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해보다 짧아서 더 아쉬운 추석 연휴. 주말 내내 집에서 TV만 볼 계획이라면 생각을 바꿔보자. 아이들과 함께 교육 목적으로, 오랜만에 부부끼리, 때론 연인과 함께 가면 더 좋은 전시회와 박람회가 곳곳에서 풍성하게 열리고 있다.
| 청소년과 부모가 함께 즐기는 국립현대미술관 베스트 컬렉션 |
미술에 대한 관심이 전반적으로 높아지고 심심치 않게 위작 논란에 휩싸이는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이 뉴스에 등장하면서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백남준 등의 이름은 미술에 관심 없는 이에게도 친숙하게 들린다. 이들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도와줄 전시회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앞서 언급한 작가들 외에도 이우환, 도널드 저드, 앤디 워홀, 바젤리츠 등 200여명의 300여 작품이 마련된 이번 전시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남종화에서 시작된 전통 산수화로부터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해 현대적 감각으로 표현한 현대 산수.화까지 다루고 있다. 2부는 먹과 한지를 이용한 한국화의 다양한 실험과 새로운 모색을 통해 한국화의 외연을 확장시킨 작품들로, 3부는 북종화의 전통에 기반한 인물채색화를 비롯해 오방색을 이용한 장식적 작품 중심으로 구성했다. 미술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청소년을 자녀로 둔 가족이 함께 간다면 자신의 관심 분야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이해를 얻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될 것이다.
9월 29일~2010년 3월 1일, 국립현대미술관 제3, 4, 5, 6 전시실, (02)2188-6000 www.moca.go.kr
| 사랑하는 연인과 가보고 싶은 마릴린 먼로의 ‘마지막 유혹’展 |
추석 연휴가 짧다지만, 연인들은 여전히 데이트할 장소를 찾기 바쁘다. 그럴 때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덕수궁 뒤편으로 문화 나들이를 떠나보는 건 어떨까. ‘버트 스턴-마릴린 먼로의 마지막 유혹’전은 미국이 낳은 20세기 최고의 섹시 아이콘인 마릴린 먼로가 세상을 떠나기 6주 전 모습을 담은 전시로 추석연휴 마지막 날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번 전시는 오드리 헵번, 엘리자베스 테일러, 마돈나, 드류 베리모어 등 미국 유명 연예인 및 패션 사진으로 유명한 미국의 사진작가인 버트 스턴(Bert Stern)이 1962년 LA 벨에어(Bel-Air)호텔에서 마릴린 먼로가 세상을 떠나기 6주 전에 촬영한 누드 사진 작품들 중 엄선된 60여점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영화 속 모습으로 소개되었던 화려한 마릴린 먼로의 모습이 아니라 선명하게 드러난 수술자국도 가리지 않은 한 여인의 모습을 마주칠 수 있다. 본명인 ‘노마 진 모텐슨’으로서의 삶을 접할 수 있어 여성이라면 동성으로서 좀 더 깊이 있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꾸밈이나 가식 없이 모든 것을 드러낸 마릴린의 모습에서 이전에 미처 몰랐던 그녀의 인간적이고 순수한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는 건 관람객만의 행운이다.
소슬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고아한 묵향이 그리워지는 중년이라면, 모처럼 부부끼리 국립중앙박물관 나들이를 해보자. 국립중앙박물관은 정선 서거 250주년을 맞아 ‘겸재 정선, 붓으로 펼친 천지조화(天地造化)’를 전시 중이다. 미술관 회화실에서 열리는 이번 테마전에는 모두 30건 142점의 정선 작품들이 전시된다. 겸재 정선(1676~1759)은 36세부터 82세에 이르는 제작 연대가 보여주듯 평생 붓을 놓지 않고 끊임없이 그림을 그렸다. 정선은 흔히 진경산수화의 대가로만 알려져 있는데 이번 전시에는 진경산수화뿐만 아니라 관념산수화, 고사인물화, 문학적 소재를 그린 작품 등도 선보여 그의 재능을 다각도로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전시의 또 다른 매력은 이곳의 소장품뿐 아니라 간송미술관 소장 ‘청풍계도’ ‘금강내산총람도’와 개인 소장품인 ‘비로봉도’ 등 쉽게 접하기 힘든 작품도 공개되는 흔치 않은 자리라는 점이다.
만화와 함께 자라나는 어린 아이는 물론, 엄마 몰래 10원짜리를 쥐고 만화대여소를 드나들던 추억이 있는 세대라면 이 전시회를 놓칠 수 없다. ‘만화-한국만화 100년’은 한국만화 100년의 역사를 조망하고 만화의 넘치는 상상력과 창의적인 힘으로 미래의 지평을 제시하고자 기획됐다. 국립현대미술관 및 한국만화 100주년 위원회가 개최한 특별 순회전으로 지금 제주에서 열리고 있다. 1909년부터 현재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만화가 250명의 작품 1000여점과 한국만화 100년의 시간 속에 성장해온 현대미술작가 17인의 작품 30여점이 함께 전시돼 우리 사회에서 달라진 만화의 문화적·예술적 위상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한국만화 100년의 역사를 ‘풍자로 그려낸 저항의 시대’(1909~1930년), ‘암울한 시대의 위안’(1945~1970년대), ‘한국만화의 르네상스’(1980~1990년대), ‘한국만화 지형의 다변화’(2000년~현재) 등으로 나누어 보여준다.
디자인이 갖는 무한한 가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 요즘, 익숙한 전시에 질린 젊은 커플이라면 디자인메이드전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디자인 메이드(Design MADE)란 ‘Manifesto for Annual Design Exhibition’의 약자로 매년 새로운 디자인 전시를 선언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2005년부터 개최되었다. 올해는 ‘공유(Sharing)’라는 주제로 런던과 서울에서 동시에 개최된다. 전시회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나의 특별한 이웃들’에게 일어난 예기치 않았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구성 전개되며, 전시회 참여 작가들은 가상의 직업을 갖고서 이웃과 삶을 공유하는 방법들을 새롭게 제안한다. ‘나의 완벽한 이웃’이라는 역설을 담고 있는 이번 전시에서는 단절된 이웃 간의 소통을 시도하면서 디자인에 있어서 관계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법을 모색한다. 전시회 홈페이지도 ‘팝업북’처럼 신선하게 구성해 전시회를 가기 전 둘러보면 소소한 재미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