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가 죽어야 리더십이 산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pds10.cafe.daum.net%2Fdownload.php%3Fgrpid%3D9B6g%26fldid%3D_album%26dataid%3D848%26fileid%3D3%26regdt%3D20060607080014%26disk%3D28%26grpcode%3Dcgsbong%26dncnt%3DN%26.jpg)
♣'리더가 죽어야 리더십이 산다?' 역설적인 제목을 가지고 있는 이 책은 대한민국 사람이 대한민국의 리더와 리더십에 대해 고찰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젊은 경영학자가 아프리카에서 바라본 대한민국의 모습. 그것은 낙담 그 차체였다. 저자는 이 책에서 끊임없이 리더십의 부재를 지적하며. 한국적 카리스마를 지닌 새로운 리더가 지녀야 할 덕목에 대해 제시한다. (진재혁 지음)
1장 카리스마 리더십이란 카리스마 - '권위'를 표현하는 또 다른 이름 그리스 로마신화와 성경에서 사용된 '카리스마'라는 단어를 리더십의 영역에서 제일 먼저 사용한 사람은 독일의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였다. 그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뜻으로 권위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첫째, 왕권과 같이 세습되어 내려오는 전통적 권위(Traditional Authority)이다. 둘째, 법에 의해서 관리되고 관료들에 의하여 움직이는 권위인 합법적 또는 합리적 권위(Legitimate Authority)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카리스마적 권위(Charismatic Authority)이다. 베버는 카리스마를 "한 개인이 보통 사람들과 구별되는 어떤 자질 또는 초자연적이거나 초인간적인 힘, 어떤 예외적인 특별한 자질"이라고 이야기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전통적 권위'와 서로 맞지 않는다. 왕권이 지배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합법적· 합리적 권위'가 제대로 정착된 것도 아니다. 다만 '카리스마적인 권위의 힘'만이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물론 21세기를 이끌어갈 카리스마적 권위는 이전의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카리스마'와는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다.
누가 리더인가 - 탁월한 비전이 필요하다 카리스마 리더의 형태는 어떤 구체적인 특성(목소리, 눈빛, 에너지)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면 카리스마 리더란 어떤 사람인가? 첫째, 카리스마 리더의 가장 큰 역할 중 하나는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며,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선 자신을 믿고 따르는 추종자들을 움직일 수 있는 실현 가능한 비전이 꼭 필요하다. 둘째, 비전을 제대로 전달하는 능력인데 카리스마 리더는 말이나 행동으로 비전에 대한 자신의 확신과 헌신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하며, 추종자들에게 신뢰와 동경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추종자들을 향한 관심이다. 사람을 중심으로 개인의 감정을 잘 다독이고 그들의 마음에 평안을 안겨줄 수 있어야 한다.
왜 리더가 되어야 하나 - 올바른 힘이 변화를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카리스마 리더십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추종자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카리스마 리더가 끼치는 영향은 어떤 것인가? 첫째, 강한 신뢰를 들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추종자들이 리더를 깊이 신뢰하고 헌신하는 지에 달려 있다. 둘째, 강한 신뢰와 순종은 카리스마 리더를 따르는 사람들의 자기발전과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다.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려고 노력했을 뿐 아니라, 비전과 미래를 향한 도전의 자세를 아끼지 않았다. 그의 뜻은 온전히 제자들에게 전달되었고, 제자들은 각각 훌륭한 리더가 되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했다. 셋째, 카리스마 리더에 대한 강한 신뢰와 확신 그리고 추종자들의 자신감은 비전의 열매를 성공적으로 맺게 한다는 것이다. 즉 카리스마 리더가 가진 가장 결정적인 능력은 각 개인의 역할과 의지를 활성화시켜 사명과 비전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능력이다. 카리스마 리더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 거짓된 이미지의 극복 카리스마 리더의 탄생 조건을 네 가지 정도로 요약해본다. 첫째, 위기의식이다. 카리스마 이론의 아버지인 베버는 사회적 위기와 불안이 변화에 대한 강한 욕구를 표출시켜 카리스마 리더를 탄생시킨다고 한다. 위기의식이 생기거나 어려운 환경에 처했을 때 추종자들은 절대적인 순종과 열정을 리더에게 보여준다. 둘째, 추종자들의 성격이다. 카리스마 리더를 따르는 추종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적인 성격 유형은 '추종자들 모두가 나름대로 감정적 필요를 가지고 있으며, 그 필요를 자신들의 리더들이 만족시켜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세계관이 감정적 욕구와 낮은 자부심(Low self-esteem)으로 형성되어 있다면, 이러한 한계가 카리스마 리더를 간절히 원하는 염원으로 쉽게 발전되었을 것이다. 셋째, 권력의 거리이다. 신비로움이 절실할수록 카리스마 리더는 자신의 추종자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결국 보통 리더들에 비해 큰 권력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단순한 거리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거리기도 하다. 넷째, 매스컴의 영향이다. 요즘 같은 미디어 기술 아래서는 변변치 않은 사람이라도 위대한 영웅으로 바뀌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따라서 이미지 관리야말로 카리스마 리더의 조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점이다.
카리스마 리더십의 이중성 - 하나는 불완전하다 카리스마 리더십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논란의 초점은 바로 '카리스마의 이중성'이다. 카리스마 리더십의 개념은 그 안에 전혀 도덕적 가치가 내포되어 있지 않으며 추종자들에게 얼마나 큰 변화를 주었는가에 따라 형성되었다. 카리스마적 권위가 잘못 사용된 예는 얼마든지 있다. 독재권력이나 사이비 교주들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맥클랜드는 사회를 위한 카리스마 리더십을 주장하면서 네 가지 기본 덕목을 갖출 것을 이야기했다. 첫째, 자신의 이득을 구하는 것보다 먼저 공동체의 이득을 구하는 것이고, 둘째, 권위적인 행동을 버리고 민주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이고, 셋째, 사람들을 지배하려 하지 말고 받드는 것을 말한다. 결국 사회를 위하는 카리스마는 교만하지 않고 자신을 높이지 않으며 겸손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카리스마 그 이후 - 계승될 수 있을까? 카리스마의 일상화(Routinization of charisma)는 카리스마 리더가 이룩해 놓은 성과를 일정 기간 다져가는 현상을 말한다.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순간적인 성공을 이루었을지 모르지만 그것을 꾸준히 유지시키는 지속력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이런 불안정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카리스마 리더와 추종자들이기에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리수를 두게 된다. 결국 온갖 부조리와 불합리의 원인이 되고 있는 학연, 지연, 세습 등의 문제가 여기서부터 파생되고 있다. 재벌은 물론 신성한 교회에서까지 벌어지고 있는 세습적 계승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분야가 앞으로 한국의 리더십 연구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 한국적 리더십 개발과 계승에 관한 탁월한 성과가 없다는 사실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한국적 리더십과 서구의 리더십 - 권위 그리고 따뜻함 서양의 카리스마 리더는 개인적인 특성을 살린 부드러움과 따뜻함이 느껴지는, 사람 중심의 리더십이 특징이다. 한국적 카리스마 리더십은 따르는 추종자들을 세워 주고 격려하며 확신과 만족감을 심어주기보다는 오히려 강력한 통제로 그들을 지배하려고 한다. 오직 리더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서의 성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권위주의적 카리스마 리더십은 결과 중심의 성장주의에서는 대단히 뛰어난 효력을 발생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성장을 이룬 후에는 반대로 더 이상의 성장을 방해하는 독버섯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2장 리더십이 바뀌고 있다 21세기라는 화두 - 패러다임이 달라지고 있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 전통, 사회변천에 따른 한국적 21세기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연구가 필요하다. 우리 자신의 모습을 솔직히 바라보면서 한국인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세계관과 가치관 그리고 이를 통해 만들어지는 우리 고유의 리더십 모델을 생각해야할 때다. 나는 지금 한국에서 리더십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고 믿는다. 당신이 과거에 얼마나 성공적인 리더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변화되는 패러다임에 민감해지지 않는다면 지금까지의 리더십은 정말 쓸모없는 리더십으로 왕따를 당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변하는 패러다임에 대한 이해와 그 이해에 따른 우리의 변화에 달려 있다.
무엇이 바뀌고 있는가 - 포스트 모던 세대의 도전 근대화를 거치면서 도덕적인 가치보다는 경제적인 자립과 물질적인 성공을 바라는 욕구가 더 왕성해졌다. 이제는 먹고살기 위해 급급하던 시대도 지났다. 전체를 위한 희생보다는 개인의 행복과 삶의 즐거움을 중요하게 여기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전과 같은 권위적인 카리스마 리더십이 여전히 용납되고 지배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리더십이란 리더와 추종자들이 자기들의 처한 상황 속에서 상호관계를 주고받으며 영향을 공유하는 과정이 아닌가? 추종자들의 형태가 바뀌고 있다면, 그에 따른 리더십 모델도 역시 바뀌어야 한다.
걷잡을 수 없는 변화 - 이미 모든 것이 달라졌다 포스트 모던 시대의 가장 큰 변화 중의 하나라고 한다면, 서구의 개방적인 문화와 민주주의적인 영향을 통하여 우리 전통의 문화 의식과 이념들이 천천히 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맞벌이 부부, 이혼율, 능력과 경제력을 가진 노처녀들, 직장을 다니는 엄마를 위한 보육시설, 인터넷, 핸드폰 등 이미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기적인 개인주의 -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라 오늘날 한국사회를 규정하는 특징 중의 하나는 바로 지독한 개인주의의 만연이다. 우리의 개인주의는 타인의 감정이나 편의를 존중할 줄 아는 서양의 개인주의와는 달리 물질만능주의와 결과 중심의 사고가 만연한 가운데서 서양의 개인주의 일부가 뿌리 없이 결합된 독특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패러다임이 바뀌는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과연 누가 리더로 떠오를 수 있을까?
3장 사랑과 증오의 딜레마, 한국적 카리스마 한국적 리더십의 뿌리 - 문화와 가치관을 읽어라 한국적 리더십의 뿌리는 과연 무엇일까? 무엇이 한국적 리더십의 모델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일까? 먼저 한국의 문화와 세계관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친 종교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바로 유교와 불교, 기독교, 무속의 영향이다. 무속은 한국 사회에서 오래도록 민중의 정서를 지배한 문화 이데올로기이다. 불교는 고려시대에 화려한 꽃을 피웠으며, 유교는 조선시대를 지배한 통치 이데올로기다. 최근에는 기독교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국적 리더십 모델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역시 '유교와 무속'이다. 불교는 무속과 결합하면서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조선시대를 거치며 세력이 약해져 유교나 무속에 비하면 그 영향력이 오히려 적다고 이야기할 수 있고, 기독교는 현재 크게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 지배적인 문화권력으로 성장하지는 못했다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한국인의 세계관을 좀더 분명한 기준으로 설명한다면 개인의 심성은 상당히 무속적이며, 사회 조직과의 관계는 유교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면 유교와 무속이 가지고 있는 리더십의 모델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유교와 무속은 현재 한국인의 리더십 모델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유교 - 군사부일체를 유지하는 그릇 유교는 엄격한 가부장제도를 유지하는 기둥이다. 그것은 '효(孝)'라는 유교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집요하게 강조되며 가정에는 오직 절대적인 가장만 있을 뿐이다. 이러한 가부장 제도는 임금을 향한 '충(忠)'으로 발전되었다. 왕권신수설에 대한 믿음 때문에 임금의 실력보다는 정통성이 더 중요했다. 그러므로 임금은 하늘의 뜻에 따라 백성들을 다스려야 할 책임이 있으며 모든 백성들은 하늘과 맞닿아 있는 임금에게 절대적인 순종해야 했다. 이러한 유교적 리더십 모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철저한 1인체제를 중심으로 한 사람의 리더에게 모든 힘과 권한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무속 - 인간과 욕심 많은 신의 교통 무속은 영적인 귀신들에 의존하고 그들이 곧 인간의 생사를 결정한다고 믿는다. 자신이나 환경을 새롭게 변화시키겠다는 주체적 의지도 없이 현재의 고통을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을까, 현세에서 어떻게 복된 삶을 살 수 있을까가 관심사의 전부였다. 그런 의미에서 굿판에서 한바탕 펼쳐지는 요란한 노래와 춤은 순간적인 표출과 쾌락을 통하여 괴로운 현재의 고통을 잊으려는 간절한 소망이 깃든 몸부림이라 할 수 있다. 굿판을 벌이고 귀신과 직접 흥정을 벌이는 무당의 리더십이야말로 강력한 힘과 권한을 가지고 있다. 무당이 복의 통로가 되므로 무당에게 얼마나 잘하느냐가 곧 복을 얼마나 잘 받느냐의 기준이 된다. 마찬가지로 무당에게 섭섭하게 대했을 때는 악운과 저주를 각오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을 울렸다가 달랬다가 하는 무당의 모습이야말로 우리 주위에서 자주 보는 기만적인 리더와 연약한 추종자들의 모습이 아닌가? 무당의 말 한마디에 복을 받을 수도 있고, 저주를 받을 수도 있는 지독한 1인 지배체제인 것이다. 이러한 무속의 리더십 모델은 신적인 영향이 농후한 강력한 귄위주의적 리더십의 모델의 전형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절대적인 권한, 그 어느 누구도 반문하거나 대항할 수 없는 힘. 바로 그것이 한국적 카리스마 리더십의 실체이다.
군사정권 - 1인 지배체제를 만든 전범 군사정권을 규정하는 속성 역시 1인 지배체제이다. 이러한 군사정권의 영향 때문에 우리는 어느덧 한 사람이 가지는 강력한 카리스마에 대해 무감각하게 복종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허용하게 되었다. 강력한 1인체제 중심의 카리스마 리더십은 어려운 시대를 거쳐야 했던 한국인들의 마음을 한데 모으면서 국가안보를 공고히 하고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뤄내는, 두 마리 토끼 사냥을 성공하게 한 힘이 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얻은 것만큼 많은 것을 잃기도 했다. 원칙을 무시한 채 달리는 데만 전념한 결과, 어느 새 비대한 군살들이 늘어났고 먹고 살 만한 지금에 와서는 소스라치게 놀라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민주적인 리더십보다는 강력한 권위를 가진 독재적 리더십의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발전된 모델을 수용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화려한 '고도 경제성장'이라는 신화는 이제 차츰 그 허와 실이 드러나고 있다. 급성장이 불러온 부작용은 IMF라는 큰 폭풍으로 휘몰아치며 참혹한 결과를 초래하게 만들었다. 리더십의 올바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리더십 뿌리를 확인하고 분석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자신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며, 현재의 단계를 넘어 미래 리더십의 패러다임을 명확하게 세울 수 있다.
4장 리더십이 앓고 있는 중병 10가지 제왕적 리더십 - 금잔에 담긴 독 인기리에 방영되는 사극들을 보면서 항상 느끼는 점이 있다. 분명 임금이 무능해서 발생한 일인데도 임금의 무능한 리더십은 책임을 지는 일이 없다. 오히려 임금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애꿎은 신하들만 천하의 죽일 놈이 되고 만다. 임금은 자신의 무능함을 덮어버리기 위해 신하들을 질책하거나 희생양을 만들어 낸다.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한국의 전통적 리더십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낀다. 한국의 리더십은 오래도록 1인체제 중심의 절대적 리더십이었다. 정치에서는 '제왕적 대통령'이나 '제왕적 후보'라는 단어가 난무하고 있고, 경제 분야에서도 '총수'로 지칭되는 1인 카리스마의 존재가 모든 결정을 좌우해 왔다. 어디 그뿐이랴, 종교계에서도 큰 교회 담임목사의 권력은 가히 절대적이어서 마치 신적인 존재로까지 추앙을 받는다. 학교에 가면 재단이사장이라는 막강한 권력자가 있다. 제3의 권력이라는 언론사 사주의 권위는 대통령이 두렵지 않다.
우리는 이러한 권위에 대해 한편으론 거세게 욕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이율배반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심한 거부감과 비판의 대상이 되면서도 한국 리더십에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리더십의 원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카리스마가 약한 사람 - 조용하고, 편법이 없고, 남을 배려하는 사람 - 은 훌륭한 리더로 인정받지 못한다. 반대로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고 추종자들을 벌벌 떨게 만들 수 있는 리더는 흠모의 대상이 되어 왔다. 어떠한 수단이나 방법도 간단하게 정당화될 수 있는 제왕적 리더의 특권은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공고한 성역을 만들었고 여기에 비리와 부정이라는 주변 마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성역과 마을들이 얼마나 오래도록 우리 사회를 병들게 만든 독소들을 공급해 왔던가.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를 극복할 대안과 이상이 분명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서열식 리더십 - 강이 되지 못하는 윗물 물이란 끊임없이 순환을 반복하는데 왜 우리 조상들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하면서 윗물과 아랫물을 구분하려고 했을까? 혹시 서열 따지기를 좋아하는 심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국인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들끼리도 나이나 학번, 군번 등의 정보를 교환하면서 일단 상하관계가 확실하게 정해지기를 희망한다. 이렇게 상하관계가 결정되면 그 관계는 확고부동한 서열로 자리매김 된다. 당연히 나이 많은 사람이나 서열이 위인 사람은 더 많은 기득권을 갖게 되고, 두 사람은 무의식중에 서열로 결정된 계급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미국에서는 회장도 임기가 끝나면 다시 평회원으로 돌아간다. 조금도 어색할 게 없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임기가 끝난 회장이 다시 평회원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회원, 임원, 회장, 자문위원회(고문) 등의 순으로 이어지는 서열 중심의 조직은 마치 아들,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 등으로 이어지는 가부장 제도와 흡사하다. 한국은 각 당마다 서열이 제일 위인 사람이 그다지 어렵지 않게 대선에 출마한다. 문제는 한번 심판을 받고 떨어진 사람이 다음에 또 출마한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아니다'라는 심판을 받았으면 더 나은 사람을 추천하거나 키워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선될 때까지, 아니면 자연도태되는 나이에 이르기까지 오직 혼자만이 '후보'의 지위를 유지한다. 그 사람을 제치고 출마하려는 사람은 같은 당에서 '역적' 대접을 받는 분위기다. 이것이 바로 철옹성 같은 서열 중심 문화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1인체제와 서열의식이 지배적인 조직체는 강력한 카리스마의 힘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결정은 위에서 하달되고 밑에 있는 사람들의 인격과 의견이 존중되지 않는다는 단점도 분명하다. 제프리 페퍼는 이런 서열식 하달형 리더십 문화는 21세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구체적인 문제점을 제시한다. 첫째, 상부하달 식의 리더십은 추종자들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는 민주주의 문화가 정착되는 데 있어 정반대의 흐름이다. 둘째, 직접적으로 통제되고 지배되는 몇몇 사람들 외에는 모든 사람들을 진정으로 순종하고 따라오게 할 수 없다. 셋째, 이런 서열 중심의 상부하달 식 리더십은 그 힘이 잘못 사용되거나 개인의 영달을 위해 남용될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지위중심의 리더십 - 내가 누구인지 너희가 아느냐 우리는 지위가 곧 리더십이라는 착각을 한다. 그러나 리더십의 힘이란 위치나 지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맡은 역할을 얼마나 성실하게 감당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지위는 있지만 영향력이 없는 상사와 특별한 지위는 없지만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평사원, 그 조직에서 과연 누가 진정한 리더일까?
리더십에서도 크게 두 가지 종류의 힘을 보게 되는데, 첫째는 지위나 타이틀에서 오는 힘(Positional Power)이다. 지위에 의존한 권위만 강조한다면 겉으로는 순종하고 따르겠지만 속으로는 이탈하는 이율배반적인 조직체를 만들 위험성이 있다. 둘째는 리더가 가진 개성이나 개인적인 관계를 통한 힘(Personal Power)이다. 순수한 존경과 사랑이 리더에게 순종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집단주의적 리더십 - '우리'라는 불완전한 표현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보다는 집단의 결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강력한 집단주의적인 사고가 한국의 문화 속에 뿌리깊게 박혀있다. 이 집단주의적인 의식은 효를 강조하면서 가정을 제일 중요하게 여겼던 유교적 정치 이념에서 시작된 것이다. 가장 기본적이고 철저한 가족주의가 가깝게 있는 집단으로 좀더 넓게 적용되면서 발전된 한국인의 의식구조는 그 자체가 바로 '가족 집단주의' 사고다. 다시 말하면 개인의 의견보다는 집단의 의견을 중요시하고 전체를 위해서는 개인을 희생해야 하는 의식구조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집단주의적 사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개인'이 중요한 단위가 아닐 뿐더러, 개인은 오로지 집단성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단순한 공동체 의식을 넘어선 강력한 집단주의적 사고는 정직하고 투명한 리더십 문화의 형성을 방해한다. 개인의 실력보다는 인연이라는 끈끈한 관계가 더 우선시되는 리더십 문화, 지도자의 자질이나 역할보다는 '우리'라는 감정으로 이어진 왜곡된 연대의식은 원칙이 없는 리더십 문화를 만연시킨 원인이 되었다. 돈을 다루는 자리에서는 '피가 섞인 한 형제'라는 말을 거리낌없이 쓴다. 고향사람이나 선후배 관계를 통해 남들에게 주지 않는 특별한 총애를 베푸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되었다. 재벌들의 구조 역시 가족 중심으로 이어진 혈연 체제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차별적 리더십 - 유치원 수준의 발상 집단주의적 문화 속에서는 일정한 집단에 끼지 못하거나 배타 당하는 것이야말로 끝장을 의미한다. 소위 말하는 '왕따'를 당하는 것이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은 다른 집단에 대한 강한 배타성을 표출하는 왕따 리더십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어느 나라든 약간의 지역감정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지역감정이 정치나 경제 분야에서 기본적인 리더십의 원칙을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개인적인 감정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지역감정이 법에 영향을 끼치고 이익에 관한 불평등을 가져온다면 그것은 민주주의 정신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이기적 배타주의에 불과하다. 누가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 특정 지역의 발전 여부가 결정되고, 어떤 사람들이 등용되고 어떤 기업이 성장하느냐가 결정되는 구멍가게보다 못한 상황이 정리되지 않는 한 진정한 리더십의 정착은 요원한 문제라 할 것이다.
무소신의 리더십 - 병적인 이중인격 지난 5천 년의 역사 속에서 무려 1천 번이 넘는 외침을 당한 수난의 나라. 이런 어려운 환경과 본능적인 생존의식 속에서 키워온 한국의 리더십 문화는 강자에게는 비굴할 정도로 약하고 약자에게는 철저하게 강한 '기형적 리더십'이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이처럼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현상은 식민 통치를 겪은 나라들에서 볼 수 있는 공통된 현상이라는 논문이 발표된 적이 있었다. 1인 중심의 강력한 카리스마 그리고 서열과 계급이 지배하는 조직에서는 강자에게 빌붙지 않고서는 생존 자체가 어렵다.
미국 사회에서 리더의 위치에 있던 분이 한국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게 되었을 때 '그 분은 좀 다르겠지'라는 기대를 해 본적이 있었다. 그러나 한낱 기대에 불과했다. 그분은 "아랫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놔두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아랫사람들을 존중해 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해 주면 한국 사람들은 상대가 힘이 없는 리더라고 생각하고 막무가내로 행동하며 기어오르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 화도 내고 호통을 치면 슬금슬금 꼬리를 내리고 착 달라붙어서 시키는 대로 한다고 한다. 이처럼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리더십 문화는 1인독재 체제의 권위주의를 허용해 주는 결정적인 자양분 역할을 하고 있다.
결과 중심의 리더십 - 과정과 결과의 모순 한국에서는 무엇이든지 빨리빨리 해야 된다. 덕분에 한국인들은 장기보다 단기에 더 강하다. 88서울올림픽이 그랬고, 2002월드컵도 마찬가지다. 평소에는 질서도 제대로 지키지 않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1등 국민으로 바뀌었다. 좋게 생각하면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이고, 좀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자면 일관성이 없고 즉흥적인 국민성을 드러낸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군사정권이 남긴 가장 큰 해악 가운데 하나가 바로 결과 중심의 리더십이다. 모든 게 비정상적이었던 근대화 시절, 군사정권은 강압적인 독재권력을 바탕으로 국민들을 몰아붙이는 한편, 이젠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비전 성취를 위해 모든 가치를 발전 우선에만 두었다. 그리고 한국은 어느덧 선진국에 버금가는 위치로 올려놓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잃은 것은 없었을까? IMF구제금융으로 대표되는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는 결과 중심의 가치관으로 인해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왔던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은행과 결탁하여 남의 돈으로 재벌이라는 왕국을 구축한 기업가들, 진정한 실력도 없으면서 선진국 대열에 섰다고 자랑만 하다가 망신을 자초한 정치가들, 이 모든 것이 결과 중심의 리더십이 잉태한 결과물들이다.
도덕 불감증의 리더십 - 가장 큰 위기 무속에서는 영적인 존재들의 도덕적·윤리적 가치를 따지지 않는다. 무속의 굿은 악운과 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 힘있는 귀신들과의 흥정인 셈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무속의 영향을 받으면서 도덕적 가치관의 중요성보다 귀신들과의 흥정을 통하여 현실의 복을 구해왔다. 현실세계에서 도덕성의 궁핍을 만들어 놓는 데 톡톡히 일조를 한 셈이다. 지금의 우리는 사회 전반에 걸쳐 도덕적 가치나 윤리의식이 결핍되어 있는 현실에 놓여있다. 여기에다 집단주의적 사고에서 오는 덕치주의(?)까지 겹쳐 이상주의적인 법치국가로의 발전을 방해받고 있다. 집단주의에서는 특별히 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 실질적인 법 이외에 구성원간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또 하나의 법(덕)이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법들이 실제 상황과 동떨어진 막연하고 이상적인 형태로 왜곡되거나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형이 가능했다. 미국의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크라임 교수는 한국의 IMF 구제금융이 사회 전반에 만연한 도덕적 위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대화와 타협은 실종되고 이기적 주장만 터져 나오는 반민주적 자유주의가 판을 치고 있으며, 규칙을 지키면 손해를 본다는 심리가 저변에 깔려 사회가 온통 뒤죽박죽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후계 부재의 리더십 - 대책 없는 오늘과 침몰하는 내일 아랫사람을 키우자니 자신의 위치가 불안해진다. 당연히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고 바늘에 실 따르듯이 눈치로 달라붙어 아부하는 사람만 늘기 마련이다. 그렇게 아부와 눈치로 버티다 '장' 자리를 얻었으나 실력이 없다. 그러니 실력 있는 녀석들을 보면 자신의 위치가 불안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언젠가는 지금의 자신을 뛰어넘고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는 사람이기에 더욱 견고하게 견제할 수밖에 없고 복종하고 아부하는 사람만 가까이에 두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신의 핏줄만을 유일하게 믿는 세습주의가 만연할 수밖에 없다. 이런 악순환의 반복이 우리 리더십의 현주소다.
두려움의 리더십 - 조폭과 닮은 얼굴 한국인들은 "맞아야 사람이 된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종교학자들은 "무속신앙은 두려움의 종교"라고 말한다. 군사정권도 두려움의 리더십을 만연시키는 데 지워지지 않을 공로를 남겼다. 조폭들의 세계에서도 평상시에는 사랑(?)을 베푸는 모습이 존재한다. 이에 감격한 부하들은 충성으로 두목을 받든다. 그러나 위기가 닥치면 두목은 두려움이 절로 뿜어져 나올 정도로 냉정하고 살벌하게 부하들을 다룬다. 두목이 두려움의 대상이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상기시키기 위해서다. 문제는 이런 두려움의 리더십이 조폭 세계뿐만 아니라, 우리의 리더십 문화에도 만연해있다는 사실이다.
5장 신 카리스마 유형 6가지 난세가 부르는 영웅 - 카리스마 리더십은 유효하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하면서도 권위적이지 않은 리더십은 불가능한 것일까? 혹시 우리가 그동안 너무 부정적인 리더십의 영향 탓에 심한 알레르기 증상을 일으켜 진정한 카리스마 리더십을 이해하기도 전에 도매 가격으로 팔아넘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 전통의 세계관 중에는 강력한 카리스마에 대한 염원이 있다. 그것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신세대도 마찬가지다. TV를 통해 흔히 접하는 신세대 가수들, 개그맨들. 이들에게 톡톡 튀는 카리스마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카리스마 리더십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이제부터 진정한 카리스마 리더십이 요구되고 시작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한국적 상황에 맞는 새로운 카리스마를 탐색하고 카리스마에 대한 바른 이해를 통해 도덕적 가치를 가진 신 카리스마의 등장을 기대할 수 있다. 도덕성을 갖춘 카리스마 - 리더의 가장 중요한 덕목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권위적이지 않은 리더십 모델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가설'은 '정설'이 될 수도 있다. 나는 21세기에는 진정으로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며, 그들의 만족과 성공을 기쁨으로 여기는 도덕적인 카리스마가 반드시 등장할 것이라고 믿는다.
예수를 CEO로 등장시킨 책들이 서점가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한 생산이 주목적인 경영과 더 큰 권력을 지향하는 정치에서도 이제는 가치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리더십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예수는 엄청난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이었다. 지금도 전 세계 수억의 추종자들이 그의 리더십을 본받기 위해 열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가 권위적이었다는 표현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니, 그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겸손하고 자기를 희생하는 삶을 산 인류의 참 스승이라고 믿고 있지 않은가?
정치 리더십의 대명사였던 번즈도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도덕성이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행동상의 도덕적 가치, 도덕성을 가진 올바른 목적의 가치 그리고 자유로운 대화와 비판을 허용할 수 있는 개방적인 가치관이 정치 리더십의 근본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런던 비즈니스 스쿨의 경영학 교수인 크리스토퍼 바틀릿과 하버드 대학의 수만트라 고샬도 21세기 새로운 경영 리더십의 패러다임을 논하면서 "20세기의 기업 경영이 3S - 전략Strategy, 구조Structure, 체계System - 였다면, 21세기에는 3P - 목적Purpose, 과정Process, 사람People - 가 더 중요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므로 3S가 통제와 관리를 위한 권위주의적 리더십 개념이었다면 21세기의 3P는 Value, 즉 가치를 위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에는 단순한 통제나 관리를 위한 권위적 카리스마가 아니라 목적과 과정 그리고 사람을 중요시 여기는 가치 중심의 리더십이 주가 되어야 한다.
진정한 도덕적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십은 리더십being에 서 리더십 doing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강력한 카리스마가 되어 체험과 삶을 나누기를 원하는 우리의 추종자들에게 더없이 큰 영향을 끼치는 가치 중심의 리더십이 될 수 있다. 미국의 빌 하이벌 목사는 도덕성(integrity)이라는 단어를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당신의 모습이 바로 도덕성이다."라고 정의했다.
전문성을 갖춘 카리스마 - 리더에게 꼭 필요한 능력 히딩크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여러 형태의 비판과 비난이 끊이지 않았던 것을 기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딩크는 자기 나름대로의 원칙을 가지고 한국 사회 특유의 인간관계와 서열의식을 능력과 전문성 중심의 리더십으로 극복해 냈다. 이제 대한민국의 영웅이 된 히딩크 감독을 보면서 어떻게 보면 가장 비 한국적이었던 리더십이 한국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과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한다면 무리일까? 한국인이 이룰 수 없었던 새로운 변화를 네덜란드 사람인 히딩크가 가져올 수 있었다. 히딩크의 능력은 앞으로 우리의 리더십 문화를 전문성의 카리스마로 새롭게 보는 좋은 모멘트가 되었으면 한다.
이제는 능력 없는 지위는 '왕따' 당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는 전문성이 힘이다. 우리는 이것은 '전문성의 권위(Professional Authority)'라고 부른다. 전문성을 가지고 그 분야에서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가 되었을 때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다 준다. 그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위는 신분사회에서 서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감당해야 할 전문성의 역할로 보는 것이다. 지위의 본질이 신분이 아니라 역할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높은 '장' 자리에 있더라도 학교나 학원에서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될 수 없다. 경제학자인 피터 드러커도 "자기 지위에 관계없이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최고 경영자가 된 것처럼 결정을 하며, 그 결정에 같은 책임을 지는 시대가 온다."라고 예언했다. 이런 시대적 변화에서는 전문성이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21세기 신 카리스마를 만드는 영향력의 근원은 지위나 타이틀이 아니라 바로 전문성이다.
후계자를 키우는 카리스마 - 리더가 준비하는 비전 심리학에는 '메시아 콤플렉스'라는 말이 있다. 한 개인이 마치 메시아인 양 모두를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엄청난 스트레스와 착각에 빠져 있는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군사정권 이후, 한국의 리더십은 모두 메시아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런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리더를 통하여 우리는 어느덧 메시아를 기다리는, 그리고 그 메시아에 의존하는 습관을 통해 자기 발전을 도외시했다. 지금은 중간리더들에게 더 많은 힘과 권한을 주는 분산적인 리더십이 필요한 때이다. 그러므로 21세기 신 카리스마 리더십은 힘을 나눠주고 남을 키워주는 과정을 통해 더 큰 힘을 가지는 풍성한 공급의 개념이어야 한다.
내가 가진 리더십은 내 세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목적을 위한 과정으로 보고 남을 키워줄 수 있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리더십 재즈』를 쓴 맥스 디프리는 "뛰어난 리더십의 증거는 무엇보다도 그 추종자들에게 나타난다."라고 말했다. 추종자들이 얼마만큼 자신들의 잠재력을 발휘하고 있는가 그리고 얼마만큼 배우는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서 그 조직이 성공하는가, 아닌가를 구분한다는 것이다.
'풍성의 개념(Abundance mentality)'을 가진 리더에게 권력은 마치 공기와 같은 것이다. 즉 권력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나눠준다고 해서 자신의 영향력이 감소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도리어 나눠주고 세워줄 때 더 큰 권한과 영향력이 되돌아온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 주위에는 항상 성장하는 차세대 리더들이 들끓게 된다. 풍성의 개념을 이해한 리더에게는 성장하는 리더들이 위기나 도전이 되지 않는다.
신뢰성을 갖춘 카리스마 - 리더를 가장 돋보이게 하는 모습 나는 21세기 신 카리스마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는 바로 '신뢰'라고 생각한다. 무서워서 마지못해 따라오는 리더십이 아니라 깊은 신뢰로 리더를 믿고 움직이는 그런 리더십 말이다. 지금은 신뢰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다. 국가의 신용도나 개인의 신용도 그리고 기업의 신용도 등에 의해서 많은 것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신뢰는 곧 사회적 자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거짓말을 한 대통령은 물러나야 하는 미국의 상황을 볼 때 이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이며 이처럼 리더의 신뢰를 강조하는 의식이 그 나라의 성공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진정한 신뢰를 만들 수 있는 카리스마만이 신 카리스마 리더가 될 수 있다. 지도자의 신뢰가 추종자들에게 자신감이 되어 줄 수 있고 추종자들의 자신감은 곧 그들의 지도자를 향한 신뢰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 카리스마의 원천은 두려움이 아니라 신뢰이다. 두려움은 생존에 대한 연민을 갖게 하고 생존을 위해 자기보호에 빠져들게 한다. 그리고 자기보호 과정을 통해 공동체를 망치기도 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어 결국 분열하게 만든다. 그러나 신뢰는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단합을 가져와 조직의 응집력과 목적을 향한 초점을 증진시켜 주며,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줌으로써 문제를 창의롭게 해결하고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준다.
팀워크를 갖춘 리더십 - 가장 리더다운 자세 한국의 상황에 적합한 팀 리더십이란 무엇일까? 나는 여전히 강력한 카리스마 리더가 존재하는 팀워크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모든 멤버들에게 제왕으로 군림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고 원칙에 따라 신뢰를 받을 수 있는, 희생하는 리더로서의 카리스마가 필요하다. 미국에서 말하는 단순한 바람잡이로서의 '팀 리더'의 개념은 너무 약하다. 그렇다고 한 사람의 리더가 전체를 잡고 흔드는 팀워크도 아니다. 강력한 리더에 의한 리더십이 발휘되면서도 원칙에 의한 신뢰가 있고 그 신뢰와 원칙에 의해 팀이 운영되어야 한다.
비전을 갖춘 카리스마 - 리더를 선택하는 최고의 기준 팀 리더십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비전이다. 카리스마 리더의 비전은 큰 소리로 멋있게 선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인 비전이 리더십의 가치관과 의사결정에서 원칙으로 강조되며 말과 행동을 통한 실천적인 헌신이 뒷받침되어야만 한다. 크라이슬러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자신의 연봉을 1달러로 설정하고 기업의 발전을 위해 희생의 모범을 보였던 아이아코카의 예를 생각해볼 수 있다.
신 카리스마의 팀 리더십은 확실한 비전의 중요성만큼 선명하고 타당한 대화가 동반되어야 한다. 그것은 리더를 따르는 팀원들에게 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특유의 감정으로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게 만들고 그것을 봄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에 대해 소망을 가지도록 격려하는 능력을 말한다. 신 카리스마 리더들은 항상 주어진 상황을 제대로 보는 현실적인 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미래를 향한 소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현실의 필요와 미래의 소망을 적절하게 연결하여 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강한 충동과 신뢰를 팀원들에게 줄 수 있다.
6장 리더십을 살리는 리더는 다르다 이무기의 한계 -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한다 리더십은 평생을 통한 과정이다. 그러므로 '장' 자리를 가지고 있다고 교만하게 굴다가 '왕따' 당하지 말고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여 끝까지 겸손히 자기의 전문성을 다지는 계획이 필요하다.
리더들의 마지막을 크게 4가지 유형으로 나눠보겠다. 첫 번째는 '바람과 함께 사라진 리더들'이다. 처음에는 잘 나가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지만 엄청난 부담을 견디지 못해 어느 순간에 조용히 사라져 버리는 유형이다. 두 번째는 '정체된 지도자들'이다.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그냥 그렇게 자리만 지키며 특별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끝나는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세 번째는 문제가 되어 '도중 탈락한 지도자들'이다. 어느 한순간에 문제를 일으켜 많은 사람들에게 큰 실망을 주고 오히려 자기의 추종들에게까지 나쁜 영향을 주면서 수치와 치욕 속에 침몰해 버린 지도자들이다. 마지막 유형의 지도자는 "끝까지 끝맺음을 잘한 지도자"이다. 인생의 황혼기에서도 비록 지위는 없어도 여전히 영향을 발휘하는, 마지막까지도 존경을 받는 리더의 모습이다. 시계를 만들어 주어라 - 무엇을 남길 것인가 GE의 CEO인 잭 웰치도 은퇴 예정일이 9년이나 남은 1991년에 그의 리더십 계승에 관한 계획을 얘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내가 결정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항은 후계자를 고르는 것이다. 나는 거의 매일 누구를 후계자로 선정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잘 나가는 한 CEO에게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리더십 계승에 대한 당신의 계획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그러자 그 CEO는 살며시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처음 CEO가 되었을 때부터 나는 그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은 인재를 키우는 리더인가? 당신이 가진 영향력의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가 당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성장이 될 수 있는가? 아무도 키우지 않았기에 끝이 외로운 리더를 본 적이 있는가?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정확히 날짜와 시간을 가르쳐 줄 놀라운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많은 존경과 경의를 받을 것인가?" 그러나 그 사람을 의존할 필요 없이 그 사람이 죽고 난 후에도 우리 자신들이 시간을 볼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 준다면 그보다 더 큰 존경과 경의를 받지 않겠는가? 스스로 읽을 수 있는 시계를 만들어 주어라. 아니, 더 나아가서 시계를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어라.
스스로 리더라고 생각하라 - 깨달음이 중요하다 리더는 타고나는 것인가? 아니면 만들어지는 것인가? 사람들은 보통 자신은 선천적으로 리더십의 특성과 자질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리더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또는 그 반대로 자신은 선천적으로 특출한 리더십의 자질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당연히 리더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모두 틀린 답이다. 타고난 자질과 끊임없이 익혀야 되는 리더십의 기술,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춰야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리더로 성장할 수 있을까? 지금의 순간순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만남들을 배움의 기회로 잘 포착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올바른 자세로 미래의 길을 열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리더십을 성장시킬 수 있는 에너지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에도 성실하게 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금부터 당신은 리더다. 리더라고 생각하라.
마지막 그림을 처음부터 그려라 - 마지막이 처음을 결정한다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만들어 엄청난 돈을 벌었다. 어느 날 그는 신문기사에서 자신에 관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그 기사의 내용은 신문기자가 노벨의 형이 죽은 것을 노벨이 죽은 걸로 잘못 알고 노벨의 죽음을 기뻐하고 축하하는 기사였다. 노벨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벌어들인 많은 돈을 가지고 자신의 삶과 죽음을 가치 있게 만들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여 인생의 큰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노벨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그림을 생각하지 않고 처음부터 설계도를 함부로 그리고 있다. 성당을 짓는 공사장에서 일하는 두 인부가 있다. 똑같은 일을 하고 있던 이 두 사람에게 길을 지나가는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냐고 물었다. 한 사람은 벽돌을 쌓고 있는 중이라고 얘기하고, 다른 한 사람은 성당을 짓고 있는 중이라고 이야기했다. 리더가 되는 일도 마찬가지다.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현실만 바라보고 똑같은 일들만 반복하지 말고, 진정으로 마지막 그림(End view)을 가지고 목표에 충실한다면 의미 있는 리더십의 모습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항상 배우는 자세를 가져라 - 그리고 먼저 생각하라 리더십의 개발은 평생에 걸쳐 이루어지는 과제다. 훌륭한 리더는 늘 배우는 자세를 취한다. 그들은 크고 작은 모든 것에서부터 경청의 자세와 배움의 의욕을 가진다.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항상 새로운 것을 찾고 배움을 구한다. 그리고 무엇인가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앞으로는 다른 문화에 대한 경험이 가장 중요한 리더십의 자질로 떠오를 것임을 명심하라. 다른 나라 사람들과의 교제는 리더십에 대한 시각을 넓혀준다. 방법론을 얘기하는 책보다는 원칙을 강조하는 책을 많이 보라. 그리고 거기서 원칙을 통한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론을 만들어 보라.
더 높은 목표를 위해 - 지불할 것을 먼저 지불하라 먼저 지불하고 나중에 그 지불한 대가를 즐기는 인생이 있는가 하면, 먼저 즐기고 즐긴 것에 대한 값을 톡톡히 치러야 하는 인생도 있다. 당신은 어느 쪽은 택할 것인가? 지불할 것을 먼저 지불하자.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끝까지 멋있게 살아보자. 더 큰 목표를 향해! 당신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인생을 살고 있는가? 그리고 그 목표는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공부해서 남 주자!'라는 말이 유행어가 된 적이 있다. 남을 중요하게 여기는 희생과 헌신의 원칙이 목표가 되는 것이다.
성공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 -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발명왕 토머슨 에디슨은 천연고무를 찾아내는 시험을 하면서 약 50,000번 이상의 실패를 맛보았다고 한다. 50,000번 이상을 거듭한 실험에서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하자 그의 일을 돕던 조수는 지금까지의 모든 실험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고 한탄하였다. 그때 에디슨은 이렇게 반문했다고 한다. "왜 이것이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했다고 생각하는가? 벌써 우리는 천연고무를 찾아내는 데 50,000가지의 방법이 다 비효과적이라고는 사실을 알아내지 않았는가?" 성공적인 실패를 가치 있게 볼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며 그러기 위해선 포기하지 않는 인내가 필요하다.
7장 탁월한 리더를 만드는 훌륭한 추종자 추종자들의 착각 - 사파 무림을 동경하지 마라 무협소설을 읽어보면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내용이 있는데, 그것은 정파 무공과 사파 무공의 싸움이다. 정파 무공과 사파 무공은 어떤 점에서 차이를 보이는가? 한마디로 '내공(內攻)'의 증진에 있다. 사파 무공은 급속하게 성장하고 변화가 많은 장점이 있지만 무공의 발전 범위가 제한되어 있어 일정 수준에 오르면 그 이상을 능가하기가 어렵다. 반면 정파 무공은 깊은 내공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비록 연마에 고통이 따르고 오랜 시일이 걸린다 할지라도 발전 범위는 무궁무진하여 끝내는 최고의 고수가 될 수 있다.
내공 수련은 게을리 하면서 빠르고 화려하게 보이는 무공 비법 찾기에만 급급한 모습이 한국 리더십의 현실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근본 원칙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 조급함으로 외국 이론의 방법론만 자꾸 배우고 프로그램만 쉽게 모방하려고 한다면 진정한 비결을 이해하고 그것으로부터 도움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결과만 가져올 뿐이다. 노하우는 중요하다. 그러나 노하우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노하우를 만들기까지의 가치관과 노력이다. 그러한 가치관과 원칙들을 이해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노하우를 획득한다해도 질적으로 우수한 성과를 거두기는 어렵다.
무엇이 우리를 감동시키는가 - 리더십이 중요하다 호화 여객선인 퀸 메리 호를 방문한 손님이 선장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이 배가 완전히 정지하려면 얼마나 걸립니까?" 그 질문에 선장은 "완전히 브레이크를 걸고 난 후에도 약 2km 정도는 더 나가게 됩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럼, 참 위험하겠네요."라고 묻자 선장은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이 배의 선장 정도 되려면 최소한도 2km 이상 앞을 볼 수 있어야 되겠지요." 21세기에는, 리더십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권력 남용을 조심하라 - 리더와 추종자는 평등하다 권력남용에 당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는 바로 심리적인 면에 잇다. 점점 무기력해지면서 권력을 남용하는 사람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 탓에 의지는 나약해졌고 자신감을 잃었으며 개혁의 의지도, 변화의 마음도 어느덧 눈 녹듯이 녹아버린 허약한 상태가 된 것은 아닐까? 낮아질 대로 낮아진 열등감의 콤플렉스도 이제는 극복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페널티 킥을 쏘자 - 불신이 생길수록 더욱 비판하라 엄청난 문제들을 혼자서 감당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숙제라도 어딘가에서부터 시작은 필요한 것이고, 그것은 곧 우리로부터 가능할 수 있다. 나 혼자 바뀌어서 무슨 일이 되겠는가, 라고 생각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오히려 나 자신부터 변함으로써 또 다른 변화를 일으키고, 곧 전체가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성숙한 추종자가 성숙한 리더를 만들 수 있음을 아는가? 할 말은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하자. 잘하는 리더에겐 칭찬을 아끼지 말자. 리더들보다 원칙을 더 중요히 여기는 성숙함을 가지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페널티 킥을 쏘는 승부사임을 기억하자.
맺음말 - 우리에겐 아직 희망이 있다 도덕성이나 가치관을 만들어 가기보다는 점을 치고 요행수를 바라며 리더십의 지위를 확보하려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에게 진정한 리더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때마다 무척이나 고통스럽고 괴롭다. 왜 우리에게는 청량음료와 같이 마음을 시원하게 해줄, 제대로 갖추어진 진정한 리더가 없는 것일까?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바로 이런 안타까움에서부터였다. 사랑하는 조국의 리더십 풍토에 나의 간절한 염원을 전달하고 싶었다. 리더십은 너무나 중요한 것이며, 리더십의 변화는 곧 사회와 가치관의 변화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냥 그렇게 조용히 침묵할 수만은 없었다. 불신과 증오를 상징했던 붉은색을 희망과 단결의 상징으로 온 땅을 새롭게 색칠한 붉은 악마들의 모습, 국경일에만 볼 수 있었던 태극기가 신세대들의 몸에서 패션으로 재탄생한 역동성, 세대를 떠나 한 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쳤던 우리의 모습을 길이길이 기억하자. 그리고 이런 모습들을 발전적 에너지로 결집시킬 수 있는 신 카리스마 리더십의 출현을 간절하게 염원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