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자에게 죽는다
춘추시대 말기 진(晉)나라는
지(智)씨와 한(韓)씨, 위(魏)· 조(趙)· 범(范)·
중항(仲行)씨 등 여섯 군벌(軍閥)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범씨와 중항씨 등
두 가문이 멸망함으로써 실권자는 네 사람으로 줄었다.
진나라의 집정(執政)으로 있던 지백(智伯: 지씨 가문의 수장)은
범씨, 중항씨를 멸망시킨 뒤에 그가 차지하고 있던 땅을 한· 위· 조씨와
나누어 가졌는데, 진후(晉侯) 출공(出公)은 크게 화를 내며 네 가문을 없앨
궁리를 하였다.그러나 낌새를 챈 네 가문이 먼저 기습을 감행하였고,
출공은 허겁지겁 제나라로 도망치고 말았다.
이에 새로 들어선 진후 애공(哀公)은
아무 힘이 없는 명목상의 임금에 불과하게 되었다.
진나라가 실권자 네 사람의 것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네 사람의 경쟁도 한창 치열해졌다.
그보다 조금 앞서
조씨 가문의 지도자인 조간자(趙簡子)는
진양(晉陽)이라는 지역을 윤탁(尹鐸)에게 맡겨 다스렸는데,
윤탁은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인물이었다. 윤탁은
부임하기에 앞서 조간자에게 물었다.
“제가 진양으로
가면 세금을 바치오리까,
세금을 면제 받는 대신 성을 튼튼히 하고
민심을 안정시키오리까?”
“세금을 면제하겠네.”
이에 윤탁은
진양 백성들의 세금을 감하여
주는 대신 성곽을 튼튼히 하는 한편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힘없고
외로운 자들을 거두었다.
그리하여 진양성에서는
조씨와 윤탁을 칭송하는 소리가
하루가 다르게 높아졌다.
조간자가 죽고
아들인 조양자(趙襄子)가 가문을
승계하였다. 그런 지 얼마 안 있어 지백은
한· 위· 조씨 가문을 약화시켜 자기 홀로 진나라의
권세를 독점하기 위한 계략을 세웠다.
그는 집정의
직위를 이용하여
진나라 공실(公室)의 명령을
빌려 한강자(韓康子)에게 백리의
땅을 요구하였다.
한강자로서는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비록 유명무실하다고는 하나 임금의
명령을 거역 할 수도 없고,그렇다고 땅을
떼어주자니 힘이 약화되어 지백에게
꿀리게 되기 때문이었다.
한강자는 고민 끝에
결국 땅 백 리를 떼어주었다.
그러자 지백은 같은 수법으로 위환자(魏桓子)
에게 땅 백 리를 요구하였고, 위환자
역시 그에 응하였다.
그런 다음 지백은
조양자에게 채(蔡)· 고(皐)· 낭(琅)의
땅 백 리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조양자는
앞의 두 사람과는 달리 강한
데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강기가 있었지만 그의 아버지인 조간자는
그를 어리석다고 말하곤 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조간자는
양자를 자기의 후계자로 정하였다.
동안우(董安于)가 조간자에게 왜 평소에는
재주가 없다고 나무라던 아들을 세자로
세우는지를 묻자 조간자가
대답하였다.
“임금된 자는 무엇보다
욕됨을 잘 참아야 하기 때문에
시험하기 위해 그랬소. 저놈은 묵묵히
내 비난을 참아주었소.”
양자가
조씨 가문을 이어받은 뒤의
어느 때 지백과 술을 마시던 중 지백이 그의
머리에 술을 부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묵묵히 분을 삭였다.
조양자의 이름은 무휼(無恤)로서 그의 어미는 천한 종이었다.
그 때문에 그는 적실 자식들에게 푸대접을 받았지만
그의 아비인 조간자는 난세에는
적실이니 후실이니 따질 것이 없이 실력이
있는 자가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조간자는
어느 때 아들들을
모아놓고 말하였다.
“내가 상산에 큰 보물을 숨겨 두었다. 그것을
찾아오는 사람을 후계자로 삼겠다.”
이에 모든 아들들이
상산(常山)으로 달려갔지만 보물을
숨겨둔 곳을 알 길이 없었다.
그때 무휼이
돌아와 아버지께 아뢰었다.
“제가 보물을 찾았습니다.”
“내놓아 보아라.”
“제가 찾은 보물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럼 그것이 무엇이냐?”
“상산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대(代) 나라가 보입니다. 쳐들어가면
차지할 수 있습니다.”
이에 조간자는
무휼이 똑똑한 것을 인정하여
그를 후계자로 삼았다
조간자는
죽을 때 무휼에게 당부하였다.
“장차 나라에 병란이 일어나거든
너는 진양을 기억해야 한다.
진양을 작은 고을이라
여기지 말고, 윤탁을 하찮은
사람이라 여기지 말라.”
이에 조양자는
아버지의 말을 잘 명심하였다.
지백이 공실을 등에 업고 땅을 요구하였을 때
조양자는 지백의 청을 거절 하였다.
그러자 지백은
곧 군대를 일으켜 한, 위 등
두 가문과 함께 조양자를 공격하였다.
조양자는 곧 부하들과 대책을
논의하였다.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온 끝에 조양자는 진양을 거점으로
삼가(三家)와 싸우기로 결정하였다.
조양자가
진양성에 도착하자
백성들은 그를 환호성으로 맞았다.
과연 윤탁이었다.
그는 이럴 때를 대비하여
성곽을 견고하게 해두었을 뿐 아니라
백성들의 충성심 또한 최고로 배양해
두고 있었던 것이다.
진양성의
준비가 워낙 철저한데다가
백성들이 죽기를 마다하지 않고 저항하였으므로
세 가문은 진양을 쉽게 함락하지 못하였다.
지백은 곧 괴이한 꾀를 내었다.
근처에 있는
큰 저수지의 둑을 터서
진양성 쪽으로 몰아넣는
것이 그것이었다.
진양성은 물바다가 되었다.
집집마다 아궁이에 물이 차올라 밥을
지을 수 없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웅덩이가
되어버린 부엌에서 개구리들이 울어대었다.
그러나 진양 백성으로서 배반하는
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조양자가
감탄하였다.
“내가 오늘에야
윤탁의 뛰어남을 알겠다!”
조양자는 성 하나에
의지하여 여러 달을 견뎌내었다.
그러나 아무리 진양성이 견고하고
백성들의 충성심이 높다고 해도 날이 갈수록
힘이 빠지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때
모사(謀士)
장맹담(張孟談)이
조양자에게 말하였다.
“지금 한씨와
위씨는 속마음까지 지백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백에
대한 그들의 입장은
우리와 다를 바 없습니다. 제가 몰래 성을
빠져나가 한씨와 위씨를
설득하겠습니다.”
조양자가 허락하자
장맹담은 그날 밤 변복을 하고
한강자를 찾아갔다. 한강자를 만난
장맹담이 말하였다.
“대부께서는
지금 계셔야 할 자리에
계시지 않습니다. 대부께서는
대체 누구를 위하여 조씨를
공격하는 것입니까?”
“조씨가 공실의 명령에
저항하였기 때문에 나는 지백, 위씨와
더불어 그를 벌주려고 하는 것이다.”
장맹담이 웃었다.
“대부께서는 ‘입술이 망하면
이가 시리다(脣亡齒寒:순망치한)’는 말도
모르십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대부께서는 자신의
입장이 지백과 가깝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조씨와 가깝다고 생각하십니까?
지백은
대부의 땅 백 리를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조씨의 땅
백 리를 빼앗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지백이 나날이 살쪄가는 동안
한씨와 위씨는 나날이 땅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만일 전투에서 지백이
이겨 조씨가 멸망한다면 그 다음에
멸망할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이치에 부합하는
장맹담의 말에 대해 한강자는 아니라고
반박하지 못하였다. 기선을 제압한
장맹담이 다시 말하였다.
“가장 바람직한 계책은
한· 위· 조 삼가가 힘을 합쳐 지백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지백의 땅을 삼가가 나눈다면
이야말로
입술이 온존하니
이가 따뜻한(脣存齒溫:순존치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에 한강자는
장맹담의 의견에 따르기로 약속하고,
자기의 신하를 위한자에게 보내어
함께 지백을 치기로 공모였다.
마침내
한· 위 연합군은
저수지를 장악한 다음 물길을
지백 군 쪽으로 돌렸다.
우군으로부터
때 아닌 급습을 받은 지백군은
대혼란에 빠졌다.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조씨의 군대가 성을 나와 공격하였으므로
마침내 지백 군은 궤멸하고 말았다.
조양자는 지백을
멸망시킨 다음 한· 위와 함께
지백의 땅과 재물을 나누었다.
또한
그는 지백을 죽여
두개골에 옻칠을 하여 요강으로
(또는 물그릇으로)사용함으로써
원수를 갚았다.
지백이 멸망하자
지백을 모시던 수하들은 혹 도망친
자도 있고, 혹 죽은 자도 있고,
혹 조씨에게
항복하여 목숨을 부지한
자도 있었다.
그러나
지백이 아끼던
예양(豫讓)만은 지백에 대한
충성심을 버리지 않았다.
예양은 주군을 위해
복수하기로 결심하고 비수를 품고
조양자의 거처에 잠입하였다.
그는 조양자가 사용하는
실외 변소에 숨어 있었는데, 양자는
변소 앞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사람을
시켜 변소를 수색하였다.
예양은 양자 앞에
끌려 나왔다. 양자가 묻자 예양은,
“나는 주군을 위해 당신을 죽이고자 하오”
하고 자백하였다.
그러자
양자가 다시 물었다.
“당신의 충성심은 잘 알겠다.
그러나 한 가지 물어보자. 그대는 맨
처음에는 범씨를 섬겼었다.
그러다가 지씨가 중항씨를 멸하자
지씨를 섬겼다. 그 두 번의 경우 그대는 범씨와
중항씨를 위해 복수를 한 바 없는데,
왜 이제 유독 지씨만을 위해
복수를 하려는 것이냐? 이제 내가 지씨를
멸했으니 나를 섬기는 게
옳지 않으냐?”
예양이 말하였다.
“범씨와 중항씨 밑에 있었을 때
그들은 나를 보통의 신하로
대우하였소.
그래서 나도
그들을 보통의 신하로서 대하여
그들이 죽자 그들을 잊었소.
그러나 지씨의 경우는
다르오. 그는 나를 알아주었소(知己).
그는 나를 국사로 대우하여 모든 일을 나와
의논하였고, 내 의견을 귀중하게
여겨 주었소.
그래서 나도
국사로서 그를 대하여
굳이 복수하려는 것이오.”
양자가 감탄하여 말하였다.
“그대는
의사(義士)이다.”
그리고는 물었다.
“내가 그대를
풀어주면 다시 원수 갚기를
시도하겠느냐?”
“나를 석방하심은
주군의 덕이요, 내가 복수하는 것은
나의 대의(大義)요. 나는
포기하지 않겠소.”
양자가
그를 풀어주며
말하였다.
“내가 피하면 그만이다.”
풀려난 예양은
몸에 옻칠을 하여
문둥병자로 꾸미고,
억지로 숯을 삼켜 목소리가
쉬도록 하였다.
이렇게 변장한 다음
거리에서 걸식하니 그의 변장이
얼마나 지독했던지 그의 아내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가
한 친구를 찾아가자 친구는
그를 알아보았다.
친구가 그의
손을 붙들고 울며
말하였다.
“자네가
자네 주군을 위해
복수를 하고자 한다면 굳이
이렇게까지 할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짐짓 조양자에게
귀순하는 체하고 접근하여 기회를
노린다면 그쪽이 더 쉽지 않은가?”
예양이
말하였다.
“귀순하면
귀순한 것이고
귀순하지 않으면 귀순하지
않은 것일세.
귀순한 다음
그를 죽인다면 그것은 또 다른
배반이니 의로운 사람으로서
할 일이 아닐세.
나는 장차 사세에
따라 주인을 바꾸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려고 하네.”
얼마 뒤 예양은
양자가 말을 타고 지나는 다리
아래에 잠복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양자가 타고 가던 말이 놀라는
바람에 또다시 양자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양자가 말하였다.
“나는 이미 그대를 한 번 풀어주었다.
그런데도 또다시 나를 죽이려하니
이번에는 살려줄 수 없다.”
“나 또한 용서받기를
바라지 않소. 다만 한 가지 청이
있는데 들어주면 고맙겠소.”
“말해 보라.”
“내가 이대로 지하에 가면
주군을 뵐 면목이 없소. 당신의 옷이나마
한 번 베고 죽기가 원이오.”
양자는
곧 사람을 시켜
옷 한 벌을 가져오게 하였다.
양자가 옷을 던져주자
예양은 메고 있던
칼을 빼들고 힘껏 뛰어올라
옷을 내리쳤다.
“이로써 나는 지하에 가서
주군을 뵙기에 부끄럽지 않게 되었다!”
말을 마친 예양은 곧 자결하였다.
군졸들이
예양이 자른 옷을
조양자에게 바쳤는데 칼자국이
난 곳에 선혈이 뚜렷하였다.
양자는 예양을
후하게 장사지내 주었고,
나라 안 선비로서 예양의 일을 듣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 조양자(趙讓子):
춘추말기 지씨를 멸하고 한단에 나라를 세웠다.
이것이 곧 전국 7웅의 하나인 조나라가 되었다.
✼ 예양(豫讓):
처음에는 범씨. 중행씨를
섬기다가 다시 지씨를 섬겼다.
“士爲知己者死, 女爲悅己者容(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죽고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얼굴을 꾸민다).”는 명언과
舌炭漆身의 고사를 남겼다.
-《리더의 아침을 여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