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 유명한 꼬냑을 만드는 아아랏사를 차창 밖으로 보며
마지막날 일정을 시작한다
값싸고도 맛좋은 이곳 꼬냑이 맘에 걸렸는지
발렌타인 만드는 프랑스 회사서 이곳을 인수했다네
대기업의 기업사냥은 대단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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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 공원으로 올라왔다
빅토리 공원은 아르메니아의 2차대전 참전 기념탑이 있는 공원이다
'힘을 통한 평화'를 형상화한 '아르메니아의 어머니'
마더 트빌리시처럼 씩씩한 마더 아르메니아
나라를 지키겠다는 결연한 표정과 자세
아직도 이슬람의 아제르바이잔과는 영토분쟁이 있어 국경이 닫혀있고
제노사이드의 아픔이 치유되지 않은 터키와도 앙숙
바다가 없는 내륙국인 아르메니아는
그래서 오로지 조지아를 통해서만 세상과 연결되고,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는 오로지 아르메니아인 1000만명만이 믿고 있어 종교적으로도 고립
예레반 너머 희미한 아라랏산
매일 저 산을 쳐다보며
아직 터키령인 서아르메니아를 되찾을 결의를 다잡는 아르메니아인들
종전 후, 강국들이 우리나라에 38선을 그었듯이
이 작은 나라의 아픔에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교회
저 둥근 안쪽엔 무엇이 있을까
꺼지지 않는 추모의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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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바르노츠 고고유적지
진입로
즈바르노츠 고대 유적지로 왔다
즈바르트노츠 대성당은(Zvartnots Cathedral)
642 - 652년, 아르메니아정교 총대주교 네르세스3세(Nerses III)가
성 조지(성 그레고리 St. George)를 기념하여 세운 것인데
930년 지진으로 무너진 것을, 1901-1907년에 발굴했다
원형사원이 특징인데
아르메니아의 교회 건축을 대표하는 양식으ㅗ
2000년 예치미나진과 함께 유네스코 문화우산에 등재되었다
원형에 가까운 32각형 사원터
그 안쪽에 십자형 교회
3층 건물이었다한다
가이드 말로는 또 다른 곳에서 이 수도원과 똑같은 형태의 교회건물이 발견되었다한다
예레반의 오페라하우스가 이 교회 건물을 재현
저 안쪽은 제단인 듯
제단
제단 뒷쪽 꺼진 곳
희생제물 잡는 곳이었을지?
제단 맞은편
교회와 외벽 사이 회랑
밖에는 큰 바위덩이가 ..
이쪽은 많이 허물어져 있다
교회 밖 양쪽에 있는 저 두 자연석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박물관으로 간다
여기는 왕궁터
4세기 지어진 즈바르노츠 교회는
10세기 지진으로 무너져 돌기둥과 아치만 남았다
당시 최고의 건축물
그리스 양식에 비잔틴양식 그리고 아르메니아 양식까지 어우러져있다한다
해시계
캐스케이드 폭포와 닮아 여기서 착안하지 않았나 혼자 짐작해 본 그 해시계 ~ ㅎ
사원 안쪽 지붕 아래 코너를 받치던 부분
우리 옛건축물의 치미 같은 ?
발굴단?
재현해 놓은 야외 해시계
중요유물인 듯
서로 쳐다보는 두 독수리
독수리는 왕의 상징
왕궁 건물에 쓰였을 수도 있고, 그리스도도 왕이시니 교회 기둥 위을 정식했을 수도 있고 ...
마치 살아 날아오를 것 같은 독수리다
왕궁 쪽은 복구가 안되고 있다
왕궁에서 교회쪽으로 통하는 문
교회기단도 큰 원형
사원 4입구 중의 하나
제단 뒷편
이오니아식 우아한 기둥
교회 외벽 출입구 중 하나
자연석
교회를 나오며 ...
그늘이 좋아
더위에 약한 나는 첫날부터 비상 ~
그래도 잘 버텼다 ㅎ
그런데 돌아와 사진 앞에 앉은 지금,
좋은 기억만 남는 것은 무슨 이유? ㅎㅎ
그래서 또 떠나게 되는 게 여행인가보다
그 처지가 안타까운 아르메니아,
그보다는 훨 편했던 조지아 여행...
벌써 그리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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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출신 기독교인 그레고리는 카파도키아의 가이사레아의 장로였는데
287년, 그의 고향 아르메니아로 돌아와 전교를 시작했다
그러자 티라다테스 왕은 선친을 죽인 암살자의 아들인 그레고리를
코르비랍 지하감방에 13년간 가두어두었다
왕은 또
로마에서 건너온 흐립시메와 가야네 수녀 등 38명의 수녀를
청혼을 거절한다는 이유로 고문하고 죽였는데
왕은 병들었고
그레고리가 왕의 병을 낫게하자
왕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기독교를 아르메니아의 국교로 선포하기에 이른다
301년, 아르메니아는 세계 최초의 기독교국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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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립시메는 아르메니아 교회 뿐만 아니라 카도릭교회와 정교회에서 모두 성인으로 추대되었고
618년, 수녀의 영묘 위에 교회가 지어졌다
가야네 수녀가 순교한 곳에도 630년 교회가 세워졌는데
두 교회 모두 2000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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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의 바티칸이라는 예치미아진으로 왔다
아르메니아 카톨릭의 총대 주교좌 성당이 있는 곳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우리나라 경주 같은 곳이다
성 그레고리우스 문
계몽자 그레고리는 14년간 코르비랍 수도원 지하감옥에 갇혀있었는데
왕의 병을 고침으로 왕이 개종을 하고 301년 국교로 선포하기에 이른다
그 1700주년을 맞아
로마 카도릭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하여 축성하고 축하하였고
그것을 기념하여 이 문을 세웠다
로마 카토릭의 수장 교황과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성 그레고리가 손을 맞잡는 모습이다
찾아오신 교황님도 자랑스럽지만
오랜 섭섭함을 묻고 이렇게 교황을 환영하는 모습이 감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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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1년 그리스도 교회는 칼케톤 공의회에서는 니케아 신조를 확인하고 삼위일체론을 확정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신이고 완전한 인간이다'
527년 제2차 드빈 공의회 이후
단성설을 채택한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는 이단으로 정죄되었고
이후 카도릭과 정교회와의 관계가 단절되었다
609 - 610년의 드빈 3차 공의회에서 조지아도 아르메니아 교회를 떠나 동방정교회에 속하게 되어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는 홀로 자신의 종교를 지켜왔는데
이제 교리의 차이를 뛰어넘어 교회의 일치를 위한 거룩한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마더 교회로 들어가는 길 오른쪽에는 하치카르가 도열해 있다
13세기 하치카르
입구 오른쪽에 있는 게보르기안 신학교
하나도 같은 게 없다는 돌십자가 - Khatchkars 하치카르
거기 또 각기 다른 소망도 담고 있으리라
대학이라 젊은이들이 많았다
성 바르텐 세례당과 대학살 기념비 ?
이것도 하치카르 ?
공원으로 꾸면진 너른 경내
왼편으로 대성당이 나타났다
에치미아진 대성당(Echmiadzin Cathedral) 마더교회는 아르메니아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301-303년 당시
성 그레고리(St. Gregory)에 의해 건립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자, 아르메니아 최초의 공인 성당이다.
고대 건축의 정수이자 기독교 건축양식의 원형으로 꼽히며,
성당 건축 발달사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고 한다.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5세기경 기록된 아르메니아 문서에 의하면
성 그레고리는 하늘에서 내려온 예수 그리스도가 황금 망치로 땅을 치는 환상을 본 후
그 자리에 성당을 설립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비롯하여
성당 이름이 ‘예수가 하늘에서 내려온 곳’을 뜻하는 '에치미아진'으로 명명되었다.
<교재 요악>
종각 아래 성당 입구
종각 아래로 들어간다
칼과 성서를 드셨으니 바울 ~
맞은편의 천국의 열쇠를 든 베드로와 함께 성당 입구 양 옆에 서 계신다
대성당다운 위용
중앙 돔을 커다란 4기둥이 받치고 있는데
가비트 양식이라 불리는 아르메니아 전통 건축양식이라한다
지붕을 받치는 4 기둥, 연기구멍(= 교회의 채광시설), 아치 ...
화려한 천장
대부분의 아르메니아 교회들은 소박을 표방하고 있는데
여긴 맘껏 치장을 했다
정교회 교인들은 성당의 이런 십자가에, 또 성인들의 이콘 앞에서도 기도하고 친구한다
큰 기둥 그림
제자의 발을 씻기시는 예수
대상당은 큰 돔 하나에 작은 돔 4개로 이루어져있는데
작은 돔에도 각기 조금씩 다른 그림이 그려져있다
저 안쪽 아치 위 ...
아치 위 그림
작은 돔이라 조금은 소박한 천장화
또 저 안쪽 아치 위엔
같은 듯 또 다른 그림이 ㅎ
그림 속 다른 점 찾아보세요... 하는 것 같다
작은 돔
그리고 티켓 끊어서 보물관 안으로 입장
보물관 입구 이쁜 그림
드레곤을 무찌르는 성 게오르기
향로
아르메니아어로 쓰여진 성서
마테나다란 고문서 박물관 가면 수없는 아르메니아어 필사본이 있다는데...
여기서 잠시 그 규모를 유추해본다
오르한 파묵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 에서
인쇄술이 없던 16세기,
이스탄불의 장인들이 시력을 잃어가면서까지 세밀화를 그리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정말 정성껏 만드신 책들..
유리에 비치는 샹드리에
ㅎㅎ
14세기 작품
십자가 바탕은 아라랏산에서 발견된 노아의 방주로 추정되는 배에서 떼온 뱃조각
아래 창(게하르드)과 함께 이 보물관에서 보물 중의 보물
십자가상 예수 옆구리를 찌른 로마병사의 창 - 게하르드
게하르드 동굴수도원에 보관되어 있다가 여기로 옮겨졌다
성인의 손
아르메니아 사제들은 저런 수인으로 축복을 한단다
대사제의 일습
영대와 지팡이
다시 성당으로 나와
앞줄 몇 분 성인들의 옷차림이 한복 같은데...
옷고름에 남자 한복 바지
나갑니다
저 밖에서 우릴 기다리는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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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가기 전, 마지막 점심을 여기서 먹는다
예술학교 내 레스토랑
입구부터 이쁘다
레스토랑에 자주 걸려있는 '최후의 만찬'
어서 오세요 ~
강의실 밖
정들자 이별입니다 ~ ㅠ
즈바르노츠 국제공항
비행기는 환승할 모스크바 공항 가까이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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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나다란
마테나다란(Matenadaran) 즉 고문서도서관이다.
정문의 좌상은 아르메니아 문자를 창시한 메스로프 마사토츠 주교(Mesrop Mashtotz, 361-440)이다.
그 뒤로 보이는 도서관 입구 좌우에는 과학자, 신학자, 시인 등
아르메니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성 6인의 입상을 세워두었다.
메스로프 마슈토츠 주교는 404년 36자의 Armenian alphabet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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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에는 독자적인 문자를 만들어 써 온 아르메니아인의 자부심이 고스란이 담겨있다.
교육기관을 겸한 수도원은 수많는 희랍어 서적을 아르메니아어로 번역했고
희랍어 원본이 없어진 지금 대단한 가치를 지닌다한다
중세 시대의 역사, 철학, 의학, 문학, 종교 관련 문서가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약 17,000점의 필사본과 30,000점의 고문서가 보관되어 있다.
특히 9세기 이후 쓰인 12,000여점의 아르메니아 원문 책과 원고는 아르메니아 문화의 보고이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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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를 끝내며 ...
로마 유적지 같이 장대한 맛은 없어도
유럽 대성당 같은 화려함은 없어도
달마산을 뒤로 한 단청 벗겨진 미황사 본전에서 오히려 더 아름다움을 느끼고
무엇 하나 남지않은 폐사지에서도 어디선가 들려오는 옛 이야기를 듣듯이
여기 조지아, 아르메니아 유적지도 그렇게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되새길수록 여운이 오래 남는 소박함 ...
그 소박함 속에 또 그렇게 큰 긍지가 있고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은 나라...
아르메니아가 예상 밖으로 참 좋앗지만
이번에 못 가본 조지아 서쪽 지방 쿠타이시, 메스티아도 궁금하고
길 막혀 못걸은 다비드가레자 원없이 걸어보고 싶고,
눈 덮힌 카즈베기도 다시 보고 싶다 ^^
그래서 인연이 닿는다면
들꽃 가득한 계절에,
다시 한 번 그 땅에 가 보리라 ...하는 소망을 품게된다
마지막으로
이상기온으로 그렇게 더운 날씨에
일행들 건강까지 배려하며 끌고 다니느라 애쓰신 박사장님,
전체 분위기 살피며 여행을 매끄럽게 만드느라 노심초사하신 머핀님,
감사드립니다 ~
일정대로 되지 않을 때는 또 얼마나 애를 태우셨을지...
100 % 만족하는 여행은 어차피 있을 수 없지만
돌이켜 보니 모두 좋은 기억뿐이 없습니다
애쓰셨습니다 ~~
그리고 한 번 얼굴 붉힐 일 없이 좋으셨던 길동무들,
다음에 또 반갑게 만나뵙기를 ~ !
PS.
댓글로 격려해 주시고
쓸데없이 긴 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
첫댓글 참 애쓰셨습니다. 저는 설렁설렁 쓰는 것도 힘들던데 대단하십니다.
여행 많이 즐기십시요.
여행을 좋아해도 나이가 많아지니 멀리 가는건 망설여지더군요.
아직 가고싶은 곳이 많이 남아 있지만요... ^^
마지막 여정까지 완벽하게 마무리 해주셨네요. 상현달님의 후기를 읽으며 즐거웠던 여행의 추억 속에 흠뻑 빠져보기도 하고, 미처 못보고 지나쳤던 많은 것을 다시 보고 느끼며 알게되었습니다. 두분 늘 건강 유지하시며 알찬 여행하시길바랍니다^^
참으로 자세한 설명과 사진
애 쓰셨어요
두분 건강하시고
언제 다시금 함께 여행할 날이 있겠지요
감사 감사!
감사합니다 ~♡
여행길에서들 만나뵈어요~
한곳한곳 놓치지 않고 올리셨네요
여행을 멋지게 다니시는 분이라 생각했습니다
다시 그곳의 풍광들이 스치며 떠나고 싶네요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