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국어국문학 사전을 보면 사설시조는 17세기에 이르러 나타났다고 생각되며, 18세기에 이르러 크게 성행하였고, 사설시조를 이룩한 주동적인 인물은 평민 가객들이라고 하였다. 발생시기와 향유계층을 밝힌 것인데, 이 문제는 앞으로도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고시조 전체가 5.000여수, 이중에서 사설시조는 그 10%가량인 500여수 되고, 또 작자가 밝혀진 사설시조는 150여수 가량 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사설시조에 대하여 연원과 형성시기를 밝힌 연구를 많이 접해보지만 통일된 견해를 찾아볼 수 없다. 그것은 이런 사실을 증명해줄 만한 결정적 근거나 전래문헌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평시조의 연원에 대하여도 한시기원설, 불가기원설, 민요기원설, 음악기원설, 신가기원설, 향가기원설, 별곡기원설, 속요기원설 등이 난무하였다. 필자는 이 연원설이나 기원설을 모두 부정하고, 고려 말 성리학의 대가 우탁이 3장 6구의 시조 형식을 창안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 평시조의 발생시기에 대해서도 신라 말 발생설, 고려 초 발생설, 고려 중기 발생설, 고려 말기 발생설, 조선 전기 발생설 등 다양했는데, 고려 말 성리학을 이 땅에 받아들인 다음, 그 성리학의 원리를 응용해서 시조 형식을 창안했다고 역학기원설을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원설이나 발생시기 문제에 대한 혼조가 평시조에 그치지 않고, 사설시조에도 똑같은 현상이 되풀이된다는 데에 문제점이 있다. 그래서 본 연구에서는 사설시조의 제반 문제를 다루지 않고, 그 발생시기 즉 형성시기 문제에 한정하여 해결점을 찾도록 노력해 보고자 한다.
Ⅱ. 사설시조의 장르 개념
사설시조의 형성 시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설시조의 장르 성격부터 분명히 해야 될 것 같다. 왜냐 하면 논자에 따라서는 사설시조가 자유시의 모태라는 설, 만횡청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독립적인 장르로 보자는 설, 시조의 전형을 파괴하고 새로운 시형을 파생시킨 것이라는 설, 가사와 시조의 중간 형태라는 설, 고려가요 즉 속요에서 파생되었다는 설 등 다양한 이론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설시조가 시조인지 아닌지 하는 점부터 분명히 하고, 그 개념이나 형성시기에 대하여 논의하는 것이 순서라고 본다.
예술은 실로 그런 현실적인 매개가 계기가 되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자유정신에 의하여 창조된다. 사설시조는 자유정신의 소산으로 작가의 주관세계가 표현된 것이다. ~중략~ 그만큼 사설시조의 자유시적 전통을 구체적으로 흡수하면서 자연스럽게 발전시켰을 때 근대 이후 우리의 자유시는 가능한 것이다. 물론 근대 이후 자유시는 사설시조와는 표면상으로는 전혀 다른 형식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상이 부여되어야만 틀이 이루어진다는 이유로 이미 정해진 운율과 행의 구조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근대 이후의 시와 사설시조는 결국 동일한 형식체험으로 귀착된다. 형은 시조의 정형처럼 정해지지 않고 시인의 개성과 창의력에 따라 결정되는 정형이기 때문이다. 박철희, 사설시조의 구조와 그 배경⌜고전시가론⌟(새문사, 1984),449쪽.
박철희는 이 글을 쓸 때 “사설시조는 자유시다”라는 소제목을 붙였는데, 그렇다면 1984년 갑오경장 이후 이 땅에 신체시가 발생하고 근대 자유시가 들어오기 훨씬 이전에 우리나라에서도 자유시가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이러한 주장을 믿고 따를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는지 심히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위 글에서 박철희는 사설시조는 자유정신의 소산으로 작가의 주관세계가 표현되어서 자유시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평시조는 작가의 자유정신으로 창작되지 않고 무슨 억압에 의해 창작되었으며, 평시조는 작가의 주관세계가 표현된 것이 아니고 객관세계만 표현했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그가 사설시조를 자유시로 보는 데는 “이미 정해진 운율과 형의 구조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근대 이후의 시와 사설시조는 동일한 형식체험으로 귀착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사설시조는 자유시거나 자유시의 모태가 된다는 이야기인데, 박철희의 이러한 발언은 사설시조의 뿌리는 한국이요 자유시의 뿌리는 서양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데서 오는 오류라고 생각한다.
그 내용을 보면 더욱 명료해지는 바가 있다. 곧 이것(만횡청)은 도저히 시조를 쫓으려는 어느 구구한 정신들이 없는 것인 것으로 필자는 알고 있는 바이다. 필자는 만횡청의 독립을 주장하는 바이다. ~중략~ 그것은 시조와 같이 독립 독행적인 것이었으며, 만일 시조가 귀족적인 Poem으로서 귀족적인 계층의 호흡 속에 존재하며 성장해온 것이라면 이것(만횡청)은 그에 대응하는 민족적 저류 -백성들의 세계 속에서 발생하고 성장하여 온 것~중략~ 그 연원도 자연 오랜 것으로 필자는 생각하는 바이다. 이능우, 사설시조의 구조와 그 배경(선명문화사, 1966), 291~292쪽.
이능우의 주장은 시조와 사설시조(만횡청)와의 관계는 전연 별개라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시조에서 분리, 독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는 이유를 발생론적 관점에서 설명했는데, 평시조는 귀족 계층에서 발생하고 성장해온 장르란 것이고, 사설시조는 일반 백성들 속에서 발생하고 성장해온 장르이기 때문이란 이야기다. 따라서 사설시조의 연원도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능우의 이런 판단은 평시조 가운데는 작자층이 양반사대부가 많고, 사설시조의 작자층은 내용상으로 미루어볼 때, 서민이나 하층민이 많다는 근거를 둔 것 같다. 그러나 이능우의 주장처럼 시조와 사설시조가 전연 무관한 것이라면 애초부터 사설시조라는 명칭부터 생겨나지 말았어야 하고, 그 형태상으로도 평시조가 3장으로 분단되는 것처럼 사설시조도 초중종장 3단으로 분리되는 작품이 많은데,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되는 것인지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설시조 종장의 구조가 평시조처럼 3543의 율격을 지닌 작품이 많은데, 그래도 시조와 관계가 없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이런 질문에 합당한 답변을 주지 못하면 이능우의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말 것이다.
그들은 할 수 없이 여기에 시조의 전형을 파격하고 거기서 새로운 시형 하나를 파생시키니 그것이 곧 사설시조라 하는 것이다. 사설시조는 시조에서 파생하였던 만큼 시조의 근본 형틀인 초‧ 중‧ 종 3장은 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시조에서는 각장이 엄격히 4구로 되어 있었던 것인데, 이것은 여기에서 자유로이 변할 수 있었다. 즉 4구가 5구 6구 혹은 10여구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대체로는 초장과 종장보다는 중장에 있어 변화가 많았으며, 또 초장 종장들 중에서는 종장보다는 초장에서 변화가 더 있을 수 있었다. 조윤제, 한국문학사(탐구당, 1978),
관념의 질곡에서 구원받기를 갈망하던 당시의 시대적 요구는 실리적이고 과학적인 실사구시의 학풍에 매혹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리하여 이 땅의 정신 생활면에 선풍적인 반향을 일으킨 이 실학사상은 시조문학에도 그 필연적인 전환을 가져오게 되었으니 이것이 곧 실학사상의 후광으로 등장한 사설시조였다. 즉 일부 비판적 유학도는 시조의 정형률을 깨고 새로운 가치관에 의해 사설시조를 창작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정병욱, 한국고전시가론(신구문화사, 1980), 159쪽.
앞에 것은 조윤제의 ⌜한국문학사⌟, 뒤에 것은 정병욱의 ⌜한국고전시가론⌟에서 인용한 것이다. 먼저 전자의 논설을 보면 조윤제는 사설시조는 시조의 전형을 파격하고 거기서 새로운 시형을 파생시킨 것이라 하였고, 시조의 기본 틀인 초‧ 중‧ 종 3장의 형식은 변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정병욱은 조선조 후기 이 땅에 들어온 실학사상의 영향으로 사설시조가 등장하였는데, 이것은 일부 비판적 유학도들에 의해서 정형률을 깨고 새로운 가치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조윤제와 정병욱은 그 논조가 약간 다르긴 하지만 사설시조는 시조에서 파생되었다는 이론을 제시한 점에서는 동류적이라 할 수 있다.
가사는 장시조의 확대요 장시조는 가사의 축소라 함을 증명하여 주는 실증인 것이다. 그러므로 초기에는 2대 대표적인 시가형식인 시조(단시조)와 가사와는 구분되어 창작되어 오던 것이, 어느 사이엔지 그 접선이 응결되어서 그 중간존재인 장시조 형태를 산출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적어도 명종대까지는 기어오를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출발을 한 장시조가 2대전란으로 평민문학의 진출과 그 형식상의 특징이 부합되는 바가 커서 그 발전에 더욱 박차를 가한 것만은 사실이다. 이태극, 시조개론(새글사, 1963), 310쪽.
사설시조의 형태면을 살펴보면 거기에는 시조와 같은 요소도 함유되었고, 가사와 같은 요소도 함유되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평시조와 비슷한 데가 있고, 달리 보면 가사와 비슷한 데가 있다. 이러한 중간자적 요소를 포착해서 이태극은 가사는 장시조의 확대요 장시조는 가사의 축소형이라고 했던 것이다. 즉 초기에는 시조와 가사가 별개로 독립적으로 지어졌는데, 어느 사이엔가 그 접선이 응결되어서 그 중간 존재인 장시조 형태가 산출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태극의 이론은 평시조의 요소와 가사의 요소를 절반씩 섞어서 새로이 장시조 형태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사설시조는 단시조와 가사의 요소를 뒤섞어서 새롭게 만들어낸 튀기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장시조나 단시조 즉 사설시조와 평시조는 다같이 형태적 요소가 고려가요에 혼융되어 있다. 별곡과 속요가 처음에는 각각의 형태상 독자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후기에 이르면서 파격과 변조가 나타났고, 마침내 붕괴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사설시조와 평시조 그리고 가사에로 그 패턴이 옮겨진 것으로 보여진다. 이중 장시조는 형태적인 면에서 별곡 내용과 대상의 면에서 속요의 특성이 혼융되어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중략~ 따라서 장시조가 시조나 가사의 영향 아래 이루어진 것이라고는 볼 수 없으며, 더구나 한문학의 영향이라 볼 수 없는 것은 우리말로 된 문학으로서 하나의 특징적인 민속적 경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요에 이러한 유의 노래가 성행한 데는 그럴만한 시대‧ 사회적 여건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고 속요와 장시조가 다같이 서민들에 의하여 불린 평민들의 소산이란 점을 감안할 때 장시조는 여요에 연원하여 독자적으로 발생된 시가 형태라 할 수 있다. 김제현, 시조가사론(예전사, 1988), 151~153쪽.
김제현은 장시조가 시조나 가사의 영향 아래 이루어진 것이라 볼 수 없다고 했으니, 이태극의 이론과는 상반된다고 하겠다. 그리고는 단시조나 장시조나 그 형태적 요소가 고려가요 즉 별곡과 속요 가운데 있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 별곡과 속요가 붕괴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사설시조와 평시조 그리고 가사에로 패턴이 옮겨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려속요 중에서 <만전춘별사>를 예로 들었고, 그 만전춘별사의 구성이 三場 六段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고, 전체적 구성법은 시조와 장시조의 三章 構成과 같다고 하였다. 또 여요의 형태를 종합해 볼 때 4음절과 4음율은 그대로 시조‧ 사설시조‧ 가사의 음률기조를 이루며 句數律에 별반 제한을 보이지 않는 점은 가사와 사설시조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고 하였다. 게다가 속요와 장시조가 다같이 서민들에 의해 불린 노래이기 때문에 장시조는 여요에 연원하여 독자적으로 발생한 시조형태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김제현의 이론은 사설시조가 고려가요에서 왔다는 것이고, 그래서 평시조에서 파생한 시조장르로 볼 수 없다는 것이며, 사설시조 자체가 독자적으로 발생한 시가 형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설시조의 발생시기가 고려 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이야기인데, 고려 말이나 조선 초기에 어떠한 사설시조 작품이 얼마만큼 많이 지어졌다는 것인지 이 문제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고려가요에서 시조‧ 사설시조‧ 가사 등이 파생된 것처럼 이야기했는데, 어떤 시가장르가 발생할 때에 반드시 그 이전의 시가를 모델로 해서 발생한다는 근거도 없고 논리도 성립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설사 고려가요에서 파생한 것이라 가정하더라도 한 가지 장르만 파생시켰으면 족한 것이지 시조‧ 사설시조‧ 가사 등 3가지 장르를 파생시켰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이제까지 사설시조 발생에 대한 제가들의 이론과 장르 성격에 대한 논의를 소개하였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정리해 보면 사설시조는 평시조보다 후대에 발생했다는 점, 그 형태를 평시조와 같이 초‧ 중‧ 종 3장으로 나눌 수 있다는 점, 시조의 가객들이 평시조와 함께 사설시조도 시조창으로 노래했다는 점, 그 명칭이 시조와 같이 사설시조로 되어 있다는 점, 청구영언이나 해동가요 등 고시조집에 평시조와 아울러 사설시조도 함께 실려 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볼 때, 사설시조는 평시조에서 파생된 하위 장르이며, 시조형태의 한 종류이며, 평시조보다 좀더 자유로워진 시조의 발전적 형태라 정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