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평생교육학회 한숭희 회장(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교과서의 원리를 뒤집어야 한다
지난 2013년 6월에 인터뷰를 했으니 정확하게 셈을 하면 2년하고도 8개월만의 만남입니다. 당시에는 시민교육에 관한 고민이 깊은 차에 이에 대한 지혜를 얻고자 인터뷰를 빌미로 찾아뵈었는데 이번에는 개인이 아닌 ‘한국평생교육학회’ 회장 자격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숭희 교수는 올해 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2년간 학회를 대표하게 되는데 학회가 어떤 역할을 해왔고 차후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무엇인지, 그리고 현장과 이론은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등에 관해 의견을 들어 보았습니다.
‘한국평생교육학회’에 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홈페이지에 게시된 학회의 약력과 활동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평생교육학회는 1966년 한국교육학회 사회교육연구회로 출발하여, 1991년부터 학술지를 정기적으로 발간하기 시작했고, 1995년에는 연구회를 학회로 확대 개편하여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회원 및 기관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월례 학술포럼, 연차학술대회, 대학원생 워크숍, 한국과 일본의 학술교류 등을 실시하고, 한국연구재단 등재학술지 '평생교육학연구'를 연 4회 발간하면서 명실상부한 학문공동체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
학회가 추진해야 할 세 가지 과제
정성원 : 학회장이 권한은 별로 없고 일감이 많은 자리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간략하게나마 소감을 말씀해주시면 좋겠네요.
한숭희 : 학회장은 학문하는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하는 것이니 사실 특별한 것은 아니에요. 학회는 평생교육의 이론 영역을 책임지는 기구입니다. 평생교육은 크게 실천과 이론 영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실천 영역은 평생교육사협회, 평생교육총연합회, 문해교육협회 등 여러 직능 및 실천단체들이 있고 각 영역별로도 실천가 그룹들이 있기 때문에 잘 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실천 영역에서 필요한 학문적 지원을 학회와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를 만들고 법을 개정할 때 함께 힘을 합할 수 있습니다.
학회에 여러 일들이 있지만, 제가 믿기에 세 가지 정도의 과제를 잘 추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첫째, 기본적으로 평생교육을 개념적 이론적으로 정립하는 일은 학회의 영원한 숙제입니다. 평생교육학회는 교육학의 한 영역을 탐구하고, 궁극적으로 교육학 전체의 이론적 지평을 확장하는 역할을 합니다. 지난 수십 년간 학회가 평생교육 공급지형을 넓히고 제도를 만드는 일에 힘썼다면, 이제 이 일들을 이론적으로 해석하고 구조화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둘째 평생교육의 전문성 제고입니다. 학교의 교사가 전문직 자격을 가진 자리이듯, 비형식교육에서도 교육과 프로그램 운영에 전문성이 요구됩니다. 이를 위해서 학회는 평생교육사의 전문성을 현실에 맞게 재정의하고, 대학 프로그램을 통해서 잘 양성하고, 그 학습결과를 인정하고 승급시키는 등의 당면문제가 있습니다.
셋째, 최근 바람이 불고 있는 부분 중 하나인, 고등교육 수준에서의 평생학습을 촉진해야 하는 역할이 있습니다. 크게 보면 평생교육 영역들이 학교, 직장, 그리고 삶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면, 이 가운데 학교의 정점을 구성하는 대학의 평생학습이 폭풍의 핵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대학의 평생학습화, 즉 고등평생학습체제의 발달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학회의 역할, 향후 가속도가 붙을 것
정성원 : 학회가 해야 하는 일들을 중심으로 말씀해주셨는데요, 지금까지 학회가 해왔던 것 중 개선하거나 강화할 부분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한숭희 : 학회는 지금까지 늘 열심히 해왔다고 생각하지만, 주어진 과제에 비해 역량은 늘 부족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한 예로 일본이 저희보다 학자 수가 한 10배는 많은 것 같아요. 학문의 출발도 늦었죠. 연구를 집중적으로 시작한 것이 90년대 후반이고요. 한편으론 계속적으로 이론적인 공간이 열려가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공간에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요. 비유컨대, 학교교육 같은 경우는 그 생태가 닫혀 있는 형태고, 주어진 체계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방책적 탐색을 많이 합니다만, 평생학습은 실천과 이론의 공간 자체를 개척하면서 가니까 새롭게 접근하고 손대야 할 빈 공간들이 너무 많이 보여요. 늘 열려있는 새로운 가능성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늘 부족하죠. 해도해도 늘 축적되는 것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한국평생교육학회로 이름을 바꾼 2000년 이후, 지난 15년 동안 해온 것을 보면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만족스럽습니다. 전공하는 학자수도 늘어났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더욱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한국평생교육학회, 한국의 평생학습과 관련된 실천과 제도화에 기여
정성원 : 저는 학회는 회원들간의 일종의 학문공동체라고 봅니다. 그렇지만 학문공동체를 뛰어넘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것이냐 라는 문제를 등한시할 수는 없을 텐데요. 학회가 한국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한숭희 : 학문과 실천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학문이 곧 실천입니다. 저희 학회의 전신인 한국사회교육학회부터 본다면, 저희 학회는 그동안 대부분의 평생교육 제도화를 이끌었죠. 사회교육법, 평생교육법을 만들었고, 2007년 평생교육법 개정을 통해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을 만들었고 학점은행제 등 관련 설계들도 학회를 중심으로 했고요. 평생교육사 양성과 관련된 모든 제도를 학회원들이 힘써 만들었습니다. 또 평생학습도시를 활성화하는데 학회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하고 기여했죠. 우리나라 평생교육 발전과 관련해서 학회의 역할은 뗄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렇게 본다면, 지금까지 학회의 기여는 주로 실천과 제도화에 있었다고 할 수 있고, 이것이 한국사회에 끼친 직접적인 기여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그 역할분담을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80, 90년대 학회에서는 실천과 이론을 다했어요. 80년대 학회 주제들을 보면 노동교육, 인문교육, 문해교육 같은 것들이 논의되었고 어떻게 활성화하느냐를 제일 중요하게 논의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정도 평생교육의 복합적인 학습생태계가 만들어졌고, 각 부분에서 자가 발전의 동력들이 만들어졌어요. 실천은 실천별로 분화된 현상들이 나타나고, 학문하는 사람들은 이를 포괄적으로 접근하면서 보다 거시적으로 전체를 포착하는 이론적인 틀을 만드는 쪽에 시간을 더 써야겠죠.
실천/직능단체가 생기기 전과 다르게 이제는 실천과 이론 영역이 분화되기 시작하면 역할들이 달라져야 되는 거죠. 예컨대 광역이나 기초지자체에도 전문가들이 많이 포진해있고 실천 현장은 그 사람들이 만들어나가고 있어요. 대학에도 성인학습자와 관련 여러 장치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요. 일터에서는 예전부터 그렇게 해왔다고 보고요. 이제 학문은 좀 더 순수이론 쪽으로 가야하는 시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성원 : 직능단체들이 자기 자리를 만들어나가는 단계이긴 합니다만 전문화 세분화 되기에는 아직 미숙한 단계 아닌가요.
한숭희 : 시간이 걸리지요. 하지만 저는 자기 역할을 시작했다고 봐요. 아직 회원수도 탄탄하지 않지만 어디나 시작은 다 그렇잖아요. 저는 실천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해본 사람이 젤 잘 안다’는 건 진리입니다. 전문성은 누가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단체들을 중심으로 창조해 내는 것입니다.
학문적 지평을 교류하는 방식이나 관계의 친밀도가 높은 학회
정성원 : 외부에서 볼 때 학회의 개별 교수들이 학문공동체로서의 밀도가 그리 높아보이지 않았습니다. 학회 회원들이 추구하는 공동의 가치나 토대가 있다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한숭희 : 생각보다는 굉장히 밀도가 높아요. 교육학의 다른 분야는 물론이고 다른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공동체보다도 높습니다. 일종의 관계 친밀도, 학문적인 지평을 교류하는 방식이나 공부를 같이 하고자 하는 열정 같은 것은 오히려 더 끈끈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연구하고 고민해야 할 문제, 공부할 거리들이 너무 많아서 어떤 한두 가지 문제를 가지고 여러 사람이 집중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에요. 하다보면 각자의 영역간의 시너지가 덜 나는 것이 있죠. 이것은 큰 문제를 적은 수의 사람들이 하다보면 흔히 나타날 수 있는 부분들이죠.
새로운 출발의 이니셔티브를 현장에서 쥐기를
정성원 : 앞서 대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연구 집단과 직능 단체가 분화되는 단계이기도 하고 그렇게 가야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저희처럼 시민들과 직접 부대끼는 현장의 실천 그룹들과 교수진들이 만나는 영역은 접점이 별로 없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교수님들의 연구를 통해 더 넓은 지평과 시야를 제공해주시고, 실천 분야에서는 그것을 토대로 활동에 반영하기도 하고, 실천을 다시 이론으로 추상화하는 것들이 좀 더 역동적이고 접촉면이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한숭희 : 실천가와 학회의 접점이 적었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한국 평생교육의 전체 역사 안에서 본다면 오히려 너무 많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평생교육이 실제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 2000년대 들어와서라고 하면 그 기간은 기껏해야 15년이고, 그동안 우리는 매우 많은 일들을 해냈습니다. 유럽에서는 100년에 걸쳐 일어난 일들을 우리는 20년도 안된 기간 동안 하고 있는 셈입니다. 예컨대 평생교육총연합회도 주로 교수들이 주도했어요. 이제는 현장의 다른 분들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지자체의 민관협력 프로그램 같은 것들도 이제는 현장에 계신 분들이 주도해야 한다는 거죠. 늘 오버랩은 있는 거지만 지금까지는 시작을 학자들이 주도한 형태였어요. 꼭 그럴 필요는 없거든요. 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이론적 기반이 활용도가 높고 필요하다면 초빙을 하고, 이론의 어떤 부분이 현장 문제를 더 깊이 들어다봐야 한다면 현장에 들어가 같이하자고 제안을 해야 하는 것이고요. 이제 새로운 출발의 이니셔티브를 현장의 목소리가 쥘 수 있었으면 합니다.
학자와 실천가의 연대는 질문과 답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실현
정성원 : 저희는 학회지나 세미나 같은 것으로 학회를 확인하게 되는데요. 모든 주제들을 다 보고 있는 건 아니지만 현장에서 바로 차용하거나 관심 있게 볼 것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론이라는 것이 늘 현장만 반영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장과 교수 집단이 함께 연구해서 공동으로 하나의 진전을 이루어나간다면 좋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죠.
한숭희 : 필요에 따라 접점들을 찾아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액션 리서치라고 말하잖아요. 다른 학문의 경우는 모르겠지만, 학계와 실천계가 연대해서 수행하는 액션 리서치를 통해서 학자들은 교육이라는 큰 문제에 대한 답을 얻게 되고, 실천가들은 현실적인 방법론을 추출할 수 있게 됩니다. 제가 볼 때, 학자와 실천가의 연대는 질문과 답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실현된다고 생각합니다. 학자들이 줄 수 있는 것은 현장에 대한 질문이고, 그 답을 실제로 찾는 일은 현장실천가의 몫인 셈이지요. 정확한 층위의 질문이 나왔을 때 어떤 현상을 바라볼 수 있는 길이 생기는 것인데 질문에 대한 대답은 현장의 맥락이나 요구마다 다릅니다. 학자들은 일반이론적 차원에서 구조를 설계하고, 현장실천가들은 그 구조를 참조하여 실천전략을 짜게 됩니다. 물론 학자들에게 프로젝트를 줘서 답까지 구하도록 할 수 있겠지만, 그런 답은 늘 상황이 변하면 변하기 마련이니 어떤 외부인에게 의뢰할 일이 아니지요. 사실 현장에 있는 사람보다 디테일을 더 잘 알 수는 없어요. 다만 그들이 이론적인 프레임 없이 현장 문제의 답을 얻을 수는 없으니까, 이런 점에서 학자들과 현장실천가들의 느슨한 형태의 연대와 협력이 제일 좋다고 봅니다.
구체적이고 분명한 일본의 사회교육
정성원 : 학회 활동 중 한 영역이 일본과의 교류잖아요. 우리와 다른 일본사회교육학회의 동향이나 특징이 있나요?
한숭희 : 저희와 비슷한데, 다른 점이라면 일본은 우리보다 연구의 대상이 지역에 한정되어 있고, 따라서 구체적이고 분명합니다. 거기는 주로 지역사회교육이 중심이에요. 대학이 평생교육에 별로 참여하지 않고 국가가 선도하지 않습니다. (혹은 국가가 선도하는 평생학습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을 별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평생학습이라는 말도 잘 쓰이지 않고 사회교육이라고 말하죠. 일본에서 사회교육은 지역을 기반으로 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교육이라고 되어 있어요. 일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학교교육이 만들어낸 여러 가지 문제나 그림자들을 해결하는 역할로 사회교육을 이해하고 있고요. 사회교육은 주로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주민자치, 자기결정력, 민주시민, 공동체성 개발 이런 쪽으로 집중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는 지금까지 국가가 나서서 평생학습체제를 구축하도록 지원하고 정당화하는데 집중해왔습니다.
공적인 구조에 지나치게 기대고 있는 한국 평생교육의 한계
정성원 : 그렇다면 한국평생교육학회의 흐름이나 특징들은 무엇인가요? 지역을 기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일본 사회교육의 측면이라면 사회 참여 측면에서 보는 일본의 전통과 저력이 큰 것이잖아요.
한숭희 : 우리나라가 훨씬 더 현실 참여성이 높아요. 일본은 지자체나 국가와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주민자치, 말하자면 주민들의 주체성, 주민들의 전통적으로 쌓아왔던 지역공동체성 안으로 파고들어서 그것 자체를 근본적인 해결의 힘으로 봅니다. 반면에 우리는 국가나 지자체, 시민단체 등 일종의 공적 영역에서의 제도적 장치나 힘들이 결합 되서 평생학습층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방식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보이는 이론과 실천은 훨씬 다이나믹 하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공적인 구조에 지나치게 기대고 있는 한계가 있고, 주민의 주체성이라는 측면에 집중하는 면은 덜합니다.
정성원 : 각 사회의 전통이나 특징이 학회에도 반영되고 있는 것 같네요.
한숭희 : 그렇죠. 일본은 오랫동안 공민관 전통이 있으니까 공민관 안에서 대부분의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을 벗어나는 것은 사회교육이 아니라고 생각하죠. 우리는 동네나 지역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 자치의 전통이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무너져버렸잖아요. 우리나라는 학교교육도 사회교육도 국가 리더십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어요. 이제 어느 정도 벗어나고 있다고 볼 순 있죠. 예컨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생겼을 때 평생교육의 모든 것을 이 기구가 다 해주기를 기대했잖아요. 그런데 그건 착각이죠. 지금은 시도 진흥원이 생기면서 역할분담이 분명하게 이루어지고 있죠. 국가진흥원은 대학 평생교육이나 학점은행제 등 교육부 중점사업에 집중하고, 반면에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종합적인 평생교육사업은 오히려 시도로 이관되고 있습니다. 시도에서도 광역과 기초지자체간의 뚜렷한 역할 분담이 일어나고 있어요. 우리도 이제 중앙 공권력으로부터 점차 역할분담이 진행되는 것이고, 잘 이행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더 이상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나 평생교육법이 평생교육 현상 전체를 좌우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국가나 중앙단위에서 해야 할 특별한 선택사업들이 있고, 일상적인 주민과 삶, 지역의 문제들은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한국사회 평생교육이 해결해야 할 과제
- 전문화, 시민교육, 교육학 기본원리의 재정립
정성원 : 서두에 교수님께서 학회가 해야 할 역할 중 하나로 제도 개선이나 시스템 보완을 말씀하셨는데요. 앞으로 한국사회가 평생교육 측면에서 어떤 것에 좀 더 방점을 찍고 가야한다고 생각하시나요.
한숭희 : 프로페셔널제이션(professionalization), 전문화 부분에 제일 큽니다. 학교교사만큼 사회교육이나 평생교육 영역의 강사나 활동가들의 전문성 훈련이 필요하고, 전문화된 것들에 대한 자격화 부분이 훨씬 더 세분화되어야겠죠. 예를 들어 약을 짓기 위해선 약사 자격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교육을 하는 사람들이면 교육과 관련된 전문성에 걸맞은 자격들이 필요하죠. 또 지금은 평생교육사라는 것 하나로 되어 있는데 문화예술 영역, 인문교양 영역, 직업 양성 등 영역별로 특화된 프로그램들이 개발되어야 하고 그것에 맞는 전문화가 필요하죠.
또한, 새로운 평생학습의 장을 계속 개발해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제까지 학습도시에 너무 집중되어 있었다면 대학, 고등교육 영역으로 확장이 필요해요. 평생학습도 이제 수준이 올라갔어요. 문해교육부터 중등단계를 거쳐 이제는 고등수준의 평생학습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키워드가 됐습니다. 지금은 그냥 대학에 맡겨놓고 있지만 사실 대학은 평생학습에 대한 마인드가 별로 없죠. 앞으로 고등교육 보편화라는 현상이 일반화되기 시작하면 과거 존재하지 않았던 대학 내부의 큰 변화가 생길 거예요. 학사과정 등의 변화가 일고 수요자층도 달라지고 운영하는 방식도 달라지고, 고등교육과 평생학습이 연결되는 새로운 방식의 융합체제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성인교육의 중요 층을 대학이 해주어야 할 거예요. 지금은 뭔가 시리어스(serious)한 학습을 하고 싶을 때 갈 때가 별로 없잖아요. 이제 대학이 그런 서비스 기능을 강화해야 하는 것이죠.
또, 민주시민교육을 제대로 시작할 때가 되었습니다. 최근 교과서 국정화, 세월호, 테러방지법 등의 흐름을 보면 한국사회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건 이미 사실인 것 같습니다. 미국의 뉴욕타임즈 등 주요 일간지들이 박근혜 정부의 권위주의적 지배방식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있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요즘 필리버스터를 통해 사람들이 새로운 학습의 모습을 발견했잖아요. 시민교육이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성찰해보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소위 민주주의교육이라고 나왔던 여러 가지 방법이나 프로그램을 보면 굉장히 편협하고 삶의 깊이를 다 담아내지 못하고 있어요. 그렇게 봤을 때 민주시민교육이라는 것을 담지하는 새로운 장치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물론 학회의 기본 책무로서의 이론연구도 중요합니다. 평생교육연구를 통해 나타나는 새로운 이론의 축들을 통해 교육학의 기존 축을 뒤엎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교육학은 학교를 운영하는 방법이었어요. 학생들의 성적을 올리는 방법이었고요. 본질이 무엇인지 이야기할 때 뜬금없이 그리스까지 갈 것 없지요. 우리나라에 교육학이 들어와서 첫 교과서가 만들어진 것이 1895년입니다. 산천교육학이라고 일본사람이 쓴 책을 번역해서 한성사범학교에서 가르쳤거든요. 그것을 살펴보면 독일식 교육학이 들어와 있어요. 아마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무슨 소린지 잘 몰랐을 거예요. 거기서 나온 것이 지육, 덕육, 체육입니다. 그러면서 예컨대 헤르바르트 등 독일교육학의 철학적 배경은 다 빠지고 소위 사람들을 어떻게 위생적으로 깨끗하게 할 것이냐 순종 잘하게 할 것이냐는 방법론으로 변질되었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교육학이 본질을 잃고 변질된 하나의 과정인데, 그 이후 교육 현상을 크게 보려는 노력 없이 어떻게 하면 학교를 유지하고 관리하는가 하는 문제로 좁혀진 것이죠. 평생학습은 적어도 그런 문제들을 넘어설 수 있는 여러 가지 축을 탐색합니다. 그래서 가장 크게 보면 우리나라 교육학 교과서를 다시 쓰는, 교육학 교과서의 원리를 뒤집는 역할들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좀 큰 문제이죠. 어떻게 보면 교육학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인데 그것이 이론이 할 일인 거죠. 평생학습 쪽에서 교육학의 새로운 축들이 교육학의 이론적인, 관점적인 지평들을 바꾸고 그것이 학교교육에 영향을 주고 학교가 가지고 있는 여러 사회적인 문제들을 치유할 수 있는 빗장을 열어야겠죠.
정성원 : 교수님께서 최근 가장 관심을 가지고 계신 주제는 무엇인가요?
한숭희 : 작년에는 고등평생학습체제에 관한 연구를 많이 했어요. 평생교육단과대학이라는 정책이 있어요. 이것은 학점은행제로 하던 것들을 학교로 끌고 들어와서 대학이 성인학습자들을 더 많이 흡수할 수 있는 일종의 장치들인데요. 흠, 일종의 뮤턴트, 타협의 산물이죠. 아이디어는 맞지만 제도적인 장치로 문제가 많은 제도에요. 일종의 편법이죠. 한국의 대학이 지나치게 고립되어 있고 독점적이고 청년층 중심, 전일제 중심, 학위 중심의, 유니버시티(university) 체제 중심인데 그 안에 평생학습을 집어넣으려니까 문제가 나타나는 거죠. 그런데 외국 어디를 봐도 우리나라 같이 폐쇄적인 구조를 가진 대학체제는 별로 없어요. 이것을 점점 더 해체해가야 되고, 이것이 아까 말씀드린 고등교육의 보편화이고요. 보편화로 가면 대학의 의미 자체가 달라지거든요.
요즘 제가 쓰는 책이 있는데 제목이 ‘교육이 창조한 세계’입니다. 지금까지 교육은 다른 곳에서 만들어놓은 세계를 지원하고 정당화하는 기제였잖아요. 그런데 역사적으로 인류 역사가 진화되는 과정에서 교육이라는 것이 형성해낸 모종의 자치적인 논리와 세계가 있다는 거예요. 얼마 전 봤더니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도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흥미롭게 읽고 있습니다. 자세한 말씀을 드릴 순 없지만 6개월 안에 책으로 나올 예정이에요. 재미있을 거예요.
정성원 : 마지막으로 앞으로 학회의 계획이 있다면요.
한숭희 : 계획은 이사회 논의를 거쳐서 만들어질 텐데, 올해가 학회 50주년이에요. 이와 관련해서 별도로 논의하고 기획하고 있습니다.
정성원: 오늘 귀한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_정성원(수원시평생학습관 관장)
정리_이보라(수원시평생학습관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