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빌(WILL)

퇴고                                                       영화, 빌(WILL)/ 한연교                                                                                                                     “그날 이후 사람들은 입을 닫았고어제는 바로 역사가 됐어잊어야 하니까, 사람들이 그러더라어쩔수 없어.“"진정한 역사는 아무도 몰라, 모르지, 직접 보지 않는 이상 몰라." 사람의 이름을 제목에 담고 있는 영화는 사람 중심인 영화라는 뜻이다. 2차 세계대전 나치 점령하에 벨기에 한 도시인,안트베르펜에서 주인공 '빌'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불길함이 스멀스멀 밀려오는 비오는 밤, 빌은 신입 경찰관으로 루더와 한 조를 이루어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한다. 이들의 상사인 경찰 서장 '장'은 괜히 나치일에 끼어들어 화를 당하지 말고 중재자 역할만 하라고 당부한다. 유대인을 학살당할때 구경만 하라고 서장이 음밀히 지시한다. 경험이 부족한 초병인 빌과 루더는 독일 야전 군사경찰과 엮이게 되고 이 일은 돌이킬 수 없는 우발적인 상황을 초래하고 만다. 독일 헌병은 말로는 노동 거부자를 체포하러 간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한 유대인 가족을 잡으러 가는 길이었다. 유대인 가족을 급습해서 체포하고 돌아오는 길에 불안한 독일 헌병은 약을 먹다가 길바닥에 떨어뜨리게 된다. 이 기회를 틈타 끌려가던 여자와 아이가 도망가다가 넘어지니 독일군은 총으로 여자를 마구 때린다. 피투성이가 된 엄마를 본 아이도 저항하자 루더가 아이를 보호하게 된다. 이에 독일군은 루더에게 총을 겨누게 되고, 빌이 달려들자 몸싸움이 일어나고, 뜻하지 않게 독일군은 옆에 있던 쇳덩어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게 된다. 빌과 루더는 맨홀 아래 그 죽은 독일군 시체를 숨긴다. 다음날 실종된 독일군을 찾기 위해 시내 곳곳에 독일 친위대 헌병들이 쫙 깔려있고, 경찰서는 초긴장 상태이다. 이 사태를 알고 있었던 서장 '장'은 온갖 변명을 하며 못 봤다고 잡아떼지만 순순히 넘어갈 독일군이 아니다. 야전 헌병의 죽음에 대한 보복으로 무고한 시민을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여덟 명을 총살하는 현장에 빌과 루더는 끌려간다. 죽어가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충격을 받은 루더는 오열하지만 빌은 흔들리지 않고 더욱 냉정해진다.  루더를 구해주었서도 빌을 믿지 못했던 그의 누나, 이베트는 빌을 계속 미행한다. 빌의 진심을 알기 위해 루더 가족은 빌을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 무뚝뚝한 목소리로 캐묻는 아버지와 아름답지만 강한 모습을 가진 누나가 솔직히 빌을 믿지 못해서 빌을 초대했다고 말한다. 호전적인 가족 앞에서도 침착하게 대처하는 빌. 빌은 순진하고 약해 보이지만 내면이 단단한 젊은이였다. 빌은 무서워 보이는 이 가족과 친해지고 루더의 누나와 연인이 된다, 숨 막히는 전쟁통에도 빌과 이베트의 사랑은 깊어져 간다. 아무도 모르게 빌이 안트베르벤의 시장의 집 와인 저장고에 숨겨두었던 유대인 가족을 루더와 이베트에게 보여준다. 이제 세 사람은 한마음이 되고 나치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 백색 여단의 일원이 된다.  실종된 독일 헌병의 시체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된 독일군 장교는 빌을 의심하면서, 그의 상사인 '장'을 뜨거운 물로 고문하고 빌에게 처참한 고문 현장을 보게 한다. 죽어가는 '장'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아 뜨거운 눈물을 흘리지만 빌은 끝까지 독일 야전 헌병의 살인을 부인한다. 하지만 그놈의 술이 원수였다. 독일군 장교가 초대한 술자리에서 엄청 취한 빌은 자기도 모르게 야전 헌병을 죽였고, 시신이 있는 위치를 말하게 된다. 결국 죽을 위기에 처한 빌은 가족과 여자친구 이베트를 살리기 위해서 나치에 협조하게 된다. 또한 가짜 정보를 저항세력에 넘기게 되고 목숨을 유지한다.  독특한 현대 음악 속에 빌과 루더의 얼굴을 천천히  클로즈업(close-up) 하면서 빌의 불안하고 절망적인 마음을 여러 번 보여준다. 금발 곱슬머리, 유난히 넓은 이마. 불안으로 흔들리는 눈동자는 나약해 보이지만 꽉 다문 입술은 그가 강직한 사람임을 보여준다. 스크린의  4:3비율로 보여주는 화면은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래전에 봤던 영화 '사울의 아들'과 '이다(Ida)'도 크기가 같은 화면이었다. 그리고 촬영 구도가 뛰어났는데 빌과 루더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눌 때 두 개의 벽면이 마주하는 곳에서 언제나 대화를 한다. 두 개 벽이 양옆으로 막혀 있는 곳은 빌과 루더가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될 것을 미리 보여주는 멋진 연출이었다.   정말 빌의 말처럼 전쟁을 직접 보지도 않고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이 빌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까. 빌이 겪었던 공포나 불안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간접으로 체험할 뿐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나로서는 유럽인, 유태인이 겪었던 고통과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비록 우리는 유태인도 유럽인도 엄밀히 말해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니지만, 전쟁에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겸허한 공감과 가슴 아픈 연민을 갖게 된다.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 처했던 사람들을 같은 인간으로서 공감하고 연민하게 되는 것이다. 빌의 입장이 되어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영화를 끝까지 지켜봤다. 전쟁영화 <빌>에는 끔찍한 전투 장면이 한 번도 나오지 않지만 감독의 뛰어난 연출로 전쟁의 공포와 비극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러닝타임이 1시간 50분인데 정말 일 분도 지루할 틈이 없다. 오랜만에 가슴을 조여오는 전쟁의 아픔을 통렬히 느낄 수 있었고, 몰입감 최고의 영화를 볼 수 있어 좋았다.  특히 이 영화에는 가해자 나치의 광기만 보여주는 게 아니고, 피해자 입장인 벨기에 주민들도 나치의 만행을 돕고 동조하는 가해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극장에서 전쟁 선전영화를 보고 유대인은 섬멸되어야 할 쥐 같은 존재라고 여기게 된다. 안트베르펜에 주민들이 유대인 회당에 가서 그들을 몽둥이나 주먹으로 때려잡는 장면은 보기가 무척 힘들었다. 영화 '빌'은 전쟁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인간성을 얼마나 파괴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영화이다.  유태인들을 수용소에 보내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빌을 보고 충격을 받는 이베트는 허망한 눈빛으로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뒤에서는 계속 배신자라는 말이 들려오고, 빌은 어떤 선택을 해야 했을까. 결말이 참 가슴 아프다. 어쨌든 빌은 살아남았어야 했다. 그런 빌에게 누가 손가락질하고 비난할 것인가. 엄청난 힘을 가진 전쟁은 사람을 노예로 만들고 자유인으로 만들기도 한다. 무시무시한 존재인 전쟁에 대해서 말할 때, 이분법적 논리로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