氏)라 하며, 골모로 감토할미라 하여, 칠우를 삼아 규중 부인내 아츰 소세를 마치매 칠위 일제히 모혀 종시하기를 한가지로 의논하여 각각 소임을 일워 내는지라.
일일(一日)은 칠위 모혀 침선의 공을 의논하더니 척부인이 긴 허리를 자히며 이르되,
"제우(諸友)는 들으라, 나는 세명지 굵은 명지 백저포(白紵布) 세승포(細升布)와, 청홍녹라(靑紅綠羅) 자라(紫羅) 홍단(紅緞)을 다 내여 펼처 놓고 남녀의(男女衣)를 마련할 새, 장단 광협(長短廣狹)이며 수품 제도(手品制度)를 나 곧 아니면 어찌 일으리오. 이러므로 의지공(衣之功)이 내 으뜸되리라."
교두각시 양각(兩脚)을 빨리 놀려 내다라 이르되,
"척부인아, 그대 아모리 마련을 잘 한들 버혀 내지 아니하면 모양 제되 되겠느냐. 내 공과 내 덕이니 네 공만 자랑마라."
세요각시 가는 허리 구붓기며 날랜 부리 두루혀 이르되,
이 작품은 가전체의 구성법을 차용하면서 비유와 대화체 전개를 유지하고 있다. 공을 다투는 부분과 원망을 하소연하는 부분이 뚜렷이 대조되는 구성이다. 인간 세태의 심리가 의미심장하게 함축되어 있다.
이 이외에 기서결의 3단구성, 기승전결의 4단구성, 선경후정의 2단구성, 한시 배율排律의 대구 형식 등은 현대수필에도 다양하게 변용되고 있어 그 운용 사례를 생략한다. 그리고 내용 면에서 한국문학이 한국적 자연풍토 및 민족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음풍농월적인 자연탐구의 문학이요 꿈과 슬픔의 문학, 멋의 문학, 은근과 끈기가 있는 문학이란 특질을 살려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지만 본고의 형식미 논의에 직접 관련이 없어 생략하기로 한다.
4. 전통 계승의 작품 분석
(1) 창작 의도
본고에서 대상으로 삼은 필자의 수필집 [조선낫에 벼린 수필]에는 작품마다 창작노트를 싣고 있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해야 한다는 견해에 동의하면서도 창작노트를 수록한 이유는 저간의 수필 작품평에서 만족도를 채우지 못한 경험 때문이다. 동시에 이 작품집은 일반 독지보다는 오히려 수필 작가나 등단 희망자를 겨냥한 발간의도가 강했다. 그리고 자작 수필집을 교재로 선택한 것은 고전적 전통을 의도적으로 계승 접맥한 현대수필 작품이 흔치 않음이다.
[조선낫에 벼린 수필]의 표제는 ‘조선낫, ‘벼린, ‘수필’의 세 어휘에 각각의 의도를 담은 세 편의 작품을 겨냥했다. ‘조선낫’은 전통 농경사회의 대표적 농기구로서 조선 여인을 대유하였다. 이는 고려 사모곡思母曲에서 낫을 어머니의 깊은 사랑으로 비유한데서 착안하여 예스런 주제를 현대적 산문율에 담아 본보기로서 <조선낫>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창작했다. ‘벼린’에 해당하는 작품은 <가덕도 푸른 물길>인 바, 이 작품의 의도는 문체미와 구성미의 요소이다. 즉, 수필이 붓 가는 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비문학적 제재도 고급 수필로 창작할 수 있음을 실증적實證的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수필이 될 수 없는 실용적 제재인 조선의 명장 이순신 대제大祭 행사를 선정하여 치밀한 기획 아래 창작한 작품이다. <수필>은 현대적 개념의 문학양식인 수필의 구체적 창작기법을 고금古今을 흘러 연면이 전승되는 강에 의탁하여 비유적으로 제시한 작품이다. 부수적으로 피천득의 작품 <수필>이 지닌 오류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도도 담았다. 결국 <조선낫에 벼린 수필>은 조선 여인의 이미지를 담은 작품 <조선낫>과, 조선 영웅의 업적을 벼린 작품 <가덕도 푸른 물길>과, 현대수필 창작법의 교본적 작품인 <수필>, 이 3종을 묶은 표제다. 이를 통해 전통적 기교를 계획적으로 적용한 현대수필 창작을 선보이고자 하는 의도를 담아 [조선낫에 벼린 수필]이라는 압축적 표제로 선정하였다.
필자가 제시한 수필 문학의 미학적 층위는 3단계로 설정하였다. 제재를 상징적으로 변주한 시적 경지를 가장 높은 수준인 ‘제재 치환置換’으로, 제재를 비유적으로 변주하거나 제재의 재해석을 가미한 수준을 ‘제재 각색脚色’으로, 사실적 제재에 긴밀 구성법과 문예적 표현을 가미한 작품을 ‘제재 윤색潤色’으로 정리했다. 이는 곧 모든 층위는 긴밀 구성법과 문예적 표현 가미를 기반으로 한다는 전제이다.
필자의 고전 접맥 수필 작법의 연원은 자작시조 제2집 [강, 물이 되다]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여기에는 연작으로 된 장편사설시조 <황사黃史 이야기> 6편과 <산할머니 이야기>, <배달겨레 이야기> 등 총 8편이 수록되어 있다. 연작시 <황사 이야기> 6편은 첫수를 판소리의 허두가虛頭歌로 시작하여 친일세력에서부터 해방 후의 독재권력, 친독재 세력, 친독재 언론, 우매한 민중 그리고 독재 저항 세력 등을 판소리 사설의 작법으로 창작한 것이다.
빛바랜 두루마리의
카멜레나 얘기렷다.
절대 명물 생길 적에 불후不朽 명장 솜씨로구나.
천지만물 지은 것은 조물造物의 뜻이 있고, 우리 아이 태어날 적 삼신할매 점지 있고, 씨 없는 수박에는 먹기 좋은 친절 있고, 복제동물 만든 데는 질병 고칠 인술仁術 있고, 좋은 제도 만든 데는 인심 후한 세상 있어 순풍에 돛단 듯 쌍기러기 날개 편 듯 세월은 그저 아지랑이 자욱한 봄날 같은지라.
이와 같은 화평 천지에 참으로 맹랑한 일이 하나 있으니 말 잘하고 글 잘하는 명물이 시궁창과 강물 사이를 들락날락 날락들락 하면서 강물아 뒤집혀라, 시위야 내려라고 쌍나팔을 불고 발광을 하는구나.
(중략)
아, 이렇게 천의무봉天衣無縫스럽게 변신력, 적응력, 번식력에다 권력, 재물 수집력까지 다재다능하게 발휘하면서 연년세세 세세년년 승승장구 호의호식 자자손손 만만대를 부귀영화 누리게 되니 이 아니 좋은 세상인가.
지역 따라 색깔 따라 온갖 재미있고 고소한 먹이감을 대서특필 고성방가로 전국적 네트워크를 동원하여 총천연색으로 와글와글 휘날리며 벌이는 두억시니 굿판이 점입가경이렷다.
그래 이제는 간도 배 밖으로 기어나와 물독사님의 무병 장수가 곧 나의 영달이라던 일념도 웃기는 말씀의 과거지사. 시절 따라 세월 따라 물독사 없는 강물에 까짓 니가 잘나 일색이더냐 내가 잘나 명물 되어 영생불사永生不死 초영장류로의 진화를 이룩했다고 선언하고설랑 -잠시 귀 좀 빌리세. 이 중 어떤 놈들은 자칭 어둠 속 제왕이라고 한다는 소문은 들었는지?- 천상천하 유아독존 기고만장이로구나.
사람아
이 강 굽이 너머
또 흙탕물을 마시랴오?
- 황사(黃史) 이야기․4, 부분
친일에 이어 독재 부역 언론을 풍자하면서 그 속성을 변신의 귀재 카멜레온과 잔혹한 공격력의 하이에나의 DNA를 합성한 신조어 카멜레나로 명명하여 풍자하였다. 구성이나 분량면에서 수필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지만 필자가 사설시조로 창작했기 때문에 수필은 아니다.
이러한 변칙적 시조 작품들이 진화하여 앞장에서 보인 <강시 경력>, <쥐구멍에서 쏘아올린 큰 공>의 정격률을 필두로 하여 다양한 율격미에 문체미와 구성미를 결합한 전통수필을 창작하게 된 것이다.
(2) 전통 접맥 요소
한 편의 작품 속에는 작가가 의도하는 미적 요소들이 독립적으로 산재해 있는 것이 아니라 교집합적으로 엮이어 구조적으로 직조된다. 예컨대 율격미의 문장도 전반적으로 흐르는 산문율 속에 정격과 변격이 교차되기도 하고, 여기에 다시 각양각색의 문체미와 다양한 구성미가 뒤섞여 총합적으로 그려진다. 따라서 본고의 전통 기법 원용 탐색의 논지에 충실하기 위해서 앞장에서 고찰한 방식으로 <율격미, 문체미, 구성미>의 각 요소들을 분리해서 추출하기란 지난한 문제다. 이런 이유로 제4장에서는 율격미를 중심으로 작품을 선별하되 동시에 문체미와 구성미를 형성하는 주요 요소들을 추출하는 방법으로 논의를 진행하려 한다. 아울러 특별히 문체미와 구성미에 의미를 둔 부분도 일부 추출해 보겠다.
율감律感은 모든 문장을 통어通御한다는 견해를 지닌 필자는 현대시조를 40년 가까이 창작하면서 4음보의 율격미 운용이 몸에 배어 있어 모든 글에 자연스럽게 율감이 흐르는 문체를 구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현대수필은 산문문학이므로 조선의 가사문학처럼 한 편의 작품을 통째로 정격률로 구사하는 경우는 없다. 반면에 시조는 4음보 정형률이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장편 사설시조는 상당한 변격을 유도하는데 이러한 기법을 구사하면 율감이 출렁거리면서 흥취를 돋운다. 현대인의 서정적 율감에 맞게 일반적으로는 산문율을 바탕으로 하면서 적당한 조율에 의한 정격률과 변격률을 다채롭게 변주해 보았다. 따라서 필자의 창작 과정에서 율격미를 원용한 작법 유형을 단선적으로 분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굳이 작법상의 전반적 운용 기법을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는 있을 것 같다.
1. 정격률, 변격률, 대구율對句的, 산문율 등을 때로는 단독으로, 때로는 복합적으로, 때로는 다면적 교집합으로 구사한다.
2. 율격미에 맞추어 주제와 제재의 성격에 따른 문체미를 구사한다.
3. 독자의 흥미 유도를 위해 화소話素의motif 효과적 배치를 통한 구성의 긴밀성을 유지한다.
작품 전체를 정격률에 기반하여 부분적 변주를 구사한 장편 사설시조의 보법을 원용한 작품은 <강시 경력>과 <쥐구멍에서 쏘아 올린 큰 공>이다. <강시 경력>은 초장과 종장은 정격을 구사하면서 중장에 해당하는 부분은 매우 긴 사설을 펼쳤다. 4음보 정격과 파격을 부정기적으로 혼용하여 읽기의 변화를 유도했다.
강시僵屍가 겅중껑충 백주대로白晝大路 활보한다.
완벽한 재생 능력 회색피부 이식 후에 백마금편白馬錦鞭 명품 옷에 귀빈貴賓으로 납시셨다. 희번덕 이마에다 똥별 계급 하나 달고 굵직한 목덜미엔 녹슬은 청동 군번줄! 딸랑딸랑 매달고는 여덟팔자 걸음이다.
(중략)
애시당초 허장성세 무적無籍의 허공 경력, 허풍쟁이 장삿속의 과대포장 튀밥 경력, 교활한 사기꾼의 애매모호 카멜레온 경력이라. 이놈들은 증서로 대조해 보면 근거는 빈 깡통이라 들통나기 마련이지만. 허나, 어디 세상살이가 이런 시시콜콜 일상사를 일일 대조하겠더냐. 마음씨 고운 대중들이 지레짐작으로 알고 입을 다물 뿐이렷다. 눈앞의 오리너구리라. 오리로도 보고 너구리로도 보면서 대충대충 외면하지.
(중략)
입문만 해 놓고 훌쩍 사라져서는 오랜 세월 지룡地龍을 파먹다가 이제 돌아와서 경력자로 회춘하여 용무리에 끼인 강시 경력자들이시여. 인생 백세 시대를 맞아 은퇴 후의 재등장에는 강시경력이 녹용영지鹿茸靈芝 보약이라. 인생도 길고 예술도 긴 무병장수 남은 생애 만수무강 아니련가.
한 세상 원로 고물古物로 부귀영화 누리소서.
문단 세계에도 팽배한 군대식의 선배의식을 풍자했다. 특히 경력 단절 후 복귀자들의 선배연先輩然하는 행태를 사설시조의 풍자, 해학의 기법을 운용하면서 조롱했다. 호흡의 유려함 유지를 위한 만연체 중심으로 엮으면서 반어와 역설의 냉소적 어조를 사용했다. ‘허공 경력, 튀밥 경력’ 등 어휘 조합도 풍자를 노렸으며 종장 부분에서는 ‘고물古物=고문顧問’의 언어유희로 마감했다.
고전문학에서 장편의 사설시조는 4음보音步의 변주가 매우 심하면서 문체미도 적극적으로 구사하는 구조다. 그러므로 현대수필 작법에 원용하기에는 정격 일변도의 가사보다는 훨씬 유리하다. 같은 교술 양식이라도 가사는 점잖은 표현의 4음보 정격이므로 현대적 서정에는 맞지 않다. 오히려 사설시조적 보법과 표현이 풍자나 해학, 어조의 다양한 변화 등도 마음대로 구사할 수 있다.
사설시조와 유사하나 종장의 형태를 깨뜨려 시조의 구조를 벗어난 작품으로는 <쥐구멍에서 쏘아 올린 큰 공>이 있다.
쾌재快哉라, 찍찍 - Cheep Cheep, 새날이 밝는도다!
갑자무자甲子戊子 자자년子字年을 애타게 기다리며 숨죽인 숱한 세월 - 10년 하고도 삼백 예순 날, 십이지十二支 축생畜生에는 고양이가 없어 어깨춤을 추었건만, 오호 애재嗚呼哀哉로다. 돼지에게 뜯겨죽고 개에게 물려죽고 닭에게 쪼여죽고 뱀에게 감겨죽고 재수가 없는 동족 소 뒷발에 밟혀죽고 …. 긴긴 세월 속에 잔나비, 양, 토끼해만이 겨우 숨을 쉬었더니 고진감래苦盡甘來로다!
(중략)
오호라, 희희喜喜로다. 무자戊子 쥐의 부활이로다. 쥐구멍에 볕이 들어 은혜와 사랑이 철철철 넘치는 세상이라. 웰빙well-being 시대 요즘 세상은 애완용 고양이도 알밥을 먹는 세상, 이러헌 평화 세상 또 어디 있을쏘냐. 60년 전 앵돌아선 남북도 화해무드요, 동서도 화합이니, 빈부 갈등 안팎 갈등 모다 해소하고 화평세상 도래로다. 세상 사람들아, 올해는 꿈속에 쥐에게 물리면서 ‘천석만석千石萬石!’ 소리 쳐서 모두 다 부자 되고, 쥐 DNA 이식하여 딸 아들 펑펑펑 낳고, 사 방팔방 세계화 시대를 쥐 풀방구리 드나들 듯 종횡무진하시길 축원하면서, 오늘 새날을 맞이하여 60년간 갈고닦은 바이오bio 생명공학의 첨단尖端 쥐들이 억조창생 기氣를 모아 알을 하나 낳으리니. 환희歡喜의 무자년에 ‘쥐구멍에서 쏘아 올린 큰 공’ 하나가 온 누리를 밝히리라.
해야 솟아라. 박두진의 해야 솟아라. 칡범과 사슴이 함께 노니는 세상, 어둠을 살라먹고 둥근 해야 솟아라, 솟아라! - 찍찍 - 펑!
역시 전체 흐름을 정격률 위주로 하되 부분적으로 변격을 구사한 작품이다. 제목부터 조세희의『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패러디하여 쥐의 수난과 업적을 나열하면서 쥐띠 해를 맞아 화합 정신의 새 시대 도래를 희망했다. 화합 주제의 시 김남조의 <설일>, 박두진의 <해>를 활용하면서 서두에 한자, 한글, 영어를 동시 사용하여 글로벌 시대 도래를 암시하고, 고전적 요소 가미를 위해 한자어를 병용하여 고풍스런 맛을 첨가하였다. 어조도 세태풍자와 해학을 겸한 경계와 힐난詰難의 리듬을 만연체의 병렬 구조로 엮었다.
부정형의 산문율에 부분적으로 정격률을 혼합하는 구조는 필자가 선호하는 작풍作風이다. 이는 산문율 속에 부분적으로 정격률이 개입함으로써 독자의 가슴에 잃어버린 율감을 생성시키게 하는 효과를 노렸다. 대표적으로 <강생이 어르기>가 있는데 크게 3문단을 인용한다.
(전략)
“불매 불매 불매야 이 불매가 뉘 불매고 내 강생이 꽃불매지.”
칠남매 아들딸을 한 번도 안아주지 않으셨다는 아버지께서도 손주 앞에서는 무거운 체통을 내려놓으셨다. 조선 안방마님 같던 어머니도 ‘어이구, 내 강생이!’를 입에 달고 계셨다. 강생이는 강아지의 경상도 사투리. 돌을 갓 지나 재작재작 걸음마를 배우면서 강생이들은 할아버지 앞에서는 불매를 해달라고 두 팔을 벌리고, 할머니 앞에서는 조막조막, 진진을 같이 하자고 손바닥을 내밀었다.
(중략)
문득, 자던 놈이 벌떡 일어나 바깥을 내다보고 ‘옹옹’ 짖는다. 누워 있던 놈들도 덩달아 ‘공공!’ 짖어댄다. 아이고, 내 강생이! 하마 밥값들 하는구나. 동네방네 벗님네들, 내 강생이 한번 보소. 두 달도 안 된 것이 하마 벌써 짖는다오. 아무렴 뉘 새끼라고. 우리 강생이들이 타고난 천재로고. 이곳저곳 수소문해 영재교육 시켜야겠다. 고양이 모셔 와서 외국어도 배우고, 얼룩소 외양간에 그림도 그려보고, 종달새 선생 만나 노래도 배운 뒤에, 딱따구리 둥지 찾아 피아노도 등록하자.
내 품을 떠나거든 제 타고난 개성 따라 특기대로 잘 살거라. 종이 물고 노는 너는 과학자가 되겠구나. 꽃잎 뜯고 앉은 너는 예술가로 자라겠네. 판검사 되려거든 물지 않는 인품 되고, 정치가 되려거든 짖지 않는 인물 되라. 명품입네 뽐내는 헛것들 닮지 말고, 먹이 앞에 꼬리치는 애완견 되지 말고, 주인 향한 일편단심 변함없이 지니거라. 못된 인간 많은 세상, 사람 닮으려 하지 말고, 이 세상 구석구석 도둑 없이 살게 해라. 잔병치레 하지 말고 무럭무럭 자라거라. 어허 둥둥 내 강생이.
제시문의 첫 문단은 문장 구조가 대구율을 이루는 부정형의 산문율이다. 생략된 부부은 대부분 이 유형으로 전개된다. 두 번째 문단은 산문율에 정격 4음보율이 혼재하는 구조인 바, 최근의 조기교육을 해학적으로 풍자한 4음보 정격률이다. 마지막 문단은 현대 사회의 육아, 혼인, 사회모순 등을 해학, 풍자하면서 4음보율의 짧은 문장과 긴 문장을 교차 사용함으로써 경쾌한 분위기의 호흡을 조절하였다. 전체적으로 문장의 유려流麗한 호흡과 경쾌한 리듬에 주안점을 두었으며 강아지와 손주를 오버랩시켜 두 제재 사이를 자유로운 연상수법으로 시선을 왕복시키면서 식상한 손주 이야기를 벗어나 대상을 강아지로 대체함으로써 중의적 재미를 유도하였다. 어휘는 강아지 및 육아, 어린이 관련 고유어를 발굴 사용하였다. 어조는 내용에 호응시켜 문장의 장단을 대립시킨 긴장과 이완을 유지하면서 손주를 보는 즐거움이 담긴 유희적 분위기를 자아내도록 했다.
아래 작품들도 비슷한 유형으로 독자의 흥겨운 분위기 형성을 위해 주로 시작 부분에서 잘 이용한다.
빨래를 치댄다. 어깨 출렁 엉덩이 들썩, 온몸으로 치댄다. 목줄띠에서 옮은 완고한 땟국도, 뱃가죽에서 눌어붙은 게으른 땟자국도, 발가락에서 밴 고리타분한 땟국물도 함께 치댄다. 머릿속에 남아 있는 꼬장꼬장한 생각도 치대고, 소파에 뒹굴던 꼬질꼬질한 몸뚱이도 치댄다. (빨래를 치대며, 부분)
비정형의 율감과 동시에 대구적 흐름을 타고 있으며 다소 비속한 노골적 어휘 사용으로 해학적 비유를 겸하여 신선한 문체미를 자아내도록 구사했다. 아래 작품도 유사한 구조다.
전자레인지 회전판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꽁꽁 언 곰국 덩어리를 안고 흥얼흥얼 잘도 돈다. 흐릿한 조명발에 소음 같은 전자음악. 곰국이 살살 녹아 은근한 맛을 내면 이 맛 저 맛 어울려 한 세상 한 끼 식사 금상첨화 아니더냐. 물레방아도 아닌 것이 실시리시르렁 실시리시르렁, 시름의 한세상을 흥겨이 돌아간다.
(중략)
돌려서 익히는 게 어디 한두 가지더냐. 국화빵도 돌리고 솜사탕도 돌리고 뻥튀기 기계도 돌린다. 돌리는 게 어디 음식뿐이랴. 바람개비도 돌리고, 상모도 돌리고, 고스톱 화투짝도 돌린다. 잘못은 남 탓으로 돌리고 영광은 내 덕으로 돌리고…. ‘돌리고 돌리다 보면 좋은날 꽃피는 날도 돌아올거야.’라는 대중가요도 있거늘.(전자레인지 앞에서, 부분)
비정형 율감에다 의태어, 의성어를 사용하면서 밑줄 친 부분처럼 용언 생략과 감탄형의 설의법 어미 사용으로 어조의 변화를 유도했다. ‘돌아간다’는 어휘의 반복률로 세상사의 흥취와 풍자도 고려했다.
아래 작품은 대구적對句的 문장의 율감을 구사했다. 운용한 대구적 율감은 각 문장을 통해 작품 전체를 관류하지만 때로는 문단 중심으로 구성하기도 했다.
봄은 꽃으로 아름답고 가을은 잎으로 아름답다.
봄과 가을은 모두 붉게 번지는 꽃불의 계절이다. 봄꽃은 낱낱의 송이마다 꽃으로 피어나고, 가을잎은 삼삼오오 벗을 모아 단풍으로 번져난다. 청춘靑春의 피부처럼 싱그러운 꽃은 혼자서도 꽃이지만, 노년老年의 피부처럼 까칠한 낙엽은 어울려서 꽃이 된다. 청춘은 화병에 꽂아놓고 감상하는 꽃이고, 노년은 책갈피에 끼워두고 사색하는 단풍이다. 화사한 꽃같이 아름다운 청춘은 꽃봄花春의 계절이고, 메마른 단풍같이 아름다운 노년은 잎봄葉春의 계절이다.
(중략)
꽃은 떨어져 씨앗을 남기고 잎은 떨어져 눈牙을 남긴다. 지는 날까지 붉은 빛을 잃지 않는 꽃봄花春 인생은 열매를 잉태해서 행복하지만, 연둣빛으로 태어나 푸르른 삶을 살다 붉게 어우러지는 단풍 되어 한 줌 부엽토腐葉土로 돌아가는 잎봄葉春 인생은 다 주고 가는 껍데기라서 행복하다.(노인 예찬, 부분)
대구율과 동시에 제재를 꽃 이미지로 변주한 시적 서정의 글로서 청춘(봄꽃)과 노인(단풍) 특성을 시정詩情의 이미지로 형상화하였다. 제재를 다양하게 긍정하면서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비교, 대조를 연출한 끈질긴 대구적 율감의 전개를 구사했다. 전반적으로 만연체를 기반으로 하고, 어휘도 꽃봄, 잎봄이라는 고유어 신조어를 구사하면서 노인 예찬이라는 주제에 맞게 애잔하면서도 우아한 어조를 이어갔다. 전체적 내용 전개는 병렬로 진행하되 낙엽이 지고 흙으로 돌아가는 시간적 구성의 흐름을 잡았다.
위의 <노인 예찬>이 문장 중심의 대구율이라면 아래 작품은 문단 중심의 대구율로 구성한 것이다.
밥상은 어머니의 손맛으로 차려내고, 식탁은 아내의 정성으로 마련한다. 과거완료형인 어머니의 밥상에서는 언제나 그리움이 묻어나고 현재진행형인 아내의 식탁에서는 오늘도 행복이 번져난다.
밥상과 식탁은 둘 다 사랑이 주재료主材料이다. 밥상의 재료는 텃밭에 풍성하고, 식탁의 재료는 냉장고에 넉넉하다. 어머니는 부엌문턱을 넘나들며 풋것들을 캐어와 밥상을 차리고 아내는 주방을 맴돌며 영양가를 계산해서 식탁을 마련한다.
(중략)
어머니의 부엌에는 시시때때로 불청객들이 기웃거린다. 마당을 뛰놀던 조무래기들이 누룽지 조각을 찾아 문턱을 들락거린다. 복슬강아지도 코를 킁킁거리며 부지깽이 끝에 얼쩡거리고, 닭들도 덩달아 문턱을 넘어들다 신발에 얻어맞기도 했다. 그래도 부엌 입구에 수북이 쌓여 있는 땔감 사이에서 어른들 몰래 달걀을 발견하는 뜻밖의 소득도 있었다. 가슴 콩닥거리는 선물이었다. 구석에는 큼직한 물드무가 점잖게 앉아 있고 맞은편 부뚜막에는 겨우내 온기가 가시지 않는 무쇠솥이 조왕신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중략)
주방은 아내의 전용공간이다. 아내의 주방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긴 하여도 역시 만원이다. 가장자리에는 크고 작은 온갖 전자기기들이 하루 종일 눈을 뜬 채 반짝거린다. 각종 주방기계들이 일손을 대신하는 편리한 세상. 이것은 새벽부터 쉬지 않고 바장이던 우리 어머니의 아들딸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해서 발명한 덕택이다. 그래서일까. 아내의 세월에도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밥솥의 신호. 무쇠밥솥이든 전기밥솥이든 밥이 끓고 뜸을 들이는 시각에는 한결같이 추억의 증기기차를 몰고 온다. 밥이 절정에 이르면 무쇠솥은 소댕이 들척거리며 기적소리를 내었다. 그 향수를 잊지 못하는 아내의 압력밥솥도 추를 흔들며 칙칙폭폭 증기기관차 소리를 낸다. 이것은 어쩌면 어머니의 밥상에 대한 그리움이 그 아들딸들의 뇌리 깊숙이 스며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밥상과 식탁, 부분)
위 작품은 앞 부분에서는 문장 단위로 3, 4음보의 대구율을 형성하다가 이후는 밥상과 식탁으로 대응하는 문단 단위로 대구율을 형성하는 구조다. 내용상 어머니에게 더 큰 비중을 두면서도 작품의 말미는 어머니와 아내의 오버랩으로 중첩시켰다. 상이한 두 제재를 대응하여 비교, 대조, 대구법을 활용하여 두 제재의 공통점과 상이점을 다정다감한 어조로 섬세하게 부각시켰다.
다음 작품도 대구적 율감이지만 원근법을 차용한 공간적 리듬감에다 병렬적 율감을 첨가한 구조다.
항아리는 비워야 채워지는 법. 없어진 것들 대신 내 골프장에서는 채워지는 특별한 것들이 많다. 고개를 들고 멀리 하늘을 우러르면 학의 날개로 빙 둘러선 산등성 아래 짙푸른 수목이 있고, 그 숲 위로 훨훨 나는 산새들이 있고, 이따금 내 발자국 소리에 놀라 푸드득 솟아 나를 소스라치게 하는 꿩이 있고, 새순을 찾아 옹종거리는 산토끼가 있다. 고개를 낮춰 가까이 보면 바윗덩이 사이를 굽이굽이 흐르는 시냇물이 있고, 철따라 피어나는 온갖 꽃들이 있다. 눈을 돌려 아래를 굽어보면 능선이 휘어진 길마 품에 옹기종기 산골마을이 정겹다.(밭두렁 골프, 부분)
이 작품은 특히 구성면에서 화소의 배치에 유념한 작품이다. 그것은 특이한 골프장 상황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배려하여 골프장의 특성과 분위기를 먼저 묘사한 다음 풀베기 골프의 동기를 제시하고 골프 소감을 전개하였다. 골프 문외한 - 실은 필자도 문외한이다.- 의 이해를 위해 전문용어 사용 때는 그 의미를 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삽입하였다. 다양한 수사 기교를 활용하여 문체미를 고양시켰다. 원근법을 통한 시선 이동 묘사와 은유법, 열거법, 점층법, 활유법 등을 구사하였으며, 시각과 촉각의 공감각을 운용하고, 단락의 연쇄법 연결을 의도하였다. 중반 이후에서는 감각적 표현의 묘미를 한껏 살려 문학성을 높이려고 했다.
수필의 산문적 성격으로 말미암아 정격의 율감을 계획적으로 배려하지는 않았으나 문장의 유려한 분위기 형성을 위해 부분적으로 대구율, 정격률, 산문율 등을 혼합 사용한 작품들이 많다.
인생이 강물이라면 수필은 물결이다. 강물은 순리로 흐르고 물결은 윤슬로 반짝인다. 순리로 흐르는 물줄기에는 역동逆動의 힘이 가미되어야 물결이 일어난다. 이 역동의 힘이 미학적 변주의 원동력이다. 이 변주는 작게는 반짝이는 잔물결에서부터 영롱한 물방울을 거쳐 찬란한 물보라에 이르기까지 다채롭게 형성된다.
물살이 세든 약하든, 흙탕물이든 청정수든, 살얼음이 잡혔든 너테가 엉켰든,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순행의 몸짓은 수필이 아니다. 계절의 아름다운 채색을 담아 아무리 우아하게 굽이지더라도 물줄기는 한 가닥 삶의 일상일 뿐이다. 또한 아무리 특별한 경험이 물줄기에 얹혔더라도 그 토막은 일상의 한 조각일 뿐 수필은 아니다. 흐르는 그대로의 물길 토막은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해도 신변잡기에 불과하다. 순행의 물줄기가 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역동逆動의 변주變奏를 일으켜야 한다. 이 변주가 미적 감각을 발아發芽시키는 수필 창작의 씨앗이다.
시간을 묵히고 공간을 누비며 인류 발자취의 도도한 흐름으로 굽이지는 강. 그 강물에는 다양한 물줄기들이 섞여 뒹굴면서 파란만장한 삶을 엮어낸다. 역사의 강물은 수평을 지향하고, 인생의 물줄기는 행복을 추구하고, 수필의 물결은 아름다움을 창조한다.(수필, 부분)
첫 두 문장은 4음보율의 정격으로 하면서 이하는 부분적으로 대구율을 살려가며 부정형의 산문율로 운용했다. 다양한 수필의 형식처럼 강물의 흐름도 항상 일정한 것은 아니다. 도도하고 유유한 흐름 속에 다양한 물결과 굽이로 시공을 엮어가는 모습을 담아 율격이 있는 듯 없는 듯 문장을 구사했다. 피천득의 작품 <수필>이 지닌 오류 탈피를 위한 대체 작품의 성격으로서, 창작적 미감에 의거한 수필 작법 제시한 작품이다. 수필 창작론의 교술적 내용을 비유적으로 형상화하여 강물에 일어나는 물결의 다양한 변주를 수필 창작법에 치환하였다. 아래 작품도 이와 유사한 성격이다.
조선낫은 살림꾼 조선 여인의 단출한 매무새다. 날[刃]만큼이나 긴 슴베 끄트머리에 나무자루를 달랑 꽂은 모양이 마치 무명 홑적삼에 짤막한 도랑치마를 걸친 다부진 아낙네 모습이다. 종아리에 닿는 짧은 치맛자락도 행여나 발에 밟힐까 저어하여 낫갱기로 중동끈을 질끈 동여매고는, 풀을 베고 곡식을 거두고 나뭇가지를 치는 바지런한 여인이다. 그녀의 오지랖은 대천한바다보다 넓다. 논두렁, 밭두렁, 논길, 밭길, 따비밭, 다랑논을 재바르게 오가며 구렛들이든 천둥지기든 이 논배미 저 논배미 에돌아 감돌아, 봄여름 풀베기며 가을걷이, 겨울채비에 야산 중턱까지도 휘돈다.
(중략)
평생을 그녀와 함께 살면서도 낫 놓고 ㄱ자도 몰랐던 까막눈 남정네들은, 이 여인이 ㄴ도 ㅅ도 이미 몸으로 알고 있는 유식한 여인일 줄은 꿈에도 몰랐으리라. 그래도 이 조선 여인은 내색 않고 평생을 함께 살았다. 숫된 남정네들도 제 여인의 품격品格을 알고는 있었나 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격조格調 높은 여인을 가슴에 품어 풍년가를 부르고 싶은 남정네는, 예나 제나 반드시 한쪽 무릎을 땅바닥에 꿇고 정중히 두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니겠는가.(조선낫, 부분)
부정형 산문율로 형성된 이 작품은 구성미 부분에서 많은 고려를 하였다. 낫의 성격, 기능, 형태, 제작과정, 역사 등과 조선 여인의 동질성 조화를 통해 독자의 흥미 유발이 지속되도록 긴장감을 유지시키려 노력했다. 내용면에서는 고려가요 사모곡을 연결하여 낫을 ‘어머니 = 조선 여인’으로 치환하였다. 조선 여인의 삶과 낫의 공통점을 오버랩시키기 위해 낫의 외양, 기능, 제작 과정, 역사 등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조선 여인의 품성을 녹여내었다. 여성적 섬세한 표현 유지와 자존감을 살리기 문체는 조용하고 점잖은 문장 중심이지만 때로는 단호한 표현을 구사했다. 특히 마무리에서 조선 여인의 품격을 제시하면서 현대적 청혼 문화를 수용했다. 이것은 조선낫을 섬세하게 사용할 때는 반드시 한쪽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내밀어야 하는 농부들의 자세를 활용한 것이다.
조침문과 같은 고전의 제문祭文 형식을 현대적으로 변용한 작품으로는 이순신 장군 대제 행사를 소개한 작품 <가덕도 푸른 물길>이다. 수필의 재료는 그 폭이 매우 넓다고 하고 형식도 자유라고 하면서도 실상 작품은 정보전달에 머물러 서정성이 결여되는 경우를 본다. 그래서 문학이 되기 곤란한 어떤 실용적 글감이라도 격조 있는 수필로 창작할 수 있다는 모범을 보이기 위해 구성과 제재, 표현 등 전체적으로 매우 치밀한 기획 아래 엮은 작품이다.
푸른 물길이 함성으로 밀려들고 있다. 전라좌수영에서 발진한 물길은 사천, 삼천포, 진해만을 지나 어느덧 가덕도 천성포구에 찰방거리며 추모의 물길을 불러 모은다. 물길을 몰고 온 바람은 이미 뭍으로 먼저 올라와 천성진 허물어진 옛 성곽에 둘러앉았다. 연대봉 봉수대에서 번져 나온 옅은 안개도 제단 앞머리에 앉았다. 보름 전에 올린 충렬사 고유제告由祭로 이미 천지사방에 소문이 났나 보다.
세상 사람들이야 알든 모르든 말 없는 세월 무심히 흘려보낸 푸른 물길은 바람을 싣고 가덕도로 모여든다
(중략)
장군의 깃발이 크게 한 번 일렁이자 묵연黙然히 두 발 모으고 섰던 바람도 파도도 일거에 함성되어 부복俯伏 후에 평신平身한다. 초헌례를 시작으로 아헌례亞獻禮, 종헌례終獻禮에 헌관獻官들 국궁재배鞠躬再拜 모두 끝나 내빈들 두 손 모아 헌화 분향하니, 세월 속의 영령들께서 노여움을 거두셨는지 천성산 상상봉의 천년 소나무도 고개 끄덕이며 답례한다.
지극정성 제물祭物에 흠향歆饗하시는 영령들의 뒤풀이에 함께하며 이제야 원寃을 푸셨는가. 송신악送神樂 울려 퍼지자 일본 침략의 암울한 흔적 속에 남모르게 묻혀 있던 이 땅의 어진 백성들도 굳은 몸을 뒤척인다. 눌차왜성, 성북왜성, 외양포 일본군 포대진지, 대항 인공동굴에서 눈물 훔치며 줄줄이 빠져나와 곳곳이 눈에 익은 가덕 해안로를 한 바퀴 빙 둘러 본다. 얼마 만에 다시 보는 그리운 풍경인가. 하얀 옷깃 여미며 아쉬운 마음 뒤로하고 다시 갈마봉, 웅주봉, 매봉을 휘돌아 연대봉으로 오르더니, 영령들의 뒤를 따라 봉수대 푸른 연기로 가뭇없이 승천昇天한다.
멀리, 세상의 평화를 염원하는 수평선을 펼쳐놓고 넘실대는 남해 바닷물은, 예나 제나 변함없는 푸른빛으로 햇빛 아래 반짝이고 있다.(가덕도 푸른 물길, 부분)
서두와 끝 부분을 인용했다. 대제를 축으로 하되 행사 전체를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물길을 충혼 이미지로 치환하여 작품 전체에 관류貫流시켰다. 그리하여 제목부터 물길 이미지를 사용했다. 엄숙한 제례祭禮의 식순式順과 성격에 유의하고 이를 위해 대제 전체 흐름의 먼저 숙지熟知하였다. 병행하여 역사적 오류를 없애기 위해 부산포 해전사, 가덕도 문화유적, 가덕도 지형지물 등을 공부했다. 원재료 중 주제와 연관 지은 핵심 요소만을 추출하여 단순 사실 전달이나 보고문을 탈피하여 문학적 변주를 기획하면서 문장과 어조를 주제의 비장미에 맞춘 호흡으로 장중미, 애상적 회고, 비유적 이미지의 시적 분위기를 유지했다. 의식용 한자어를 혼용함으로써 고풍스럽게 표현했다.
문체미로 발현되는 작가의 개성은 작가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면밀히 살펴보면 작품마다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다. 주제, 제재에 따라 다를 것이고 같은 주제, 제재라도 작가의 의도하는 바에 따라 다르게 표현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말은 앞장에서 언급한 수필의 다양한 구성법과 마찬가지로 작품의 성격에 맞추어 다변적으로 문체미를 구사해야 한다는 점이다. 작품의 문체미는 율격미를 논하면서 일부 서술하였으나 언급되지 못한 것들을 추출하여 보았다. 주로 어미, 조사, 어휘, 음성상징, 생략 등의 방법으로 분위기 환기를 위해서 특정 어조를 드러낸 부분들이다. 편의상 부호를 붙여 논의하겠다.
1. 축 늘어진 내복바지를 들어 올려 보니 160센티의 내 키도 작은 키는 아닌 것 같은 착각이 잠시, 들다가도 이내 피식 웃는다. (빨래를 치대며)
2. 세월은 짧고 인생은 긴 세상, 모레쯤엔 전기밥솥으로 화려한 변신變身을 해볼까.(빨래를 치대며)
3. 가슴에 은장도를 품고 있는 이 여인은 제 살이 낯선 돌부리에 살짝 스치기만 하여도 쟁그랑! 시퍼런 불빛 번쩍이며 온몸으로 저항한다.(조선낫)
4. 그러나 아무리 조강지처라도 변덕스러운 것이 인간사라, 새로운 것에 대한 남정네들의 호기심도 더러는 있기 마련.(조선낫)
5. 안고 돈다는 것은 스텝과 호흡의 완벽한 일치. 그렇지. 세상은 저렇게 이심전심으로 돌고 돌아야 홍야홍야 녹아내리는 것이려니. 음식이든 사람이든 단단하게 굳은 것들은 맞손 잡고 어울려 돌고 도는 가운데 발효醱酵되고 숙성熟成되어 삭기도 하고 익기도 하는 것 아니랴. (전자레인지 앞에서)
위 인용 부분의 1은 ‘잠시’ 다음에 순간적 휴지를 위한 쉼표를 사용했다. 짧은 착각에서 금세 깨어난다는 의도를 강화했다. 부호까지도 섬세하게 장악하는 문체 통어가 필요하다. 흔히 시 창작에서 부호 하나를 두고 고심하는 경지에 이르면 시인이 된 증거라는 말을 한다. 2에서는 세월과 인생을 전도시킴으로써 장수시대를 표현했다. 3에서는 흔히 독립적으로 사용하는 의성어를 문장 속에 삽입함으로써 생동감을 환기했다. 4에서는 서술격 조사를 생략하여 인식의 단호함을 보였고, 5에서는 생략과 자문자답의 구어체 문장을 구사하고 ‘홍야홍야’라는 속어적 의태어를 생성시켜 어조를 감각적으로 구사하면서 다양한 변화를 유도했다.
6. 그러나 꾀죄죄하게 살아도 열흘이 한계. 더구나 봄철, 너른 마당에 땀 흘릴 일도 많다. 그럼 땀 흘리는 작업 때는 입은 속옷을 또 입고 외출은 새 옷으로? 아님 속옷도 착착 사서 입어? 그러다 보름 동안의 속옷 빨래를 몽땅 모아두면? 염치도 유분수지. 이건 소가 웃고 개가 재치기를 할 일이다. (빨래를 치대며)
7. 사람의 입맛은 본능적인가. 평소 시큰둥하던 채소가 이렇게 입에 당기다니. 그러고 보니 나홀로 식사에 채소 먹을 일이 없었네. (해동식단)
8. 이리저리 궁글리면서 어르고 놀기에 딱 알맞은 개월 수로 손주로 치면 돌잡이들이다. 내 강생이 오르르 까꿍! (강생이 어르기)
9. 빼도 박도 못하는 황당한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런 불미不美스러운 말을! 빼도 박도 못하다니. 말뜻을 곰곰 생각해보면 점잖은 자리가 아니라도 입에 올리기 정말 난감한 말이다.(빼도 박도 못하다 1)
10. 문제는 어미개다. 술은 아니래도 주지육림周脂肉林의 진수성찬도 마다한다.(개의 모정수유)
6에서는 독백조의 문장에 의문부호를 과잉 사용함으로써 마음 속 갈등을 가시화시켰으며, 흔히 속어적으로 주고받는 짐승의 재치기를 사용함으로써 어이없음을 익살로 표현했다. 7에서는 판소리 사설처럼 갑작스런 어조 변화를 야기했고, 8에서는 손주와 노니는 즐거움을 독립적 문장으로 처리하여 생동감을 구사했다. 9에서는 상대가 동물이라 비속어 사용을 허용했고, 10에서는 대상이 강아지이므로 술 대신 고깃덩어리의 한자 교체로 동음이의同音異義의 언어유희룰 구사했다.
11. 이 삼복염천에 산모 회복구완에 젖먹이 건사라니! 내가 무슨 안저지냐 업저지냐 아이돌보미냐. 제놈이 무슨 만고효녀 심청이를 낳았다고…. 내 팔자에 뜬금없이 심봉사 혼령이 덮쳤나 보다. 동네방네 외고패고 다니면서 동냥젖을 먹일 수도 없는 노릇. (개의 모정수유)
12. 가을이 무르익으면 시든 나팔꽃잎처럼 흐물거리던 산모의 젖무덤도 팽팽해지고, 잘 여문 씨방 모양의 선홍색 젖꼭지가 착, 달라붙겠지. 그때면 S라인 몸매의 억구는 다시 이 고을에서 맵시 제일가는 날씬한 미시족missy族 행세를 하며 뭇 사내들 애간장을 녹이겠지. (개의 모정 수유)
13. 쾌재快哉라, 찍찍 - Cheep Cheep, 새날이 밝는도다! (쥐구멍에서 쏘아올린 큰 공)
14. 세상에 밑살 큰놈이 있는지 ‘쥐밑살 같다’ 조롱하고, 치사하고 못생긴 것을 - 세상에나, 이런 일이! - ‘쥐코 장조림 같다’고 억지로다. (쥐구멍에서 쏘아올린 큰 공)
15. 염치없는 인간들이 천장을 방바닥 삼아 밤새껏 풀게임full game에 공소리, 아이소리, 샤워소리, 피아노 소리, 부부간 고함소리 - ‘서일필鼠一匹 경천동지驚天動地’에 잠 못 들어 하더니만 쾌재라, 고소하다!(쥐구멍에서 쏘아올린 큰 공)
11에서는 육아 관련 고유어를 발굴하여 유사어를 연속 사용함으로써 하소연을 과장하고, 심봉사의 처지를 동일시하면서 익살을 부렸다. 12에서는 선정적 표현으로 흥미를 유발했고 13에서는 고풍스런 한자어와 쥐 소리의 국어, 영어를 혼용하면서 세계화시대의 주제를 유도하도록 했다. 14는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당시의 방송 프로그램을 인용하면서 문장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화법을 삽입한 익살이며, 15는 한국, 영어, 한문투를 혼용하면서 아파트 층간 소음 문제를 풍자했다.
16. 애시당초 허장성세 무적無籍의 허공 경력, 허풍쟁이 장삿속의 과대포장 튀밥 경력, 교활한 사기꾼의 애매모호 카멜레온 경력이라. 이놈들은 증서로 대조해 보면 근거는 빈 깡통이라 들통나기 마련이지만. 허나, 어디 세상살이가 이런 시시콜콜 일상사를 일일 대조하겠더냐. 마음씨 고운 대중들이 지레짐작으로 알고 입을 다물 뿐이렷다. 눈앞의 오리너구리라. 오리로도 보고 너구리로도 보면서 대충대충 외면하지.(강시 경력)
17. 저녁 무렵, 평안한 초원에서 부엌으로 들어서는 암사자가 기운이 없어 보인다. 자세히 보니 눈자위에 다크써클dark circle이 드리웠다. ‘무슨 고된 일이 있다고?’ 싶어 시큰둥하게 물었다.
“눈알이 왜 퀭~ 한데?”
“직장에서 퀭~ 할 수도 있지.”
“무슨 직장?”
“집안 살림.”
“응? 밥 안 하는 아내 있나?”
“그러니 은퇴가 없지.”
아차! 순간, 30여 년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은퇴 수사자)
16에서는 신조어 사용으로 해학과 풍자를 통한 조롱이 있고, 마지막 부분은 판소리 사설의 변칙적 어조로 종결했다. 17에서는 무거운 내용을 가볍게 주고받는 판소리 춘향가의 이도령과 방자의 대화체를 원용하였다.
문장 호흡의 장단長短도 어조 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잉여적, 하강적 분위기는 호흡이 길게, 결여적이고 상승적 분위기에서는 짧은 호흡 운용이 필요하다. 시작법詩作法에서 행의 길이에 따른 이미지 전달이 확연히 다르듯 같은 작품 내에서도 분위기에 따른 문장 운용 기교는 매우 중요하다. 다음은 <개의 모정 수유> 부분으로 내용에 따른 호흡 장단의 변화를 극명하게 보인 두 문단이다. 긴박감을 드러내는 내용에 맞게 짧고 경쾌한 아래 문단은 11개의 간결체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상만사가 다 소태맛일까. 곧 죽을 것 같아 읍내 동물병원을 찾았다. 더 위를 먹었단다. 쉽게 회복이 안 될 거란다. 큰일이다. 새끼도 이미 한 마리 는 죽어 있다. 새끼들도 들어보면 마른 털걸레다. 어미도 새끼도 모두 축 늘어졌다. 다 죽게 생겼다. 머리로는 오히려 잘 됐다고 깨춤이라도 추어야 할 것 같은데 게슴츠레한 눈망울을 보면 이 염천에도 가슴이 시려온다. 인정이란 묘하다.
반면에 아래 문단은 느긋한 내용으로 긴장을 이완시키는 긴 문장이다. 위의 문단과 전체 길이가 비슷하지만 문장의 개수는 단 2개 문장의 만연체로 구성되어 있다.
빽빽한 나무 그늘 아래, 그것도 아침저녁 기우뚱한 햇살 몇 줄 든다고 큼 직한 파라솔 두 개를 동서東西로 비스듬히 세우고, 밤에는 모기향 멀찌 감치 피워두고, 우유야 이유식이야 눈을 뜬 하루 종일 차례로 진상하는 데 제 놈들이 튼튼하게 안 자라고 배길 재간이 있으랴. 제놈들 먹는 모습 에 한눈을 팔아 잠시라도 부채질을 멈추면 내 다리는 온통 모기들의 무 한 리필 뷔페상 차림 흔적이다.
구성미에 관한 기교 구사는 긴밀성을 통한 독자의 흥미 유도를 위해 화소의 효과적 배치를 일차적으로 고려하였다. 기타 제문 형식, 대화체, 선경후정을 변용한 2단 구성, 대구적 전개 등은 이미 율격미와 함께 작법상의 논의가 있었기에 생략하기로 한다.
5. 결론
필자는 작품 <수필>에서 ‘인생이 강물이라면 수필은 물결이다.’고 비유하였다. <작가의 말>에서는 ‘붓 가는 대로 쓰는 수필은 실패했다.’고 하면서 ‘수필은 순리順理의 강물에 이는 역동逆動의 물결이다.’고 정의한 바 있다. 이는 곧 수필이 문학으로서의 위상을 견고히 하려면 자아의 세계화, 고백의 문학이라는 개념 속에 지적, 정서적 반역이라는 미학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이 미학적 장치에 우리가 여태 외면해 왔던 고전문학의 특징적 요소를 접맥시켜 탄력 있는 창작법을 모색했을 때, 고전과 접맥된 한국 특유의 현대수필이 정착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연구한 이상의 논지를 각 장의 항목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한국 현대 수필의 현주소는 서구문학 이론에 경도되어 전통성을 외면하였다.
2. ‘무형식의 형식’은 매우 의미심장한 미학적 깊이를 숨겨 놓은 탁견이다. 한국 현대 수필의 형식미학을 우리가 잃어버린 고전문학에서 모색해 연면한 전통으로 계승한다면 현대 독자들에게도 새로운 수필 미감을 제공할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3. 한국 현대 수필의 정체성은 ‘현대문학 이론을 바탕으로 한국 전통적 내용 가치와 형식 기교가 접맥된 수필’로 정리할 수 있다. 전통 요소의 계승은 전통의 부활이 아니라 한 집단이 잃어버린 성정의 회복을 유도하는 과정이다.
4. 고전문학에서 원용할 수 있는 주요한 전통 요소 중 형식미 창출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주요한 방법의 핵심 3요소는 정격 또는 비정격의 율감律感, 특징적(characteristics) 작문법(composition), 그리고 문장 전개 양상이다. 이 요소들을 문장의 호흡과 장단을 통어通御하는 율격미, 문장의 개성을 드러내는 문체미文體美, 문단 전개를 형성하는 구성미로 대별하여 계승 요소를 살펴보았다.
5. 율감律感은 언어가 지닌 대표적 속성이다. 한국문학에서 전통 맥락의 대표적 요소는 리듬이었다. 고전문학에서는 필수적 장치로 사용했으며 개화기 이후의 현대문학에서는 의식적으로 배격한 가치관의 차이일 뿐이다. 근대문학 이후 현대시에서마저도 외면당한 운율미를 산문문학에도 원용하자는 당위적 이유는 다음과 같다.
율격미를 인위적으로 배격한 현대문학을 반역하여 거꾸로 자유율의 바탕 위에 다양한 율격미를 변주함으로써 잃어버린 율감의 향수를 자극해내는 새로운 미감을 창출해 낼 수 있다.
6. 문체미란 작가가 표현하는 특징적(characteristics) 작문법(composition)으로 문장에 드러나는 표현상의 빛깔이다. 문장 표현의 통상적 활용어미는 문어체를 사용하며 문장도 평어 형태다. 그러나 한국문학에서 어조의 다양한 변주는 문학사적으로 민요, 내방가사, 사설시조에서 먼저 드러나며 판소리사설은 그 복합체의 보고寶庫이다.
7. 고전문학의 문단 전개 양상은 개성 발랄한 현대문학보다는 다양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고전문학 양식의 구성미는 기서결, 기승전결, 제문형식, 대화체, 선경후정 등으로 나타나는 바 앞 장의 운율미와 문체미를 겸하면서 원용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
8. 필자의 전통수필 창작 기법은 현대인의 서정적 율감에 맞게 일반적으로는 산문율을 바탕으로 하면서 적당한 조율에 의한 정격률과 변격률을 다채롭게 변주하며, 제재, 주제에 따라 다양한 문체미를 고전문학에서 원용한다. 필자 수필 작법의 전반적 운용 기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율감은 모든 문장을 통어通御한다는 인식 아래 정격률, 변격률, 대구율對句的, 산문율 등을 때로는 단독으로, 때로는 복합적으로, 때로는 다면적 교집합으로 구사한다.
(2) 율격미에 맞추어 주제와 제재의 성격에 따른 문체미를 구사한다.
(3) 독자의 흥미 유도를 위해 화소의 효과적 배치를 통한 구성의 긴밀성을 유지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율격미, 문체미, 구성미를 상호 교집합적으로 구사해 보면 매우 다채로운 형식미가 창출될 수 있다. 한국의 현대 수필은 대체적으로 내용은 정보 전달의 교술성에 머물고 표현은 진지한 평서형으로 전개되는 경향이 강하다. 문학의 궁극 목적이 감동과 쾌락에 있는 한, 자기 고백성의 교술성에 매몰되어 엄숙해야할 이유가 없다. 진지함과 엄숙함과 날렵함과 경박함이 적절히 어우러져 작가의 의도가 독자의 가슴 속에 효과적으로 스며들도록 문장을 통어하는 기교가 필요하다. 율격미, 문체미, 구성미 등 다채로운 형식적 기교는 우리의 고전문학 속에 무수히 깃들어 있다.
6. 제언
수필은 자아의 세계화를 통한 자기 고백의 문학이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우리가 주의해야 할 함정이 있다. 자아의 세계화라는 개념은 내용 전달 방법의 방향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리하여 문학의 핵심 요소인 형식면 즉, 내용 전달의 미학적 방법론은 제외되는 문제가 생긴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기 고백이란 말은 객관적 사실의 표현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여기에는 미학적 내용 전달을 위한 작가의 계획적 변형을 허구로 오해할 수 있다. 문학의 정체성이 예술성에 있는 바, 이런 논지에 얽매인다면 작가가 구현하고자 하는 미학적 창의는 소홀해 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필자는 작가가 의도하는 주제 및 제재에 정서적 반역이라는 미학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수필은 順理의 강물에 이는 逆動역동의 물결’이라고 비유했다.
백철은 존슨(Samuel Johnson)의 창작과정을 인용하면서 작가는 먼저 주제를 생각하고 다음에 제재를 택하고 나아가서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적인 수단을 강구하는 순서를 거친다고 하였다. 이는 특히 수필 창작에는 아주 합당한 창작 순서일 것이다.
작가와 기능공은 다르다. 기능공이 실용성을 목적으로 제작製作하는 것은 제품製品이고 작가가 미감을 목적으로 창작創作하는 것은 작품作品이다. 문학의 효용이 감동과 쾌락이라는 점에서 작품의 감동은 이성적 공감이 아니라 미적 공감이라야 한다. 이러한 미적 공감의 가장 기본은 구성미이다. 백철은 창작을 위한 모든 내외적 처리는 작가의 의식적인 플랜에 의해서 진행되고 통일된다는 견해를 지지하면서 플롯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구성미 다음으로 중요한 창작 요소는 문체미이다. 묘사의 적확, 적절한 비유, 효과적 어조 등은 문학미학의 진수가 될 것이다.
율격미는 마지막 기교가 될 것 같다. 율격미가 마지막 기교라는 말은 현실적으로 활용도가 낮기 때문이다. 현대문학 양식에서 의식적으로 율격미를 운용하는 이는 시조시인 뿐이다. 시의 내용은 정서와 사상이고, 시의 형식은 운율이다. 그럼에도 자유시인마저도 창작에서 운율미를 기획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따라서 문학에서 율격미를 운용한다는 것은 앞의 두 요소 즉, 구성미와 문체미를 구현하고도 여력이 있을 때 가능한 작업이다. 율감은 모든 문장을 통어한다. 실제로 유명 작품은 양식상의 차이를 떠나 리듬감을 지닌 문장이다. 인구人口에 회자되는 자유시는 물론이려니와 어린이 예찬, 페이터의 산문, 산정무한 등 유명 수필 문장, 메밀꽃 필무렵의 달빛 분위기를 돋우는 소설, 기미독립선언문 같은 논설문도 정형 또는 비정형의 리듬감을 살리고 있다.
현대를 살면서도 굳이 전통서정을 살려야 하는 데는 현대에 걸맞은 당위적 이유가 있어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민족문학적 논리가 아니라 ‘왜 현대에도 전통 서정이 필요한가.’ 하는 점이다. 이 명제에 대한 대답은 전통 서정의 문학적 폭과 깊이가 현대 사회에 어떻게 수용될 수 있는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율격은 존재의 약동하는 생명성이다. 율감은 장단뿐만 아니라 고저, 강약, 문체의 강건, 우유, 화려, 건조, 만연, 간결을 유인하고 대조, 대구의 흥청거림과 애상적 비애까지도 통제한다. 이는 리듬은 대구를 생성하고 대구의 출렁거림은 독자 감정을 몰입시키기 때문이다. 이 가장 근원적인 약동을 현대문학 100년 역사는 억지로 버리려고 노력해 왔다. 속도를 지향하는 현대는 리듬 상실의 시대다. 리듬을 외면한다는 것은 감수성의 분리가 아니라 정서의 상실을 의미한다는 김준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면서 이제는 그 회복을 통한 인간 감성의 불균형을 바로잡아야 할 때인 것 같다.
전통수필 창작을 통해 그 일단을 풀어볼 일이다. 리듬을 상실한 삭막한 시대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많은 독자가 호응할 것이다. 사설시조가 지닌 ‘정형 속의 자유정신’을 전도시켜 이제는 ‘자유 속의 정형정신’을 구사한 작품이 필요한 소이다.
모든 문학 활동은 전통을 바탕에 두고서야 비로소 생명성을 지닌다고 했다. 창작법상으로 보아 리듬은 최후에 발현되는 기교이므로 전통문학 속에서 리듬을 원용하면 나머지 수필 작법 기교인 구성미, 문체미는 물론이려니와 본고에서 논의를 유보한 전통적 내용들도 자연적으로 접맥, 고양될 것이다. 전통의 계승은 전통의 부활이 아니라 한 집단이 잃어버린 성정의 회복을 유도하면서, 새로운 미감 창조를 통해 격조 높은 독서의 재미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 진정한 가치를 발현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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