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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이 엄마
신외숙
어떻게 알았을까? 캐리어 소리가 나자 자동차 밑에 숨어 있던 길냥이들이 우르르 몰려 나왔다.
어찌나 냐옹대는지 지나던 사람들이 다 쳐다봤다. 재빨리 가방 속을 뒤져 캔 사료를 꺼냈다. 동시에 사방을 휘둘러보았다. 지난번처럼 고양이에게 사료 주지 말라고 협박하던 남자를 만날까 두려웠다. 등에 까만 점 있는 고양이와 노랑이와 삼색이가 내가 나타나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비닐 위에 참치 사료를 놓아주자 폭풍 흡입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종이컵에 물을 따라 주었는데 참치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 먹으면서도 계속 냥냥댔다. 지난번에 사료 주다가 험악한 인근 주민을 만난 적이 있었다.
“아줌마 그렇게 고양이가 좋으면 차라리 데려가서 키우세요, 왜 남의 집 앞에다 사료 주는 거예요? 지저분해서 살 수가 없다고요.”
또 다른 여자는 말했다. 그녀는 독이 올라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봐요? 당신 또한번 고양이한테 사료 주었다간 얘들 가만 안 둘 거예요, 얘들이 우리집에 와서 똥을 얼마나 싸는지 알아요? 한번만 또 그랬다간 봐라. 내 물골을 내고 말지.”
얼마나 독이 올랐는지 어둠 속에서고 눈빛이 새파랬다. 욕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고 돌아섰다. 혹시나 고양이한테 해코지 할까봐 가슴이 떨렸다. 고양이들은 집에서 키우다 쫓겨난 유기묘였는지 사람을 따르고 좋아했다.
편의점 앞에 숨어 있다가 젊은 남녀만 보이면 얼른 다가가 냐옹대며 부비부비를 했다. 마음 약한 사람들이 편의점에서 캔사료를 사서 먹여주니까 재미가 들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게 항상 통하는 건 아니었다. 귀엽다고 머리만 쓰다듬고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한번은 내가 고양이들한테 먹이를 주는 모습을 보고 지나던 여자가 다가와 말했다.
“저 고양이들 우리집 지하 보일러 실에 살아요, 거기가 따듯하니까, 예전에 보니까 너무 배가 고팠는지 풀을 막 뜯어 먹더라고요, 그래서 불쌍해서 딱 한번 사료를 사주었는데 허겁지겁 먹더라고요, 이렇게 불쌍한 아이들 먹을 것 챙겨주시는 거 보니까 제가 다 감사하네요.”
불쌍하다면서 어쩌면 딱 한번만 사주었을까. 계속 먹을 것 좀 주지. 난 도리어 여자가 원망스러웠다.
“저 아래쪽에도 길냥이들이 보이던데요.”
“아래쪽에 사는 고양이들 챙겨주는 캣맘들이 따로 있어요, 사람들이 고양이 사료 못 주게 자꾸 시비 걸고 해코지 하니까 밤 1시만 되면 킥보드 타고 나타나 고양이들한테 재빨리 사료 주고 사라지는 젊은 남자가 있어요, 가끔씩 캣맘들도 몰래 몰래 사료주고 가곤 해요.”
아! 그때 느낀 감격이라니. 갑자기 시야가 확 넓어지는 것 같았다.
“쟤들도 새 주인이 나타나 키워주면 좋을 텐데요.”
당신이 키워주면 어떠냐는 식으로 은근슬쩍 물어 보았다.
“전에 고양이들 여러 마리 키웠었어요, 얼마 있으면 이사 갈 계획이라.”
여자는 말을 하다 말고 말꼬리를 내렸다. 언젠가 TV 화면에서 본 기억이 난다. 일부러 고양이를 분양받아 잔인하게 죽인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고양이를 돌보는 천사 행세를 했지만 사실은 고양이 킬러였다. 그 집에는 수십 마리의 고양이가 밤마다 안타깝게 비명을 지르며 죽어갔다.
그녀는 일부러 유기묘 센타를 찾아가 입양 받는 조건으로 수십 마리를 데려다 키우며 천사 행세를 했지만 실상은 악마 그 자체였다. 고양이를 잔인한 수법으로 죽이며 계속 유기묘를 분양 받았던 것이다.
편의점에서 알바하는 어떤 남자는 여자친구와 헤어진 화풀이로 어린 새끼 고양이를 잔인하게 칼로 찢어 죽였다. 그것도 수십번에 걸쳐. 어미 고양이는 새끼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발만 동동 굴렀다고 한다. 그 악마는 고양이를 죽이지 않았다고 끝까지 발뺌 했지만 녹화된 CCTV에 의해 그 만행이 온 천하게 발각났다.
대학 다닐 때 들은 이야기다. 친구가 지인 집에 놀러갔는데 온 집안 식구가 고깃국을 맛있게 먹고 있더란다. 그런데 평소에 보이던 귀여운 강아지가 보이지 않아 물었더니 국그릇을 가리키며 말했다. 키운 지 6개월이 넘어 온 식구가 합의해 잡아먹었는데 너무 맛이 좋더라고. 뿐이랴.
어느 제보자에 의하면 시골 길을 가는데 커다란 개가 비명을 지르기에 다가가 보았더니 주인이라는 남자가 키우던 개를 잡는데 가스불로 지지고 있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여야 맛이 좋다고 했다. 너무 기가 막힌 제보자가 돈을 줄 테니 팔라고 해서 겨우 구출해 왔다고 한다.
그런데 더 웃긴 건 주인 남자의 말이었다.
“세상에 이상한 사람도 다 있지. 뭐하러 남의 개를 돈까지 줘 사며 사갈까.”
이해 안 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그런데 더 기막힌 건 얼마 전에 일어났다. 50만 명의 구독자를 가진 유투부가 그는 수의과대 생이었다고 한다. 예쁜 고양이들은 촬영해 애묘인들의 인기와 사랑을 받았는데 그게 다 돈벌이 수단이었다고 한다. 그것까진 괜찮다. 그는 유기묘를 입양해 키운다며 측은지심을 이용 많은 후원금까지 긁어모아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실상은 고양이들을 굶기고 학대한 정황이 드러나 동물보호 단체에 의해 고발된 상태였다. 그는 햄스터를 사와 잔인하게 죽이기도 했는데 일부 사라진 고양이들의 행방에 대해 시청자들은 의심과 울분을 토했다. 이후 화가 난 독자들은 후원금을 되돌려 받기 위해 소송 중이라는 기사도 떴다.
약한 짐승을 잔인하게 괴롭히다 살해하는 인간은 끝내 살인까지 저지른다. 인간 백정 살인마들이 하는 대부분의 고백이 있다. 길고양이를 데려다가 잔인하게 학대하게 죽이다 보니 사람 죽이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짐승을 물건 취급하기 때문에 발생되는 슬픈 이야기는 끝도 없을 것 같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던 소가 행로를 이탈해 산길로 도망치다 끝내 붙잡혀서 도축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종종 듣는다. 너무나 슬픈 이야기다. 잡아먹기 위해 키우는 짐승 놓고 너무 감상주의에 빠진 것 아니냐며 힐난하면 할 말이 없다.
또다른 사람은 말할 것이다.
그러는 너는 고기도 안 먹냐?
그렇다면 나는 또 말할 것이다, 난 채식주의자로 고기는 입에도 안 댄다.
그러면 또 묻는다. 당신은 불교신자인가? 천만에 만만에다. 요즘 세상에 불교신자라 해서 육식 안하는 사람이 있던가?
세상은 악을 향해 치닫다 이제 종말 증세마저 나타내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인터넷이라 말한다. 물론 그 해악 증상을 거론하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음란사이트를 비롯 동성애 자살사이트 아동 성애, 성착취 등. 바로 n 번방 성착취 사이트가 그러하다.
청소년들의 죄악상도 날로 진화하고 있다. 동급생 친구를 집단 폭행해 죽여 놓고도 전혀 미안한 기색도 없다. 잔혹한 게임 동영상과 유해한 사이트의 악영향 때문이다. 끔찍할 정도를 들자면 오금이 저릴 정도다. 하지만 긍정적인 사이트도 없지 않다.
동물 보호 연대나 동물 사랑방 등 인간애를 이슈화 하는 모임 단체 등이다. 몇 년 전엔가 압구정동에 사는 길고양이들이 지역 주민들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다. 새끼를 출산하는 어미 고양이를 몽둥이로 때려 내쫓거나 밖으로 못 나오게 고양이를 코너로 몰라 죽인 사건이다.
그때 캣맘들은 가여운 짐승을 죽이지 말고 함께 살아가자고 쓴 현수막을 들고 발을 동동 굴렀었다. 이후 길고양이를 보호하자는 여러 모임등이 결성되었었다.
요즘 유투브를 열면 귀여운 고양이 동영상이 많이 뜬다. 대부분 유기묘를 입양해 키우는 애묘인들인데 3-5마리 키우는 건 보통이다. 어떤 캣 대디 남자는 시골이나 외진 곳에 사는 길냥이들을 찾아 사료를 주는데 아예 큰 부대자루를 들고 가 사료와 물을 공급해 준다.
어떤 남자는 사지에 빠져 있는 길냥이를 구조해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 치료해 주면서 키우는 동영상도 있다. 다 죽어가는 생명을 포기하지 않고 거금을 들여가며 살려내는 생명 사랑은 눈시울을 시큰하게 한다. 그러한 광경은 부정적 시야를 긍정적으로 바꾸어 살만한 세상임을 실감케 한다.
그들의 아름다운 노력으로 동물복지법이 통과된 지 3년이 됐다. 가끔씩 공원이나 버스 광고문에 길고양이를 죽이면 처벌 받는다는 경고문을 볼 때가 있다. 또 하나의 생명 사랑에 가슴이 뭉클하다. 이젠 길고양이들도 함부로 죽이면 처벌 받는 세상이 되었다. 물론 솜방망이 수준이지만 이를 홍보하는 단체에 의해 만행은 조금 수그러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이에 대해 인터넷도 한몫 하고 있으니 유용하다 할 수 있겠다.
“냥이 엄마, 발은 왜 그래, 다쳤어?”
“발바닥에 티눈이 박혀서 제거 수술을 했는데 생각보다 엄청 아프고 오래 가네요.”
“냥이 엄마 고생 하겠네요.”
냥이 엄마?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지. 의문이 들었지만 곧 알아차렸다. 내가 캐리어를 끌고 다니면서 길냥이들에게 밥 준다는 소문이 난 것이다. 캣맘은 나 말고도 여럿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한 마음으로 동물 보호 아니 생명존중을 실천하고 있었다.
오늘 따라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거래처에 전화해 주문량을 확인하는 데만도 오전 시간을 보냈다. 점심 식사를 위해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는데 발바닥에서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왼쪽 발바닥 한가운데 박힌 티눈은 꽤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던 모양이다.
마취 주사를 찌르고 칼로 째고 티눈을 도려내는데 10분가량 소요되었다. 뿐만 아니라 실로 꿰매고 봉합하는데도 통증이 느껴졌다. 상처 부위에 소독약을 바르고 붕대를 처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에는 잘 몰랐었다. 문제는 2시간쯤 지난 후 마취가 풀리면서 발생했다. 발바닥에서 통증이 나는데 한발짝도 못 움직일 정도였다. 발바닥을 땅에 디딜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뒤꿈치에 의지해 걷는데 허리를 바로 펼 수도 없고 다리에 쥐가 나는 것 같았다.
간신히 걸어 집에 온 나는 선반 위에 있던 뽁뽁이를 꺼냈다. 그것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발뒤꿈치에 대로 끈으로 묶었다. 걸을 때마다 뒤꿈치에 느껴지는 압력을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였다. 피곤이 강도같이 온몸 위로 쏟아졌다.
냐옹이들이 먹을 것을 달라고 계속 냐옹댔다. 냉장고에서 사료를 꺼내 용기에 옮겨 담는데 막내 하양이가 내 손등을 물었다.
아얏! 살짝 물은 탓에 피는 나지 않았지만 통증이 느껴졌다. 건 사료에 참치를 섞어 놓아주니 5마리가 우르르 몰려들어 폭풍 흡입을 한다.
냥냥대며.
어미 야옹이 예쁜이가 집에 들어온 지 벌써 5년째다. 어느 겨울 날, 길냥이 가족 7마리가 집 마당 계단 밑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불쌍한 생각에 먹을 것을 주었더니 나중에는 아예 터를 잡고 눌러 앉으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동적으로 서열 정리가 이루어져 그중 삼색이 두마리가 집냥이가 되었다.
백색 노랑 검정털로 이루어진 삼색이는 보통 암냥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두 마리 다 새끼를 낳고나서야 알았다. 삼색이 두 마리 중 미모가 뿜뿜인 예쁜이는 갈수록 귀엽고 영리해 온 가족의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나머지 한 마리는 얼굴도 못 생기고 사람을 따르지 않아 곧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예쁜이는 큰 눈에 쫑긋 선 귀와 턱 밑에서부터 배까지 완전 백색이었다.
제 주인을 알아보고 다가와 부비부비 하는데 얼마나 귀여운지 완전 애교냥이었다. 거기에 기분이 좋으면 배를 내놓고 발라당 누워 딩굴었다. 마치 나보란 듯이. 그러나 항상 그런 건 아니었다. 동네 고양이랑 쌈박질을 하고 들어온 날은 발톱을 내밀며 캬옥! 대는데 맹수가 따로 없었다.
앞발을 내밀어 계속 펀치를 날리는데 맞았다간 당장 핏물이 솟았다.
“어디 주인한테 발길질이야? 왜 그렇게 못됐어? 쫒겨나고 싶어?”
야단치면 으르렁 거리며 캬옥대다 현관문으로 달려가 발톱으로 박박 긁었다. 문을 열어주면 다음날 아침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아 온 동네를 다니며 찾아 나서야 했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현관문 근처에 숨어 있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들어섰다.
그리고 나서 냉장고를 가리키며 계속 캬옥댔다. 당장 참치 캔을 내놓으란 뜻이었다. 건사료 위주로 먹다가 한번 캔사료 맛을 보고 나더니 나중에는 건사료는 아예 쳐다도 보지 않았다. 온 가족이 저 하나만 위해 주니까 예쁜이는 점점 버릇없는 고양이가 되어 갔다.
밖에 나갔다가 한밤중에 나타나 문 열어달라고 냐옹대는 건 보통이었다. 멀쩡히 잘 놀다 잠자다가도 새벽이면 일어나 온 집안이 떠나려가라 소릴 질렀다. 밖에 숫냥이가 부르러 온 것이다. 현관문을 열어주면 쏜살같이 날아서 사라지는데 그야말로 빛의 속도였다. 한참을 동네를 쏘다니며 데이트를 즐기다 배가 고프면 어김없이 또 나타났다.
남친 숫냥이와 함께. 문을 열면 숫냥이까지 당당하게 들어와 준비된 사료를 먹고는 또다시 데이트를 나갔다. 나가기 전 갑자기 식탁에 뛰어올라 한참을 난리 블루스를 추다가 컵을 깨기도 하고 냉장고 위나 에어컨 위로 날아올라 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거실 바닥을 뛰어다니다 정수기 앞에서 냐옹대면 얼른 물을 대령해야 한다. 혓바닥으로 물을 마시다 일부러 물을 엎기도 한다. 야단치면 또 가출할까봐 얼른 치우기 바쁘다. 사람이고 짐승이고 인물값을 하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예쁜이는 집냥이가 된 이듬해 새끼를 두 마리 낳았다. 하양이와 노랑이는 귀염둥이 사랑둥이였다. 배를 내놓고 뒤집기를 하고 어미 꼬리를 잡기 위해 온종일 씨름을 했다. 작은 공을 던져주면 온종일 거실 바닥을 헤집고 다니며 놀았다.
아기냥은 어미 젖을 먹고 장난치고 놀다 잠들었다. 그러더니 어느날인가부터 바깥 출입을 하더니 옥상을 올라간 뒤부터 아예 사라져버렸다. 예쁜이가 아기냥을 독립시켰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 겨우 젖을 뗄까 말까한 시기인데 독립은 말이 안 되고 실종된 게 맞는 것 같다.
아기냥들이 안 보이는데도 예쁜이는 새끼 찾을 생각도 안했다.
“예쁜아 아기냥들 어디다 갖다 버린 거야? 빨리 찾아와. 아기냥들 죽으면 어떡해? 빨리 찾아오라니까.”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예쁜이는 온 종일 동네를 쏘다니며 놀았다. 아기냥이 태어나자 삼색이는 저절로 퇴출 되었는데 아예 동네에서 사라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제 조카가 태어난 것과 자기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예쁜이는 새끼를 잃은 지 두 달 만에 또 임신을 했다.
배가 남산만큼 불러도 점프는 어찌나 잘하는지 새가 날아다니는 듯했다. 인물값을 하느라고 배가 만삭인 상태에서도 수시로 남친 고양이가 바뀌었다. 검정 고양이에서 노랑이로 바뀌는가싶더니 어느새 러시안 블루 고양이로 바뀌었다. 그애는 집에서 가출했거니 파양되어 쫒겨난 게 분명했다.
동네에는 항상 길고양이들이 출몰했다. 새끼를 거느린 어미냥과 발정 난 암냥이를 따라다니는 숫냥이들이 무리지어 다니는가 하면 어미 잃은 불쌍한 아기 고양이가 처량하게 우는 모습도 자주 목격됐다. 짝짓기 하느라 한밤중에도 울어대는 고양이 때문에 밤잠 못 이룬다며 불평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고양이를 죽이겠다고 으름짱을 놓았지만 새로 제정된 동물 복지법을 거론하며 난리치는 캣맘들을 이길 수는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더 이상 고양이 개체 수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 두고 볼 수만은 없다며 중성화 수술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 불똥이 우리집에까지 떨어진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러나 나는 선뜻 응할 수가 없었다. 예쁜이가 배가 만삭이었고 곧 출산을 앞두고 있어서였다. 그리고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이어도 그렇지 어떻게 당사자에게 말 한마디 없이 중성화 수술을 시킬 수 있단 말인가. 불쌍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었다. 동네 고양이들도 겨울을 나기 위해 나름 준비하는지 점점 모습이 뜸해졌다. 나는 예쁜이의 출산을 위해 베란다에 박스와 뽁뽁이, 그리고 핫팩까지 준비했다. 그리고 예쁜이에게 보여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출산이 임박할 무렵 갑자기 예쁜이가 사라졌다.
아무리 동네를 뒤집고 다니며 예쁜이를 불러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 추운 겨울에 새끼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나 날마다 좌불안석이었다. 베란다에 출산준비까지 마쳐 놓았는데 도대체 어디에 가서 숨어버린 걸까. 이틀 삼일 일주일이 지나도 예쁜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도 새끼를 낳다 죽었는지 모른다. 아니면 로드킬을 당했거나 못된 인간 악종을 만나 죽임을 당했는지 모른다. 하얀 배를 내놓고 딩굴거리며 애교부리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온 동네 숫냥이를 집안에 끌어들이며 사료를 축내고 점프하던 모습도 떠올랐다.
나는 매일같이 예쁜이를 부르며 동네를 돌아다녔다. 제발 살아만 있어다오. 만일 병이 들었다면 돈이 얼마가 들던지 동물병원에 데려가 살려 줄 테니. 제발 예쁜아 내 앞에 나타만다오. 눈물이 걷잡을 수없이 흘러내렸다. 목이 쉬도록 예쁜이를 찾아다니던 어느날이었다.
예쁜이가 사라진 지 열흘쯤 되던 날이었다. 현관문에 들어서려는데 어디선가 냐옹!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예쁜이었다.
“예쁜아?”
놀랍게도 뼈만 남은 앙상한 예쁜이가 새끼 고양이 네 마리와 함께 나를 보고 서 있었다. 세상에…….
어찌나 반가운지 눈물이 났다.
“예쁜아 어서 들어와, 춥지? 이 추운 날씨에 얼마나 고생했어, 내가 그동안 얼마나 너를 찾아 다녔는데, 아기를 네 마리나 낳았구나, 귀엽기도 하지.”
아기냥 2마리는 털 전체가 백색이었고 1마리는 노란색이고 나머지 1마리는 검정색이었다. 아기냥은 눈도 못 뜬 채 예쁜이 앞에 엎어져 있었다. 어딘가 숨겨 두었다가 입에 물고 나타난 거 같았다. 베란다 안에 두었던 박스와 방석과 핫팩을 도로 거실 안으로 들여 놓았다.
베란다 안에서 지내기에 날씨가 너무 추웠다. 갑자기 거실 안이 시끄러워졌다. 아기냥들이 계속해서 냐옹댔기 때문이다. 밤새 냐옹대는 탓에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할 수 없이 예쁜이 가족을 베란다로 옮기기로 했다. 펫샵에서 사 온 고양이 집에 뽁뽁이를 사방으로 붙이고 바닥에는 전기 장판을 깔았다.
아기냥들이 언제든지 나와 놀 수 있도록 쥐돌이와 각종 장난감 도구도 놓아 주었다. 예쁜이는 새끼들 젖을 먹이다가도 수시로 베란다 문을 두드렸다. 나중에는 지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와 거실 안을 온통 뛰
어 다니며 놀았다. 그때마다 고양이 털뭉치가 소파 위로 떨어지는데 아무리 치워도 소용이 없었다.
아기냥들도 어미냥을 따라 들어와 거실 안은 온통 고양이 차지가 되었다. 아기냥들은 서로 물고 뜯고 싸우다가도 어느 사이엔가 서로 껴안고 잠들곤 했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몰랐다. 아기냥끼리 서로 핥아주고 꾹꾹이도 하는데 그때마다 가르릉 거리며 골골송도 불러댔다.
아기냥들이 자라자 가족들은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다. 등치가 제법 크고 눈치가 빠른 아기냥의 이름은 점박이로 지었다. 코 밑에 검은 점이 입가에까지 연결돼 있어 귀엽기도 하거니와 모습이 특이했다. 털 색깔이 노란 아기냥은 노란둥이로 했다. 온통 검정색을 한 아기냥은 까망이로 지었다. 또 주인을 전혀 따르지 않고 혼자 노는 하양이는 머리 부분을 제외하고는 온통 새하얀 편이라 그대로 하양이로 지었다.
아기냥들은 눈병이 나 한동안 고생하기도 했다.
나는 열심히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아기냥들 상태를 살피고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 약도 먹이고 주사도 맞혔는데 생각보다 지출이 엄청났다. 감기약을 지어와 먹인 적이 있었는데 어찌 알았는지 그렇게 좋아하던 캔 사료에 냄새를 맡더니 이내 외면하고 말았다.
전에 안 보이던 약 냄새를 의심을 품고 외면한 것이다. 수의사 말이 맞았다.
“쟤들이 얼마나 영리한데요, 사료에 들어간 약 냄새를 귀신같이 맡아요, 아마 안 먹을 거예요.”
아기냥들은 뛰어놀다 기운이 달리면 그대로 엎드려 잤다. 서로 멀찌감치 떨어져 자다가도 어미냥만 보이면 다가가 뽀뽀를 하고 부비부비를 했다. 어미는 열심히 아기냥들을 그루밍 해주었다. 먹을 것을 주면 새끼 먼저 먹이고 주인에게 다가와 더 달라고 냐옹댔다.
점박이는 먹을 욕심이 많았다. 누워 자다가도 수시로 사료통으로 달려가 먹었다. 제 것을 다 먹고도 남의 것까지 넘보며 식탐을 부렸다. 한번은 까망이의 밥그릇을 통째로 빼앗아 먹다가 대판 싸움이 벌어졌는데 그야말로 맹수의 혈전이었다. 서로 물어뜯고 싸우는데 털이 통째로 뽑혀 날아다녔다.
노란둥이는 점박이가 제 밥그릇을 넘봐도 그대로 빼앗겼다. 노란둥이는 박스 냥이었다. 박스만 보면 달려가 제 몸을 집어넣었다. 그 조그만 박스에 어떻게 큰 몸집이 들어가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또 아기냥 때부터 얼마나 큰소리로 냐옹대는지 멀리서도 들릴 정도였다.
입을 벌리고 냐옹댈 때마다 혓바닥이 송곳니 위로 가 닿는데 그 모습이 너무귀여워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점박이는 동네 냐옹이랑 어울리는 것보다 집에 있는 걸 더 좋아했다. 하루종일 제 침대에 누워 빈둥거렸다. 잠을 자지 않을 때도 눈을 감고 기척도 안했다.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요지부동이었다. 반면 까망이는 잠시도 집에 붙어 있지 않고 나가 다녔다. 특히 발정 난 어린 동네 고양이를 따라 다니며 괴롭히다 라이벌 숫냥이한테 물려 피투성이가 된 적도 있었다. 집에 찾아오는 길냥이와 기 싸움을 하느라 밤새 울어대는 통에 동네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까망이는 어미 예쁜이나 노란둥이 점박이와 달리 주인을 따르지 않았다. 하양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잠을 재울 때도 까망이와 하양이는 베란다에 재우고 예쁜이와 점박이 노란둥이는 거실에 재웠다. 한번은 하양이가 가출해 거의 보름 이상 행방불명 된 적이 있었다.
나갈 때 눈병이 심하게 나서 죽었으려니 생각했는데 어느날 짠하고 나타났다. 얼굴이 눈병으로 덮여 완전 이지러져 있었다. 그동안 도통 먹지를 못했는지 뼈만 남은 앙상한 몰골에 곧 죽을 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가 안고 안약을 넣는대도 힘이 없어 저항하지 못했다.
하양이는 주인한테 전혀 틈을 주지 않고 혼자 행동하는 고양이다. 주인이 만지려고 손만 내밀어도 캬옥대고 할퀴고 도망간다. 그런데 그 하양이가 죽을 지경이 되니까 집에 돌아온 것이다. 안약을 넣고 캔 사료를 주고 박스 안에 부드러운 침낭을 깔아 주었더니 잠도 잘 자고 곧 기력을 회복했다.
그동안 얼마나 굶었던지 참치 사료를 주면 폭풍 흡입을 했다. 뼈만 남은 앙상한 몰골에 살이 오르고 눈도 거의 다 나았다. 그러자 또다시 본 성질이 발동했는지 주인이 가까이 다가가 만지려고 하자 캬옥대며 발톱을 휘둘렀다. 기운을 차릴수록 주인을 경계하고 발톱을 내세워 도로 베란다로 쫒겨났다.
그러더니 다시 까망이와 함께 온 동네를 쏘다니며 노는데 주로 새 사냥을 했다.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는 지빠귀에게 몰래 다가가 통째로 물고 내려오는 게 아닌가. 새는 살겠다고 발버둥을 치고 가여운 울음소리를 냈지만 소용없었다. 하양이에 이어 노란둥이도 점박이도 사냥에 합세해 비둘기까지 잡았는데 먹지는 않고 서로 돌려가며 장난치고 놀았다.
뽑힌 깃털이 집안에 날아다녀 내쫒았더니 마당 한가운데 놓고 장난치고 놀았다. 가끔 참새도 잡았고 한여름이면 울던 매미가 일시에 사라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이웃집 지붕 위로 예쁜이의 자매 고양이가 나타났다.
삼색이는 배가 남산만큼 불러 만삭이 다 돼 있었다. 숫냥인 줄 알았는데 쫒겨난 지 거의 일 년 만에 나타난 것이다. 참치 캔 사료를 주자 재빨리 먹고는 사라졌다. 이후에도 삼색이는 가끔씩 나타나 사료를 먹고는 사라졌다. 그리고 한동안 사라지는가 싶었는데 두 달 만에 또다시 나타났다.
새끼 두 마리를 데리고서.
아기냥들은 천사처럼 예쁘고 귀여웠다. 온종일 어미 뒤를 따라다니며 계단을 놀이터 삼아 놀았다. 그 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아려왔다. 예쁜이가 아기를 낳자마자 쫒겨나 살다 그래도 옛 주인이 생각나 찾아오다니. 덕분에 우리집은 고양이들 천지가 되었다.
어린 아기냥들은 눈치가 없어 어미만 안 보이면 밤새 울어대고 똥을 이웃집 마당에다 마구 퍼질렀다. 그렇다고 먹을 것을 안 주자니 너무 불쌍해 눈물이 절로 났다. 예쁜이는 새끼를 키우는 동안에도 바깥 출입이 얼마나 잦은지 우리집 현관 앞은 길냥이들 집합소 같았다.
수시로 길냥이들이 찾아와 냥냥대는 통에 사료를 주었더니 나중에는 새끼까지 데리고 나타났다. 계단 마다 담장 위로 아기냥들이 차지하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마다 고양이 동물원이라 불렀다. 거기까진 참을만 했다. 아기냥들이 계단마다 심지어 이웃집 마당에서 똥을 싸 냄새가 진동을 하는 것이었다.
이웃집에선 창문도 못 열겠다며 얼마나 성화를 해대는지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나중에는 고발하겠다고 하고 수시로 협박이 날아들었다. 그러는 사이 예쁜이는 또 임신을 했다. 배가 남산만해 가지고 나타나서는 제 새끼냥들을 때리고 할퀴로 물었다. 아기냥들은 아파 죽는다고 냥냥대고 길냥이들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아와 사료를 먹고 똥을 쌌다.
드디어 이웃집 남자가 한밤중에 대문을 두들기더니 협박과 쌍욕을 하기에 이르렀다. 아무도 모르게 고양이들을 죽이겠다고 하고. 집안에 가둬 키우라고 하고 그도 저도 안 되면 아예 먹이를 주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배가 고파 찾아오는 길냥이들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고양이 개체 수가 기하급수 적으로 늘어나는 것이었다. 길냥이들이 새끼를 낳아 어느 정도 크면 꼭 우리집으로 데리고 나타나는 것이다. 생각 끝에 길냥이 급식소를 동네 골목 외진 곳으로 옮기기로 했다. 주차장 뒤로 공원이 있는데 고양이들이 자주 모이는 곳이기도 했다. 화단 뒤로 담장이 있는데 그 밑이 안성마춤이었다.
매일 건사료와 참치를 섞어 놓아두었더니 차츰 고양이들이 나타나는 횟수가 줄었다. 예쁜이와 노란둥이는 점차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우리집 마당에는 고양이 화장실을 6개나 설치에 다시는 고양이들이 이웃집으로 넘어가지 않게 했다. 어느날인가부터 우리집 담장 위에 고양이용 캔 사료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끔씩 지나가는 애묘인이 일부러 참치 사료를 사서 놓아 주는 것 같다.
예쁜이가 또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배가 남산만해 가지고 내가 부르면 담장을 뛰어 넘고 지붕을 건너 비호처럼 날아왔다. 나타나서는 내게 부비부비를 하고 친근감을 표시했다. 아기냥들도 어느새 자라 동네 마실을 다니더니 노란둥이 배가 점점 불러오는 것이었다. 아직 4개월밖에 안됐는데 어떻게 아기가 아기를 낳는단 말인가?
너무나 기가 막혔지만 닥친 현실이었다. 예쁜이와 노란둥이가 한꺼번에 새끼를 낳게 된 것이다. 노란둥이가 담장 위에 앉아 있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물었다.
“어머 노랑이 야옹이가 엄청 예쁘게 생겼네요, 나비야 너 참 예쁘구나.”
“얘 새끼 배서 곧 낳게 생겼어요.”
“얘가요? 아직 어린 새끼 고양이 같은데.”
여자는 믿기지 않은지 고개를 연신 흔들었다. 등치도 작은 어린 고양이가 새끼를 갖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가을이 막 시작될 무렵 예쁜이와 노란둥이는 동시에 새끼를 낳았다. 예쁜이는 4마리 노란둥이는 2마리였다. 각자 베란다에 앉아 새끼 젖을 먹이는데 키울 생각을 하니 억장이 무너졌다.
총 11마리 고양이가 우리집 객식구가 된 것이다. 그래도 새끼를 낳았으니 어미 보양식을 해주어야 할 것 같아 인터넷으로 각종 특제 간식에다 고급 사료를 먹였다. 노란둥이는 초보 엄마인데도 어미 노릇을 잘했다. 아기냥에게 젖을 물리다가도 내가 부르면 우렁찬 목소리로 냐옹댔다.
예쁜이는 노란둥이 까망이를 각 두 마리씩 낳았는데 젖을 먹이다 말고 수시로 바깥 출입을 했다. 또 바람이 난 것이다. 새끼냥들을 밖으로 옮기기도 여러번 하더니 나중에는 두 마리만 데리고 나타났다.
노란둥이도 새끼냥을 돌보다가 실패했는지 모두 죽은 사체로 발견됐다. 그런데도 전혀 슬픈 기색도 없이 온 동네를 쏘다니면서 놀았다.
제 어미랑 똑같았다. 이대로 계속가다간 우리집은 고양이 천지가 될 것 같았다. 앞으로 예쁜이와 노란둥이가 새끼를 낳다보면 일 년이 못 가 수십 마리가 될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중성화 수술방법밖에 답이 없는 것 같았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암코양이 수술비는 수십 만 원을 호가했다.
다행히 예쁜이와 노란둥이 말고는 모두 숫고양이였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었고 실행에 옮기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 예쁜이와 노란둥이는 가까이 와서 부비부비 하고 애교를 부려도 결코 손에 잡히는 법이 없었다. 태생이 길냥이라 의심이 많고 경계심이 강했다.
아무리 먹을 것으로 유인하고 가까이 가 만지려고 하면 캬옥대고 발톱을 휘둘렀다. 전문가에게 의뢰했더니 포획틀을 사용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이튿날 수의사가 포획틀 2개를 갖다 주었다. 그가 사용법을 가르쳐 주는데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예쁜이와 노란둥이가 수술대 위에서 자궁을 들어내는 장면을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숫냥은 하루면 수술 부위가 회복되지만 암냥 꼬박 3일이 걸린다. 중간에 의료사고라도 나서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나 불길한 상상 드리마가 써졌다.
어쩌면 부정적인 면에서는 그리도 상상력이 잘 발동하는지 모르겠다.
“냐옹아, 너희들이 새끼를 너무 많이 낳아서 우리집에서 도저히 키울 수가 없구나. 그러니 너희들 중성화 수술해야 된단다. 알았지. 힘들겠지만 수술하자.”
말 귀를 알아들었는지 예쁜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노란둥이는 천지를 모르고 뛰어다녔다. 수의사가 포획틀 입구에 걸린 나사 모양을 두고 말했다.
“저 안 깊숙한 곳에 사료를 놓아두세요, 고양이가 냄새를 맡고 들어가는 순간 이게 닫히면서 고양이가 갇히는 거예요. 고양이가 포획틀 안에 갇히는 걸 다른 고양이가 보게 되면 절대 안 들어가요, 쟤들이 보통 영리한 애들이 아니에요. 포획틀 안에 넣기 전 하루 정도 금식 시키세요, 그래야 배가 고프니까 냄새에 이끌려 들어가요, 다른 애들이 안 볼 때 하셔야 해요, 포획틀 안에 한번 갇혔다 빠져 나온 애들은 다신 안 들어가니까 한번에 성공해야지 두 번은 안돼요, 그리고 아기냥 안 볼 때 해야지 아기냥이 포획틀 안에 먹으러 들어갔다가 갇히는 거 보면 어미냥은 절대 안 들어가요.”
포획틀을 가져오긴 했는데 도저히 안에 넣을 자신이 없었다. 저 안에 갇히는 순간 빠져 나오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칠 것인가. 그래도 수술밖에 방법이 없다니 독한 마음 먹고 실행해야 했다. 고양이 5마리가 동네 마실을 나갔다가 한밤중에 들어왔다. 당연히 사료를 줄줄 알고 들어왔는데 주지 않자 도로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
배가 고파 들어온 고양이를 굶겨서 내보자니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현관문을 나선 고양이들은 어느 캣맘이 놓아 둔 사료를 찾기 위해 헤맬 것이다. 예쁜이와 노란둥이의 중성화수술 때문에 아기냥들도 동시에 금식에 들어간 것이다. 이튿날 아침이었다.
예쁜이와 노란둥이가 아기냥들과 함께 나타났다. 이번에는 포획틀 안에 참치 사료를 놓고 반응을 기다렸다, 눈치 빠르고 영리한 예쁜이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쉽게 포획틀 안으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원래 의심이 많고 영리해서 사람도 잘 가리고 눈치가 백단이기 때문이다. 생각 끝에 꾀가 났다.
포획틀 입구에 난 나사를 끈으로 단단히 묶었다. 그런 다음 틀 안 깊숙한 곳에 사료를 넣은 다음 아기냥들을 유인했다. 아기냥들은 배가 고프자 포획틀 안에 놓인 사료를 먹기 위해 스스로 들어섰다. 그리고 양껏 먹고는 나왔다. 다른 아기냥들도 먹고 나왔다.
그 모양을 보고 있던 예쁜이도 안심한 듯 포획틀 안으로 들어갔다, 사료에 입을 대는 순간 덜컹 하고 문이 닫혔다. 그러자 놀란 예쁜이가 발악하기 시작했다. 발톱으로 철창을 마구 긁고 난리가 났다. 그러자 밖에서 이를 지켜보고 아기냥들도 덩달아 난리가 났다.
어미가 갇히는 모습을 보자 온 동네가 떠나려 가라 냐옹대고 울었다. 어미가 발악을 하고 캬옥대자 아기냥들도 어미 곁에서 발톱을 포획틀 사이로 난 구멍으로 드밀며 어미냥을 불러댔다. 그 광경이 얼마나 참혹한지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예쁜이는 얼마나 발악을 하는지 포획틀 밖으로 털뭉치가 뭉텅 뭉텅 빠져 나왔다. 다른 방향에서는 노란둥이의 포획 작전이 펼쳐졌다. 이틀을 굶은 노란둥이는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냄새를 따라 포획틀 안으로 들어갔다가 덜컹 갇히고 말았다. 그러자 노란둥이도 곧 발악을 하고 난리가 났다.
온 동네가 떠나려 가라 냐옹대고 아기냥들도 덩달아 냐옹대고 온 집안이 고양이 울음소리로 천지가 진동하는 것 같았다. 노란둥이도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털이 뭉텅이로 빠져 나왔다.
“이게 다 너희들 위해서 하는 거니까, 조금만 참아, 수술 잘 받고 나오면 맛있는 거 많이 줄 테니, 조금만 참자 나비야 미안하다. 이 방법밖에 없어서.”
신문지로 포획틀 전체를 덮었다. 아기냥들이 계속 울어대니까 예쁜이가 더 요동을 하고 캬옥댔다. 자신을 사지(死地)로 밀어 넣은 주인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더 발악을 하는지 몰랐다. 수의사에게 전화를 했더니 포획틀 옆에서 말하면 더 발악을 하니까 그냥 조용히 있으라고 했다.
숨 막히는 시간이 4시간쯤 흘렀을까. 수의사가 푸른색의 가운을 입고 나타났다. 포획틀 안의 예쁜이와 노란둥이를 보더니 말했다.
“둘 다 암놈이네.”
“얘네들 털 뜯긴 거 보세요, 이렇게 스트레스 많이 받아서 죽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이 정도 가지고 안 죽어요.”
수의사가 포획틀을 들고 나가는데 가슴속에 극렬한 통증이 일었다. 불쌍한 것들.
예쁜이와 노란둥이가 수술 받고 퇴원하는 3일 동안 나는 계속 가슴 찢기는 통증을 앓았다. 얼마나 가슴을 치고 회개 기도를 했는지 모른다. 왜 갑자기 회개 기도가 터져 나왔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가슴 뭉클한 그 어떤 감동과 가엾은 생명에 대한 긍휼함으로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는 것 같았다.
드디어 3일 만에 예쁜이와 노란둥이가 집에 오는 날이었다. 퇴근 후, 캐리어를 끌고 동네 골목길을 들어서는데 약속이나 한 듯이 예쁜이와 노란둥이 일당이 돌진하듯이 내게 달려왔다. 냥냥대며.
주차장 뒤 화단에서 놀다가 내가 온 기척이 들리자 반가움에 한꺼번에 몰려온 것이다, 순간 가슴이 먹먹했다.
“예쁜아 노란둥이야.”
모두 데리고 거실로 들어서자 아기냥들이 예쁜이에게 달려들어 치근대기 시작했다. 어미 젖을 빨기 위해 달려들다 예쁜이가 그만 아기냥을 밀쳐내면서 발톱을 휘두른 것이다. 아기냥은 서러워 냥냥대면서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이제 겨우 젖을 먹을까 했는데 그냥 물러설 수 없다는 듯 아기냥은 계속 냥냥댔다.
캔 사료와 특제 간식을 주자 예쁜이와 노란둥이는 조금 먹더니 밖으로 나갔다. 그래도 아무 탈 없이 무사히 돌아왔으니 한 시름 놓았다 싶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이 되어도 예쁜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새끼 젖도 주어야 하는데 저녁때가 되어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온 동네를 다니며 예쁜이를 불렀지만 소용없었다. 이튿날 아침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일주일 열흘이 지나갔다. 매일 예쁜이를 부르며 온 동네를 찾아 나섰지만 예쁜이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술이 잘못된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멀쩡히 잘 지내던 고양이가 수술 받고 나오자 마자 열흘 동안이나 안 보인단 말인가. 수술 후유증으로 이상 증세가 발생했거나 죽은 게 틀림없다. 의심과 걱정이 커 갈수록 모든 원망이 수의사에게 쏠리기 시작했다. 인터넷 상에서 떠도는 괴담도 연이어 떠올랐다.
가슴이 타들어가던 어느날. 그러니까 예쁜이가 사라진 지 보름쯤 되던 날이었다. 밤 10시가 넘어 현관문을 여는데 이상한 물체가 거실 안으로 쓱 들어가는 게 아닌가. 예쁜이였다. 작고 여윈 몸체가 흡사 아기 고양이 같았다. 얼마나 말랐는지 뼈만 앙상한 몸에 털이 뻣뻣하고 지저분했다. 얼굴도 반쪽이 되어 자세히 보기 전에는 예쁜이 같지 않았다.
예쁜이는 그동안 보름 넘게 숨어 지내는 동안 자기 몸 상태를 알아차린 것 같다. 이젠 암컷도 수컷도 아닌 중성화 된 자신의 몸 상태를. 자세히 보니 예쁜이와 노란둥이의 한쪽 귀가 잘려져 있었다. 중성화 된 표식이었다. 예쁜이는 반가워 어쩔 줄 모르는 주인과 달리 사료를 조금 먹고는 다시 사라졌다.
아침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아 가슴을 졸였는데 저녁 때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밖으로 못 나가게 문을 걸어 잠그고 베란다 안으로 유인했다.
아예 집콕 고양이로 만들 요량으로 베란다 창문도 단단히 걸어 잠갔다. 그리고 고양이 침대로 유인한 뒤 참치 사료와 특제 간식을 주었다. 이번에도 조금 먹으려나 싶었는데 잘 먹었다. 옆자리에 노란둥이도 함께 두어 폭풍 흡입하게 했다.
노란둥이는 수술 후에도 사료를 잘 먹어서인지 하루가 다르게 건강을 회복했다. 뻣뻣하던 털도 제법 윤기가 흐르고 살도 올랐다. 일주일 쯤 지나자 기력이 회복회고 기분이 좋아졌는지 주인을 볼 때마다 냐옹대고 인사도 했다. 예쁜이는 다시 외출냥이 되었다.
집 밖으로 나가 동네 마실을 다니는데 예전 같지 않았다. 예전에는 길냥이와 싸워도 결코 맞는 법이 없었는데 어쩐 일인지 중성화 수술 이후에는 자주 쫒기고 얻어맞는 일이 생겼다. 귀를 물어 뜯겨 살점이 나가고 뒷다리에서도 살점이 뜯겨 피가 흘렀다.
나가지 말라고 아무리 신신당부를 해도 소용없었다. 어디 숨겨 논 아지트가 있는지 아예 대놓고 외박을 했다. 또다시 집안에 있다가 이전처럼 수술대에 오를까 겁나는 모양이었다. 한동안 안 보이다가 배가 고프면 나타나 사료를 먹고는 금세 사라졌다.
예쁜이가 낳은 아기냥 2마리도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이제 고양이로 인한 근심이 영 사라지는가 싶었다. 다시는 고양이 개체수가 늘어나 골머리 앓을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런데도 이상하게 가슴이 싸하니 아팠다. 후회와 연민이 계속 가슴 속을 치받고 일어났다.
동네에 재개발 붐이 시작되고 있었다. 재개발에 대한 현수막이 걸리고 가끔씩 이삿짐 실은 트럭이 골목을 빠져 나가곤 했다. 이제 동네 사람들이 다 떠나고 빈 공간이 되면 길고양이들은 꼼짝없이 굶어 죽을 것이다. 영역 동물인 고양이들은 제 살던 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자리만 고수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인터넷 기사 글이 떠오른다.
재개발로 떠나 버린 동네에 고양이들이 다니는데 아사(餓死) 직전이라는 것이다. 가끔씩 캣맘들이 사료를 주긴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한시적이다. 철거 공사가 시작되면 고양이들이 구석에 숨어 있다 그대로 건물더미에 깔려 죽는다고 한다.
그들을 구출할 유일한 인력은 오로지 캣맘 자원봉사자들인데 여의치가 않다고 한다. 또다시 가슴 통증이 일었다. 요즘 따라 길냥이들이 자주 집에 찾아왔다. 꼬리 잘린 노랑이와 갈색 털북숭이 수컷 고양이, 검둥이 아기 고양이, 흰색과 검정이 섞인 털에 눈곱이 잔뜩 낀 못생긴 고양이와 예쁜이의 자매인 삼색이도 찾아왔다.
올 때마다 참치 사료에 닭 가슴살 사료를 주었더니 나중에는 건사료는 아예 입에 대지도 않았다.
“그래 어차피 동네 떠나면 그만일 테니 실컷 먹어둬라.”
사료를 먹은 길냥이들은 지붕 위를 뛰어다니며 놀다 기왓장을 깨기도 하고 빈집에 들어가 새끼를 낳았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었다. 우리집도 이사 갈 준비를 서둘러야 했다. 남편은 길냥이들 걱정에 눈물을 한웅큼 떨어뜨리고 인터넷에 수시로 게시글을 올렸다.
재개발 들어간 지역에 사는 고양이들에게 구조를 요청하는 글이었다. 그는 청와대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가 삭제하기도 했다. 유튜브에도 글을 올렸는데 반응은 뜨거웠지만 실제로 동참하겠다는 사람은 적었다. 나는 인터넷 쇼핑몰에 고양이용 케이지 3개를 주문했다.
한 케이지 당 두 마리 씩 넣고 이사할 작정이었다. 그리고 가능하면 집에 찾아오는 길냥이들도 최대한 포획해 새로 이사 갈 동네로 옮길 작정이었다. 이사 날짜가 점점 가까워 오고 있었다. 내 가슴의 통증은 점점 심해졌고 남편은 인터넷 동물방에 유튜브에 수시로 글을 올렸다 삭제하기를 반복했다.
이제 집냥이가 된 지 5년이 넘은 예쁜이와 노란둥이 점박이 까망이와 하양이는 제법 주인 말을 잘 따른다. 케이지 안에 캔 사료를 주었더니 들락날락 하며 잘 먹는다. 어제 앞집과 뒷집이 이사를 갔다. 일주일 뒷면 우리집이 이사 갈 차례다.
그동안 우리집에 이웃에 사는 캣맘들과 캣대디들이 몇 명 다녀갔다. 길냥이들을 각자 사는 동네로 옮기기로 약속했다. 그들은 모두 가슴 속에 한서린 아픔과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어릴 때 부모로부터 버림을 당했거나 학대 당한 사람들이었다. 그도 아니면 오직 생명존중 사랑에 인 박힌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신(神)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여리고 정직한 사람들이었다. 날씨가 영하로 곤두박질치면서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티눈 제거수술 받은 발바닥에서도 계속 통증이 느껴졌다. 어느날 문자가 도착했다. 길냥이 구조 작전에 꼭 참석하라는 독려 문자였다.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지만 믿기로 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였다.
드디어 우리집 이사 차가 그동안 살던 동네를 떠나던 날이었다. 이삿짐 차가 막 골목길을 빠져 나가는데 우리집 담장 위에서 길냥이들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저씨 잠깐만요.”
나는 차에서 내려 도로 우리가 살던 집으로 달려갔다, 주머니에서 캔 사료를 꺼내 고양이에게 주었다. 고양이들은 마지막 만찬인 듯 마구 냥냥대며 먹기 시작했다. 어느샌가 뒤에 서 있던 남편이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내 눈에서도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렸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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