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순한 양이라 불린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 사람들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듯 관대하고 손해도 인심으로
받아들이며 살았다.
그 나라 왕은 그런 민심의 대변자였다.
그래서 자신에게 반기를 든 사람도 관대한 마음으로 용서해 주었고
어떤 극한 경우에는 나라가 안정되면 돌아오라며 망명도 주선해 주었다.
그러나 망명을 하던 어떤 사람이 나라 밖에서 백성의 무리를 조종하여
자신이 집권하면 집과 돈을 주겠다고 약속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허황되게 이끌었다.
사람들은 현재의 왕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고 쿠데타가 일어났으며
왕과 모든 신하는 죽었다.
하지만 그의 약속은 거짓임이 드러났고 사람들은 악과 의심으로
가득찼으며 살기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순한 양이 악만 남은 양으로 돌변한 것이다.
서로를 속이고 갈라서게 만드는 실재하는 무언가가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악마라고 부른다.
갈릴래아에서부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예수님의 제자단 무리에 있던
유다가 돈맛을 알고 배반을 약속하면서부터 남은 것은 악뿐이었으며
점점 양의 탈을 쓴 늑대로 돌변한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바꾸었는가? 그건 바로 악마다.
그런데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예수께서 그 제자를 가만히
내버려두었다는 것이다.
이 세상도 마찬가지다. 악이 판을 치고, 윤리적 죄악뿐 아니라 믿음의
죄까지 바벨탑을 쌓고 있는데 하느님은 침묵하고 계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피조물인 악마가 창조주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다.
유다가 끝까지 이해하지 못한 진리이다.
[제주교구 허찬란 신부]