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는데, 어째서 수현은 볼품없는 선인장 하나를 남겼을까. 내 앞으로 도착한 수현의 유품은 15cm 정도 되는 선인장과 자개로 된 화분이었다. 볕이 잘 드는 곳에 올려놓으라는 쪽지도 있았다. 반려 식물과 친해지는 법에는 이름을 붙여주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고 한다. 숨이 붙은 것들은 이름이 불려야만 살아갈 수 있는 걸까. 나는 선인장을 수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수현의 장례식장에 갔을 때 나는 로비에서 길을 잃었다. 모니터에서 수현의 이름을 찾고 빈소로 찾아가면 될 일이었지만 '수현'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빈소를 돌아다니면서 그녀의 영정을 찾아다녔다. 치아를 보이며 웃고 있는 수현을 발견했다. 그녀의 이름은 한 연주. 누군가는 지혜야, 하고 울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정주야, 하면서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어째서 웃음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활짝 웃는 수현에게 비슷한 미소로 화답했다. 워낙 자유로웠던 그녀였기에 단순한 수현일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이 깃든 독특한 풍경을 자아냈다. 부르는 이름은 제각각이었지만 한 사람을 애도하고 그리워했다. 나는 수현이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는 게 맞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했으니까. 내가 기억하는 수현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수현은 스물 여덟이라는 나이에 생을 마감했지만, 너무 이른 시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수현의 곁에 있던 사람이라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거다.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는 아쉬운 따위 남지 않는다.
비가 오는 날마다 선인장을 들고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어디선가 수현이가 울고 있는 것만 같아 슬퍼진다. 아마 내가 그녀에게 선인장을 남겼다면 수현은 선인장을 씹어 먹었을 거다. 기꺼이 내 우울과 슬픔에 함께할 친구였다. '이번 생은 떠돌아 다니면서 살 거야.' 집이 없던 수현은 결국 하늘에 계신 엄마의 품으로 돌아간 걸까. 그녀가 가장 잘하는 건 소리없이 우는 법이었다.
수현을 생각하면 고요한 슬픔이 몰려온다. 그녀가 내게 가르쳐준 건 소리내서 우는 법이었다. 숨김없이 슬퍼하고 좌절하다 보면 어렵지 않을 거라는 사실까지.
첫댓글 와 이거 글쓴이가 지은거야??
넵 창작글입니다 😄🧡
책인줄 알고 사서 읽으려고 했는데 혹시 직접 쓴 거니?? ㅠㅠ
글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