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모를 꽃은피고... 13
영화를 보고 돌아가는 타츠야 오빠의 차안에서 다시 킨 핸드폰에는
부재중 한통과 메일 한통이 와있었다.
부재중은 아까 사쿠라의 상의 전화일테고.. 메일함을 열었다.
「아키, 나야. 혹시 다같이 영화보는 중? 끝나면 전화주세요. -사쿠라이」
전화라.. 시계가 11시를 가르킨다.
운전하면서도 열불나게 영화얘기를 하는 타츠야 오빠의 목소리에
통화는 안되겠다 싶어 폰을 닫아 가방에 넣어버렸다.
“잘가. 데려다 줘서 고마워-”
“어 조심해서 들어가 내일 놀러오구~”
큰길에 있는 편의점에 내려 욕실에 떨어진 치약과 칫솔, 생수 몇병을 샀다.
사쿠라이 상에겐 집으로 오는 언덕길에서 전화를 걸려 했지만,
가방과 봉지를 한손으로 들기엔 너무 무거워 그냥 가는 발걸음을 더 서둘렀다.
아침부터 우에노 공원에 노쓰에 영화관까지- 꽤 일찍 시작한 하루라 일분이라도 빨리 침대에 눕고싶다.
씻기 전 화장을 지우려고 화장대에 앉아 거울을 들여다봤다.
거울 속 내 귀엔 핑크톤의 자그마한 귀걸이가 반짝인다.
작년 여름방학 때 한국에서 생일을 맞아 베프 미선이가 사준 선물이다.
오래 쓸려면 조심히 관리 해야겠다 생각했기에 중요한 날에만 하려고 아껴둔건데..
‘중요한 날은 무슨....’ 오늘 뭐하러 이걸 꼈는지-
신경질적으로 귀걸이를 빼버리곤 욕실로 들어갔다.
목욕 후 침대에 누우려니 머리맡에 충전시켜놓은 핸드폰에서 계속 하얀불이 깜빡인다.
「아키 자? 통화해도 되려나- -사쿠라이」
십분전에 도착한 메일이다.
시계를 보니 열두시가 조금 넘었다. 너무 늦지않았나...
‘그래도 뭐.... 메일까지 보낸 거 보니 별로 상관없지 않을까나’
잠시 고민하다가 통화버튼을 눌렀다.
“아, 아키?”
“네 사쿠라이상” 크게 상냥하게 대답한 것 같지는 않다. 그냥 담담하게.
“혹시 이제 끝났어?”
“아뇨 이제 메일을 봤네요”
“아 그래.. 아까는 영화보는 중이었나봐”
“네 주위에 사람도 많고, 받기가 좀 그랬어요”
“응 그래 그런 것 같더라”
“네”
“오늘 미안해 같이 가기로 했는데”
“아뇨 괜찮아요. 언니 오빠랑 같이 갔는데요 뭐”
“아 그래도..”
“괜찮아요. 사쿠라이 상은 원래 바쁘시고... 신경 안쓰셔도 되요”
“.................”
“여보세요?” 아무소리가 없어 끊켰나 했다.
“어? 어 아키”
“저 내일 노쓰에 일 도우러 가야해서,, 이만 자야할 것 같아요”
“아 그래.. 많이 늦었지”
“너무 늦은 시간에 전화드린 것 같네요”
“아니 난 괜찮아-”
“아 네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아,, 응 그래 아키도 잘자”
왜 이러는걸까.. 난 지금 굉장히 쿨한척 하고 있다.
일주일동안 사쿠라이상을 볼 생각에 굉장히 들떠 있었으면서..
미야랑 미용실에서 머리도 하고
늦은밤의 영화관과 어울리지도 않는 블라우스에
평소 잘 하지도 않던 귀걸이와 화장까지..
분명히 난 오늘을 기대했다.
사쿠라이 상이 다른일이 있어서 못왔다 해도,, 그냥 조금 아쉬워하고 말았겠지.
시간이 지나면 그냥 속으로 삼키고 넘겼을 일이다.. 그냥 딱 거기까지만 했더라면....
하지만 아까 타츠야 오빠가 시킨 전화부터 시작해, 중간에 사쿠라이 상에게서 온 메일 또 전화 메일 또 메일-
혹시나 내가 기분 상했을까 미안하다며 계속 연락하던 사쿠라이 상의 모습에
그냥 담담하게 평정심을 유지하려 했던 나 또한 조금씩 오기가 생긴다.
무슨 갑과 을 관계도 아니고, 그냥- 사람이 괜찮다 하면 그렇게 그렇게 넘어가면 되겠구만,
잊을만 하면 미안하다 전화하고 메일남기고, 막상 통화해도 또 똑같은 내용. ‘아키 미안해-’
종일 미안하다는 사쿠라이 상의 말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니,,
나 혼자 속으로 섭섭했던 마음들이 이젠 점점 사쿠라이 상이 괘씸하다는 생각으로까지 몰고간다.
‘괜찮아요. 사쿠라이 상은 원래 바쁜사람이니까..’ 이 말에 사쿠라이 상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뉘앙스는 그렇지 않았지만, 속으론 그런 그를 비꼬아서 표현했다고 함이 정확할 것이다.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이 뒤죽박죽 섞인다.
‘기분이 상한건 상한건데,, 내가 왜 그 사람을 괘씸하다 여기는거지? 내가 왜? 내가 뭐라고’
‘혹시.. 혹시 내가 사쿠라이 상을 좋아하는 건가?’
‘설마.... 내가 이 사람에 대해서 얼마나 안다고... 아닐 거야-’
그렇게 고민하길 30분..
“아!!!!!!!! 뭐야 진짜... 아 짜증나-”
팝콘을 너무 많이 먹었나,, 잘 먹지도 않던 건데..
속이 근질근질하다 못해 니글니글하다.
벌떡 일어나 냉장고에 사다놓은 냉수를 세잔이나 마셨다.
눈을 감고 침대에서 뒤척였지만 짜증나게 잠이 들지 않았다.
‘몇시야-’ 벌써 새벽 2시다. 거꾸로 누워 티비를 켰다.
다큐, 재방송드라마, 한국드라마, 중국무협영화, 심야시간의 빨간영화..
멍하게 리모컨을 눌러대다가 한 채널에서 손가락이 멈춘다.
사쿠라이 상이 나온다.
게스트로 나온 개그맨들과 왁자지껄.. 즐겁게 웃는 사쿠라이 상이다.
‘뭐가 그렇게 재밌을까..’
브라운관에 나온 그의 모습을 난 눈으로 쫓고 있다.
쫓는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그가 화면에 비치지 않아도 난 오직 그의 모습만 찾고 있다.
그러다 문득,
‘정가을.. 너 지금 무슨 생각하니...’
***
사쿠라이 상의 방송을 보다가 동이 틀 무렵 잠이 들었다.
일요일이고,, 깨어났을 때 조금 귀찮다 싶으면 노쓰에 가지않고 온종일 집에서 뒹굴거릴 계획이다.
“Rrrrrrrrrrr... Rrrrrr..”
“미야.. 아침부터 무슨일이야”
“아침이라니 아키 지금 12시 넘었어”
“진짜???”
“내 전화에 깬거지?”
“아...... 새벽에 티비보다가 아.. 늦잠자도 너무 잤네”
“ㅋㅋ 일어나, 일요일인데 뭐해?”
“오늘? 글쎄,,,,,, 오랜만에 빵이나 좀 구울까나”
“에~ 너무 아줌마 같지않아?”
“빵 구우면 아줌마야?”
“여대생이 이런 봄날에 밖에도 안나오구 집에 틀어박혀 있으니 하는 소리야”
“아아.. 그냥,, 어제도 하루종일 밖에 있었구..”
“저녁에 만나자!”
“저녁에? 미야.. 우리 어제도 만났는데;;”
“그건 동아리 모임이구!! 날 잡자며~ 아키는 내가 만나자는데 지금 고민하는거야??”
“아아, 꼭 그런건 아니구.. 잡은 날이 참 빠르다 싶어서ㅎ 몇시에 볼까?”
“5시에 시부야 스타벅스!”
“그래 나중에 봐”
“아키 늦으면 안돼!! 5시야 알겠지????”
“;;; 알았어-”
“아참! 아키 이쁘게 하고와~”
“뭐?? 왜?”
“그냥, 나도 오늘 좀 꾸밀꺼라~ 같이 맞추자구! 어제처럼만 하구와!”
“흠.. 그래 일단 알겠어”
“응 나중에 봐~”
12시까지의 깊고 깊은 수면 덕분일까나,, 오늘따라 피부가 환한 것 같아 괜시리 미소가 지어진다.
5시까지니까 4시쯤 출발하면 될려나..
며칠전 사다뒀던 샌드위치로 잠시 허기를 채우고,
외출준비 전까지 미뤄왔던 빨래를 돌렸다. 그사이 후다닥 청소기도 돌리고!
그 작은 원룸에서 움직일 공간이 얼마나 된다고,,
몇분을 부지런히 움직였더니 온몸에 열이 난다. 봄이라 기온이 높아져서 더 그런가..
세시를 가르키는 벽시계를 확인하고 욕실에 들어가 가볍게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면서도 화장대에 앉아 스킨을 바르면서도 이쁘게 하고 나오라는 미야의 말이 자꾸 신경쓰인다.
그냥 아무말 하지나 말던지.. 평소에도 스타일 좋은 미야에 비해 난 이런쪽은 너무 젬병이라..
고민고민 하다가 아이보리색의 블라우스와 블랙진을 꺼냈다.
사람 많은 주말저녁 시부야에서 치마입고 힐까지 신을 자신이 없다.
대신 얼마전 미야와 같이 산 귀걸이를 꼈다. 요거 하고 나가면 되겠지 뭐..
화장 후에 작은 크로스백을 한쪽어깨에 매고 집을 나섰다.
주말저녁인데 시부야로 향하는 버스의 자리가 꽤 여유롭다.
운전수 아저씨도 기분이 좋으신지 신호도 안걸리시고 시내 한복판을 슝슝 달리신다.
아직 피크타임이 아니라 그런가,, 덕분에 일찍 도착한 지금 난 미야가 오기까지 20분이나 기다려야 한다.
「아키~ 어디쯤?? -미야」
「방금 도착했어. 2층 맨 구석. -아키」
「빨리 왔네.^^ 알았어~ -미야 」
턱을 괴고 거리의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러길 잠시,
“아키상??”
“?? 네?”
“아키상 맞으세요?”
“네.. 누구시죠?”
“아.. 저 미야 친구 무라카미 토모야 라고 합니다” 자연히 내 앞 자리에 앉는 그다.
“미야 친구요?? 아..... 네.. 안녕하세요”
“제가 와서 많이 당황스러우신가봐요”
“아,, 네.. 다른분 오신다는 말은 못들어서요”
“아... 미야한테 아직 얘기 못 들으셨나봐요”
“얘기요? 무슨얘기...”
“아.. 그럼 일단 미야랑 먼저 통화해 보시는게 나을 것 같은데”
“그.. 럴까요??” 이 상황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나는 약속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 미야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통화하고 계세요” 내가 전화를 걸자, 자리를 뜨는 그다.
“Rrrrrrrrrrr..... Rrrrr”
“아키!”
“미야, 지금 어디야?”
“아키,, 토모군 만났어?”
“어. 미야 안와? 어디야?”
“아키! 있잖아- 그거 소개팅이야!”
“뭐?????? 얘가 지금 뭐래니-”
“분명히 소개팅이라 하면 너 안나올 것 같아서. 미안해~~”
전화로 미야가 내게 뭐라뭐라 변명하기 시작하는데,,
난 지금 하나도 귀에 들리지 않는다.
그냥 황당함 그 자체일 뿐...
“미야.. 너 제대로 사고친거 알아?”
“그냥 같이 밥먹고 얘기하다 와! 난 노쓰에 있을께!!”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잖아!! 어색하단 말이야!!! 뭐야 갑자기!!!”
“ㅋㅋ 파이팅해! 혼은 나중에 날게~”
“너 하여튼 나중에 두고봐. 가만 안둘거야. 끊어!”
계단으로 올라오는 무라카미 상의 모습을 보면서 전화를 끊었다.
“카라멜 마끼야토 괜찮으시죠?”
내게 커피 한잔을 권하는 그다.
아 진짜.. 이건 또 뭐야......... 미야.. 이 상황 좀 어떻게 해봐!!!!!!!!!!!!!
첫댓글 심란한아키에게소개팅이라니ㅋㅋㅋㅋㅋㅋㅠㅠ더심란해지겠어요
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