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두 번 안부 전화하는 친한 친구놈이 있습니다.
제목에서 직감 하셨을 수도 있겠지만 그 녀석은 아직 총각입니다.
30여년 전 같은 직장에 다니면서 일할 땐 양보 없는 경쟁자로,
퇴근 후엔 하루가 멀다 하고 술로 밤을 채운 절친입니다.
언젠가 직장의 오너가 오른팔 왼팔로 불리던 우리를 데리고
말로만 들어봤던 여성들이 술 시중을 드는 술집으로 이끌었습니다.
깔깔대며 큰소리로 떠드는 여성들 사이사이에 앉은 그 친구와 난
두 손과 무릎을 가지런히 하고 다소곳이 술을 마셨는데
도대체 누가 술 시중을 드는지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그런 자리가 무척 이나 능숙해 보이던 오너는 시녀와 내시들을 거느린
왕처럼 좌중을 지배했고 친구와 저에게 하나둘 그곳의 문화를 가르쳤습니다.
술과 흥이 오른 저에게도 이내 그곳은 그리 낯설지 않은 장소가 되고 있었습니다.
왠지 진짜어른이 된 느낌마저 들어 잘 적응하고 있는 나와 달리
그때까지도 모태솔로였던 내 친구는 술보다는 짙은 향수 냄새에 더 취해
보였고 처음 본 여성의 생소한 스킨쉽에대한 대처 방법을 모색하는 듯
이리저리 눈알만 굴리고 있었습니다.
자정까지 이어진 술자리가 끝나자 오너는 모든 비용을 다 지불했다는
아리송한 말을 남긴채 떠났고, 두 여성은 술을 더 마시고 싶어하던
우리를 허름한 선술집으로 안내했습니다.
새벽까지 이어진 2차 술자리가 끝나고 우리는 각자의 보호자 손에 이끌려
헤어졌는데 그 이후의 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걸 양해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날 밤 마지막 헤어질 때 조금은 두려워하는 친구의 눈빛에 걱정도 되긴
했지만 그 시간 이후엔 혼자서 헤쳐나가야 하는 세상이라 더 이상 관여할 수
없었습니다.
다음날 더 없이 아름다운 밤을 보낸 친구가 들려준 순정만화 같은 이야기는
본능에 지배 당한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었고 순수한 이성의 실존 또한
확인하는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친구는 그 여성과 밤새워 삶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웠고 감동한 여성은
이후에 그 친구에게 여친이 생기기 전까지 몇 년 간 옷가지 등을 선물하며
만남을 이어갔습니다. 물론 육체적 관계를 배제한 아가페적 만남이었죠.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것은 그 친구에게 생겼다는 여친과도 그놈의
아가페 사랑을 했다는 겁니다. 혼전 순결을 종교적 신념처럼 가졌던 내 친구는
생식기능엔 문제가 없는 정상인입니다.
거짓말을 잘 못하는 그 친구와 서로의 자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으니까요.
가뜩이나 여성과의 인연이 박한 내 친구가 영원히 여자에게서 등을 돌려버린
사건이 일어난 건, 유일하게 사귀었던 여자친구와의 인연으로 말미암음입니다.
그 여친의 아버지는 폭력조직의 부두목 이었는데 자신의 딸과 내 친구를
떼어놓기 위해 내 친구를 데려다가 죽기 직전까지 두들긴 후 차에 태워
길거리에 버리고 가버렸습니다.
그 사건 이후 친구는 술을 절제할 수 없어 매일 마셨고 어느날 음주운전을 하다
버스와 충돌해 119 대원이 내장을 수습해야 할 정도의 사고를 당했지만
기적같이 살아나긴 했습니다.
지금은 한 방울의 술도 입에 대지 않고 성실히 살아가고 있는데 열심히
모으는 재산이 노후 대책이 아니라 하나 뿐인 조카에게 물려주기 위함이라
합니다.
조카의 어머니는 제 친구에게 하나 뿐인 누나인데 그녀가 결혼했던 남편은
아이러니 하게도 조직의 보스였습니다.
물론 내 친구를 두들겼던 조직은 아닙니다만 이쯤되면 3류소설 이거나
영화, 아니면 지어낸 이야기라 하실 수 있겠는데 나의 친한 친구가 겪은
넌픽션 인생 스토리임이 분명합니다.
"돈도 있는데 여자랑 한번 살아봐~ 자식도 하나 낳아보고~" 라고하면
그 친구는 손사레를 칩니다.
태생적으로 여성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나와 다르다' 라는 명제로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이해가 안 가는 녀석의 태도입니다.
제가 태생적으로 여성을 좋아한다라고 해서 바람둥이나 난봉꾼은 아닙니다.
육체적 교감은 물론이고 정신적 교감을 가지는 상대조차 동시에 두 명 이상
두는 행위 자체를 '저속함' 이라 규정하고 있으니까요.
5살때 버스를 기다리던 어느 처녀의 다리를 쓰다듬었다거나 동네 꼬마여자
아이들에게 뽀뽀를 하고 다녔다는, 기억도 나지않는 썰을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걸 감안해 태생적이다란 단어 또한 선택하게 된겁니다.
다만 교제하는 교감 상대가 없을 땐 풍요 속의 빈곤일지라도 다수의 여성과의
자유로운 대화나 교류가 남자보다는 좀 더 흥미로운 게 사실이며 그 또한
개취이지 비난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저조차 몇 년 간 풀 뜯어먹고 살다가 불현듯 고기 맛이 생각났지만
고기는 그닥 몸에도 좋지 않다는데 애써 억지로 찾아다니는 게 맞나 싶기도 합니다.
모임에 나가보면 그냥 술 한잔 즐기고 여성 분들에게 점수 깍일 농이나 건네는
무심한 초식동물도 보이고 반드시 목표물을 정복하고 말겠다는 야망에 불탄
눈빛을 마구마구 쏘아내시는 사자도 보이고 오랜 기간 성공 못한 사냥에 지쳐
낙담과 푸념을 쏟아내다 술이나 음식으로 달래는 잡식동물도 보입니다.
딱히 목표물이 보이지 않을 땐 여유로운 마음으로 모임을 즐기다
언제일진 모르지만 어느 날 눈에 들어오는 이상적인 목표물을 발견하면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유연하고 현명한 효율적 자세는 어떨까 싶네요.
백화점에 들러 반드시 쇼핑백을 들고나와야 직성이 풀리시는 분도 계실테지만
이런저런 물건들을 둘러만 보는 아이쇼핑도 기분전환엔 좋더라구요~
첫댓글 밀림의 왕 사자도 사냥할 때는 전력질주 하고 한 번 문 목덜미는 절대 놓지 않는다고 하죠.
연애의 고수다운 풍모가 느껴집니다 연필소리님^^
그렇지 못합니다~ 마음에 드는 여성 앞에선 작아져 버리는 지병이 있거던요.
아무튼 좋게 봐주셔서 감사드려요!
이성을 좋아하는게 개취나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스런 거겠죠 로마에선 한때 남자의 동성애가 사랑이라 여겨졌던 때도 있었다지만 결국엔 이성애가
세계를 평정했듯이요
초식,육식,잡식 동물들의 만남은
여러 삼라만상의 추억을 양산하겠지만, 각자 알아봐주는
사랑의 잣대로 취사선택 하겠죠
어떤 스타일이 진국일지는
결국 오랜 세월을 서로가 씹고 뜯고 맛봐야 알수있겠죠ㅋ
네. 사랑에 눈 먼 이란 표현이 있는 것처럼 초기엔
나중에 투덜거릴 결점까지 사랑스럽게 보이긴 하죠.
오랜 세월 맛봐야 안다는 점에 100% 공감합니다!
글을 읽고 나서
음... 거물이 나타났네
도대체 이 사람 누구지?
회원정보를 클릭해 보았네요 ㅋㅋ
좀 긴 글이지만 넘 잼있게 읽었구요
육식보다 초식을 선호하는 1인으로
채식주의자로 전환 중인데
세상이 더 푸르게 보이는 느낌요
기대됩니다
앞으로 삶방에서 만나게 될
연필소리님의 삶의 이야기
좋은글을 읽는 기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그생각~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너무나 감사드려요~
그런데 이런 과찬이 혹시나 또 글을 올릴 때 부담이 될 수 있다는거
아세요 ㅜㅜ 그럼에도 재미난 이야기 있으면 열심히 올려보겠습니다 ^^
전에도 느꼈는데 글 정말 잘쓰시는듯요
전 글재주가 없어서 연필소리님 글 읽고난 느낌을 표현조차 못하겠네요..
감사합니다. 솔직한 마음 생생히 전하려다 보니
이런 칭찬을 듣는 것 같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연필소리님 글 읽어보니
왜 닉네임이 연필소리로 하셨는지 알것같아요.
앞으로도 많은 연필소리 들려주세요~
네! 가끔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연필소리란 닉네임은 제가 미술(디자인)을 전공해서 붙인
닉네임이에요. 입시 때 조용한 화실에서 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소리들이
너무나 인상적이었거던요.
@연필소리 아~그렇군요 너무글을 잘쓰셔서~^^
그림도 잘그리시는 군요 좋은의미로짐작한거니
좋은마음으로 이해해 주세요^^
@헤교 이해라니요~ 그저 지나치지 않고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고마운 마음에 부연 설명 드렸네요~
우아한 저녁 되시길 바랍니다^^
사각사각~연필로 써 내려가는 소리나는 글.
아주 유려~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슥슥슥~~`
소설 같은 초식동물 친구는 아가페 사랑이라면~
연필소리님은 에로스,플라토닉,필로스적, 사랑 일까요? ~~
초식동물 친구 2탄 기대 합니다~!
사각사각~~!^^
헉! 윤희님 예지력이 있으신듯? 또다른 절친 초식동물 한 놈이 있는데
이놈 이야기도 만만치 않긴해요. 기회되면 한번 써내려 가볼까 합니다 ^^
시를 쓰셔도 될듯해요 ㅎ
그렇게 어려운 장르는 엄두가 안나구요^^ 그냥 주절대기를 좋아라 합니다~
재미있어요.
초식동물 친구와의 자리좀 만들어줘봐요~
은당님이 초식동물에 관심을 보이실줄은 몰랐네요 ㅎㅎ
희귀템을 선호하시나봐요~
제가 초식성이라~~~
ㅎㅎ
희귀종 관심종
초식동물들의 자리 모임 좋은데여 ㅋ^^
@윤희 자리 만들어지면 나올래요?
그래도 언니가 있어야 양념을 잘 치지요.
@은당 ㅎㅎ
당근이쥬
양념을 잘 못치면 간이 안 맞을 수도 있지만
달달하게 짭찌름하게 ...
고소하게...원하는대로~ ? 솔솔 ~ 팍팍~ ㅋㅋ
실화라니 친구가 대단 하네요
나도 아가페 사랑 좋아해요
전 에로스입니다 ㅜㅜ
사랑에 빠지면 컬러풀한 그녀만 보이고 나머지 세상은 흑백이죠.
철딱서니 없는 편입니다.
@연필소리 ㅎㅎ
사람이라면
인간적인 에로스 + 플라토닉 좋습니다 ^^
이런 글 저도 좋아합니다~~
어느 분 글인가 수필인지 읽은 글에서 전업작가 아닌 이상 생활이 녹아있는 글이 제일이라 했는데 진짜
일상 속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고 또 그걸 진솔하게 잘 풀어주셨네요.
저도 오늘부터 즐겨 읽겠습니다.^^
말을 해도 귀담아 들어주는 분이 있으면 즐거운데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읽어주시겠다니 감사하고 신나네요^^
요즘은
듣는것 보다 말을 하려고 하지요.
서로 본인들 말만 하다가 헤어진다고 합니다
공감이 필요한 시대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음을 나누는 정이 느껴지면 감사하고 도파민,세로토틴이 팍팍 햄복하고 신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