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十六 章 또다른 心靈邪功
부르르
그것은 한 인간이 전율하는 움직임이었으며 충격이었다.
인간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면
온몸의 피가 일시에 거꾸로 흐르는 듯한 그런 전율을 느끼고 만다.
천후는 보았다. 한 여인을…
비록 파리하게 변해 의식을 잃고 있다 해도 그 여인이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아니, 천후는 그 여인이 비록 타서 재가 되었다 해도
타다남은 재만으로도 그녀가 누구인지 알 것이다.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그에게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게 했고 처음으로 죽음의 의미를 알게 해준 여인!
운명은 이래서 예측하지 못하는 것인가?
'월… 미… 옥!'
그렇다. 충격과 전율 속에 절규하듯 부르짖을 이름 월미옥!
천후는 그녀를 본 것이다.
다가간다!
옆에 있는 쌍필살 조차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아니, 지금 이 순간 죽음이 그에게 다가온다 해도 그는 갔을 것이다.
'월미옥! 그대가 이곳에… 더구나 그런 얼굴과 그런 모습으로?'
회오의 비감(悲感)이 이러할까?
천후의 두 눈은 어느새 축축히 젖어들고 있었다.
쌍필살, 그들은 천후가 월미옥을 가슴으로 안을 때까지 단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볼 수 있었다.
젊은 남녀의 모습을,
한 남자가 죽음 앞에 선 여인을 지상에서 가장 숭고한 마음으로 감싸 안는 것을…
그래서 그들은 입을 봉하고 있었다.
천후는 월미옥을 가슴깊이 안았다.
포근하고 따스한 체온 대신 싸늘한 한기가 그의 가슴으로 전해졌다.
'그대는 너무나 버릇없는 여인이야.
낭군(郞君)의 품에 안겼으면서도 그 흔한 미소 한 번 짓지 않다니…!'
굳게 감긴 월미옥의 눈과 입술은 말이 없다.
'그대는 또 너무나 경망스러워. 스스로 혀를 잘라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은
그대가 그대의 낭군을 너무나 우습게 생각했다는 것이야.'
천후는 알 수 있었다.
가볍게 벌려 본 그녀의 입술사이에 보인 잘려진 혓바닥!
그것 하나만 가지고도 전일 천상미인궁에서 일어난 모든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대는 틀림없이 내가 무저갱으로 빠뜨려졌다는 말을 듣고 스스로 죽음을 택했을 거야!'
천후의 마른 입술이 문득 월미옥의 핏기잃은 입술에 닿았다.
"바보 같은 것!"
바보 같은 것!
백마디 말보다 때론 한마디 말이 더욱 가슴 속에 젖어들 수 있다.
쌍필살, 그들은 느낄 수 있었다.
이들 두 남녀가 서로서로 사랑하는 연인 관계임을…
문득, 상복을 입은 일곡이 화복을 입은 일소에게 전음을 보낸다.
"흑흑흑흑…늙은이야, 너도 뭔가 느끼는 것이 있느냐?"
"으하하하핫! 암! 암! 나는 새삼 느낄 수 있지. 젊음이 얼마나 아름답다는 것을…
더구나, 그 젊음이 남녀의 사랑으로 승화될 때는 더욱 고귀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흑흑흑흑…한데, 저놈은 누구길래 우리의 제자(弟子)의 입에다 입을 맞추지?"
"으하하핫! 너 방금 우리의 제자라고 했느냐?"
순간, 일곡(一哭)의 얼굴이 놀랍게도 붉게 변했다.
그것은 어린아이가 못된 장난을 하다 어른에게 들킨 순간의 얼굴과 비슷했다.
무엇이 이 이백 년 가까이 살아온 노괴물을 부끄럽게 만들었는가?
일소(一笑)는 그런 일곡을 보며 즐겁다는 듯이 연신 괴이하게 웃어댔다.
"으하하핫! 그래…그래…사실 나도 너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너무 부끄러워 하지마라!"
일곡의 붉게 변했던 얼굴이 일소의 말을 듣고는 다시 창백하게 변했다.
"흑흑흑흑… 괘씸한 놈! 그렇다면 결국 내 입에서 그 말이 먼저 나오길 기다렸다는 것이구나!"
듣기에도 섬칫한 호곡과 싸늘한 음성!
그것은 그가 분노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하하핫! 아…아니야. 그것이 아니고…사실은…"
일소가 당황한 눈빛으로 손을 흔들며 그렇게 말했다.
"흑흑흑흑… 아니긴 무엇이 아니야!
사실, 너는 그동안 너무나 많은 것을 양보 받으려고만 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하하하핫! 아니야, 이번만은 진짜 아니라니까?"
끝도 없고 결코 이유도 될만한 것이 없다.
아마도 그들은 천성적으로 그렇게 다투기를 좋아하는가 보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한동안 옥신각신 다투고 있었다.
그러던 한순간, 일곡의 눈이 무엇엔가 크게 놀라 번쩍 떠졌다.
"으응…저…저것은?"
"아… 아니 뭔데?"
일소도 같이 덩달아 놀라며 일곡의 시선을 따라 쫓아간다.
그와 동시, 두 사람은 모두 전율하듯 몸을 떨며 부르짖었다.
"오오… 천향(天香)!"
천향(天香)이라면?
오색서기는 너무나 영롱했다.
천후와 월미옥을 감싸고 있는 영롱하고 찬란한 오색서광!
더구나, 삽시간에 퍼진 지극히 맡기 좋은 이 향기(香氣)!
그렇다! 그것은 분명히 천향심법을 운공할 때 생겨나는 필연적인 결과였다.
천후는 엄숙하게 앉아 월미옥의 전신을 주무르고 있었다.
추궁과혈(推宮過穴)!
본신의 진력으로 허공을 격하여 상대의 내상을 치료할 때 흔히 쓰이는 수법!
천후는 지금 월미옥을 자신의 천향심법으로 치료해 보고 있는 것이었다.
쌍필살은 너무 놀라 하마터면 자신의 존재조차 잊을 뻔했다.
"흑흑흑…전설의 천향이 저놈에게서 나타나다니…"
"하하하핫…저 놈의 화후는 이미 우리를 능가하고 있어."
"흑흑흑흑…사실 저놈을 처음 본 순간부터 나는 그것을 느꼈다.
더구나…저놈은 감히 범접하지 못할 기도를 지니고 있었다."
"하하하핫! 맞아 나도 그걸 느꼈지!"
"흑흑흑흑…대체 저놈이 누구지?"
"하하하핫…글쎄… 한가지만은 알 수 있지만…"
"흑흑흑흑…그것이 뭔데?"
"하하하핫…그것은 우리의 예쁜 제자가 저놈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이야!"
"흑흑흑흑…그건 그래!"
두 사람은 일순 서로를 마주보며 씽긋 웃었다.
그들의 그 웃음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그들 자신의 모습이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 돌연, 지극히 무게있는 음성이 두 사람의 귀에 와닿는 것이 아닌가?
"당신들은 그렇게 잡담만 하고 있을 셈이오?"
두 사람은 크게 놀라며 급히 주위를 돌아다봤다.
음성의 주인을 찾으려는 것이다.
한데 없었다.
"흑흑흑…분명히… 사람의 음성이었는데…"
"하하하핫…맞아."
그들은 일순 더욱 경계하며 주위를 세심히 돌아본다.
그때, 약간의 조롱기가 섞여있는 예의 그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당신들의 눈앞에 있는데도 찾지 못하다니, 쌍필살이란 명성도 헛된 것이었군."
"흑흑흑…누구냐?"
"하하핫… 어느 놈이 감히…"
쌍필살은 약간 분노하여 날카롭게 주위를 다시 돌아본다.
하나, 역시 없었다.
있다면 오직 천후와 월미옥 뿐인데, 그렇다고 그들일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천후라 하오. 그리고 그대들의 예쁜 제자의 낭군이기도 하고…
이제 알겠소? 이 멍청한 양반들?"
오오…이럴 수가?
다시 들려온 음성의 주인이 누구인가?
바로 천후가 아닌가?
그랬다. 그 음성은 분명히 천후였다.
쌍필살도 비로소 깨달았다.
"흑흑흑! 이럴 수가, 어떻게 운공(運功)을 하면서 말을…"
"하하하핫…우리가 멍청하다고…?"
쌍필살 중에서도 일소가 더욱 성질이 급하고 과격한 듯했다.
왜냐하면, 일곡은 천후의 놀라운 신공에 경악하고 있는데
일소는 천후의 말을 꼬투리 잡는 것이었다.
"천향심법의 탁월함은 바로 그점에 있소.
심신을 양분하는 양심신공(兩心神功)과 같은 신묘함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오."
"오오…"
"놀라는 척하지 마시오. 그대들도 이미 그런 경지에 다다른 지 오래일 것이오.
그건 그렇고 나는 지금 중대한 고비에 처해 있소."
"내 공력상의 한계로 인해 혈사경의 심령(心靈)을 제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오."
"오… 역시 혈사경에 당했군."
"그렇소! 나의 아내는 그 혈사경에 당한 것이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앞으로 약 일각만 호위를 부탁하오."
"호위?"
"그렇소, 부탁하오! 멍청한 양반들!"
천후의 음성은 거기서 끝났다.
한데 일소를 보라! 불 같은 성격을 지닌 그가 천후의 말에 크게 분노한 것이다.
"하하하핫…이…이놈이 그래, 저래하지를 않나… 멍청하다고 하지는 않나? 이놈을 그냥!"
하나, 지금의 상황은 더 이상 어떻게 하지 못할 처지가 아니던가?
"하하하핫…두고 보자! 치료만 끝나봐라. 그냥…!"
타오르는 분노가 불[火]이 되어 일소의 두 눈에서 솟구치고 있었다.
한데 기이한 것은 그의 행동이었다.
왜냐하면, 곧 잡아 죽일 듯한 그가 어느새 일곡과 더불어
천후와 월미옥의 앞뒤에서 호위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손[手]!
투명하여 마치 만년빙옥(萬年氷玉)을 연상케 하는 너무나 아름다운 손,
지상에서 가장 성결하며 가장 고귀하게 보이는 옥수(玉手),
그것이 문득 다가왔다.
너무나 아름다와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것만 같은 손이 다가왔다.
그와 동시, 그 손을 황홀한 듯 지켜보던 무림고수 하나가 돌연 처절한 비명을 토해냈다.
"크… 아…악!"
듣기에도 너무나 섬칫한 절규성!
나이 육십쯤 되보이는 무림고수는 그 비명을 끝으로 죽어갔다.
너무나 황홀한 옥수(玉手)에 의해!
한데 그 순간, 돌연 옥수의 주인이 날카롭게 웃음을 터뜨렸다.
"오호호호호!"
날카로워 차라리 섬뜩하게 들려지는 여인의 웃음!
오오…그것은 차라리 악령의 표호와 같았다.
구천지옥(九泉地獄)의 마귀(魔鬼)가 일시에 발광(發狂)을 내지르는 듯한
소름끼치는 마소(魔笑)!
이것이 어떻게 인간의 웃음소리랴!
이것이 어떻게 아름다와야 할 여인의 웃음소리이랴!
쌍필살, 그들도 그 웃음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듣는 순간 자신들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었다.
너무나 섬칫한 마소(魔笑)!
전율하듯 심장에 파고드는 그 웃음소리는 일시간에 그들의 심맥을 진탕시키고 있었다.
"흑흑흑흑… 일소(一笑), 이것이 무슨 소리냐?"
"하하하핫…저주…저주가 깃든 마소(魔笑)였어!"
"하하하핫…조심해라! 저 섬칫한 웃음소리가 이쪽을 향해 오고 있다."
"흑흑흑흑…그건 이미 알고 있다."
일시지간(一時之間), 쌍필살의 신형이 돌처럼 굳어진 채 좌측 통로를 주시했다.
몹시 긴장한 모습이었다.
"크…아… 악!"
하나의 생명이 마지막 절규와 더불어 생(生)을 마쳐간다.
한데… 이럴 수가!
처절한 비명으로 미루어 분명히 참혹하게 일그러져야 할 그의 얼굴이 왜 저런가?
황홀한 미소가 배어있다.
마치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느낀 피를 끓게 하는 황홀감이었다는 듯이…
그리고 여전히 전율스런 섬칫한 마소가 죽은 사내의 얼굴에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호호호호호호!"
도대체 이 섬뜩한 죽음의 마소는 무엇인가?
아니 무엇보다도 이 마소의 주인은 누구인가?
그리고 저 황홀하기만한 저 죽음의 의미는…?
쌍필살, 그들은 들었다. 처절한 절규를…
그리고 보았다. 여인(女人)이었다.
섬세한 몸매와 타는 듯한 붉은 홍의(紅衣)를 걸친 여인이었다.
그녀는 마치 흐르는 유성(流星)처럼 빠르게 그들이 서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한데 그 여인의 모습이란?
오오…저럴 수가…?
지옥(地獄)의 마령(魔靈)이 저주로 변하여 씌워졌는가?
아니면, 스스로 인간이기를 부정하여 악마(惡魔)의 탈을 쓴 것인가?
요기(妖氣)와 사기(邪氣)가 몸전체에서 스물스물 피어오르고 있었다.
피처럼 붉은 혈색(血色)과 섬칫하도록 요사스러운 웃음!
그것은 정녕 인간의 형상이 아니었다.
눈[目]! 아름다와야 할 여인의 두 눈은 흑백(黑白)의 명암이 없다.
새하얀 동자만이 핏빛 사기 속에서 섬뜩하리만큼 번뜩이고 있었다.
"오호호호호!"
심혼(心魂)을 앗아갈 것만 같다.
저 섬뜩하고 전율스런 요소(妖笑)!
더더구나 여인의 공포스런 웃음 속에는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엄청난 진력이 스며있으니…
쌍필살, 그들은 일시간에 전신이 굳어버릴 듯한 충격과 전율을 느꼈다.
"흑흑흑…저럴 수가…저게 사람이냐? 아니면…"
"하하하핫…무서운 저주가 깃든 웃음이다. 조심해야 한다."
"흑흑흑…어쩔 수가 없다. 저 요귀(妖鬼)는 이미 우리를 발견했어!"
놀라운 일이었다.
천하의 괴인들인 쌍필살이 지금 공포에 질린 듯한 모습이 아닌가?
그때였다.
요녀(妖女)는 쌍필살을 발견한 듯 더욱 가공하고 요사스런 웃음을 날렸다.
"오호호호!"
요광(妖光)이 번뜩이는 흰자위에서 형용할 수 없는 광기가 번뜩 스쳐간다.
그리고 요녀는 이미 쌍필살을 향해서 그 황홀한 옥수(玉手)를 휘두르고 있었다.
일시지간 좁은 통로 안이 돌연 황홀한 옥수의 그림자로 가득 채워졌다.
그와 동시, 전신의 모발이 일시에 쭈삣 일어설 것만 같은 요기가 으스스하게 퍼져갔다.
쌍필살은 크게 놀라 급히 전신의 모든 공력을 실어 쌍장을 휘둘렀다.
순간, 무서운 흡인력이 생겨나 일시에 통로의 공기를 빨아들였다.
고 오 오
가공할 진공상태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천하의 그 무엇이든 그 진공상태에 들어오면
전신이 산산이 부서져 분리되고야 말 것 같았다.
한데, 요기(妖氣)속에 감추어진 요녀의 쭈삣할 듯한 음성이
다시 통로 안을 진동시켰다고 생각하는 순간,
묵직한 신음성과 함께 쌍필살의 신형이 미미하게 비틀했다.
"오호호호!"
"으음!"
"헛!"
한데 바로 그 찰나지간,
돌연 타는 듯한 혈운(血雲)이 쌍필살과 천후를 휘감고 지나갔다.
순간, 쌍필살은 전신의 맥이 쫙 빠져드는 착각을 느끼며 힘없이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러자, 으스스한 혈운 속에서 또다시 섬뜩한 마소(魔笑)가 조롱하듯 터졌고
, 뒤이어 요녀의 그림자가 스치듯 통로를 뚫고 사라져 갔다.
"오호호호!"
쌍필살, 그들은 그 순간 내장이 온통 뒤틀리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뿐이랴!
심맥이 크게 진탕된 그들의 입가에서는 한줄기 붉은 선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나, 그들은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천후쪽을 바라봤다.
"흑흑흑흑… 일소, 저들은 어떻게 됐을까?"
"으하하하…으욱…무서운 요공(妖功)이었다.
이…이런 심맥이 진탕되었으니… 최소한 두 시진을 조식해야 할 것…같다."
"흑흑흑흑… 으욱…그래… 한데, 자네는 보았나? 황홀한 듯한 그 옥수(玉手)를…"
"하하하하…우욱… 젠장… 이젠 웃지도 못하겠다.
참, 너 옥수라고 했더냐? 그 저주가 깃든 듯한 황홀한 손을 나도 봤지!"
"흐으흑…그건 그렇고 저놈은 어떻게 됐을까?"
"하하앗…욱… 글쎄, 나는 도저히 저놈을… 살펴볼 용기가 없다.
참담하게 죽어있을 그 모습을 보기가 싫기 때문이야."
"흐으윽…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윽!"
두 사람은 억지로 내공을 끌어 올리는 듯 연신 선지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쌍필살의 귓가에 들리는 영롱한 음성!
"걱정 마시오. 두 분! 나는 이렇게 멀쩡하오. 보아하니 두 분은 심하게 다친 듯한데…
그러나 잠시만 내 아내를 보살펴 주시오. 나는 급히 가야할 곳이 있소."
오오…그것은 천후의 음성이 아닌가?
"아! 머… 멀쩡했구나!"
"으윽… 믿지 못하겠다! 어떻게?"
쌍필살은 대경한 듯 자신들의 상처도 잊고 두 눈을 부릅떴다.
"하하하! 천향심법은 원래 심령사공(心靈邪功)과는 극성(極性)이오.
자, 잠시만 부탁하오."
천후의 음성이 다시 들려온다 느꼈을 때
, 돌연 잠시 가려졌던 오색서기가 다시 찬란한 빛을 토해내며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스스스슥
실로 형용할 수 없는 향기도 그와 함께 확 퍼져갔다.
그와 동시, 하나의 오색광망이 스르륵 움직여
요녀가 사라진 방향으로 미끄러져 사라졌다.
쌍필살, 그들은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오색광망 속에 흐릿하게 움직이는 천후의 모습을…
"오오…!"
"과…과연… 전설의 천향은…!"
경탄과 탄성이 그들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고 있었다.
* * *
"아… 아…악!"
또 하나의 단말마가 처절하게 울려퍼진다.
또다시 누가 죽어가는 것이다.
죽음 앞에 황홀한 표정으로 나자빠지는 가련한 생명, 여인(女人)이었다.
아름다운 여인이 죽어가고 있었다.
그녀 역시 황홀한 듯한 표정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나이 십 팔구 세쯤 됐을까?
꽃다운 나이가 너무나도 서럽게 느껴진다.
천후, 그가 나타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이럴 수가…악독한 요공(妖功)에 당했는데도 이토록 황홀하게 표정짓고 있다니…
천후의 두 눈에 의혹과 함께 엷은 분노가 스쳐가고 있었다.
'혈사경의 무학에 죽은 자들도 이처럼 겉으로 상처가 드러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요녀도 역시 심령사학(心靈邪學)의 일종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심령사학!
도대체 그것이 어떤 것이기에 이토록 가공하면서도 신비한가?
그때였다. 천후의 두 눈이 일시간 파르르 떨렸다.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형용할 수 없는 무거운 압박감, 천후의 몸이 일시에 굳은 듯 경직되고 있었다.
하나 그것은 잠시,
천후의 얼굴에 뜻모를 미소가 사르르 스쳐갔고, 예의 그 흐릿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천하에서 그대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는 인물은 단 한 사람밖에 없지!"
무슨 말인가?
그렇다면 천후는 이미 그가 누구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말인가?
다가오던 인영의 몸이 순간적으로 멈추어졌다.
"후후후…인간에게는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냄새가 있는 법이야
. 나는 그것을 분위기라고 생각하지!"
"그대는 죽음의 냄새[死香]을 지니고 있어.
세인(世人)들은 그래서 사향공자(死香公子)라고 부르더군."
오오…사향공자라면…?
바로 무림오공자 중의 하나인 그가 아니던가?
그때였다. 문득 인영이 입을 열었다.
"세인들은 그대를 너무나 모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
그대는 결코 미친 서생[狂書生]이 아니야."
"후후후… 그런가?"
"웃는군. 하나 그것은 사실이야.
나는 조금 전 검을 뽑아 그대를 베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었어."
천후의 두 눈은 왜냐고 묻고 있었다.
"그것은 흩어진 듯한 그대의 모습인데도 이상하게도 내겐 거대한 산(山)으로 느껴졌거든!"
천후의 입가가 묘하게 말아 올라간 것은 바로 그때였다.
"산(山)이라… 너무나 나를 추겨 주는군!
내가 볼땐 그대의 검은 태산이라도 결코 가리지 않을 것 같은데…?"
"글쎄…!"
인영의 말은 거기서 끝났다.
천후는 아주 서서히 일어서서 인영을 향해 돌아섰다.
인영, 그에게 볼 수 있는 것은 턱밑까지 내려온 깊숙한 흑립(黑笠)과 검은 옷,
그리고 역시 검은 긴 도(刀)였다.
전신이 마치 칠흑의 밤을 연상케 하는 인물!
또한 그의 몸에서는 알 수 없는 압박감과 살기가 물씬 풍겨오고 있었다.
사향공자가 틀림없으리라!
오늘 낮 개봉루에 모습을 보였던 기이한 인물 사향공자,
그가 뜻밖에도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천후는 그때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역시 내 추측대로 그대였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미친 듯 마셔대던 그대를 본 순간
이미 나도 그대가 광서생임을 알 수 있었지."
"인연이군. 한데, 그대는 내게 무슨 할말이 있는 것 같은데?"
"있지!"
문득, 깊숙한 흑립 속에 가려진 사향공자의 두 눈에 흐릿한 명암이 드리워졌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것을 얘기할 것인가에 대해 회의하고 있어."
"나는 원래 내 주위에 대해서는 결코 신경쓰지 않았다네.
그래서 누구에게 무엇인가에 대해 단 한 번도 이야기해 본 적도 없어."
천후의 입가에도 희미한 파문이 일었다.
"나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
그대는 꼭 그렇게 살아온 인물일 것 같아. 버려진 들판의 야수처럼…
한데, 그대가 지금 회의를 느낀다 함은 결국 이야기 하겠다는 것인데…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후후후…그건 나도 몰라. 단지, 그대에게 꼭 필요한 정보일 것 같아서…
모르겠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고..."
"재미있군! 왜 하필이면 나일까?"
"그건 묻지 말게! 나도 지금 나 자신을 잘 모르겠으니까…
단지, 꼭 이유가 있다면…언젠가는 내 검이 그대를 향해 뽑혀질 것 같아서
미리 내 자신의 금기를 깨뜨리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네."
순간, 천후의 입가에 예의 그 특유한 미소가 구름일 듯 피어났다.
"나를 벤다? 좋아…재미 있겠어. 하나, 그것은 차후의 일,
우리… 오늘은 오늘 얘기만 하는 것이 어떨까?"
"좋네! 나는 그대에게 한 명의 요녀가 어떻게 사람을 죽였는가에 대해서 본대로 말하고 싶어."
"요녀…?"
"그래!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전율을 그녀에게서 맛볼 수 있었지."
"전율을…그대가?"
"요사스런 기운과 가공할 심령사공이었네.
새하얗고 황홀한 옥수(玉手)가 어리는 순간
저기있는 여인은 옥수를 황홀한 듯 지켜보다 돌연 비명을 지르더군!
그리고 죽었어."
"옥수…황홀한 옥수…"
천후는 사향공자의 말을 되풀이 하며 생각을 굴려봤다.
하나, 그것이 무엇인지를 당장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사향공자는 천후의 생각하는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다 문득 몸을 돌렸다.
그리고 서서히 걸어갔다.
무거운 기도가 죽음처럼 전신에서 꿈틀대는 뒷모습!
사향(死香)은 너무나 그에게 어울리는 말이었다.
그때였다. 천후의 나직한 음성이 그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가나…?"
하나, 그것은 극히 잠시에 불과했다.
"가야지… 더 이상 할말이 없어… 그말도 겨우 할 수 있었다네…"
"그렇겠군."
천후는 나직이 말하며 그에게서 시선을 뗐다.
두 사람은 그렇게 헤어지고 있었다.
실로 괴이한 만남이자 헤어짐이었다.
한데 문득 서서히 멀어져 가던 사향공자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한가지만 더 이야기 하겠네. 요녀는 좌측 통로로 사라졌네!
그 통로의 끝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더군. 와호담이라는 큰 연못이 있고,
그리고…그곳도 역시 있는 것이라곤 피와 죽음 뿐이더군!"
그 말을 끝으로 사향공자의 모습은 천후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천후는 그의 뒷모습을 한동안 지켜보다 문득 나직이 중얼거렸다.
"태어나 두 번째로 마음에 드는 인물을 만나게 되었군!
하나, 운명은 그와 나를 결코 아름답게 꾸미지 못할 것만 같아…!"
무슨 소리인가?
마음에 들면서도 아름답게 꾸밀 수가 없다니…
와호담(臥湖潭)!
죽음과 피를 부르게 된 연못의 이름이었다.
지하광장의 가장 깊숙한 곳,
신비와 유혹, 그리고 죽음이 깊이 배어있는 와호담!
그것은 푸른 물을 담고 있었다.
넓이 약 오 장(五丈)!
시리도록 푸른 물이 차라리 섬뜩하게 보이기도 한다.
한데 그 주위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 처참한 광경은 무엇인가?
"크아악!"
"아… 악!"
피[血]…차라리 선명하여 아름다운 붉은 선혈!
그리고 번뜩이는 검과 처참한 절규,
아비규환(阿鼻叫喚)의 구천지옥(九泉地獄)도 저러하지는 못하리라!
모두 오십여 명의 인물들이었다.
한 대의 화려하기 그지없는 가마와 핏빛 선명한 마차가 보인다.
가마 옆의 녹일 듯한 미인들과 마차 옆의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여인들,
그리고 소림의 혜법과 혜선, 팔대금강이 보인다.
개방의 인물들, 자색의 긴 죽장을 쥔 나이 칠십 정도의 자면개(紫面 )와
열여덟 명의 당당한 개방제자들이다.
뿐이랴,
마치 신선을 연상케 하는 백의노인과 그를 호위한 다섯명의 인물들…
그외에도 많았다.
그리고 와호담의 바로 옆에서는 지금 십여 명이 뒤엉켜 처참한 참극을 연출하고 있었다.
"크…아…악!"
"아… 악!"
그들은 적도 아군도 없었다.
오직 자기 자신의 생명을 위해 상대를 죽이고 있었다.
잘려진 팔다리가 아직도 팔딱거리며 뒹굴고 있고,
깨어진 허연 뇌수는 보기에도 역겹다.
어디 그 뿐이랴, 지금 막 베어진 복부를 희멀건히 내려다 보는 자(者),
꾸역꾸역 밀려나오는 시뻘건 내장을 보고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한데 한가지 기이한 것이 있었으니…
싸움을 관전하고 있는 마차와 가마,
그리고 소림과 개방의 인물들은 전혀 그것을 상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남의 일을 보듯 무표정한 얼굴로 무심히 서 있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하나의 인영이 싸우다 말고 돌연 와호담의 푸른 물을 향해 몸을 날렸다.
휘 익
그것은 너무도 뜻밖이라 그와 상대하던 인물도 일시지간 멍하니 서 있었다.
"흥! 네놈 혼자 다 해먹을 셈이냐?"
"크크크…욕심이 많은 놈이로군."
듣기에도 섬뜩한 괴음이 터져나왔다고 생각할 그 순간,
와호담을 향해 몸을 날렸던 인물,
그가 돌연 처절하게 허공을 향해 절규하듯 양손을 휘저으며 죽어가지 않는가?
"크… 아…악!"
파 파 팟!
오오…저럴 수가!
그의 몸은 그 순간 풍선 터지듯 사방으로 찢겨지고 있었으니,
난도분시(亂刀分屍)가 바로 저런 것인가?
무엇 때문에 그는 여러사람들에 의해 찢겨져 죽어가야 했는가?
소림의 혜법과 혜선대사, 그들은 그 순간 나직이 불호를 외우고 있었다.
"업보로다. 욕망이란 죄악이 끝내 한 중생을 또 데려갔나니… 아미타불…업보로다."
장엄한 신색으로 불호를 외우는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탈속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 소림사의 고승을 대번에 깔아 뭉개버리는 인물!
"흥! 괜히 자비로운 체 하지 마라, 돌중들!
나는 너희들에게 보물에 대한 욕심이 결코 없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구인가…도대체 그가…?
소림의 혜법대사가 소리난 곳을 향해 시선을 돌린 순간,
그의 두 눈에 세 명의 괴인의 모습이 비춰졌다.
하나같이 비쩍 마른 고목처럼 앙상하고 피폐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일신에 걸친 누런 황의가 유난히도 섬뜩하게 느껴지는 세 명의 괴인이었다.
"크크크크…"
그들은 소림의 혜법이 자신들을 바라보자 으스스하게 웃고 있었다.
혜법대사, 그는 처음 그들이 누구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하나 그의 시선이 그들의 노란 손에 이르는 순간,
혜법대사의 황색가사가 바람도 없는데 부르르 떨렸다.
"오…남황고루삼잔(南荒 三殘)!"
그뿐만이 아니었다.
혜법대사의 입에서 남황고루삼잔이라는 이름이 튀어 나온 순간,
와호담 주위의 모든 인물들은 일시에 부르르 떨며 두 눈에 공포를 담고 있었다.
"아…남황최대악인(南荒最大惡人)이라는…"
"으으…하지만 저들은…백 년 전에 이미 죽었다고 했는데!"
"잔인하고 악독한 저들이… 이곳에…?"
한데 그때였다. 남황고루삼잔 중의 한 명이 섬뜩하게 말하며 돌연 한 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크크크…감히 우리들의 면전에서 우리에 대해 이야기 하다니…"
순간, 조금 전에 남황고루삼잔에 대해서 무엇인가 떠들어 대던 인물들,
그들이 돌연 참담한 비명과 함께 피를 토하고 고꾸라지지 않는가?
"크…악!"
"아… 악!"
오오… 어떻게 이런일이…?
뿐이랴! 힘없이 고꾸라지던 그들의 육신이 단번에 흑색으로 변해갔고,
삽시간에 그들은 한 줌의 흑수(黑水)로 변해가고 말았으니…
치치치치칙
이럴 수가!
썩어 문드러지듯 흐물흐물 녹아드는 시신의 참경과 역한 피고름 냄새
, 그것은 정말 눈 뜨고는 도저히 지켜볼 수 없는 목불인견의 참상이자 잔인의 극치였으니…
"으…으!"
"저…저런…잔인한…일이…"
중인들은 대번에 공포에 질려 슬금슬금 남황고루삼잔의 눈치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다.
남황고루삼잔, 섬뜩한 흉소(兇笑)를 날리며 중인들을 돌아보는 그들의 두 눈은
독(毒) 오른 독사의 눈, 바로 그것이었다.
"크크크크!"
하나, 그 와중에서도 피와 절규의 참상은 계속해서
연이어 와호담을 적시고 있었으니…
"크…아…악!"
"흐…헉!"
천후, 그는 지금 막 통로의 끝을 돌아 하나의 석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조금 전, 또 이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렸었다.'
그는 바로 비명성을 쫓아 이곳에 이른 것이다.
과연 있었다.
처참하면서도 황홀하게 죽어 있는 시신이 석실의 정중앙에 놓여져 있었다.
나이 삼십 정도의 중년인이었다.
'똑같다. 벌써 열세 명이 똑같은 수법으로 죽었다.'
천후는 번뜩이는 기광을 내 쏟으며 시신을 살피면서 염두를 굴리고 있었다.
한데 그때였다. 천후의 등뒤에 하나의 흐릿한 몽영이 소리없이 나타났다.
그리고 오오…저것은…?
손[手]!
그렇다. 그것은 바로 너무나 황홀하기만한 옥수(玉手)가 틀림없었다.
와호담, 혈전(血戰) 속의 그곳은 점점 더 살기가 감돌고 있었다.
남황고루삼잔의 잔인한 손속에 공포를 느끼고 있던 중인들.
"흥, 남황의 세 마리 개는 너무나 방자하기만 하군!"
한데, 중인들 속에서 돌연 그렇게 말하며 나서는 인물이 있었으니
, 싸늘하고 냉막하여 도저히 감정을 느낄 수 없게 하는 음성은 섬칫한 전율을 느끼게 한다.
남황고루삼잔은 그 순간 시퍼런 독광(毒光)을 내쏟으며 소리난 곳을 쏘아봤다.
인영(人影), 전신에 칠흑 같은 흑의를 걸친 섬세한 흑의여인이었다.
검은면사가 유난히도 섬뜩한 느낌을 주는 흑의여인,
한데 그 여인은 바로 개봉루에 나타났던 바로 그 신비여인이 아닌가?
남황고루삼잔, 그들은 흑의여인을 바라보며 섬뜩한 괴소를 날렸다.
"크크크…계집이군. 네년이 그런 말을 한 이상 각오는 되있으리라!"
섬뜩한 전율감이 오싹하게 스쳐가는 듯한 음성!
"죽음이란 너희들에게도 공포스럽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흑의여인은 무감정한 그 음성으로 나직이 뇌까리며 문득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조금도 두려움이 없다.
아니, 오히려 무감정한 그 음성 속에
남황고루삼잔을 섬뜩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었으니…
남황고루삼잔의 삼각 눈에 처음으로 한가닥 경련이 스쳐갔다.
하나, 그들이 누구였던가?
"크크크…죽음은 우리를 배신한 지 오래됐단다.
그렇지 않으면 우린 백 년 전에 이미 죽었어야 옳아!"
심혼이 으시시 떨리는 음성으로
남황고루삼잔 중의 일잔(一殘)이 말하며 돌연 양 손을 펼쳤다.
순간, 앙상한 그의 전신모공(全身毛孔)에서
섬뜩한 음향과 함께 뭉게뭉게 피어나는 누런 독연(毒煙)!
그와 함께 지하의 공간을 꽉 채운 비릿한 냄새가 확 퍼져갔다.
"크크크…… 나는 네년이 백독불침(百毒不侵)의 금강불괴라고는 믿지 않는다."
누런 독연 속에서 일잔의 음성은 유난히도 전율스럽기만 하다.
중인들은 대경했다.
"아앗! 남황최대의 고루황사진( 荒死陣)이다!"
"피… 피해랏!"
오오…고루황사진이 무엇이던가?
남황의 울창한 장림 속에서 수천 년간 배어든 일종의 장독( 毒)이 아니던가?
단 한가닥의 독연만으로도 황소 천 마리를 비명도 없이 녹여버릴 수 있는 가공무비한 절독.
중인들이 대경하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것이리라!
"흥! 알량한 그 고루황사진으로 어쩌겠다는 것이냐?"
한데, 날카로운 흑의여인의 외침과 동시,
그녀의 신형이 돌연 허공에서 풍차 돌 듯 팽그르 돌며
누런 독연을 뚫고 짓쳐가지 않는가?
휘리리릭!
"오오… 저럴 수가!"
"도…도대체 저 여인이 누구길래… 무서운 고루황사진 속으로…."
중인들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걸 보고 대경하여 부르짖고 있었다.
사실, 그랬다. 그것은 어찌보면 너무나 무모한 짓일 수도 있었다.
남황고루삼잔,
그들은 그 순간 흑의여인의 무모한 행위에 득의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크크크…천둥벌거숭이 같은 계집!"
아마도 그들은 흑의여인이 당연히 죽으리라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한데 그때였다. 득의해서 웃고 있던 남황고루삼잔의 미소가 싹 걷혀졌다.
"아… 아니…?"
"허엇…저…저럴 수가!"
그들은 너무나 놀라운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보라… 흑의여인을!
고루황사진을 유유히 뚫고 섬전처럼 폭사되어 오는 모습은 그야말로 유성과 같다.
뿐이랴! 어느새 뽑았는지 번뜩이는 세 자 길이의 연검은
수백 개의 검화(劍花)를 만들어 내고 있지 않은가?
"허엇… 마… 막아랏!"
"흐윽!"
남황고루삼잔은 대경하며 급히 쌍장을 들어 올렸다.
하나, 이미 가까이 짓쳐온 흑의여인의 입에서 낭랑한 일성(一聲)이 터지고…
"유성탈혼매화검(流星奪魂梅花劍)!"
"크… 윽!"
"악!"
미처 피하지 못한 남황고루삼잔은 피분수를 뿜으며 쓰러져 갔다.
단 일검(一劍)이었다.
흑의여인의 단 일검이 천하의 대마두였던 남황고루삼잔을 격패시킨 것이다.
팔, 잘려진 세 개의 팔이 지면에서 팔닥거리고 있었다.
그럴수록 점점이 튕겨지는 선명한 핏방울.
섬뜩한 순간이었다.
흑의여인,
그녀는 어느새 검을 거둔 채 남황고루삼잔을 향해 냉랭히 입을 열고 있었다.
"이번에는 팔 하나로 경고하고 말지만,
다음에 또 본 낭자 앞에 나설 때는 조심해야 할 것이다."
감정없는 음성!
남황고루삼잔은 잘려진 팔목을 붙들고 참담하게 서 있었다.
그들로서는 너무나 뜻밖인 패배였으니 참담함이 이해가 된다.
그러다 문득, 그들 중 일잔이 원독에 찬 눈으로
잘려진 팔과 흑의여인을 번갈아 보다 뿌드득 이빨을 갈아부쳤다.
"으드득…한순간의 방심으로…이렇게 당했다만…두고 보자!"
저주와 원독(怨毒)이 알알이 맺힌 한서린 음성,
그것은 그들이 얼마나 원통해 하는가를 알 수 있게 해주었다.
그들은 신형을 움직여 와호담에서 사라져 갔다.
그때였다.
한 곁에 서 있던 신선부 부주의 두 눈에 문득 기광이 스쳐가고 있었다.
'놀라운 계집이다. 본 성의 구십칠호금매화를 단 일검에 베다니…
아무리 구십칠호가 방심을 했었다지만 저 계집의 검법은 이미 구십칠호의 적수가 아니었다.'
오오… 이게 무슨 말인가?
그렇다면, 정녕코 신선부가 불사성이란 신비한 집단의 주루라는 말인가?
그리고 남황고루삼잔이 금매구십칠호라니?
이런 일이 정녕 사실이란 말인가?
신선부주는 한동안 흑의여인에 대해 생각해 봤다.
'가공한 무공과 흑의(黑衣),
강호에 저런 계집이라면 오직 무림오봉의 하나인 흑봉(黑鳳)밖에 없다.
그렇다면 저 계집이 흑봉이란 말인가?'
신선부주의 두 눈에 경악의 빛이 스쳐 간다.
'그렇다. 저 태도와 저 모습, 틀림없이 흑봉이란 계집이다!'
오오…흑봉이라면 무림오봉(武林五鳳)의 하나인 신비한 여인이 아니던가?
지닌 바 무학이 결코 무림오공자의 일인인 무적공자 황보웅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여인!
그렇다면 대체 이곳 지하광장에는 얼마나 많은 신비인들이 몰려 있는가?
그때였다.
돌연 누군가가 경악과 희열에 들뜬 음성으로 크게 외치고 있었다.
"와아! 와호담이 끓는다! 이제 곧 천옥마상이 나타나게 된다!"
누군가의 그 외침은 일시에 모든 혈전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중인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모두 와호담의 수면을 향하고 있었다.
와호담의 푸르기만 하던 수면, 돌연 그곳이 서서히 끓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부글부글
오오…저런 현상이 어떻게…?
그것은 실로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잔잔하던 수면이 아무 이유도 없이 끓다니?
옥수(玉手).
천후의 등뒤에서 옥수는 서서히 아주 서서히 천후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저주의 사수(死手)!
그것이 서서히 천후에게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시신을 내려다 보고 있던 천후,
그는 그 순간 무엇인가 섬뜩함을 느끼고 튕기듯 돌아섰다.
바로 그때,
요사하기 그지없는 웃음과 함께 천후의 눈앞에 새하얀 옥수가 번뜩였다.
"오호호호호…"
"허…억!"
너무나 급작스레 당한 일이었다.
천후는 그 순간 죽음을 느껴야 했다.
하나 인간의 본능인가?
"비(飛)!"
천후의 입에서 그 한마디가 섬전처럼 튀어 나오고
그의 신형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확 퍼져갔다.
파파파팟!
스스스
하나, 그 짧은 순간에 천후는 자신의 전신모공을 통해
엄청난 요기(妖氣)가 스며듬을 느끼고 그대로 혼절하고 말았다.
요기(妖氣), 그것은 너무나 무서운 요기였다.
요기(妖氣)!
천후의 전신모공을 통해 급격히 밀려든 요사한 기운.
천후는 그 순간 전신의 모든 내공이 무엇인가에 의해 급격히 소멸됨을 느꼈다.
그리고 전신의 모든 힘이 쭉 빠지며 의식은 점점 아련해져 갔다.
하나, 그 순간에도 천후의 뇌리를 스쳐가는 것이 있었으니…
'천향심법을…십성(十成)만…익혔어도…이요기스러운사공을 막을 수… 있었는데…!'
천후의 마지막 의식이 바로 그것이었던가?
마침내 천후의 신형이 지면으로 그냥 꼬나박히고 만다.
요녀(妖女), 도저히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 요녀는 또다시 요란하게 웃었다.
"오호호호호홋!"
하나 그것은 잠시,
섬뜩한 흰자위밖에 없는 요녀의 두 눈에 극히 짧은 순간 기이한 빛이 스쳐갔다.
그리고 그 순간에 믿을 수 없게도 검은 동공이 반짝이며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것은 놀라운 변화였다.
요녀가 제정신을 차리기라도 한 것인가?
하나, 그것은 너무나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요녀의 두 눈에 또다시 붉은 요기가 스물스물 피어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그 섬칫한 요소(妖笑)가 터져 나왔다.
"오호호호호홋!"
한데, 문제는 다음에 있었다.
찌지 직
이럴 수가, 돌연 요녀가 스스로 자신의 옷을 찢어 발기지 않는가?
뿐이랴! 천후에게 다가서서 천후의 옷도 마찬가지로 찢고 있으니…
오오… 대체 이제 어쩌겠다는 것인가?
순식간에 알몸으로 변한 두 사람!
한데 저 요녀의 눈을 보라! 색광(色光)!
그렇다.
지금 저 요녀의 섬뜩한 눈에 어려있는 것은 바로 욕념(慾念)이 아닌가?
요녀의 나신(裸身)은 너무나 황홀했다.
투명한 피부와 약간 풍염한 몸체!
더구나, 요사스런 기운이 몸전체에 배여 있으니 그 황홀함은 더했다.
작은 어깨의 곡선과 약간은 크다고 느껴지는 옥봉,
가늘고 좁은 허리선과 돌연 벌어지는 풍염한 둔부.
뿐이랴! 새하얀 대리석을 깎아 놓은 듯한 길게 뻗은 저 다리의 선은 또 어떠한가?
신의 최고 걸작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여인의 여체리라!
그것도 남자로 하여금 모든 것을 잊고
무작정 단 한 번이라도 안아보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하는 그런 여체리라!
요녀의 나신은 너무나 유혹적이었다.
그것은 꼭 요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타고난 것이리라!
미색(美色)은 결코 선천적일 수도 후천적일 수도 없는 인간 본연의 것이라고 하지만,
굳이 따진다면 저 요녀의 미색은 바로 선천적으로 타고난 절세미였다.
부드럽고 새하얀 요녀의 다리사이의 비소가 유난히 자극적임은
바로 그녀가 여인이기 때문일까?
파르르 경련하듯 떠는 새하얀 여체는 너무나 폭발적이었다.
흔들렸다. 여인의 몸이 가볍게 흔들리며 천후에게 다가갔다.
폭발적인 유혹과 사기(邪氣),
그리고 떨쳐버릴 수 없는 요기(妖氣)가 천후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크…아…악!"
"아…악!"
처절한 비명은 연이어 터졌다.
선명하여 차라리 아름답게 보이는 시뻘건 선혈,
그리고 눈뜨고는 차마 볼 수 없을 것 같은 널브러진 시신들.
그것은 일대 혈전(血戰)이었다.
와호담, 부글부글 끓고 있는 와호담의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처절한 혈투!
그리고 한순간, 하나의 인영이 요란하게 웃으며 와호담의 끓는 물속으로 쏘아갔다.
"하하하핫! 천옥마상은 나 환생마인(環生魔人)이 점지해 두겠노라!"
그뿐인가?
"무슨 소리? 천옥마상은 우리 표풍삼영(飄風三英)이 이미 접수시킨 것이야!"
"크크크크…죽일 놈들, 귀령일신(鬼靈一身)은 허수아비인 줄 아느냐?"
"킬킬킬…나 왜수사괴(矮手四怪) 앞에서 보물을 논하다니…"
너도나도 제일 잘났다고 생각하는 인물들 대여섯이 쏘아 놓은 화살처럼
환생마인의 뒤를 쫓아 와호담으로 몸을 날렸다.
실로 눈 깜짝할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한데, 가공할 상황이 바로 뒤에 발생했다.
"크… 아…악!"
"아…악!"
환생마인, 표풍삼영, 귀령일신, 왜수사괴 등의 절대고수들,
그들이 와호담에 채 다다르기도 전에 돌연 처참하게 난도분시 되어 죽어간 것이다.
믿을 수 없었다.
환생마인 등이 어떤 인물들이던가?
중원의 팔황을 휘어잡고 있는 대마두들이 아니던가?
한데, 그들이 와호담에 이르기도 전에 그 무엇인가에 의해 갈가리 찢겨져 죽다니…….
중인들,
서로서로 상대로 하여금 와호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며 혈전을 벌이고 있던 그들,
그들은 방금 발생한 사건에 대해 너무나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이… 이게 어찌된 일이냐?"
"환생마인 같은 대마두가 갈가리 찢겨져 죽어가다니!"
"도대체 저 와호담은 무슨 신비를 담고 있는가?"
중인들은 일제히 혈전을 멈추고 멍하니 와호담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하나, 와호담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여전히 끓고만 있었다.
부글부글
섬뜩할 정도로 괴이한 이 현상!
도대체 저것이 무엇인가?
여인의 쭉빠진 새하얀 다리,
둥그런 둔부와 가는 허리가 엄청난 자극을 전한다.
마치 옥(玉)을 깎아 만든 듯 투명하고 고운 여인의 피부였다.
요녀의 나신은 서서히 천후의 그것과 포개어지고 있었다.
은은히 발산되는 숨막힐 듯한 욕정(慾情)의 열기,
그것은 요녀의 몸 구석구석에서 풍겨나는 절대적인 유혹이었다.
천후의 죽은 듯한 나신, 탄탄한 동체가 반듯이 누워있다.
그리고 그 위,
전신의 모든 욕망이 일시에 주체할 수 없이 터져나올 것만 같은
절세적인 여체가 흐느끼고 있었다.
부드럽고 매끈한 두 개의 다리가 부르르 떨리고,
유난히 크게 보이는 둔부가 기이한 율동을 한다.
곧 부러질 것만 같은 가는 허리는 스스로 못이겨 흔들리고,
그럴수록 더해가는 짙은 욕망의 갈구!
요녀(妖女)! 그녀도 분명히 여인이었는가?
"아…!"
뜨거운 열기가 알알이 배인 농도 짙은 한숨이 사르르 새어나오고 있었다.
와호담, 그것이 돌연 더욱 거세게 끓었다.
그러자 누군가 크게 외쳤다.
"드디어 천옥마상이 그 모습을 보인다!"
혈전(血戰)!
은원도 없는 서로서로가 단순히 하나의 보물 때문에 무조건 죽였다.
누군가의 외침을 그 기점으로 다시 저주의 혈전이 펼쳐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조금 전과는 다른 양상이 전개되었으니,
그것은 홀연히 나타난 일단(一團)의 무리들 때문이었다.
무려 백여 명은 되보이는 기이한 복장의 인물들,
그것은 바로 혈의복면인들이었다.
섬뜩한 혈매화를 가슴에 새긴 그들은 나타나자마자
와호담 주위에 있는 모든 인물들을 향해 짓쳐 들어갔다.
"모조리 죽여랏!"
"불사성의 일에 방해가 되는 놈들이다!"
불사성(不死城), 그들은 바로 불사성의 혈매화들이었다.
삽시간에 형세는 확 변하고 말았다.
이제까지 서로 죽이고 죽던 인물들,
그들은 이번엔 서로서로 힘을 합하여 불사성의 혈매화들과 대항했으니…
"크…아…악!"
"아… 악!"
처절한 단말마는 결코 쉼이 없었고,
선혈한 피와 잘려나간 팔다리가 너무나도 처절하기만 했다.
한데, 그런 와중에서도 와호담은 계속해서 더욱 거세게 끓고 있었으니…
부글부글
거센 파문과 함께 곧 무엇인가 솟아 나올 듯한 기세가 분명하기만 했다.
뜨거운 충격이 교차된다.
투명한 옥체(玉體)는 땀에 젖어 묘한 욕념을 불러 일으킨다.
화사(花蛇)의 또아리마냥 유혹적으로 엉켜있는 남과 여,
그들은 이미 하나가 되고 있었다.
여인의 유난히 흰 허벅지가 연속해서 경련을 일으키고 있고,
가는 허리는 이제 부러질 듯 뒤틀리고 있다.
그리고 거센 율동의 결과인가?
"하아…"
거친 호흡이 유난히도 인간의 본능을 자극한다.
석실 안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차 갔다.
뜨거운 열풍이 한동안 휘몰아 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한순간,
마침내 여인의 몸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부르르 떨리고 말았다.
"아…"
뿐이랴! 이미 축축히 젖어 곧 터질 것만 같은 입술,
붉디붉은 그 입술이 정신없이 천후의 창백한 입술을 휘젓고 있었다.
유난히 격정적으로 보이던 풍염한 둔부는
이미 천후의 알몸과 단 한 치의 차이도 없이 밀착되어 있었고,
백사 같은 여인의 팔은 천후의 가슴을 뽀갤 듯 껴안고 있었다.
구름이 거세게 일고 있었고,
거센 비[雨]가 구름의 저 깊은 곳에서 광란하듯 퍼부어지고 말았다.
여인은 이미 요녀가 아니었다.
유혹적인 육체엔 이미 요기가 사라진지 오래였다.
으스스한 사기도 보이지 않았다.
약간은 지쳐 보이긴 해도 여인은 그냥 보통의 여인으로 변해 있었다.
결코 요녀가 아니었다.
와호담의 혈전은 더욱 치열했다.
그것은 혈매화 등의 잔인하고 독랄한 공격에도 이유가 있지만,
혈매화에 대항하는 무림고수에게도 그 이유가 있었다.
개방의 자죽신개와 그의 수신십팔개는 둥그런 원진을 만들어 대항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이미 십여 구의 혈매화의 시신이 널브러져 있었다.
유난히 화려한 가마, 그것을 에워싼 여덟 명의 녹일 듯한 여인!
그녀들도 이십여 명의 혈매화와 치열하게 맞붙어 있었다.
한 대의 핏빛 마차,
말은 없고 몸체만 있는 그 마차 주위에도 면사를 한 네 명의 여인이
이십여 명의 혈매화와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한데 놀라운 것은, 그녀들은 전혀 당황한다거나 초조한 기색이 없었다
. 여유있는 응수로 혈매화들을 요리하고 있었다.
그녀들의 주위에는 이미 십여 구의 시신이 흩어져 있었다.
소림의 혜법, 혜선대사와 팔대금강,
그들도 괴이한 진(陣)을 펼쳐 혈매화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들의 주위에는 유일하게 시신이 없었다.
자세히 보면 소림승려들은 수비만 할 뿐 전혀 공격을 하지 않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한데, 무엇보다도 치열한 곳은 바로 일반 무림고수쪽이었다.
"크… 악!"
"아…악!"
약 오십여 명의 혈매화와 많이 죽거나 다쳐 이제는 십여 명밖에 남지 않은 무림고수들,
그들은 서로서로 혼신의 힘을 다해 죽이고 또 죽어갔다.
피[血]!
참상도 이런 참상은 없으리라.
혈육난비(血肉亂飛)의 처절무비한 참상,
그것은 분명히 구천지옥의 아수라계(阿修羅界)가 틀림없었다.
한데 일반무림인 중에서 유난히도 눈에 뜨이는 인물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세 명의 남녀였다.
조금 전에 남황고루삼장을 일검에 베어버렸던 흑봉과
안면이 유난히도 누런 백의청년,
그리고 결코 중원인(中原人)으로 보이지 않는 색목인(色目人)이었다.
흑봉만 빼고는 그동안 단 한 번도 눈에 띄지 않던 기이한 두 사람,
한데 문제는 그들의 무공에 있었다.
번 쩍!
흑봉의 짧은 연검이 하늘에서 반원을 그었다고 느껴진 순간,
여기저기에서 팔다리를 잃은 혈매화의 절규가 터지고…
"크… 아…악!"
슈 우 웅!
누런 안색을 한 청년의 두 팔이 빙글 허공에서 교차할 때,
섬뜩한 음향과 함께 자색광채가 사방으로 확 퍼져나가고,
뒤이어 폐부를 도려내는 듯한 처참한 단말마가 심혼을 떨게 한다.
"아…아… 악!"
뿐이랴! 색목인의 몸을 감싸고 있는 섬뜩한 청색강기,
그것에 부딪치는 모든 것은 그 즉시 산산이 부서지거나 찢겨져 나가고 있다.
고 오 오
무시무시한 회오리와 함께 그의 신형이 팽이 돌 듯 도는 순간,
또 하나의 혈매화가 그 강기에 맞아 처참하게 찢겨져 죽어갔다.
"아… 악!"
도저히 추측할 수 없는 괴이한 인물들, 그리고 그들의 막강한 무공!
도대체 저 두 사람은 누구인가?
누구길래 저토록 가공한 무공을 사용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때였다. 와호담의 수면이 더 이상 끓을 수 없을만큼 왕성하게 끓기 시작했다.
부글부글
그것은 꼭 무엇인가 금방 튀어나올 것만 같은 무서운 형상이었다.
하나, 그 누구도 그것에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혈매화를 움직이고 있는 한 명의 금매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와호담에 접근시켜서는 안된다!"
"또 그 누구도 이곳을 빠져나가게 해서는 안된다!"
섬뜩한 안광으로 사방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인물,
그가 그렇게 외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선부주와 그의 호법들, 그들은 그때 금매화에게 다가가 무엇인가 묻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당혹감이 가득 서려 있었다.
"아니…금매십칠호! 이것이 도대체 어찌된 일이오?"
신선부주의 음성은 사뭇 다급해져 있었다.
금매십칠호라는 인물!
그는 그런 신선부주를 힐끗 쳐다본 후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
"그건 나도 모르오.
나는 단지 이곳에 있는 인물들을 모조리 붙잡고
한식경만 버티라는 명령을 전해 듣고 그것을 시행하고 있을 뿐이오."
"그…그게 무슨 말이오? 무슨 이유 때문에…그러한 방법을…"
"그건 나도 모르오."
금매십칠호는 더 이상 귀찮다는 듯 고개를 돌려 버렸다.
신선부주, 그의 얼굴에 일순 분노가 스쳐갔다.
"금매십칠호! 그대는 너무 무례하다!
아무리 소속이 틀리더라도 나는 분명히 불사외전(不死外殿)의 전주급 직위가 아닌가? 한데…"
신선부주의 냉랭한 일갈에 금매십칠호의 시선이 다시 들려졌다.
"크크크크… 내가 무례하다고?
그럼 할 수 없이 이런 명령도 내가 받았다는 것을 말해 주어야 하겠군!"
"며…명령… 또 다른?"
"크크크…그렇소이다.
그 명령에는 외사전(外四殿) 중 비마전(飛魔殿)의 전주인 당신도
이곳에다 붙잡아 놓으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소이다."
"뭐…뭣이?"
순간, 신선부주와 그의 다섯 호법의 신형이 전율과 함께 부르르 떨렸다.
"그…그럴 수가…"
그들의 입에서는 하나같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렇게 되뇌이고 있었다.
하나, 금매십칠호는 비웃기라도 하듯
괴이한 괴소만을 흘릴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크크크크크…"
놀라운 일이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불사성에서는
그와 같은 명령을 내렸단 말인가?
첫댓글 즐감~!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ㅈㄷㄳ
즐감요!!!!!
와호담의 비밀!
잘봅니다..^^
ㅎㅎㅎ
즐독했습니다~~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즐독!!!!!!!!!!!!1
잘보았음니다
즐독요
즐독...감사...꾸벅
즐감
즐독 감사합니다^^^
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