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를 보다 5 - 현대 4, 5 // 박찬영, 정호일 // ㈜리베르스쿨
- 저자
- 박찬영, 정호일 지음
- 출판사
- 리베르스쿨 | 2011-12-03 출간
- 카테고리
- 역사/문화
- 책소개
-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우수저작 당선작! 경향신문 추천도...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우선 현대 4의 소제목은 '이승만 정권의 그늘' 말 그대로이다.
이승만은 우리나라의 초대, 2대, 3대 대통령이다.
일제시대때에는 기회주의적 독립운동가였고, 미국에게 빌어 대통령이 된 후에는
분단을 극복할 생각은 안하고 분단을 고착화시켰으며 자신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반공의 논리로
'정당하게' 처단한 후에 독재정치를 실시했다. 반공을 권력의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다.
또 한때 독립운동가였다는 사람이 친일파 세력을 적극적으로 포용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이 권력을 얻는 일이였기 때문이다.
부정선거, 지속적인 독재로 인해 4.19혁명이 일어났고 결국 이승만은 하야했다.
하야한 후에는 즉시 하와이로 망명했는데 역사의 복수를 받지 않은 채 편안히 사망했다.
아니, 현재의 평가로 역사의 복수를 받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승만의 하야 후 윤보선이 대통령이 되고 장면이 국무총리가 된다.
대통령 직선제에서 내각제가 되며 이른바 장면 내각이 형성되고 국무총리가 실질적 정권을 담당한다.
하지만 장면 역시 경제개발엔 힘쓰지만 민족적 과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고 박정희가 권력을 얻는다.
사실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기 전, 모두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장면도, 윤보선도, 미국도 알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쿠데타보다도 무서운 것은
4.19 혁명세력, 바로 민족적 과제를 해결하고자 하던 사람들이였다. 즉 장면도 그렇고 그런 사람이였다.
미국 역시 한국이 민족적 과제를 해결해서 조금 더 독립적인 나라로 설 수 있는 것을 싫어했고
그렇기에 이 군사 집단을 아주 사랑했다.
그리고 또한, 사실 박정희는 독립군을 탄압했던 만주군 출신이였다.
박정희는 미미한 양의 배상을 받으며 한일 국교를 정상화했다.
친일 경력과 군사 쿠데타의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할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일본에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얻기 위해서 한일 국교를 정상화했다.
그 문제가 지금의 위안부 문제 등으로 아직까지 이어오고 있다.
또한 미국은 일본의 지원으로 미국의 군사비가 줄어들었고 미국 역시 이것을 좋아했고 조금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박정희는 또한 미국이 원하는 대로 베트남 전쟁에 파병을 했다.
박정희를 요약하자면 부당한 사람이였는데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경제개발에 매달려야 했고,
외세와 결탁하기만 해서 대외 의존도만을 상승시켰고 IMF, 현재 미국과의 관계 등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경제개발 속에서 재벌들은 온갖 특혜를 누리고 노동자, 농민들은 피땀을 흘렸다.
절대적인 경제는 성장했지만 빈익빈 부익부, 평민들은 죽어나갔던 것이다.
노동자들의 극심한 노동에서 전태일의 분신자살이 나왔고 사회문제는 커져만 갔으며
박정희는 날치기 3선 개헌 후 유신체제를 추진했고 아주 성실히 독재하다가 사살됬다.
너무 딱딱하고 차갑게 썼는지도 모르지만, 이게 우리 현실이다.
대한민국 초기의 역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매우 차가운 빙하기였다.
부자들은 뜨뜻하게, 평민들은 과로, 시위, 굶어서 등 아주 다양한 이유로 죽어나갔다.
또 지니계수는 극단적으로 높았고 극단적으로 장의사적인 정치가들이 득실거리던 그런 나라였다.
그런데 현재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아주 놀라운 발전인지도 모른다.
사실 현재 사회에도 많은 문제가 있고 그 위에 나오신 분 중 한 분의 딸이 현재 대통령이시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 내가 고문받지 않고 잘 살아있고 밥 잘먹고 뜨뜻한 곳에서 살아있는 것에도 감사해야겠다.
그리고 그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역사가 절대로 반복되지 않도록,
조금이라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젊은이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