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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 남한산성 성불사 주지로 있으면서 자비보시행을 실천하고 있는 학명스님은 “항상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자신과 이웃을 대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면 이 세상은 불국정토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
사찰 창건하며 자비행 ‘발원’
경로잔치 40여년 계속
벽담장학회 설립해 인재양성
동국대 등에 발전기금 쾌척
불서 20여권 간행
이웃에 2만권 법보시
다출산 가정에 장려금도 지원
“모든 보시행은 묵묵히 후원한
성불사 신도들 있었기에 가능”
학명스님이 문서포교를 위해 최근 출간한 <법화경 이야기>와 <관음경이야기>. |
출가사문으로 50여년을 넘게 살아오며 이웃을 위해 한결같이 부처님의 자비심을 실천하는 스님이 있다. 하남 성불사 주지 학명스님은 자그마한 암자 수준의 사찰 주지지만 이웃을 위해 나누고, 봉사하고, 배려하는 자비실천행을 신도들과 실천하고 있어 ‘우리시대의 보살’로 불린다. 스님의 보시행은 놀라울 정도다. 동국대학교에 장학기금으로 내 놓은 누적기부금이 3억원에 이르고 틈틈이 들려오는 스님의 자비보시행은 어느 큰 사찰의 이야기로 들린다.
학명스님은 1978년에 성불사를 창건했다. 처음에는 사찰이 아닌 움막 수준이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변변하게 누울 자리조차 없었다. 대지도 모 문중 땅을 임대한 것이었다.
“어려운 살림살이였지요. 먹을 게 없어 3년 동안 생식을 하고 있었는데 주변의 주민들과 교회 목사님, 어르신들이 저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연탄과 양식을 보시해 주었어요. 하지만 아궁이도 없고 끓여 먹을 도구조차 없어 생식을 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때 저는 발원했어요. 내가 만약 여기서 자리 잡는다면 내가 받은 이 씨앗을 심어서 많은 열매를 맺게 해 사회에 환원하겠노라고요.”
스님은 당시 야산에 덩그러니 움막같이 시작한 성불사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곳에 절을 세우면 성공할 것이라는 직감을 했어요. 우선 지세(地勢)를 살펴보니 앞과 옆에 위치한 산들이며 땅이 주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았어요. 이를 기반으로 저에게 큰 가르침을 주신 은사 스님(대구 파계사 성전암에 주석했던 철웅스님으로 2011년 1월 열반)의 유지를 잇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학명스님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웠으면 반드시 실천하라’는 은사 스님의 가르침을 가슴에 항상 담고 있었다. 은사 스님은 당시 영남지역의 큰 선지식으로 명성이 높았고, 제자들이나 여러 수행납자들에게도 법력(法力)을 끼치고 있었다. 학명스님은 이런 스승 아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운 것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생전에 스승님 아래서 좀 더 공부를 못한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열반에 드신 후에는 성불사에 조사전을 마련해 아침 저녁마다 예를 올리며 생전에 하던 것처럼 모시고 있습니다.”
학명스님의 자비보시행은 사찰운영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사찰재정의 40%는 이웃을 위해 사용합니다. 딱히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1년 동안 사용한 재정을 살펴보면 그 정도가 됩니다.”
스님의 자비실천행은 매년 성불사 창건기념 법회날에 경로잔치를 여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행정구역상 하남시에 속하지만 서울 송파구 마천동과 거여동에 인접해 있어 이 지역과 하남시 어르신들이 동참한다.
이뿐 만이 아니다. 스님은 매년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중복과 말복에 즈음해 지역 경로당 9곳에 과일과 음료수를 전달하고 있으며 부처님오신날과 추석, 연말연시에는 군법당에도 위문품을 보내고 있다. 또한 1998년부터는 매달 성동구치소 재소자들에게 교화법문을 하며 생일잔치를 챙겨주고 이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전달하고 있다. 학명스님이 자비보시행을 실천하는 근본에는 자리이타심이 자리하고 있다.
“나눔에는 빈부의 차이가 없습니다. 많이 가졌다고 많이 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적게 가졌다고 보시를 적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나누려고 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스님은 길을 가다가도 어려운 이웃을 보면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도움이 필요한 곳을 보면 어떻게 해서라도 도와야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님이 돕는 이웃이 매년 한곳 두곳 늘어나는 상황이다. 몇 년 사이에 탑골공원 무료급식소도 매년 방문해 점심공양을 올리는 것도 그 일환이다.
“어떤 분들은 이런 제 모습을 보고 어렵지 않는데도 도와 달라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항상 현장을 답사해 보고 도움이 필요한 지를 판단하기도 합니다.”
스님의 자비보시행에는 인재양성을 위한 장학사업도 포함돼 있다. 2002년에 재단법인 ‘성불사 벽담장학회’가 설립돼 2012년까지 동국대학교 부속여자고등학교와 소년소녀 가장, 독거노인 가정 자녀, 청담정보고등학교와 광동고등학교, 동국대학교 학생들에게 총 1억5000여만원의 장학금이 지급됐다. 2013년부터는 중앙승가대학교와 동국대학교 학인들에게 2000여만원의 장학금이 전달됐다.
이런 큰 금액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주변 신도들은 한결 같이 말한다. “스님은 먹을 것 입을 것 사용하지 않고 모아 두었다가 이웃을 위한 자비기금으로 내놓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신도들은 스님이 당신을 위해 삼보정재를 쓰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스님은 요즘에 흔하게 이용하는 승용차도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스님의 알뜰한 근검 절약 정신이 ‘작은 사찰 성불사’를 보시행을 하는 ‘큰 사찰 성불사’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럼에도 스님은 보시행의 공덕을 신도회장을 비롯한 모든 신도들에게 돌린다.
“성불사가 이만큼 성장한 것은 어려운 살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내어 보시를 해 주신 신도님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현재의 성불사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일만 벌여 놓으면 신도님들이 아무 싫은 내색 없이 따라 줍니다. 그래서 저는 신도들을 관세음보살님으로 봅니다.”
스님은 한번 인연 맺은 사람들에게 꾸준한 자비행을 펼치기로 유명하다. 여기에는 스님의 지론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인연은 흘러가는 물같이 꾸준해야 합니다. 월인천강(月印千江)이라 했어요. 달은 하늘에 하나지만 물이 있는 곳에 다 비치듯이 내 몸은 하나지만 필요한 곳이 있는 곳은 어디든 살펴보려 합니다.”
학명스님의 아주 특별한 사회봉사 활동은 ‘성불사 벽담다출산회’를 결성해 다출산 가정을 후원하는 일이다. 아기를 출산하면 종교를 초월해 기금을 보조해 주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 국민의 숫자는 줄어듭니다. 이웃종교는 여기에 대비해 적극적인 선교를 하는데 불교는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어린 아이들과도 인연을 맺어야 한다고 봅니다.”
학명스님은 신도들에게 언제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지 말고 마음에 새기라’고 강조한다. “어디가면 방명록에 이름 적듯이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어디가서 법문 들었다고 흘리지 말고 그 가르침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스님은 성불사를 창건한 후 모든 불자들 위해 책 2만권을 보시하기로 부처님에게도 발원해 그 목표를 성취했다. “불자들이 읽어보고 부처님 가르침이 이렇구나 하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래서 <깨달음의 산방법요집> <선사들의 숨은 이야기> <일 이층이 있어야 삼층도 있지> <심전수행> <인생의 길잡이> <마음의 주춧돌> <지혜롭고 행복한 길> <자네 心 무엇인지 아나> <우리말 천수경> <삼세인과경> <진리의 세계, 그곳에 행복이 있다> <처음 그 마음> <향기 있는 곳에 꽃이 있다> <금강경 이야기> <지장경 이야기> <관음경 이야기〉등을 펴냈습니다. 지난 1월에는 <법화경 이야기>를 발간해 나누면서 2만권 목표를 달성했어요.”
다른 사찰같이 크게는 못해도 능력껏 나눔과 봉사와 배려의 마음을 실천한다는 학명스님은 이러한 실천행이 없으면 자비심도 발현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나눈다는 것은 물질도 좋지만 기술, 능력, 아름답게 들어주고 말해주는 것도 나눔입니다. 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멀리 양로원 방문도 좋지만 내 가정 남편 자식에게 봉사해야 합니다.”
언제나 긍정적인 마음으로 사물을 대하고 자비심으로 이웃을 대하는 스님은 다섯 글자로 된 세 가지 말을 잘한다고 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성불하세요. 이 세 가지 말은 제가 즐겨 쓰는 말입니다. 항상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자신과 이웃을 대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면 이 세상은 불국정토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처음 기대하고 찾았던 성불사는 너무나 작고 초라했다. 하지만 스님을 만나고, 스님이 실천하는 자비심의 근본 뜻을 이해하자 성불사는 작고 초라하지 않았다. 겉모습은 비롯 작고 초라할지 몰라도 세상을 향해 자비실천행을 하는 성불사는 크고 웅장한 사찰임이 분명했다.
학명스님은 …
1960년에 철웅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76년에 하남 남한산성 아래에 성불사를 창건, 하남시사암연합회장을 맡아 지역불교 결속을 주도하기도 했다. 전법과 사회사업에 대한 원력으로 벽담장학회를 설립해 이웃 주민들을 위한 각종 봉사활동과 후원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매년〈금강경〉강좌를 열고 있으며 2만권의 불서를 전하겠다는 문서포교 원력을 세워 <삼세인과경> <금강경 이야기〉등 20여권의 불서를 펴냈다. 2011년 제23회 포교대상 원력상을 수상한 스님은 특히 (사)성불사 벽담 다출산회를 설립해 출산장려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군장병 위문품 전달, 재소자 교화를 위한 구치소 방문 등으로 자비실천행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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